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사의 절하는 자세 |
게시 순서 1. 절수행이 생활화 되기를 바라면서
2. 정림사에서 하는 절의 자세
3. 절을 해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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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본으로) (한글 본으로)
20분 40초 24분 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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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수행이 생활화 되기를 바라면서...
정림사에서는 절수행이 생활화 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자신의 여건과 처지에 맞게 일정량의 횟수를 정하여 사찰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항상 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主體)는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모든 문제의 출발과 귀결(歸結)도 '나'로부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질(質)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나의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의 상태는 내 속의 이기적(利己的) 욕구인 '에고(ego)'에 의해 좌우 됩니다.
이 에고가 많을수록 '나만 위하는 생각'은 커져가고 남을 위한 배려(配慮)는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점점 각박(刻薄)하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를 맑고 향기롭게 하기 위해서도 구성원(構成員) 개개인(個個人)이
자기 속에 있는 '에고'를 정화(淨化)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적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절'은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행위입니다.
나의 쓸데없는 자존심을 꺾고 상대를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절을 함으로써 내 속의 '아만(我慢)'과 같은 에고를 제어(制御)하여 스스로를 평안하게
하고 주위와 화목(和睦)할 수 있게 하여 줍니다.
나의 위대한 스승 부처님에게 뿐 아니라
위로는 부모님과 주위의 어른 분들에게, 옆으로는 아내와 남편 친구 이웃들에게, 아래로는
내 아이들과 젊은 세대들에게도 절을 할 수 있는 낮은 마음이 생긴다면 그 마음은 자신에게
행복과 충만함을 갖다 줄 것입니다.
매일 일정량의 횟수를 정해 절수행를 생활화할 수 있기를 권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참회(懺悔)하는 절수행은 모든 수행의 기본(基本)이 됩니다.
- 日行千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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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에서 하는 절의 자세
절의 자세를 설명하겠습니다.
108배 이상 절할 때는 '예불대참회문(禮佛大懺悔文)'에 맞춰 절을 합니다.
뜻을 가슴에 새기면서 하면 더욱 좋겠기에 '한글 108참회문'에 맞춰 하시기를 권합니다.
('한글 예불대참회문'은 우리 카페 '(僧)나를 향한 길'방과 '기본자료실'방에 있습니다.)
절을 할 때는 세가지 요소가 잘 맞아야 수월하고 집중도 잘 됩니다.
'절 동작을 어떻게 하며, 108참회문의 소리를 어떻게 내며, 호흡은 어떤 요령으로 해야 하는가?'.
여기서 설명하는 절의 자세는 스님께서 종단(宗團)의 율원(律院)스님들에게 배운 점을
기본으로 하되, 오랫동안 절을 하시면서 느낀 요소를 가미(加味)하여 만드신 것입니다.
108배 이상의 절을 할 때 요긴한 자세입니다.
아래는 사진의 동작에 따른 절 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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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자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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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비자세
-자세: 사진에서 보듯 손바닥 사이가 뜨지 않게 하고 손가락을 붙인다.
발은 뒤꿈치를 붙이고 앞은 45도 정도 벌린다.
눈은 감지 않는다.
합장한 손은 손 끝이 내 코 앞에 올 정도로 올린다.
옆에서 보았을 때 팔과 몸통과의 각도가 거의 90도가 될수
있도록 양팔을 벌린다.
※ 손을 위로 올리는 이유에 대해 스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보통 절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엎드렸다가 일어섰을 경우 완전히
일어서지 않고 다시 내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절을
하는 내내 허리를 쫙 펼 기회가 없습니다. 허리에 좋을리 없지요.
이를 시정시키고 방지하기 위해 합장한 손을 코 앞까지 올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합장 자세에서 손을 천천히 위로 쭉
올리면 손이 올라가는만큼 허리가 쭉 들어가고 배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배정도만 할 경우는 합장한 손을 이렇게까지 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정상적인 합장자세로 하면 되지요. 108배 이상의 절을
할 경우에 이런 자세로 하라는 겁니다."
