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천상병의 어처구니없는 삶
마산중학교 다닐 때, 시인인 김춘수 선생에게서 문학을 배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본명은 천상병, 호는 없었고. 별명은 천희갑,
동백림 사건으로 취조를 받을 때, 희극배우 김희갑을 닮았다고 수사관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노을빛 함께 단 둘이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시인의 삶
몇 달째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천상병이 죽었을 것으로 짐작했으나, 실은 영양실조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있었다.
누군가 불쌍한 그를 위해 시집이나 발행해주자는 갸륵한 뜻을 냈다. 그래서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시집 ‘새’를 출판했다.
이런 미담이 신문에 실리자, 한 병원에서 '천상병 시인이 여기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비단 보자기에 양장본으로 꾸민 시집 10권을 들고 병문안을 갔는데. 천상병의 카랑카랑한 일성 " 내 인세는 어찌 되었노? "
돈 알기를 돌로 보면서, 저승길 노자가 필요하면 어떻게 하노? 하고 걱정하던 그였다.
커피 한 잔과 봉지 담배, 막걸리 한 병을 사고, 버스 요금이 아직 남았다고 행복해 하던 그였다.
무소유였지만 가난에 주눅 들지 않은 그가. 많은 것을 거머쥐고 허덕이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정치와 무관하던 그가, 뜻밖에 동베를린 사건으로 국사범에 몰렸다.
친구 강빈구로 부터 3만 6,500원을 갈취한 혐의다.
얼마나 술을 좋아했으면, 술값으로 백 원, 오백 원씩 받은 것이었다.
서울대학교에 다닐 때였다. 하루는 교수님 집 화장대에 멋있는 병이 있어, 양주인 줄 알고 마셨다.
무슨 향이야? 좋은 술은 향기부터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향수였다.
이발소에서
머리가 덥수룩해서 얼굴이 보이질 않자. 이를 딱하게 여긴 친구가, 돈을 주면 술 사 먹을까 봐, 그를 데리고 이발소로 갔다.
이발 삯을 지불하고 머리를 자르는 걸 본 친구는, 안심하고 자리를 떴다.
친구가 나가자마자, 이발한 비용을 제외하고, 모두 환불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발사는 돈을 돌려주고 머리는 그냥 잘라주었는데. 그 돈으로 술을 사 먹었다고 한다.
남자가 임신을?
간이 부어 복수가 차 누워있는데, 왜 배가 부르냐고 묻자 임신을 했다고, 병원장인 친구의 말이다.
이승과 저승 갈림길에서
미망인 목순옥 여사는 인사동에서 귀천이라는 민속 찻집을 운영했다.
단골손님이, 빌린 돈을 언제 갚을 거냐고 천상병에게 물었다.
"죽으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포장마차를 할 테니, 그때 빌린 돈 만큼 술을 주겠다!."
세계 유명인의 명언집에 수록되어 있다.
부인의 간절한 기도
입원했을 때, 5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놀랍게도 병원에서조차 가망이 없다던 그가 완쾌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정확히 5년 후인 1993년 거짓말같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5년이 아니라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빌어야 했는데!“
장례식장에서
영혼을 울리는 소리꾼 장사익은 귀천을 불러, 조문객들로부터 앵콜을 3번이나 받았다, 마지막에는 망부가를 부르고.
충청도 사투리로, 아무리 세상이 힘들어도, 정이 오고 가야 살맛이 나는 세상이라에!
최백호는 시인에 어울리는 노래라면서 ‘낭만에 대하여’를 처연하게 불렀다.
벗들에게 얻은 1,000원으로 막걸리를 사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의정부 수락산 자락을 오가던 천상병을, 이제는 의정부 시립묘지에서나 볼 수 있다.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삶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한번 TV에
나오신 적이 있는데, 사람 좋아하시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음, 자연을 닮은 천상병님!
이 세상에서는 건질게 없는
그져, 한잔의 술로 달래셨겠지요
영면에 드셨을 줄 압니다!
참으로 맑은 분이시기에.......
저는 생전에 만난적이 있습니다. 아주 천진한 어른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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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을 그리다
오래전 인사동의 ‘그림마당 민’에서
초라한 늙은이의 위세가 당당했다
‘새벽에 시 두편 썼어’ 호기롭던 그날에.
반 접힌 홑바지에 하얀색 고무신이
세상사 나 몰라라 천진한 아름다움
어른을 곁에서 봤다 천성속의 어린애.
막걸리 한잔이면 세상물욕 다지고
숨 쉬는 이 순간이 소풍 온 나날이라
세상은 웃음이라며 허허롭던 그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