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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5일 월요일 [(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515년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태어났다. 가르멜 수도회에 들어간 그녀는 평생을 완덕의 길에 정진하며 살았다. 데레사 수녀는 수도회의 발전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많은 어려움에 맞닥뜨렸으나 주님께 매달리며 곤경을 이겨 나갔다. 수도 생활과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긴 그녀는 1582년에 세상을 떠났다.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이 데레사 수녀를 시성하였고, 1970년 바오로 6세 교황이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성녀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여종이 아닌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라며,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4,22-24.26-27.31─5,1 형제 여러분,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24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또는, 기념일 독서(로마 8,22-27)와 복음(요한 15,1-8)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믿지 않는 악한 세대를 질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호기심으로 당신에게 기적을 청하며 그분의 선한 업적을 의심하는 세대에게 ‘요나의 표징’을 주십니다.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독점하기를 원한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어기려고 작정한 요나 예언자는 멀리 도망가지만 결국 니네베에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요나의 기대와 달리 니네베 사람들은 회개하여 하느님의 징벌을 피하고 구원됩니다. ‘요나의 표징’은 누구나 회개하면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 자신의 회심이 있어야 세상의 구원과 변화가 생깁니다. ‘요나의 표징’은 회개하는 사람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주어짐을 알려 줍니다. 끊임없이 회개의 여정에 나서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업적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세속의 영광과 찬사를 넘어서는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를 알아듣습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시냇물을 그리워하는 사슴처럼 하느님의 생명수를 목말라한 분입니다. 성녀는 참된 성덕의 열망으로 완덕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 준 분입니다. 성녀는 종살이의 멍에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와 지복직관을 얻도록 안내합니다. 성녀는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시련을 인내하며 평상심을 잃지 않고 하느님을 찾아 얻는 길을 알려 준 분입니다. 우리는 데레사 성녀를 본받아 날마다 새롭게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하늘 나라의 순례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그분을 바라보는 것 외에 나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는 기도 중의 기도인 관상기도에 있어서 최고봉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연인관계로 설정했습니다. 하느님과 비밀스럽게 주고받은 연서(戀書), 연애편지가 바로 ‘천주자비의 글’입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깊은 묵상기도와 황홀한 관상생활은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데레사는 영적생활의 기쁨과 행복, 감미로움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깊은 우물에서 건져 올린 하느님 사랑의 체험을 이웃들과 연결시켰습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던 수도회와 교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은 그녀를 용감한 수도회의 개혁가이자 투사로 변모시켰습니다.
우리가 절실히 체험하는 바처럼 인간 존재는 대체로 한결같지 못합니다. 바깥에서는 천사, 법 없이도 살 사람, 성인군자가 따로 없지만 귀가(歸家)즉시 폭군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타인으로부터 받는 평가 중에서 가장 정확한 평가이자 신빙성 있는 평가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알고 있는 가족, 이웃, 동료들로부터 받는 평가입니다.
이런 면에서 데레사는 크게 칭송받을 만합니다. 그녀는 교회 역사 상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 영성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평가들보다 훨씬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녀와 동고동락했던 동료 수도자들의 평가입니다. “이토록 거룩하고 신비로운 분, 이토록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성녀를 저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성생활과 관련된 데레사의 가르침은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는지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그 누구도 이렇게 영성생활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바가 없었습니다.
“좋은 벗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 하느님과 단둘이 우정을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성(理性)만으로 그분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많은 개념들도 끄집어내지 마십시오. 대단하고 복잡한 명상도 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바라보는 것 외에 나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탁월하고 매력적인 인물이요 성인 가운데서도 대성인인 데레사였지만 자신의 생애 안에 방황하던 청소년기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지난 시절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한때 연애 소설에 심취해서 밤낮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또한 외모를 가꾸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예쁜 옷, 값비싼 향수, 화려한 장신구를 구하는데 혈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래 여자 친구들과 수다 떠느라 하루해가 짧았습니다.”
