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익숙한 낯설음’ 처음 이 과제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낯선철학하기 수업이 진행되는 세미나실의 의자였다. 어쩌면 우연히 눈에 바로 들어온 것일 수 있겠다만, 나는 세미나실 의자가 낯설다. 일체형 책상을 포함한 그러한 형태의 의자는 ‘당연히’도 책상에 앉는 사람 입장에서 오른편에 책상이 배치 되어있다. 근데 어째서 당연한 거지? 낯선철학하기 수업을 처음 듣던 날, 책상을 펼 수 있는 의자인 줄 모르고 가장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가(강연자 기준 왼편) 왼손잡이인 나는 목, 어깨, 허리 통증을 느꼈다. 익숙하게 떠올리는 일체형 책상인데, 나는 앉을 때마다 낯설음을 느끼고 의자와 좀처럼 친해지지 못했다. 어쩌면 낯선철학하기 강의가 종강하는 날에도 세미나실 의자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2. 익숙한 낯설음을 노트북 앞에 앉아서 고민하자니 좋은 내용이 떠오르지 않고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 같아, 머리 속 한켠에 넣어두고 일상생활을 해나갔다. 문득 익숙한 낯설음에 부합하는 소재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하나씩 적곤 했는데, 의외로 많은 이야기가 나와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선 앞서 얘기한 일체형 책상,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며 꾸준히 연락하던 소꿉친구에게 20살이 된 날 받았던 고백과 다음날 그 친구를 만났을 때의 느낌 (당황스럽고 갑자기 불편해졌던 기억이었다. 편안함이 어색함으로 바뀌어 가던 중에, 나는 재수를 하게 되어서 연락이 끊겼다!),
육지에서 바닷가 근처에 살던 내가 제주에 와서 느꼈던 익숙한 바다 내음과 낯설었던 에메랄드 빛깔의 제주 바다. 갯벌에서 직접 개불을 잡아 손질해 먹었던 나는 ‘해녀’라는 것도 익숙한듯 낯설었다.
교양과목으로 수학, 철학, 논리학을 듣고 있는 중인데, 세 가지 학문에서 교집합을 찾기도 하고, 같은 주제나 내용을 다루면서도 서로 다른 정의나 내용을 가질 때 (이를테면 귀납법과 수학적 귀납법, 데카르트의 공리와 수학에서의 유클리드 공리 같은.)
이 밖에도 여러 익숙한 낯설음을 일상 속에서 몸소 느꼈으나 이런 이야기로 과제물을 써내려가자니 너무 감각적이고 개인적인 에피소드란 생각에 성에 차지 않았다.
3. 일상생활 속 느꼈던 것을 토대로 도달한 익숙한 낯설음은 ‘교과서’였다.
교과서에서는 보편적이면서도 기초적인 지식을 다룬다. 얼핏보면 다 옳은 말 같아 보이지만 그 깊이는 너무나도 넓고 얕아서 간혹가다보면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나 이상적으로 보인다. ‘완성형’에 가까운 모델을 다루는 것이다. 초중고 12년동안 교과서를 보면서 가장 기억남는 부분은 기술가정 교과서의 생애주기였다. 우리나라 교육방식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융통성이 없는 원칙주의자였던 나는, 나이대별로 발달과업이 존재하는 것을 보고 답답함을 느꼈다. 교과서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히도 삶은 교과서의 내용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20살을 재수학원에서 보냈고, 공부한 만큼 나올줄 알았던 그 해 수능에서 난생 처음 받는 등급을 받고 무연고지인 제주까지 왔다. 익숙하면서 낯선 것. 익히 배우고 상식으로 다루는 교과서는 친숙하지만 그러한 삶은, 그러한 이론적인 세상은 완전히 현실에 나타날 수 없기에 익숙하며 낯선 것은 교과서가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