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집사님과 민권사님 가정에서 사용할
고추를 구입하러 남원 사매면 수철마을을 다녀왔다.
바로 옆에 박미분권사님이 계신 요양원이 있어
올해도 권사님을 뵈러 가 봤다.
작년 이맘땐 한국사회가 신종플루로 시끌벌적했기에
어르신들이 몸이 약하기에 외부사람을 일절 접촉시켜주지 않아
헛걸음질만 치고 돌아와서 무척 아쉬웠었다.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 박권사님의
따님(형순남권사)만 만나보고
발걸음을 돌렸어야 했었다.
하지만 올핸 쉽게 만나 뵐 수 있어 반가웠다.
올해는 형순남권사님은 외출 중이라 뵐 수 없었다.
권사님이 정정하셔서 보기 좋고 감사했다.
피부도 여전하시다.
사무실에서 권사님을 뵈러 왔다니
신분확인을 하고나서는 곧바로 권사님을 모셔오는게 아닌가?
권사님이 우리를 보자마자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달려오신다.
워낙 정이 많으신 분이라
다시 눈물을 글썽이신다.
사무실을 둘러보다보니
권사님이 이곳에서 생활한 날이 기록되어 있었다.
2006년 9월 22일부터다. 벌써 4년이나 지났다.
85세에 이곳으로 가셨는데 벌써 88세다.
이번에도 그때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은 뒤
곧바로 따님이 있는 이곳으로 교회에 전혀 말하지 못하고
온 것이 맘에 걸렸던지 이날도 그 얘기를 꺼내는게 아닌가?
본인이 너무 오래 산다며
나중에 하늘나라로 가면 꼭 와 달라고 하신다.
갈계교회로 부임해서
권사 3인방(박미분권사님, 돌아가신 이복남권사님, 서울에 계신 민주식권사님)
으로부터 많은 은혜와 도움을 받았다.
부임후 이듬해 재정자립을 위해서
청국장을 하기 위해 최권사님이 허락해 주신
300평 밭에 콩을 심고 풀뽑고 키우는데
80대 노 권사님들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훌컥할 때가 지금도 있다.
박권사님을 생각하면서 가장 크게 떠오르는 사건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교회봉고차 구입할 때다.
주일날 교회공동체에서 제직회를 통해 교회차를 구입하기로 했었다.
내 생각엔 150만원 걷히면 많이 되겠다는 생각에 그에 맞게 차를 구입할 계획이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월요일 아침 10시가 못되어 권사님이 사택 창문을 두드리는게 아닌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더니 들어오시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책보를 꺼내신다.
풀어보니 만원권으로 된
한다발의 돈이 들어 있는게 아닌가?
100만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목사님, 그래도 제가 교회에서 나이를 제일 많이 먹었는데
한평생 갈계교회를 다녔는데 나이 많은 사람이 본을 보여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아침에 너더리 농협문을 열자마자 가서 찾아오는 길입니다.
교회차를 구입한다는데 잘 사용하세요...."
사무실 한켠에 권사님이 도착한 날을 기록해 놓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마음이자 손길인가?
늙어서 교회를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래서 제직회에서 결정이 나자마자 이른아침에 2Km나 떨어진
너더리까지 불편한 몸으로 직접 걸어가서 찾아오신게 아닌가?
그 마음 그 발걸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져왔었다.
이 사실이 교우들에게 알려지면서
알음알음 교우들이 100만원, 200만원, 50만원, 10만원씩
각자 형편껏 헌금을 해 주셨다.
그래서 그때 걷은 돈이 무려 870만원이나 되었다.
나는 혼자서 150만원 걷히면 감사하겠다고 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일에 내가 얼마나 감사했던지 모른다.
그리고 나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잣대를 들이댄 것에 대한
후회함이 몰려왔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교회차를 볼 때면 언제나 그 사건을 잊을 수가 없다.
남들에겐 교회차가 어떻게 비췰지 모르겠지만....
노권사님의 순수함을 배워야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인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의 모습을 익혀 후대들에게
귀한 자산으로 넘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사무실 한켠에 있는 소품이 인상적이라 담아봤다.
그러면 한국사회도
기부문화가 더욱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기부문화는 외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연구조사결과들을 보면 우리 선조들의 기부문화도
서구인들에 못지 않게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경주최씨부자의 이야기라든지
구례 운조루에 있었던 류씨집안의 사건을 대표적이다.
다만 잘 알려지지 않고 묻혀져 있었을 뿐이다.
권사님이 머물고 있는 이곳은
장로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다.
나름대로 지혜롭게 잘 하시는 듯하다.
한동집사님과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원래 이곳의 모태가 되는 교회가 수철마을 뒤쪽에 작게 있었단다.
그런데 이곳으로 옮겨와서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점점 커져가더니
법인을 만들면서 이렇게 규모가 커져 버렸단다.
부지가 쾌 넓었다.
지금도 주변에 공사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 보였다.
뒤로는 군산에서 광양(?, 포항인가?)까지 가는 산업도로가 뚫려지고 있었다.
권사님이 강건하게 노년의 삶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뵙게 되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