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주 교수,‘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위원장직 사퇴
“사실에 근거해야 하는게 교과서의 생명
정치영향 받아선 안되는 대원칙 훼손돼”
“교과서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대원칙이 훼손됐습니다. 이번 역사교과서 논란은 ‘보수냐, 진보냐’ 하는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학계의 의견 존중 등 교과서 제작의 기본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가 핵심입니다.”
개정 역사교육과정과 새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둘러싼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이익주(49·사진)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교수는
역사학계에서 진보·보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료에 충실한 연구를 중시하는 합리적인 성향의 학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달 27일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꾸린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개발 공동연구진’ 위원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이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역추위) 위원직에서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문제의 핵심에 역추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추위가 학계와 정부 사이에서 의사소통의 통로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마련 작업이 ‘일방통행’식으로 이뤄진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동연구진이
지난달 19일 회의에서 합의한 ‘독재정권하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라는 부분이 국편에 의해 일방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장기집권 등에 따른 독재화로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라는 문구로 바뀐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독재 연장을 위해
장기집권을 한 것이지, 장기집권을 했기 때문에 독재정권인 게 아니다”라며 “정부가 독재정권에 대한 평가를 한쪽 방향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가 공동연구진 위원장 사퇴를 결심한 것은 이 일을 겪은 뒤였다고 한다.
그는 또 집필기준 초안의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 부분이 역추위의 마지막 회의에서
‘다수안’이란 이름으로 부활한 것에 대해서도 아쉬워했다. 공동연구진은 ‘한반도의 유일한’이란 표현이 역사적 사실과 다른 것을 확인하고 삭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역추위에서 다시 살아나,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발표한 집필기준에 결국 삽입됐다. 이 교수는 “사실과 어긋나면 안 되는 것이
교과서의 생명이고 집필위원들이 합의한 내용이기 때문에 꼭 관철되길 바랐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말했다.
* 참조 : 한겨레신문 김민경 기자님(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