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는 다른 길
도는 텅 비어있는 것, 인간의 인식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도는 만물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지치지 않는 생명력으로 만물을 창조한다. 노자는 이러한 도를 혼란의 시대에 필요한 가치로 이야기한다. 이를 대도라고 노자는 말한다. 대도는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이다. 노자가 보았을 때 대도가 있는 세상은 낙원이다. 인의예지를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예법이니 형벌이니 하는 세상 법칙들은 규정하고 지킬 필요도 없다. 애초에 이러한 것들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세상은 ‘순박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의 입장에선 유가나 법가 묵가 등이 외치는 것은 “절망의 외침”인 것이다. 그는 인의의 가치를 외치는 것은 “사리사욕, 돈의 명예를 향해” 직진하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나는 노자의 이 주장에 대해 그때 당시의 시대에서도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가치가 사라지고 난 후에 그 가치를 강조한다는 노자의 생각에서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정의가 사라졌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노자를 이를 ‘위선적 가치’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자는 “본래적이고 자연적인 도덕이 작동하는 사회를 회복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 노자의 입장을 바라보았을때 “노자의 이런 모든 주장이 공상적인 꿈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풍경,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그 미래의 풍경이 너무나 낯설기 때문이 아닌가? 노자가 강조하듯 이 세상은 병들어 있고, 장자가 강조하듯 이 세상은 뒤집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노자 도덕경, 이용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나 역시도 이 구절을 읽으면서 공감하였다. 도는 가치가 늘 그렇듯 잡히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허공에 둥둥 떠있는 구름같다. 항상 위에 있어 까마득하고 위에 올라가서 만지려해도 손에 들어오지 않고 손바람에 의해 날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다고 해서 도를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잡히지 않을수록 잡으려고 노력해야한다. 쉽지는 않다. 거짓과 그름의 세상에서 ‘순박함’을 외치는 것은 지금의 흐름과는 다른 길을 걸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현재의 삶도 너무 힘든데 드라마나 영화도 너무 현실적이면 보기가 싫다. 라는 맥락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것이 담고 있는 좌절과 체념이 느껴지고 어느정도 공감이 되어 순간 너무 안타까웠다. 우리는 어쩌다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한 번 짚고 넘어가자면 중요한 점은 삶이 매일매일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세상이 사람들에게 살기 버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 라디오스타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우림의 보컬인 김윤아가 나와서 한 이야기가 화제가 된것에서도 이점을 알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10대, 20대 분이 자우림 음악을 찾아주시는 것 같다. 사회가 젊은 사람들을 꿈꿀 수 없게 한다. 내가 93학번인데 내가 졸업할 무렵에는 지금처럼 취직하기 어렵지 않았다. 어디든가 취업을 할 수 있었고 당시 초봉이 2000만 원 정도였던 거 같다.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초봉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10대, 20대 분이 자우림 음악을 찾아주시는 것 같다. 사회가 젊은 사람들을 꿈꿀 수 없게 한다. 내가 93학번인데 내가 졸업할 무렵에는 지금처럼 취직하기 어렵지 않았다. 어디든가 취업을 할 수 있었고 당시 초봉이 2000만 원 정도였던 거 같다.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초봉이다”
다음은 자우림의 샤이닝 가사이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 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 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 있다는 괴로움,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 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내가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큰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사랑하는 가족을 꾸릴 수 있는 것, 내가 일을 하고나서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집을 갖는 것,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고통을 호소할 수 있는 것, 내일이 기대되는 삶. 이런 것들이 사람이 살 수 있는 토대이지 않을까. 사실을 살펴보면 결혼하는 것조차 힘들다. 함께인 것이 힘든 사회이다. 집은 평생 일해도 갖지 못한다. 그저 부동산이라는 재산의 이름으로 집은 존재한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뉴스를 틀면 흔히 볼 수 있는 기사이다. 여기서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선샤인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를 언급하고싶다.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멎는 곳에서 살다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 (미스터선샤인 9화 김희성의 대사 중) 유용하고 실용적인것들은 삶이 더 편리하게 흘러가게 도와주지만 정말 삶을 유지시키고 버티게하고 행복하게하는 것은 이런 ‘무용한’ 것이 아닐까? 여기서 다시 노자의 도를 살펴보자. 그는 “쓸모없음의 쓸모를 강조한다.” 분류를 한다거나 하지말고 “지식을 버려라”, “마음을 비워라”, “매일매일 버리는 공부를 하라” 라고 말한다. 불가능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에 만연한 가치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질서는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철학함이 그러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대한 연속적인 질문을 통해 ‘순박함’, ‘무용한 것’, ‘쓸모없음의 쓸모’ 가 더 가치있는 것이 있는것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