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골
홍정미
칡꽃 향기에 취해
늘 비틀거렸다
다래나무이거나 산뽕나무이거나
내려오는 바람은 따로 있어 골짜기를 꿈틀꿈틀 기어 내릴 때
가난한 휴가의 밥 짓는 냄새가 가득 메웠다
두고 온 도시의 쓸쓸함이 일어
자꾸 눈을 비비다가
개울물 소리에 끌려 물속을 종일 들락거렸다
나뭇잎 쓸리는 소리에 놀란 새 한 마리
저무는 그림 속으로 사라지자
더위도 비켜나갔다
그리운 것이 많아
서글픈 곳,
운수골 골짜기에 여름이 깊다
---애지 가을호 발표예정
칡꽃은 갈꽃이며, 등꽃과는 다르게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꽃은 주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갈등이란 칠꽃(칡)과 등꽃(등나무)의 관계를 말하지만, 칡꽃과 등꽃은 덩굴식물로서 매우 생명력이 강하고 그 향기가 아주 진하다고 할 수가 있다. 조용하고 호젓한 야산이나 깊고 깊은 산길을 거닐며 자주색 또는 붉은색으로 피는 칡꽃을 바라보며, 이 칡꽃의 아름다움과 그 향기를 맡아본 사람이면 홍정미 시인의 [운수골]의 칡꽃 향기가 그냥 말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꽃은 자기 존재의 가장 이상적인 결정체이며, 그 향기는 자기 짝을 부르는 중독성 마약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운수골은 깊디 깊은 강원도의 산골짜기이고, 홍정미 시인이 “칡꽃 향기에 취해/ 늘 비틀거렸”던 곳이기도 하다. “다래나무이거나 산뽕나무이거나/ 내려오는 바람은 따로 있어 골짜기를 꿈틀꿈틀 기어 내릴 때/ 가난한 휴가의 밥 짓는 냄새가 가득 메웠다.” 이 세상의 삶이 칡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다면 아주 행복하겠지만, 다래나무와 산뽕나무, 즉, 이 세상의 어중이떠중이들의 삶은 그 중심을 잃고 꿈틀꿈틀 기어다닐 수밖에 없다. 어렵고 힘든 삶은 아주 조용하고 아름다운 운수골 골짜기마저도 가난으로 물들이고, “두고 온 도시의 쓸쓸함이 일어/ 자꾸 눈을 비비다가/ 개울물 소리에 끌려 물속을 종일 들락”거리게 만든다.
가난은 삶을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고, 타인들이나 친구들을 못 견디게 그리워하면서도 “나뭇잎 쓸리는 소리에 놀란 새 한 마리”처럼 아주 자그만 기척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든다. 가난은 운수골이며, “그리운 것이 많아/ 서글픈 곳”이고, 가난은 외로움이고 쓸쓸함이다. 가난은 차가움이며, 시인의 명예이고, 그 모든 더위를 다 씻어주는 운수골 골짜기와도 같다.
시는 칡꽃이고, 칡꽃의 향기이며, 그 아름다움에 취해 그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게 만든다. 이 세상은 “그리운 것이 많아/ 서글픈 곳”이고, “운수골 골짜기에 여름이 깊다.”
홍정미 시인의 [운수골]은 ‘시서화詩書畵의 극치’이며, 이 시의 골짜기로 모든 사람들을 다 불러들인다.
시는 두뇌 속에 있지 않고, 가슴 속에 있다. 이 정직하고 성실한 삶이 칡꽃처럼 피거나, 또는 운수골 골짜기처럼 깊고 깊게 펼쳐지는 것이며, 시인은 바로 그것을 받아 적으면 된다.
시인은 가난하게 살고, 가짜 시인은 화려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