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굴리자고 하였으니, 생각을 해 볼까요.
수필 문학은 90% 이상이 과거향 문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수필은 기억해두었던 과거를 불러내서 언어로 표편한 것입니다.
가억으로 보관해 둔 것을 현재로 불러내는 것을 '회상'이라고 합니다. 수필은 거의가 회상 형식이란른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하였을까요.
경험하고, 눈으로 보았던 모든 것을 기억으로 보관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카메라와 우리의 눈이 다른 점은 카메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모든 것을 보관하지만, 우리의 눈은 선택하여 기억으로 보관한다는 것입니다.(무엇을 선택하느냐는 뒤에 따져 보겠습니다.) 프로이트는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기억(보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회상에서 불려나온 것은 내가 선택한 기억들 중에서 불려나온 것입니다. 보관(기억)하지 않는 것은 불러 낼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에 의존하여 쓰는 수필을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라면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는 수필의 정의 자체가 틀린ㄹ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머리를 굴리자 고 한 것은 여기서 부터 답을 찾나는 것입니다.
5%
첫댓글 수필을 기억에 의존한 사실만으로 쓴다면
일기나 회고록이 될 수도 있을듯 합니다
어느정도의 상상이나 픽션이 가미하여 재미를 주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래야만 문학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이야기의 틀을 바꿀 수 있는 꾸밈은 문제가 있겠지요
사실 제가 지난번에 올린 ㅡ대리운전ㅡ은
7ㅡ8년 전 이야기인데
마지막 장면 신문기사 이야기는 최근 이야기로
이어보았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상황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거짓은 없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그런데 재미를 위해 상상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도 사실에 기반해야 된다고 봅니다. 김규련 수필가의 거룩한 본능의 황새의 죽음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요.
김재화 선생님의 의견은 다름에 다루어 보기로 합시다.
먼저 수필문학론에서 허구의 반대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허구의 반대를 사실이라고 하면, 허구가 아닌 --- 사살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쓸 수가 없다는 것이(현대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허구의 반대가 사실이 아니라가ㅗ 하면 우리의 글쓰기에 숨통을 틔어 줍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쫌 어려움이 있네요 ㅎㅎ
우리의 기억이 다 사실이라는것도 진실은 아니겠지요
허구의 반대가 진실이 아니듯이 진실의 반대가 허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필의 정의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상의 경험이나 생각을 문학적으로 엮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문학적이라는것에 진실이 아니라고 우길만한것이 끼어들 소지가 있다 생각합니다
8년 전 이야기에 오늘 신문기사를 넣은것이 허구이냐 문학이냐는 문제는
독자의 몫 아닐까 생각합니다 ㅎㅎ
어색했으면 허구
자연스러웠으면 문학 ㅡ홍표생각
수필은 체험을 새롭게 조립하고 수정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허구와 허구성은 구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동민 선생님
피천득의 수필 ㅡ인연ㅡ에서
작가의 기억속 이야기가 몇퍼센트 정도 사실일까요?
읽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ᆢ
그런데 선생님이 던지신 질문에 제가 바르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ㅎㅎ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어떠한 일을 겪은 두 사람이
시간이 흘러 그것에 대한 기억을
각자
수필로 쓴다면.
똑같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기억에 대한 왜곡이라기 보다
일정 사실에 대해 어떠한 해석을 하냐에 달렸겠지요.
허풍을 잔뜩 실어서 적는다면
재미있는 소설도 되버리겠지만요.
수필의 일차 검증은 스스로에게 묻는 일 같아요. 부끄러움을 견딜 것 인지 사회가 그어놓은
윤리의 울타리일지에 대한 부분이요.
백명의 이야기가 백가지가 되고
하나의 이야기가 백명에게 읽힐때
백가지로 읽히는것이 글이라면,
그것을 모두 감싸는 고민은
작가에게는 눈치만 키우는 일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수필이 사실을 근거로 해야하는
기본적인 룰이 있다면,
작가는 본인이 쓴 글에 의해서
행동의 규범이 생기게 될테고
강박관념도 생길 것 같아요
그래서
수필애서 글의 범위는 좁혀지고
착한 글만 찾게 되겠지요.
저는 수필을 쓰는 이유중의 가장 큰 하나는
우리는 죽음을 앞둔걸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년 이후의 이들이 수필을 쓰며
스스로 울먹이는 이유도 그래서 일겁니다.
사실의 증거와 허구의 가능성은
맞붙어 있습니다.
피천득 수필 인연이 소설같아서
우리가 좋아한다면
이동민 선생님이 말씀하신 기억속의 사실이
진실이냐 사실이냐는 논의를
모두 포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필의 정의에서 '사실을 쓰자'를 강조함으로, 글로서는 사실을 표현할 수 없다는 언어 이론과 충돌한다.
논의의 시작은 같은 산문으로서 수필과 소설을 구분하는 기본이 사실이냐, 허구이냐 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언어로 사실을 표현해야 하는 수필이 과연 사실을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의 논의는 여기서 시작하였다. 박지한 선생님의 담론 중에(담론은 그냥 대화의 언어가 아니고주제를 체계적으로 담고 있는 말이다.)박선생님은 사람마다 자신의 표현방법이 규범화 되어 있다고 햇다. 사람마다 모두 자기의 규범을 따르다 보면 결과적으로 수필 글은 사실을 표현할 수 없다. 라고 읽었습니다.
우리는 논쟁을 이끌고 가기 위해서 허구 - 사살 - 진실 이라는 말을 주제로 또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사실의 자리에 진실을 놓자는 것이 최근의 수필이론으로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참여하시 선생님, 모두 고맙고, 더 많은 선생님이 논의에 창며하시기 바랍니다.
이동민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이고
소견이라 하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글에 대한
고민의 글이 좋고 신나서 쓰다 보니 길어지고
다시 읽어보니 제 글이 뚜렷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모두 모두 어느 곳에 도착하기 힘들듯이 저의 지금 자리를 발견하는 시점이기도 하네요.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언급 감사해요!
사실이 진실을 안고 있을까요
진실이 사실을 안고 있을까요
나에게 허구이면 모든이에게 허구 일까요
피천득의 인연을 소설이라고 하지않고 수필이라고 한것은
작가의 의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필은 사실이나 진실, 소설은 허구라는 정의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피천득의 인연이 수필로 분류된 이유는 수업시간에도 언급이 있었지만1959년에는 시 외의 산문은 수필로 묶은 출판사의 잘못이고 작가의 의도라고 보기는 그렇죠. 제자 석경징 교수가 픽션이라고 했고 피천득 작가도 제기된 문제에 웃으며 넘어간걸로 보아 소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아사꼬가 실존 인물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그러니 실제 있는 인물의 사연으로 새로 창작했으니 충분히 수필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동 한 그릇 같이 애초에 소설이라고 만들어진 글하고는 경계가 있다고 봅니다.
잘 정리해 주시네요
우리 모두 수필로 생각하는 ㅡ인연ㅡ조차도
소설과 그리 경계에 있지 않는거 같습니다
다른 수필중에도 소설로충분한 글이 많겠지요
따라서 소설은 허구, 수필은 진실이나 사실 이라는 정의가 의미없는거 같습니다
정석은 외우고 잊어라는 바둑 격언이 있지요
머리를 굴려 봅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