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차여행(2)
칠 흙 같은 밤의 세계다.
밤은 어둠의 신이 지배하는 또 다른 세계다.
찬란한 햇살이 붉은 노을을 만들어 자신을 아낌없이 불태운다.
석양빛이 더 찬란하고 더 붉다 했던가.
우리네 인생 또한 저와 같으니 무얼 그리 슬퍼하고 가슴 아파 하는가.
이제는 쉬어야 할 시간이다.
낙조 드리운 흐르는 강물에 삽을 씻는다.
바다가 어두움에 잡혀 먹혔다.
어둠의 촉수 드리우고 희미한 불빛을 찾아 덤벼드는 불나방처럼
자신의 날개를 태우며 세월과 함께 기차는 달린다.
서러움을 이기지 못해 기적이 자맥질을 한다.
땅을 치는 통곡소리가 하늘까지 뻗치고 숲에선 밤의 요정들이
하나둘 어두움을 찾아 모여든다.
멀리서 소쩍새 우는 소리가 가슴을 메이게 한다.
바다도 어둠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숨 죽여 침묵한다.
오직 살아 움직이는 것은 나 그리고 하늘의 별들 뿐.
스스로는 빛을 낼 수 없는 가여운 초승달이 온기마저 빼앗긴 체
유성이 사라진 서쪽하늘에 초라하게 걸쳐있다.
별들이 나무 끝에서 널뛰기 한다.
어두움만 난무하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칠 흙 같은 어두움뿐이다.
간간히 아스라이 보이는 것은 외롭게 졸고 있는 가로등들의 행렬 뿐
어두움을 빼면 빈 허공이다. 그 속에 내가 있다.
젊음은 이미 달리는 열차의 차창 밖으로 던져 버린 지 오래 이고
물기빠진 해면처럼 초라해진 내가 있음을 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불기마저 스러지는 삭정이는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가끔씩 반짝하곤
곧 스러진다.
시커먼 괴물 같은 바다를 뒤로 하고 물에 떠있는 가마솥 부산을 출발하여
동해선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맡긴 체 어둠속을 달린다.
밤의 요정에 홀려 하얗게 밤을 지새운다.
때때로 간이역에서 숨을 고르며 기인 한숨을 내쉰다.
하얗게 입김이 허공에 부서진다.
잠을 청해 보지만 예민해 질대로 예민해진 마음은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저 멀리 수평선 아스라이 한 가닥 불빛이 새초롬이 가물거린다.
어부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만선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별똥별이 떨어진다. 돗대위로 별똥별이 떨어진다. 북극성이 곤두박질한다.
바다가 춤을 춘다. 어부들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아내는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정성을 다해 서둘러 밥을 짓는다.
포개진 검은 솥뚜껑에서 밥 익는 눈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밤을 밝히는 등대가 졸린 눈을 부릅뜨며 차가워진 가을바다를 지킨다.
어부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희미한 여명이 밝아 온다.
해가 영영 사라져 버린 줄 알았는데, 밤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해가 떠오른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서울을 깃점으로 정 동쪽인 정동진의 해는 더 크고 더 붉은 듯하다.
침으로 고양이 세수하고 잠꼬대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친구를 협박(?)하여
정동진에서 내리니 내 친구는 잔뜩 내민 입에 볼멘소리로 정동진에서
강릉까지 요금을 현찰로 반환해달라고 역무원과 실랑이 한다
참으로 사리 밝고 경제적인 친구다. 난 그런 친구가 좋다.
내가 못하는 일을 내 친구는 능히 해내기 때문이다.
새벽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의 문이다. 멸치가 수면 위를 날은다.
아마도 부지런한 사나운 물고기에게 쫒기는 듯하다.
백사장에 외롭게 서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참으로 애처롭다.
있어야할 자리는 친구들이 있는 산이다.
혼자서 바다를 벗하는 한그루 소나무가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모래시계 이야기 서린 소나무의 기구한 삶이 주인공을 닮은듯 해 참으로 불쌍타.
사랑하는 친구도 잃어버리고. 애초에 바람에 너무 멀리 날아와 잘못 떨어진
한 톨의 씨앗 이었을까. 기구한 삶이다.
새벽공기가 차다. 숨을 내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색안경에 서린다.
허지만 맑은 청량감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고 찬 기운이 코끝에 알싸하게
퍼짐이 좋다.
전화벨 소리가 새벽공기를 헤집는다. 식구의 안부 전화다.
내 사주에 역마살이 끼어 어쩌다 보니 식구를 멀리하고 혼자서
떠돌아다닌다.
이제는 식구도 그러려니 한다. 좀 미안함에 마음이 언짢다.
허지만 어쩌랴 이제는 건널 수 없는 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일을.
그런대로 싫은 내색 아니 하고 이해해 주는 아내가 고맙다.
