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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어떻게 천국을 침노하나?/ 마태복음 11:12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관성을 위하여 오늘 설교에서는 가능하면 천국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천국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입니다. 천국은 이미 시작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 되었습니다. 천국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침노를 당했고 침노하는 자가 빼앗습니다. 천국은 이미 시작 되었으나 주님의 재림 후 영원한 심판이 있기까지는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특징은 이미 그러나 아직입니다.
②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요한복음 16:11입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마귀가 통치하는 곳은 이 세상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이 세상 임금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이 세상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천국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가 천국 백성입니다.
③누림입니다. 로마서 14:17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성령 안에서 의로운 존재가 되고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누립니다. 천국은 평강으로 누리고 희락으로 누립니다. 우리가 의와 평강과 희락 가운데 거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리는 것입니다.
④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마태복음 21:43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여기서 너희는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민족보다 가장 먼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천국을 빼앗겼습니다. 유대인들은 천국을 천국의 열매를 맺는 백성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이방인들 가운데 복음을 받아드리고 복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천국을 침노하여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천국을 빼앗긴 모습을 비유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어떤 자매를 좋아하는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A라는 청년이 자매의 마음을 얻어서 그 자매와 결혼 약속을 했습니다. A는 자매와 결혼을 약속한 후부터 그 자매에게 소홀했습니다. ‘이미 결혼하기로 약속했으니...’라고 생각하고 연락도 자주 안했습니다.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다가 점점 뜸해 졌습니다. A는 자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의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자매에 대해서는 ‘앞으로 결혼할 건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안주한 것이죠. 자매는 A가 자기에게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혹시 내가 싫어진 것인가’등의 별의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결국 자매는 A가 자기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B라는 청년이 자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자매는 B를 만나서 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이제는 자매와 결혼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자매에게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자매는 A에 대해서 생각을 접은 뒤였습니다. A는 자매를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 자매를 B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무관심했고 사람들에게 천국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믿는 이방인들에게 천국을 빼앗겼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오해가 더러 있습니다. 여기서 침노와 침노하는 자에 대한 오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침노하라는 말을 오해하여 무력으로 탈취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십자군처럼 무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려는 어리석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에서 천국을 침노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데 우리는 천국을 어떻게 침노할 수 있을까요?
1. 회개로 천국을 침노하라.
마태복음 3:2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이 외침은 세례 요한의 외침이었습니다. 마태복음 4:17입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40일 금식을 하신 후에 나사렛에 가셔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말씀의 핵심이 나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입니다. 천국은 회개하는 자가 침노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①자신의 죄를 인정하라.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회개는 시작 됩니다.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했습니다. 그들이 청소를 한 후에 상대를 바라봤습니다. 한 사람은 시커먼 재가 얼굴에 잔뜩 묻어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이상하게도 얼굴이 깨끗했습니다. 질문하겠습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세수하기 위하여 욕실로 들어갔을까요? 얼굴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그는 상대의 얼굴에 묻은 시커먼 재를 보고는 자기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얼굴에 재가 묻은 사람은 상대의 얼굴이 깨끗한 것을 보고 자기도 깨끗하리라 생각하고 씻지 않았던 것입니다. 회개는 자기가 죄로 더러워졌다고 믿는 사람이 합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캄캄한 곳에서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빛이 있어야 거울을 봐도 자기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빛이 임하면 그 빛 때문에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부터 회개했고 2학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방황을 했습니다. 그때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빛이 임하면서 죄가 죄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죄를 자백하고 성령을 받아서 죄악 된 길에서 돌이켰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②자신의 죄를 자백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죄를 즉시 사해주십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시편 32:5입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다윗이 죄를 범한 후에 죄를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다윗은 양심의 가책으로 종일 신음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마치 뼈가 쇠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그의 진액이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입을 열어 하나님께 자기 죄를 아뢰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곧 그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③죄악 된 길에서 돌아서라.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우리 교회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내비가 인도하는 대로 잠실까지는 잘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딴생각을 하다 잠실대교를 지나서 직진해서 가천대학교까지 갔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자기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때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턴해야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돌이켜야지요. 그가 만약 돌아서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 교회로 올 수 없습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지만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를 인정하고 죄를 자백하고 악한 길에서 돌이킬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확실한 회개가 동반 되어야 합니다. 확실한 회개가 없다면 진정한 부흥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부흥은 참된 부흥이었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집회가 거의 끝날 무렵에 길선주 장로님이 앞으로 나오더니 이런 고백을 하는 겁니다. “저는 친구가 유언하며 맡긴 돈 200원 중에서 100원을 가로챘습니다.” 장로가 그것도 1500명이나 되는 그 많은 교인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회개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길선주 장로님의 회개를 들은 성도들이 저마다 자기가 숨겨 놓은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뒹굴며 가슴을 치며 회개하였습니다. 저녁 7시에 시작된 부흥회는 새벽 2시가 되어도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의 부흥이 참된 부흥이었던 증거는 회개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길선주장로는 자기가 가로챈 100원을 친구의 아내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쌀가게 주인은 됫박을 속여서 판 것을 공개적으로 회개하는 글을 가게 앞에 써서 붙이고 배상해 주었습니다. 고의로 빚을 떼먹은 사람은 채주를 찾아가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술집 앞에는 이런 간판을 붙였답니다. ‘금일부로 이 술집을 폐업함. 어젯밤 주인이 회개함’ 평양대부흥은 입으로만 회개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회개한 진정한 부흥이었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다면 죄악을 끊어야 합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켜 의의 길로 들어서야만 천국을 침노하는 것입니다. 행동이 뒤따르는 회개가 진짜 회개이며 그런 사람이 천국을 침노하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천국을 침노하라.