※ 일반적인 합장법 :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손바닥을 쫙 펴서 양손을 맞대고, 맞댄 두 손은 정면에서 봤을 때
'한 일(一)'자(字)가 되도록 합니다. 그리고 맞댄 손은 명치 바로
위 쯤에 두되 가슴으로부터는 주먹이 들어갈 정도의 간격을
띄웁니다. 이것이 합장자세인데 이 자세로 45도 머리 숙여 인사하는
것을 합장저두(合掌低頭)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쓰는 표현으로는
반배(半拜)라고 하지요."
2. 내려 갈때
①자세: 무릎을 굽히면서 내려가는데, 이 때 합장한 손을 서서히 풀어
내린다.
상체는 앞으로 숙이지 않고 꽂꽂이 편 채로 내려간다.
②소리: 내려가면서 부처님 명호가 시작된다.
3. 내려 가는 중
4. 자세: 무릎을 어깨넓이 만큼 벌리면서 손을 자연스럽게 허벅지 위에
얹는다. 무릎을 붙였을 경우는 허벅지 위에 배가 얹혀지므로
배가 압박을 받게 되어 원활한 복식호흡에 장애가 되고 등이
일직선으로 펴지지 않고 둥글게 굽게 된다.
※ 많은 불자(佛子)들이 절을 할 때 무릎을 붙이고 한다.
무릎을 벌리고 하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붙이며 하라고
훈수를 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무릎을 어깨너비 정도 벌리는게 맞는 것이다.
조계종 교육원에서 발행한 책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합장하고 고개와 허리를 자연스럽게 세운 상태에서
무릎을 구부리며 끓어앉는다. 이때 무릎은 어깨너비 정도로
자연스럽게 벌리고 양 발뒤꿈치는 모아 세워 엉덩이가
뒤꿈치에 닿도록 앉는다..."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간행 '절수행입문'
72쪽 / 조계종 출판사)
4-1. 내려 가면서 팔을 짚기 전 동작인 4번 사진을 앞에서 본 모습.
5. 자세: 팔을 쭉 펴고 어깨 넓이보다 조금 좁게 벌려 앞으로 짚는다.
6.
①자세: 이 때 상체의 힘을 빼고 등과 허리는 자연스레 축 늘여뜨린다.
(허리 모양에 유의해서 보세요)
머리는 등과 일직선이 되게 한다.
②소리: 부처님 명호는 계속된다.
※ 2번에서 6번까지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세들이다.
6-1. 팔을 짚었을 때인 6번 사진을 앞에서 본 모습.
6-2. 위 사진을 대각선에서 본 모습.
7. 엎드리는 중
8.
①자세: 엎드려 오체(두 무릎과 두 팔꿈치, 머리)가 바닥에 닿게 하며
이 때 배가 두 무릎 사이로 들어가 등이 굽지 않고 허리가
편편하게 펴지도록 한다.
②소리: 2번 자세에서 시작된 부처님 명호는 이 자세 할 때 명호가
끝나게 된다. 절 속도는 명호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일정하며
명호가 긴 경우 명호를 빨리 부른다.
※ 6번에서 8번까지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세들이다.
8-1. 오체 투지 했을 때인 8번 사진을 앞에서 본 모습.
삼배를 할 때나 예불을 드리며 절 할때는 나를 낮춘다는 의미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뒤집지만 108배이상 절을 많이 할때는 손바
닥을 뒤집지 않는다.
9. 일어나는 중
호흡: 일어나면서 아랫배까지 가능한한 깊이 숨을 길게 들이마신다.
아래 10번 자세가 되기까지 숨을 들이 마시는데, 이 때 들이
마신 숨으로 '지심귀명례'와 부처님 명호를 부를 때까지
내쉬게 된다.
즉, 한 호흡으로 절 한 번을 하게 되는 것이다.
