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는 빚과 쌓는 공덕 / 능인 스님
달마대사가 지은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에는
"만일 수행자가 수행을 하다가 어렵고 괴로운 일을 당하면
"이는 내가 전생에 알게 모르게 지은 악업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여 빚을 갚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렇게 생각하라 하셨다.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누군들 없겠는가.
이런 일은 수행의 문에 들어온 사람이라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달마대사의 말씀처럼 생각한다면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운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고 생각되니
덜 억울하고 괴로움도 덜할 것이다.
반면에 이유 없이 괴로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조그만 괴로움이라도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괴로움을 이렇게 생각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들 것이다.
세상사는 모든 일이 다 빚을 갚는 일인가?
그렇다. 세상에 빚만 지고 사는 사람도 없고,
보시만 하며 사는 사람도 없듯이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빚을 갚는 것일 수도 있고,
보시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는 빚은 지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은혜를 베풀면 살기도 하는 것이리라.
또 오늘은 신세를 지지만
내일은 갚으며 사는 것이 인생살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중생의 마음이라 "내가 하는 것이 빚을 갚는 것인가,
아니면 공덕을 쌓는 보시를 한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빚을 갚는 것이냐 아니면 공덕을 쌓는 것이냐" 하는 것은
근본적인 입장에서 보면 별 의미가 없다.
갚는 것이건 쌓는 것이건
모두가 다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르기에
받는 것도 베푸는 것도 내가 받고 내가 베푸는 것이다.
갚는 것이라 생각하건, 공덕을 쌓는 보시행이라 생각하건,
인과의 법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갚는 것이면 갚아지는 것일 것이고
보시한 것이면 공덕이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 갚으면 더 줄 일이 없을 것이요
보시했으면 쌓여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별해보고 싶은 것이
중생의 마음인지라 한번 구별해 보자.
부처님과 같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은
삼세의 인과가 눈앞에 자연스럽게 보여 진다.
이런 능력을 숙명통(宿命通)이라 한다.
이런 숙명통이 열리지 않은 중생들은 나타나는 형상을 보고
유추해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내가 하는 행위 중에
어떤 것이 빚 갚는 것이라고 알면 될 것인가 ?
첫째, 내가 고생하며 베풀어주고도
별로 고맙다는 인사도 받지 못하고,
때로는 오히려 부족하다는 질책을 받는다면
이는 빚을 갚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돈을 빌려준 사람은 돈을 받아가면서
고맙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돈이 있다면
나머지도 잘 갚으라고 다짐하고 가듯이 말이다.
또 은행에 가서 저축했던 돈을 찾아오면서
은행에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오지는 않듯이 말이다.
또 스스로는 괴롭지만
타인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 일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잃으면 돈을 주워서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혼자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지독한 아픔을 느낀다면 누구에게도 이득은 되지 않으면서
자신은 괴로운 것이다. 이런 경우 스스로의 잘못으로
생긴 업을 갚는 것이라 생각해도 될 것이다.
둘째 공덕을 쌓은 경우는 어떤 것일까?
조그마한 공덕과 보시를 베풀어도 베푼 것 이상의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면 이는 내가 공덕을 쌓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길에 서 있게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도와줬다. 그런데 도와준 사람이
자기가 예전에 이런 일로 도와준 사람이라면 덜 미안할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면식이 없는 사람이 도와줬다면
훨씬 더 고맙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이처럼 차를 고쳐 준 것은 같아도 고마움의 정도가 다른 이유는
그 사람과 이전에 있었던 관계에 따라서 달라진다.
현재의 인과가 그렇듯이 전생을 포함한 삼세를 통해
일어나는 인과에 있어서도 똑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만일 빚을 갚는 경우라 생각될 때
빚을 받아 가는 사람이 너무 당당하다고 해서
억울하다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면
옛날 빚은 갚으면서 새로운 업을 일으키는 것이 되어
미래의 괴로움의 원인을 심게 된다.
이는 은혜를 베풀어주었던 사람에게
배은망덕하게도 화를 내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또 공덕을 쌓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도
너무 우쭐대거나 감사의 말에 너무 빠져버리면
이는 새로운 집착과 사람을 무시하는 나쁜 업을 새로이 짓게 된다.
조그만 선업을 짓고 교만한 마음을 내어 지은 공덕보다
더 큰 교만과 집착의 업을 지어서는 안 되리라.
항상 마음을 살펴서 지은 공덕을 까먹는 어리석음을 짓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좀더 깊이 살펴보자면
갚는 것이건 쌓는 것이건 간에 다 한정이 있다.
아무리 쌓은들 쓰는데 당 할 것인가.
또 빌리고 갚는 일은 번거로울 수도 있다.
그러니 갚고 쌓는 일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을 청정하고 평정히 하며 지혜를 밝혀나가는
큰 복업에 매진함이 가장 큰 행복의 업인(業因)이 될 것이다.
출처 : 나무아미타불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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