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사님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설교한 다음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천국가는 거지 나사로가 되길 원하십니까? 지옥가는 부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그러자 그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땅에서는 부자처럼 살고, 천국에서는 거지 나사로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천국가기를 원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삶일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잘 살고, 천국에서도 잘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길은 흔치 않습니다.
한국교회 실태 조사(목회데이터연구소 등)에 따르면 교인들의 실제 경건 생활 지표는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성경 읽기: 매일 읽는 성도 10~20% 내외에 불과
기도: 정기적으로(매일) 기도 시간을 갖는 교인은 30% 이하
전도: 1명도 전도하지 못했다 20% 이하
예배: 정규적 예배 참여율 60%이하
천국: 천국에 가고 싶다. 100%
우리는 부요한 삶, 넉넉한 삶, 모든 꿈이 다 이루어지는 시간들을 보내게 되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쉽게 죄악에 물들기 쉽습니다. 바로 버가모교회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발람이 그런 선지자였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고 살지만 세상이 건네는 재물의 유혹이 싫지마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길을 막으시고, 나귀의 입을 여셔서 그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셨지만, 결국 탐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이스라엘에 저주를 가져오는 발람의 꾀를 생각해 내고 맙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따르지 않는 걸음은 사탄의 유혹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버가모 교회: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서의 승리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2-13)
1. 버가모의 지리적·역사적 배경
여러분, 일곱 교회 중에서 세 번째 교회인 버가모 교회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성채(Castle)' 혹은 '높이 들려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당시, 버가모는 로마 소아시아 주의 도청 소재지였습니다. 로마 총독이 주재하며 황제의 명령이 아시아 전역으로 전달되던 정치의 중심지였던 것이죠.
또한 로마의 대법원이 그곳에 있어 아시아 전역의 죄수들이 버가모로 압송되어 왔고, 엄격한 로마법의 재판을 받고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교일치 시대였기에 국교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은 역사적으로 서머나 시대를 이어, AD 313년 공인된 종교가 된 기독교가 392년 로마의 국교로 '높이 들려지는' 과정을 예언적으로 보여줍니다.
교회사적 관점에서 버가모 교회 시대는 AD 313년부터 로마 교회가 실질적인 교권을 장악한 538년까지의 기간으로 봅니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초대교회의 순결과 서머나 교회의 충성을 뒤로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배도'의 길로 나선 중세 교회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2. 사탄의 보좌(위)가 있는 곳
계시록 2장 13절은 버가모를 가리켜 "사탄의 보좌(위)가 있는 곳"이라 지적합니다. 버가모가 왜 이런 무서운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요?
제우스 제단:기원전 240년경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거대한 제우스 제단이 있었습니다. 도시 언덕 위 12m 높이로 솟은 이 제단은 마치 제우스의 보좌처럼 보였고, 온종일 제사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 숭배:오늘날 의학의 신으로 불리는 아스클레피오스 숭배가 활발했습니다. 그의 상징은 뱀이었는데, 성경에서 뱀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구세주'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명칭이었습니다.
바벨론 신비 종교의 서식지:페르시아 고레스 대왕이 바벨론을 함락할 때, 갈대아 제사장들이 버가모로 도망쳐 바벨론의 종교 의식을 계승했습니다. 버가모 왕들은 바벨론 풍습을 따라 '대제사장(Pontifex Maximus)' 직분을 가졌고, 이는 후에 로마 황제들에게,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로마 교황의 공식 명칭으로 이어졌습니다.
버가모는 고대 바벨론과 현대 바벨론(교황청)을 연결하는 역사적인 인터체인지 역할을 한 셈입니다.
3. 충성된 증인 안디바의 신앙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주님은 칭찬받을 소수를 찾으셨습니다.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계 2:13)
안디바는 버가모의 감독으로 전해지는데, 황제 숭배를 거절하다가 뜨겁게 달궈진 놋쇠 가마 속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안디바'라는 이름의 뜻은 '모든 것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당시의 부도덕한 이교 관습을 거부하던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그를 '나의 증인(Martys)'이라 부르셨습니다. 헬라어로 증인은 곧 '순교자'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십자가에서 충성된 증인이 되셨고, 이제는 우리가 그 길을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할 차례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를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4-15)
4.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위협
하지만 교회 전반의 추세는 악화되었습니다. 주님은 두 가지를 책망하셨습니다.
첫째는 발람의 교훈입니다. 구약의 발람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이길 수 없자 음탕한 우상 잔치로 유혹해 타락시켰던 것처럼, 사탄은 버가모 시대에 유화 정책을 썼습니다. 핍박 대신 호의와 특권을 베풀어 교회를 세속화시킨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정책적으로 기독교를 선택했고, 321년 일요일 준수 법령을 선포하여 태양신 숭배 관습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교회 세력을 키우기 위해 이교의 의식과 미신을 기독교 신앙과 뒤섞은 것입니다.
둘째는 니골라당의 교훈입니다. 니골라당은 '백성을 정복하다'라는 뜻을 가졌는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을 없애고 교회를 세속화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은혜의 시대니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라며 도덕적 표준을 끌어내린 자들입니다.
5. 회개하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분
주님은 배도의 길에 들어선 교회에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 2:16)
여기서 '입의 검'은 심판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타락으로 이끄는 지도자들과 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양심을 거스르고 권력과 명예를 쫓는 이 시대의 발람들에게 주시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6. 승리자에게 주시는 보상: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는 놀라운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감추었던 만나:우상의 제물을 거절한 자들에게 하늘의 양식, 곧 생명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십니다.
흰 돌과 새 이름:고대 법정에서 무죄를 선언할 때 사용하던 흰 돌은 하늘 대법정의 무죄 선언을 상징합니다. 또한 승리한 검투사에게 주던 이름이 새겨진 돌처럼, 하나님과 자신만이 아는 깊은 영적 경험을 상징하는 '새 이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7. 결론: 오늘날 우리의 응답
오늘날의 교회는 과도하게 세상 권력과 밀접해 보입니다. 수백억 원짜리 화려한 건물을 짓는다 해도 진리를 양보한 교회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차라리 박해가 있던 초대교회가 더 순결했습니다.
교회는 웅장한 공연장처럼 변해가는데, 정작 우리 개인의 신앙은 부요합니까? 우리는 발람과 발락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속과 구별된 '성도'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발람과 유다 두 사람 다 큰 빛을 받았고 특별한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마음속에 품은 한 가지 죄악이 온 성품을 중독시켜 그들을 멸망에 빠뜨렸다. 마음속에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특성이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마음속에 품은 한 작은 죄는 점점 품성을 저하시켜 그 고상한 모든 능력을 악한 욕망에 복종시킨다. … 가장 안전한 길은 다윗처럼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7:5)라고 진실한 마음으로 날마다 기도하는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452).
https://youtu.be/InAWop7m874?list=RDInAWop7m874
https://youtu.be/CIzGhuErqNQ
https://youtu.be/Fh-Wa7Q6lGg
https://youtu.be/FULy2XQmy2A
https://youtu.be/DtLw1Jqv4B0?list=RDAURX1VYyy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