10.
①자세: 일어나면서 다시 팔을 펴고 허리를 축 늘여뜨렸다가 올라오는
탄력으로 일어선다.
②소리: 방석에서 손을 떼면서 '지심귀명례'를 시작한다.
③호흡: 8번자세에서 10번자세로 올라오면서 들이마신 숨을 조금씩
내뿜는다.
※ 8번에서 10번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세들이다.
11.
12. 상체를 일으키되 손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스치듯 끌어 무릎에 갖다
댄다.
13. 일어나는 중
소리: '지심귀명례'의 '심~'을 부른다.
14. 일어나는 중
소리: '지심귀명례'의 '귀명~'을 부른다.
15. 일어나는 중
16.
①소리: 허리를 완전히 펴고 손이 합장 자세가 되는 순간
'지심귀명례'의 '례~'가 맞춰지게 한다.
②호흡: 일어서서 합장한 손의 끝이 코높이까지 올라오게
하여 허리가 펴지도록 한다.
※ 10번에서 16번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세들이다.
16-1. 완전히 섰을 때인 16번 사진의 상체 모습.
16-2. 위 사진을 대각선에서 본 모습.
이 자세가 1번 준비자세와 동일하다.
①소리: 이 자세에서 2번 자세로 내려가면서 부처님 명호를
시작한다.
②호흡: 명호가 끝날때까지 조금씩 나누어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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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우리 카페 '정림공부방'에 올려진 글입니다.
- 절을 해야 하는 이유는? -
절은 왜 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한번이나 세 번이 아닌 108배에서부터 수백배, 더 나아가 삼천배에 이르기까지...
어느 보살님이 다실(茶室)에서 함께 차를 마시다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스님, 절은 왜 해야 하나요? 그것도 많이.
'절하는 의미나 이유가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절을 하면서도 계속 일어났습니다."
이 보살님은 절을 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절을 하라고 하니 하긴 하면서도 그 이유와 의미는 와 닿지 않았는가 보다.
그럼에도 막상 절을 시작하니 뭔가 변화가 오고 좋긴 좋다고 한다.
"무슨 변화가 있습디까?"라고 물으니 확실하게는 표현 못하겠는데 생활이 전보다는 즐거워
진 듯 하다고 한다.
그래서 웃으면서 "그런 변화가 절을 하는 이유와 의미가 되지 않겠어요"라고 대답을 해 주었다.
사실 절과 능엄주를 주로 하는 입장에서도 '절을 왜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難堪)해 하곤 한다.
뭐라 대답을 해 주어야 하나...
이것은 오랫동안 절을 하여오면서 느꼈던 것들이 단번에 표현할 정도로 정리가 쉽게 되지
않아서 일게다.
이럴 때면 결국 나오는 대답이 의례적(儀禮的)인 것들이다.
'절을 하게 되면 하심(下心)이 됩니다. 그리고 덤으로 몸 건강에도 좋지요...'
교과서적(敎科書的)인 답변인 듯 하여 피하고 싶지만 생각해 보다 결국 다시 쓰게 된다.
'하심(下心)'.
쉽게 풀어내면 '나를 낮추는 마음'이다.
내가 해인사(海印寺) 행자실(行者室)에 처음 들어갔을 때 가장 처음 눈에 들어왔던 큼지막한
액자의 글씨였다.
성철큰스님이 해인사 방장으로 주석하시던 초기시절에 유나(維那)소임을 맡아보시다 열반하신
지월(指月) 큰스님께서 쓰신 글이었다. 지월큰스님은 당시에 해인사 뿐만 아니라 전국
제방(諸方)에 '겸허와 자비의 대화신(大化身)'으로 소문이 났을 정도로 철저히 '하심'의
생활을 해 오신 분이었다.
이 '하심(下心)'이 해인사 행자실에서 가장 강조되는 내용이었다.