요한복음 3:3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3:5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육으로 났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영으로 났다고 하며 다른 말로는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집인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믿음으로 침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조건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천국을 미리 맛보고 누리는 것도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침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셔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조물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과의 경계선을 선악과로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욕심에 이끌려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과 단절되므로 영적인 죽음에 처하게 되었고 육체는 서서히 늙어가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오직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천국 백성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천국을 침노한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고 죽어서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혹시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안타깝지만 그 사람은 천국과 상관없습니다. 살아서는 천국을 맛보지 못하고 죽어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마가복음 1:15입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현세천국도 믿음으로 누리고 영원천국도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삶에서 주님을 체험하는 것을 하나님의 누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누림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에 갈보리채플라는 유명한 교회가 있습니다. 담임은 척스미스 목사님이셨습니다. 마피아, 갱단, 그리고 알코올과 마약중독자들이 그 교회에 와서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여 미국에 수많은 갈보리채플이 생겼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개척한 이후에 아무리 성실하게 목회를 해도 교회가 부흥되지 않고 은혜가 없고 아주 드라이했습니다. 목사님은 목회를 그만두고 다시 건축업을 시작할까?’ 고민했습니다. 전기세, 수도세, 가스요금이 450불이나 연체되었습니다. 그것을 갚을 길이 없어 근심 중에 있는데 하루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오니 전화가 왔습니다. 오랜 친구였습니다. “이 사람, 목회가 힘들지? 내가 오늘 아침에 자네를 위해 기도할 때 자네에게 500불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오늘 500불을 보내 줄 테니 요긴하게 쓰게나.” 그 전화를 받고 나니 뛸 듯이 기뻤습니다. 450불 때문에 자나 깨나 걱정을 했는데 500불을 보내 준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 너 갑자기 왜 그렇게 좋아하니? 축 쳐져 살더니 오늘은 왜 그렇게 좋아하지?”, “하나님, 저 행복합니다.”, “왜?” “모르셔서 물으십니까? 친구가 500불을 보내 준다고 했습니다.”, “얘야, 그것을 어떻게 믿니? 친구가 보내 준다고 해놓고 안 보내줄 수 있고, 보내 주어도 부도 수표가 되면 어떻게 할 거니?”, “하나님, 무슨 말씀을 하세요? 그 친구는 제 오랜 친구고 아주 신실합니다.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500불이 옵니다. 하나님, 두고 보세요.”, “사랑하는 종아, 너는 어찌하여 내 말보다 친구의 말을 더 신뢰하느냐? 내가 네게 ‘걱정하지 마라. 근심하지 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라고 그렇게 말해도 믿지 않고 염려만 하더니 네 친구의 말은 확실히 믿고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그때 그의 가슴이 무거워지고 진지해졌습니다. ‘내가 잘못 믿었구나! 목회를 잘못했구나! 성경 말씀을 전하면서도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전하고, 성경을 공부하면서도 성경이 그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공부했구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같이 살았구나.’ 그렇게 깨닫고 회개하는 순간 그의 가슴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목사님은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믿는 대로 전하면 그대로 역사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천국을 침노하십시다.
3. 하나님께 헌신된 생활로 천국을 침노하라.
