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남자 선여인이 불법홍통의 주역인 재가승
재가승(在家僧) 불자를 중하게 여긴 석존의 뜻은?
석존께서는 생전에도 제자에 대한 염려하심이 불경의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10대 제자나 석존의 사상과 철학에 반기를 든 제바달다를 비롯한 무리에게도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석존께서 수행하신 후 대우주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으나 이를 밝히지를 못했습니다.
당시 바라문교를 비롯한 토속신앙이 석존의 수행을 가로 막았으며 민중들은 어리석어
석존의 설법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석존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불쌍한 중생들을 피안으로 인도하여 대우주와 같은 불성을 알게 할 것인가?
천태대사가 후에 정리한 오시팔교(五時八敎)에도 석존의 고민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설(定說)은 언제나 처음에는 외면을 받습니다.
생명이 관습과 습성에 젖어 있기 때문이며 철학이나 사상은 일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석존께서도 50년이라는 긴 사간을 두고 대우주의
깨달음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하였던 것이기도 합니다.
석존의 설법의 회좌(會座)에는 언제나 사부대중이 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석존께서 설법을 하실 때 가장 신뢰가 가는 것은 4부 대중 중에도 재가의 불자였습니다.
제자들은 지식은 높으나 지혜가 부족하여 항상 석존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였으며 거만하고
아는 체하여 스승의 골치 덩이였습니다.
특히 비구는 안하무인이 되기도 하고 불자 위에 군림하기도 하고 석존의 가르침을 모두 다
안다고 우쭐거리며 모이면 험담이나 하고 사람들을 자기 종으로 착각하는 무리들이었으므로
매일 석존으로부터 꾸중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불안정한 생명을 바로 잡고 위(位)없는 청정한 생명을 만들기 위하여 석존께서는 재가의
선남자와 선여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설법의 회좌에 앉게 하였습니다.
수행의 자세에서 진심으로 석존을 공경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눈빛이 스승인 석존의 마음을 움직여 법화경 강설(講說)에서 재가의 몫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2년의 설법이 끝나고 대우주의 법 깨달음의 궁극인 법화경 설법에 앞서 석존께서는 작심하고 무량의경을 설하시게 됩니다.
무량의경에서 비로소 석존이 깨달은 대우주의 부처인 일불승을 설하고 40여년미현진실이라는 경천지동의 고백을 합니다.
‘40여년의 설법에는 진실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내가 깨달은 대우주의 법을 설하겠다.
이는 무량무변의 법이며 일체 중생의 성불의 인(因)이 담겨져 있다“
이렇게 하여 석존의 진심이 밝혀졌습니다.
석존께서는 4부 대중 중에 비구보다 재가의 선남여의 제자를 더 신뢰하였습니다.
비구에 대하여는 비통한 마음으로 질타하였습니다.
“나의 멸후 너희들은 부처를 등에 업고 가사장삼을 걸치고 높은 곳에 앉아 중생들로 하여금 공양을 하라고 강요를 하며 부처 흉내를 내는 너희들에게는 법화경 홍통을 맡기지 않겠다”
“선남자여 선여인이여 너희들에게 법화경 홍통을 부촉하겠노라.
법화경을 일문이라도 듣거나 말하거나 수지하는 자가 있으면 부처님 보듯이 하여 뛰어나가 마중할 것이며 공경을 해야 하느니라.
만 중생의 성불을 너희들에게 부탁하노니 선남자야 선여인이여 세세생생 잊으면 안 되느니라. 만약 법화경 홍통을 훼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분명히 너희들을 수호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선여인이여
나의 멸후 이 경의 홍통으로 끊임없이 정진하라“
중국 당나라 시대 묘락대사(妙樂大師711-782년)는 석존의 이런 뜻을 두고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법화문구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약뇌란자 두파칠분(若惱亂者 頭破七分)
유공양자 복과십호(有供養者 福過十號)
약뇌란자 두파칠분(若惱亂者 頭破七分)은
“만약 뇌란하는 자는 두파칠분이 된다”즉 부처님을 업신여기거나 불법을 뇌란하는 자는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파괴된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정신적인 질환의 문제로 된다는 뜻입니다.
유공양자 복과십호(有供養者 福過十號)는
“공양함이 있는 자는 복과십호이다”즉 부처님과 불법에 공양을 하는 자는 부처의 열 가지 이름보다도 그 복이 초과한다라는 뜻입니다.
대우주의 법인 법화경을 찬탄하고 수지하면 공덕을 받고 법화경을 뇌란하는 자는 고뇌를
받으므로 법화경 홍통으로 인한 어떤 수행도 불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빙의나, 신병이나, 신내림이나, 묘탈이나, 동티나, 주당이나, 신경정신계 질환을
막론하고 대우주의 법을 수지 수행하면 공력(功力)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를 업신여기고 질시하여 낮추어 보면 공력이 아닌 두파칠분의 대가를 받는다는 것이
일념삼천 법문의 의미인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흐름에 불법이 업신여기고 등한시 되면서 불력과 법력은 나타나지 않으며
이로 인한 부작용이 천도재, 구병시식, 굿, 부적, 산신기도 등으로 나타나서 불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불법의 불력과 법력은 동일합니다. 그 자리에 있습니다.
석존께서 지적했듯이 제자들에 의해서 왜곡되고 첨곡되어 법이 흩트려졌기 때문에
불자들이 공덕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재가가 이래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재가의 제자도 일체가 승입니다. 재가승인 것입니다.
자신이 석존의 정신을 이어받아 대우주의 깨달음을 전하고 수지 수행하면 생명이 바르게
되어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뇌의 업보가 사라지는 것이 무엇이 이상합니까?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불기(佛氣)를 누가 이루느냐에 따라 업보가 결정되는 것이 대우주의 법이고 일념삼천의
법문인 것입니다. 이제 그 시대를 만들어가야 할 뿐입니다.
출처 재가승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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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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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