조금 일찍 출가(出家)했다고 해서 마치 군대 고참처럼 하행자(下行者)를 부리는 행자생활
초기는 참 견디기 어려웠었다. 속에서 열불이 나는 상황에서 '하심(下心)'이 덜 됐다고 질책을
받으면서 '정말로 나를 낮춘다는 것은 어떤 경우를 말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 하심(下心)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 채 '일단은 어떻게든 견뎌서 계(戒)를 받고
보자'라고 다짐하면서 속으로 '하심'이란 말을 참으로 많이도 되 뇌이곤 했었다.
나중에 행자도반 스님들 몇몇이서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하심에 대해 얘기가 나왔을 때,
'견뎠다는 것 자체가 하심을 하였던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얘기하며 웃은 적이 있었다.
각설(却說)하고, 그런데 왜 나를 낮추어야 할까?
성철큰스님의 법문(法門) 중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우리 마음의 눈을 무엇이 가리고 있어서 캄캄하게 되었는가?
불교에서는 그것을 탐(貪), 진(瞋), 치(癡) 삼독(三毒)이라고 한다.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이 삼독이 마음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니, 이 삼독만 완전히
제거해 버리면 마음의 눈은 저절로 안 밝아질래야 안 밝아질 수 없다.
그 삼독 중에서도 무엇이 가장 근본이냐 하면 탐욕(貪慾)이다.
탐내는 마음이 근본이 되어서 성내는 마음도 생기고 어리석은 마음도 생기는 것이다.
탐욕만 근본적으로 제거해 버리면 마음의 눈은 자연적으로 뜨이게 된다.
탐욕은 어떻게 하여 생겼는가? '나'라는 것 때문에 생겼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잘 살자 하는 데에서 모든 욕심이 다 생기는 것이다.
'나'라는 것이 중심이 되어서 자꾸 남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눈을 밝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라는 것, 나라는 욕심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누구나 무엇을 생각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자나깨나 나뿐인데, 그 생각을 완전히 거꾸로
해서 자나깨나 남의 생각 남의 걱정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행동의 기준을 남을 위해 사는 데에 두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삼독이 녹아지는 동시에 마음의 눈이 자꾸자꾸 밝아지게 된다.
그리하여 탐, 진, 치 삼독이 완전히 다 녹아버리면 눈이 완전히 뜨여서 저 밝은 광명을 환히
볼 수 있고, 미래겁이 다하도록 자유자재한 대해탈의 생활을 할 수 있다.
누가 '어떤 것이 불교입니까?'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세상과 거꾸로 사는 것이 불교다.'
세상은 전부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나를 위해 남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지만, 불교는 '나'라는
것을 완전히 내버리고 남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다.
그러니 거꾸로 사는 것이 불교이다..."
(1981년 6월 30일 해인사 큰법당에서 하신 하안거법문 중에서 일부를 요약)
여기서 성철큰스님께서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우리 속에 내재해 있는 '탐욕'때문이라고
하시면서 그 탐욕은 '나'로 인해서 생긴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무수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 삶은 나 위주의 삶이었다.
남보다는 나 위주의 자기본위적(自己本位的)인 삶을 살아왔다.
그 결과 내 속의 작은 탐욕은 점점 더 커져 버렸다.
그 커진 탐욕은 점점 더 자기본위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업보(業報)의 장애(障碍)를 겪으며 살아가게 된다.
이 악순환(惡循環)의 고리를 끊기 위하여 그 정점(頂點)에 있는 '탐욕(貪慾)'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애쓰는 작업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성철큰스님의 말씀처럼 '자기 위주로 살아왔던 삶'을 거꾸로 '남을 위한 삶'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하나의 큰 방법일 수 있을 터인데 지금까지 그래오지 못한 삶의 습성(習性)을
어찌 단번에 그럴 수 있도록 바꾸어 나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철큰스님께서 절을 하라고 하신 것일 것이다'라고 나는 굳게 확신하고 있다.