구급약을 빠짐없이 챙겨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연애시절 별을 따다준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언제나 이루어 질려나.
이제는 여~엉 공수표가 될 것 같아 마음이 언짢다.
친구는 흥정이 잘 되었는지 실실거리며 허허거린다.
반환은 못해주고 다음차를 타고 가면 된단다. 하면서 생면부지 인심좋은 어부께서
잡아온 멸치 회를 조금 싸 주 길래 내가 생각이 나서 가지고 왔단다.
이른 새벽 어느 누구 하고 딱히 먹을 수 없는 처지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감사한다.
백사장에서 추위에 소름 돋아 부서지는 파도 소리 들으며 모처럼 먹어보는
싱싱한 멸치 회 맛이 정말 감칠맛 나게 좋다.
백사장을 보다듬고 너울대는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산산히 부서져
물보라를 일으킨다.
처얼썩~~ 쏴아~~. 시퍼렇게 멍이든 파도소리의 애닯은 사연을 들으며
아련히 흩어지는 하얀 물보라가 가슴 뭉클하게 한다.
붉은 해가 공지선 사이로 한발이나 올라왔다.
햇살이 쪼개진 사금파리 파편에 반사되어 잔잔하게 부서져 내린다.
우리보다 일찍 다녀간 발자국 두 개가 나란히 모래사장에 찍혀 있다.
하나는 크고 다른 하나는 귀엽게 작은 모습이 앙증맞게 이쁘다.
아마도 젊은 연인들 일거다.
갑자기 피로가 엄습해 온다. 눈꺼풀이 눈을 덮는다.
애써 정신을 차려 보지만 한번 쳐지기 시작한 꺼풀은 어찌할 수가 없다.
성냥개비를 반으로 잘라 꺼풀을 바쳐보지만 역부족이다.
어찌 천근만근의 꺼풀을 성냥개비 한 개로 지탱하랴.
졸음에 병든 꺼풀은 내 몸 130근보다 수 십 배 무거운 만근이니 어찌하랴.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눌러 보니 분명 한 개뿐인 해가 두개로 보인다.
맛나게 한숨 자고 일어나니 해가 중천이다.
서둘러 경포대를 거쳐 주문진에 도착하여 사전에 연락된 친구 두 놈과
합류하여 자동차로 귀가를 서둘렀다.
잘 정돈된 일반 고속화 도로를 신나게 달려 영월에 도착하여 한숨 돌린다.
영월은 갖가지 슬픈 사연들이 유난히도 많은 고장이다.
단종의 열일곱 해의 슬픈 사연에 구름도 머물다 비를 뿌리고
영월읍을 둘러 싸고 있는 성삼문봉, 박팽년봉의 산 이름이 지나가는
길손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세조의 명을 받들어 사약을 가지고 내려가든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 한수가 애달프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애 놋다.
또한 영월은 천재 시인 김삿갓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이다. 안동김씨의 세도가의 집안에서 양반중의
양반으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 김의순의 관직 박탈된 인연으로 영월 깊은
산속에서 숨어 살면서 어느 날 영월지방 과거에 장원하게 된다.
후에 안 일이지만 자기 할아버지 김의순을 탄핵 하는 게 시제였다.
아 어쩌랴 사약을 받고 처형당하신 할아버지를 통렬히 손자인 김병연이
비판하였으니 어찌 하늘을 머리에 이고 다닐 수 있었으리요.
이리하여 평생 하늘을 볼 수가 없어 삿갓을 쓰고 일생을 마감한
천재시인 김삿갓의 슬픈 사연이 서린 곳이 영월이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애닯다. 어이 하랴 이미 님은 가고 없는데.
나도 김삿갓이나 되었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술 한 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ㅂ삿갓~~ㅎㅎㅎ
몰아몰아 채찍 휘둘러 달려와 집에 드니 아내가 물끄러미 혀를 차며
쳐다만 본다.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러는 내가 미운 가 보다.
심신 치친 몸을 누이니 자정이 넘었다.
안쫒겨 나는 것도 우리 삼남매가 단단히 받혀 주기에 가능 한 일일런가.
2박 3일의 가을 여행은 이렇게 심신에 지친 내 가을 병을 치료했다.
가을의 아픔을 이겨낸 묘약 한 첩 잘 먹었다.
이제는 꽃피는 봄이 올 때 까지는 역마살이 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여 아내 눈에 들어두어야 하겠다.
아내의 눈 밖에 나 못가게 하면 내 역마병은 치료 할 곳이 없기때문이다.
<나의 가을 여행기.>
첫댓글 동해안으로,
영월로 잘 다녀 오셨군요.
세계적으로
풍광이 좋은 곳에
느림열차가
있다고도 하더군요.
여유되면
그런곳에도
가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모두다 가고싶어요.
우리나라는 국토전체가 정원이고
방방곡곡 전설없는 마을은
한곳도 없습니다. 흥미로워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