예수님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 천국의 맛을 보면서 삽니다. 천국을 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모두가 동일하게 천국을 맛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서 정도가 달라집니다. 영원한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천국을 모두가 동일하게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어떻게 주님을 섬겼느냐에 따라서 천국에서 받을 면류관과 상급이 달라집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우리들의 신앙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 터 위에 신앙의 집을 짓습니다. 그 집은 마지막 때에 불로서 공적을 시험 받습니다. 그때 그 집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불타서 없어지면 구원을 받되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3:15입니다.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저는 이 말씀을 보면 목욕탕에 불난 사건이 생각납니다. 목욕탕에 불이 났습니다. 몇 사람은 불에 타서 죽고 몇 사람은 질식해서 죽었습니다. 다행히 탈의실에서 이미 옷을 입은 사람들은 잽싸게 밖으로 나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급하니까 옷도 입지 못하고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다행히 그는 불 가운데서 살아났지만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목욕탕에 불이나니 많은 사람들이 불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구경을 하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벌거벗은 모습을 다 보았습니다. 그는 불속에서 살아났지만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마지막 심판대에서도 구원 받기는 하지만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를 위해서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3:44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소작농 한 사람이 남의 밭에서 일하다가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보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밭을 샀습니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고라도 천국을 사야 합니다.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진짜 신앙생활은 헌신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헌신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격은 우리의 수고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거저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고 영원한 천국에서 상급과 면류관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6에서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헌신된 삶을 살았는지를 전제로 표현했습니다. 전제는 제단 위에 올려진 제물위에 포도주를 붓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희생적 순교를 상징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예견하고 남은 생명을 그리스도와 온 교회를 위하여 산 제물로 순교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알게 된 후에는 그때까지 자신이 자랑했던 것들을 분토와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리고 위의 것을 잡으려고 달려갔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알게 된 후에는 그렇게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은 헌신입니다. 담대하게 헌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천국을 침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게으름을 이기고 헌신하는 것이 천국을 침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재정적인 헌신을 하는 것이 천국을 침노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천국을 침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어떤 일이 있을 때 몸을 아까지 않고 섬기는 것이 천국을 침노하는 것입니다. 주와 및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몸과 재정과 재능을 사용하는 것이 천국을 침노하는 것입니다.
4. 영적 싸움의 승리로 천국을 침노하라.
마태복음 12:28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귀신이 쫓겨나야 누립니다. 천국은 영적인 싸움에 승리해야 누립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누리려면 성령을 힘입어서 영적 싸움에 승리하여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싸움의 승리로 천국을 침노하라는 말은 성령 충만으로 천국을 침노하라는 말입니다.
천국과 성령의 역사는 필연적인입니다. 로마서 14:17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천국은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천국은 진리적이고 영적이고 내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성령 안에서 누립니다. 천국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천국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천국을 맛보는 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순간입니다. 임재의 한문의 뜻을 풀면 임할 임(臨)자에 있을 재(在)로 ‘임하여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께서 개인이나 단체나 어느 장소나 공간에 임하여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보통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는 하는데 잠간 체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찬송하는 중에 한 소절 정도 체험하기도 하고, 기도 중에 잠시 체험하기도 합니다. 좀 강하면 예배를 드리는 내내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면 임재가 사라지고, 교회에서 나가면 임재가 사라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시 임재를 체험하는 정도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임재가 계속 되는 것을 동행이라고 합니다. 1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면 그 1년간 하나님의 임재가 계속 된 것입니다. 1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면 10년간 하나님의 임재가 계속 된 것입니다. 에녹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65세에 무드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에녹처럼 살아야 합니다. 찬송하는 데 잠시, 기도하는 동안 잠시, 예배 때에 잠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고 에녹처럼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체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중국에서 사역 하셨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에게 하루는 한 젊은이가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교회를 들락거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세례도 받고 정식으로 믿고 싶습니다. 성경을 몇 번 읽어야 됩니까?”, “촛불이 언제부터 빛이 나나?”, “심지에 불을 붙여야 빛이 나죠.”, “마찬가지네. 성령님게서 자네 마음속에 역사하실 때부터 온전한 교인이 되는 것이네.” 참 옳은 말입니다.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녀도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온전한 교인이 아닙니다. 단 며칠을 다녀도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진짜 교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임재 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현상적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고 몸이 찌릿찌릿 하는 등의 현상을 임재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현상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임재는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고, 성령 충만할 때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할 때 천국을 맛보고 누립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함으로 천국을 침노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고, 성령 충만의 비결의 비결은 기도입니다. 사도행전 1:14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고 유언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을 쓰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영적 싸움에 승리하여 천국을 누리기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은 “어떻게 천국을 침노하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1. 회개로 천국을 침노하라.
2. 믿음으로 천국을 침노하라.
3. 하나님께 헌신된 생활로 천국을 침노하라.
4. 영적 싸움의 승리로 천국을 침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