내 속에 있는 '나라는 에고(ego)'를 없애지 않으면 자기본위(自己本位)의 삶의 습성(習性)을
버릴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진정한 남을 위한 삶도 나올 수 없고 결국엔 탐욕도 조복(調伏)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나라는 에고'를 없애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이 바로 '절'인 것이다.
왜?
절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높이기 위해서 나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스승 앞에서 자신을 낮추라고 한다면 낮추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배타적(排他的)인 종교인이라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처음 시작은 부처님에게 절을 하는 것으로 하라는 것이다.
부처님에게 절을 하다보면 출가수행자인 스님들에게도 할 수 있게 되고, 나중에는 같이
공부하는 도반(道伴)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절을 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자기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절을 할 수 있게 된다.
내 속의 '에고'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이것이 절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이지 않을까?
내 속의 오만(傲慢)한 나, 이기적(利己的)인 나를 꺾고 '참 나'를 찾기 위해서라도
'절 수행'은 기본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 日行千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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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합장하는 자세가 일반적인 자세와 좀 다른 것같은데요... 설명부탁드립니다. 제일 첫화면에서 말입니다. 합장은 보통 명치부근에 손을 위치하고 양손과 양팔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진에서는 명치보다 윗가슴부근에 손이 위치하네요
1. 하안거든 동안거든 해인사 선원으로 안거를 들어가면 첫날 대중스님들이 한 방에 모여 습의(習儀)를 합니다. 이때 합장하는 법이나 발우공양법 등을 율원장스님으로부터 다시 배우게 됩니다. 여기에는 승납이 오래된 구참스님도 참여하는데, 합장을 할 줄 모르거나 발우공양법을 몰라서 다시 익히는게 아닙니다.
2. 그만큼 기본적인 자세에 배어있는 기본정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군대로 말하면 제식훈련을 강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보면 됩니다. 어쨌든 그때 제가 배운 자세는 이렇습니다.
3. 합장법:"손바닥을 쫙 펴서 양손을 맞대고, 맞댄 두 손은 정면에서 봤을 때 '한 일(一)'자(字)가 되도록 한다. 그리고 맞댄 손은 명치 바로 위 쯤에 두되 가슴으로부터는 주먹이 들어갈 정도의 간격을 띄운다."/ 이 상태로 합장저두(合掌低頭)를 하는데, 합장한 상태는 움직이지 않고 상체만 약 45도 정도 숙인다.
4. 합장저두는 '반배(半拜)'를 말하는데, 반배보다는 합장저두가 정식명칭이죠. 합장한 손이 앞에서 보기에 '一'자로 보이려면 Arahan님이 위에 기술한 것처럼 양손과 양팔에 힘을 빼고서는 잘 될 수 없습니다. 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원칙은 이렇고, 실제로 이렇게 하는 분들이 드물죠.
5. 정림사에서의 합장 자세는 가능한 이 배운 자세로 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합장할 때 뿐 아니라 장궤합장(아비라기도 자세)을 할 때에도 합장을 그렇게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108배 이상의 절을 할 경우에는 맞댄 손의 끝을 코 앞까지 올리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엎드렸다가 일어섰을
6. 경우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지 않고 다시 엎드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보통 절을 생활화하여 많이 하는 분들을 보면 엎드렸다 일어나고, 다시 엎드릴때 완전히 섰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2/3쯤 섰다가 내려갑니다. 절을 하는 동안 내내 허리를 쫙 펼 기회가 없게 되지요. 많이 하다보면
7. 자연 그렇게 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해인사에서 배운 합장자세에서 맞댄 손을 천천히 위로 쭉 올려서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허리가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허리가 쫙 펴지는 것이죠. 그래서 108배 이상 절을 할 때는 아예 맞댄 손의 끝이 코 앞에 까지 올라가도록 한 것입니다.
8. 이때 몸통과 어깨의 각도는 직각(90도)이 유지되도록 합니다. 삼배정도만 할 경우는 그렇게까지 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니무 마하 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