지금은 만인이 존경하고 흠모하는 대성녀에게도 한때 이런 ‘흑역사’가 있었다는 것 오늘 우리에게는 큰 위안꺼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데레사가 꿈꿨던 가르멜회 개혁 작업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한번 편리함과 달콤한 세속주의의 맛을 본 수도자들은 개혁을 반대하는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개혁 작업 내내 그녀는 지독한 반대와 혹독한 박해와 맞서야 했습니다. 반대파들은 그녀가 악마의 조종을 받고 있다면서 이단자로 몰아세웠습니다.
그런 순간에도 데레사는 불평불만 한 마디 던지지 않았고 성모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귀여워하시는 이들을 고생길로 이끄시고 많이 아끼실수록 많은 고생을 내리십니다.” 라고 외치며 쉼 없이 개혁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표징이 표징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
‘사실 인간성에 문제가 있었던 역사적 위인 5명’이란 제목의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 마더 데라사 수녀님이 끼어있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분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주된 이유는 ‘빈곤의 고통이 아름답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노벨상을 수상하고 가톨릭교회에서 성녀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단점이 가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시설 내에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취급하는 방법이 좋지 않았다고 동영상은 소개합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활동했던 봉사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전문지식이 부족했던 스태프들, 그리고 한번 사용한 주사기의 반복적 사용, 사용 기한이 지난 약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들에게 시중에서 판매되는 해열제와 진통제를 먹이는 부적절한 치료도 이루어졌고 시설에 있는 환자들이 가족들과 면회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금액이 전 세계 각국에서 기부되고 있었기 때문에 시설에 있던 사람들에게 적절한 처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자금의 부족이 아니라 데레사 수녀님의 의도였는데 그 증거가 빈곤으로 고통 받고 있던 사람들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말하며 빈곤 자체를 미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란 주장입니다.
이렇듯 동영상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을 거의 정신병자로 몰고 있고 댓글을 보니 수녀님을 옹호하는 글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분이 빈곤의 고통이 아름답다고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을 아름답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가난의 상징입니다. 그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처참하면서도 우리 구원의 원천이기에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아름답게 보지 못하여 도와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이지, 그들을 형제처럼 아름답게 대하는 것을 그들이 계속 고통 받기를 원했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억측일 뿐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자서전에 보면 그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은 굶어야 했던 상황도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더운 곳에서도 그녀는 가구 하나 없는 아주 작은 방에서 낡아빠진 선풍기 하나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마치 세계에서 쏟아지는 돈을 유용이라도 했다는 듯이,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주신 분을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 안에서 자신을 변하게 만들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 때문에 변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고 그 이유로 자꾸 다른 표징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표징입니다. 표징이 되려면 자신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이 만나게 해야 합니다. 표징이라면 성막이나 성전을 생각하면 됩니다. 성전은 하나의 표징입니다. 그 안에 하느님을 모시면 사제가 들어와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래서 모든 성전은 표징이 됩니다. 그리고 그 성전 안에 들어오기 합당한 사람이라면 그 표징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변화되는 것입니다.
