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산방을 찾아서 7
새벽 세 시가 지나서야 잠들어 깨어나니 일곱 시였다. 친구는 곤히 잠들게 두고 나는 텃밭으로 나갔다. 배추는 비닐 멀칭 위에다 심었기에 잡초가 맥을 못 추었다. 반면에 무 이랑엔 잡초가 무성해 무청보다 높이 자랐다. 엊그제 한로 절기가 지난지라 찬이슬이 흠뻑 내려 있었다. 나는 무밭 이랑에서 잡초를 뽑아내었다. 노루와 고라니가 내려와 뜯어 먹은 무와 잡초도 상당했다.
무밭이랑 김을 매고 나서 부추에도 김을 매고 잘라 놓았다. 집으로 가겨갈 찬거리였다. 부추를 배고 나선 쪽파를 뽑고 가렸다. 늦게 일어난 친구는 눈개승마를 비닐하우스 안에다 심었다. 어제 당귀를 캐면서 섞여 자라던 눈개승마도 한꺼번에 뽑아 놓았다. 보드라운 잎줄기를 나물로 먹는 눈개승마다. 울릉도에 많이 자생하는 눈개승마는 그곳에선 ‘고기나물’로 통하는 산나물이다.
나는 쪽파를 가려놓고 나서 아까 김을 맨 밭으로 가서 무를 뽑았다. 싱싱한 무청에 달린 토실한 뿌리가 드러났다. 밀식되어 빽빽이 자라는 무 가운데 솎음으로 뽑아주는 격이었다. 가을비를 맞고 무 뿌리가 한창 자라는 즈음이었다. 뽑은 무도 뿌리를 다듬고 잎줄기 가운데 버릴 것은 추려서 떼어내었다. 김치를 담그기에 알맞은 재료였다. 친구가 가져갈 몫까지 넉넉히 가려 놓았다.
차즈기는 시간이 없어 거두지 못했다. 차즈기는 들깨 잎과 같이 생겼는데 색깔만 자주색일 뿐이다. 친구는 한약재로 쓰이는 차즈기를 몇 이랑 가꾸었다. 차즈기 말린 잎을 차로 달여 마시면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효험이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면 낫으로 베어 무청 시래기 엮듯 끈으로 엮어 창고 처마 밑에 매달아 두고 싶었다.
아침나절 해야 할 일거리를 마쳐 놓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여름날 친구의 장모님이 다녀가면서 끓여 얼려 놓았던 추어탕을 녹여 속을 풀었다. 간밤 잔을 나누면서 날이 밝으면 농장 뒷산에 한 번 올라보기로 했다만 서로는 지쳐 마음을 접어야 했다. 지역민들의 말에 의하면 산꼭대기에 ‘선바위’라는 신령스런 바위가 있다고 했다. 훗날 기회가 닿으면 선바위까지 올라보기로 했다.
아침 식후 나는 못다 가린 무를 마저 가리고 친구는 표고버섯을 땄다. 사실 친구가 나보고 농장을 방문하길 바란 명분은 표고버섯 때문이었다. 표고버섯은 봄가을 두 번 돋아나는데 지난주 한 차례 따고 이번 주도 제법 거두리라 예상했단다. 그런데 표고버섯이 기대만큼 돋아나 있지 않았다. 버섯이 적게 돋은 사연인즉 참나무에 붙은 민달팽이가 버섯 싹을 빨아먹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표고버섯을 따고나서 고무호스로 참나무에다 물을 충분히 뿌려주었다. 참나무가 마르지 않고 촉촉하게 접어 있어야 표고버섯이 자리기에 알맞은 조건이다. 친구는 물을 뿌려주다가 참나무에 붙은 민달팽이를 한 마리 끄집어내었다. 영양가 있는 표고버섯을 먹고 자란 민달팽이는 몸통이 윤기가 있고 아주 통통했다. 친구는 민달팽이를 집어서 개울가로 이사를 시켜주었다.
1박 2일의 작업 일정 가운데 마지막 남은 것은 오가피 열매 수확하는 것이었다. 나는 텃밭 방문 기념으로 조금만 가져가려는 데도 친구는 익은 오가피가 일주일 뒤 들어오면 땅바닥으로 모두 떨어진다면 오가피 열매를 넉넉하게 따 주었다. 오가피나무는 봄에는 잎을 따서, 낙엽이 지고 나면 나뭇가지를 잘라 약재로 쓴다. 오가피 열매를 소주에 담가 숙성시키면 까만 담금주가 된다.
점심나절이 다가와 귀가를 준비했다. 나는 종이박스에다 무와 쪽파와 부추를 약간씩 담았다. 친구가 집으로 가져갈 채소도 챙겼다. 표고버섯과 오가피열매는 배낭에 넣었다. 간밤에 정리해둔 당귀와 천궁과 잔대도 조금씩 보탰다. 집으로 가져가 한동안 차로 달여 먹을 셈이다. 거실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마쳤다. 농막의 전원을 내려놓고 텃밭을 빠져나와 경주를 거쳐 창원으로 향했다. 13.10.13
첫댓글 궁금하던 차즈기 제 이름을 익히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