가장 완전한 성전이요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도 군중은 계속 다른 표징을 원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처럼 완전한 표징을 두고도 다른 표징을 요구한다는 말은 마음이 그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싶지 않게 악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표징이라면 요나를 닮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는 하느님의 표징이 되기 위해 물고기 속에서 사흘 밤낮을 견뎠습니다. 이는 죽음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죽지 않는 누구도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이 참 표징임을 보여주시기 위해 요나처럼 땅 속에서 사흘을 계셨습니다. 누구든 표징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안에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이들을 나무라십니다. 요나의 예언 때문에 니네베의 모든 이가 회개하였고,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멀리 남방에서 여왕이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였는데 요나와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이 계심에도 그분께 다가오려 하지 않는 것은 ‘변하고 싶은 의지’가 없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를 보고 자신도 불쌍한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하면 됐지, 굳이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찾아내어 그분을 거부하는 것은 그분처럼 살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예수님도 거부하고 그분의 십자가도 거부합니다. 자신이 표징을 받아들이면 자신도 그 표징의 표징이 되어야하는데 그러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죽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표징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이가 그런 사람이고 그분이 파견하신 교회를 거부하는 이가 그런 사람이며 성체성혈을 거부하는 이가 또한 그런 사람입니다. 요나처럼 나를 물고기 속에도 묻을 수 있는 마음을 청합시다. 도망 다니는 삶보다 표징이 되는 삶이 훨씬 행복합니다. 표징은 내가 변하기를 원할 때만 표징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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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Teresa)
신분 : 설립자, 신비가, 교회학자
활동지역 : 아빌라(Avila)
활동연도 : 1515-1582년
같은이름 : 대 데레사, 대데레사, 테레사, 테레시아
성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는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의 아빌라에서 신심 깊은 아버지 알론소 산체스 데 세페다(Alonso Sanchez de Cepeda)와 어머니 베아트리스 데 아우마다 이 쿠에바스(Beatriz de Ahumada y Cuevas)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고향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19세 때에 아빌라의 강생 카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갈망해오던 그녀는 1537년 11월에 수도서원을 했으나 지병으로 잠시 수녀원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20년 가까이 수도생활에 정진한 그녀는 극심한 고행으로 인해 몸이 쇠약해져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기도 했으나, 40세에 이르러 내적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특히 그녀는 1554년 수난 받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통해 내적 회심을 경험한 이후 여러 번 환시를 보고 신비스런 음성을 들었는데, 알칸타라(Alcantara)의 성 베드로(Petrus, 10월 19일)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을 때까지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성 베드로 신부는 그 모든 환시가 진실한 것임을 그녀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그 당시의 다소 느긋한 수도생활보다 카르멜회의 초기 규칙대로 보다 엄격한 수도 생활을 원하는 4명의 수녀들과 함께 '맨발의 카르멜회'(discalceati)를 시작하면서 아빌라에 성 요셉 수도원을 세웠다(1562년). 1567년 카르멜회의 총장인 루베오 신부는 성 요셉 수도원과 같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다른 수도원을 세우도록 그녀에게 허락하였다.
메디노 델 캄포에 제2의 수도원을 세울 때 그녀는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이란 젊은 수도자를 만났으며, 1568년에는 두루엘로에 남자를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다. 이것이 최초의 맨발의 카르멜 남자 수도회였다.
성녀 테레사는 에스파냐 전역을 다니면서 카르멜 수도원의 개혁을 위해 노력했으나, 1575년의 총회에서는 그녀의 개혁 그룹을 제한하기도 했었다. 1580년까지 카르멜회 내부의 완화파와 개혁파 간의 투쟁은 격심하였다. 이윽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는 개혁을 추구하는 '맨발의 카르멜회'를 완화 카르멜회로부터 분리시켜 독립 수도회로 인정하게 되었다. 성녀 테레사는 수많은 편지와 책을 지었는데, 이 모두는 영성 문학의 고전이 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그 중에서 자서전인 "천주 자비의 글"(1562-1565년), "완덕의 길"(1565년), "영혼의 성"(1577년)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신비가 중의 한 명인 성녀 테레사는 지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이었으며, 매력적이며 깊은 영성을 지녔다. 그녀는 차원 높은 관상생활과 더불어 수준 높은 활동생활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던 위대한 성녀이다.
그녀는 1582년 9월 말경 부르고스(Burgos)에서 아빌라로 가는 도중 알바 데 토르메스(Alba de Tormes) 수도원에 머물던 중 병세가 악화되어 10월 4일 선종하였다. 그녀는 1614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70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그녀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도 불린다.
첫댓글 아멘.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