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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골-골짜기, 자연 마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가야실(嘉若室) 대적골- 제철유적(장수군 향토문화유산 2017.11.20 지정)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은석산 앞 자락(대적골)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양곡리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도암리
대전광역시(大田廣域市)
대한민국 중앙부 충청남도 동남부에 있는 광역시.
동경 127°14'~127°33', 북위 36°10'~36°29'에 있다. 동쪽으로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 북쪽으로 세종특별자치시·충청북도 청주시, 남쪽으로 충청남도 금산군, 서쪽으로 충청남도 공주시·논산시에 접한다. 충청 지역 상공업과 교육·문화의 중심도시이다.
행정구역으로는 5개 구[동구(東區), 서구(西區), 중구(中區), 유성구(儒城區), 대덕구(大德區)], 79개 행정동(177개 법정동)이 있다. 광역시청은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에 있다. 행정구역 총면적 539.98㎢ 가운데 유성구가 177.15㎢로 가장 넓다. 인구는 151만 8775명(2015년 현재)이다.
자연환경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은 그 사이에 진안고원·금산고원을 형성하고, 그 여맥이 북쪽으로 뻗어 대전의 동·남·서부 산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대전의 남부지역은 식장산(597.4m)·만인산(537.1m)·안평산(470.2m)·장군봉(268.2m)으로 연결되는 산지를 이루고 있고, 동쪽은 식장산·계족산(398.7m)으로 연결되는 산지가, 서쪽은 대둔산(877.7m)에서 우산봉(573.8m)으로 연결되는 계룡산지가 각각 대전의 동쪽과 서쪽의 경계선을 이루면서 거의 일직선상으로 달리고 있다. 계룡산지, 계족산지, 식장산지, 만인산지 등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전형적인 분지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갑천(甲川)·유등천(柳等川)·대전천(大田川)의 연변에 자리하고 있다. 갑천은 대둔산과 계룡산지에서 흘러내리는 하천들을 합쳐서 대전분지의 서반부를 관류하는데, 대전분지의 동반부를 관류하는 대전천과 유등천을 회덕 부근에서 합하여 북쪽으로 흘러 신탄진 부근에서 금강 본류에 유입한다. 따라서 대전은 바로 이들 3개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이루어진 분지이다. 대전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와 갑천·유등천·대전천 연변의 충적지 사이에 있는 구릉지(산록완사면), 그리고 이들 3개 하천 연변의 충적지는 일찍부터 논·밭·주거지로 이용되어 왔다.
동쪽에는 동구 세천동으로부터 북으로 향하여 고봉산(304.3m), 계족산, 개머리산(365m), 함각산(314.5m), 연봉, 백골산, 꾀꼬리봉, 꽃봉(285.2m), 약해산 등이 충북의 옥천군·보은군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서쪽은 우산봉, 갑하산(469m), 도덕봉(534m), 빈계산(415m), 시루봉(435m), 조개봉(342m)등 계룡산계가 논산군의 두마면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두 산계는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지질구조적 조건과 관련이 깊다. 즉, 규암층과 소위 옥천층군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진 변성암류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대전의 동쪽, 그리고 맥암류와 반암류가 밀집 분포되어 있는 서쪽은 대전의 중앙부의 화강암 분포지역에 비하여 풍화 및 침식에 강하여 높은 산지로 남게 된 것이다. 계룡산지의 남쪽은 주로 반암류로 이루어진 구봉산(264m)이 동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남부산지는 대전에서 가장 높은 식장산을 비롯하여 망덕산(439m), 마달령, 지봉산(464.3m), 만인산, 안산(264.1m), 명막산(330.5m), 조중봉(333.5m), 안평산, 장군봉 등으로 연결되는 고지를 이룬다. 남부산지는 노령산맥의 연장으로서, 충남에서 가장 높은 금산의 서대산(903.7m), 전라북도와의 경계에서 대둔산과 연결되어 대전 동남부 지역의 가장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대전의 수계는 갑천(73.7㎞)·유등천(44.4㎞)·대전천(26.3㎞)의 3개의 큰 하천과 그 지류인 여러 개의 작은 하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서 금강 본류로 유입하고 있다. 대전의 가장 큰 하천은 갑천이다. 갑천은 계룡산에서 발원하는 두계천과 대둔산에서 발원하는 벌곡천이 대전시 서구의 몽촌동에서 합류하여 구봉산 뒷편인 흑석동·괴곡동에서 감입사행한다. 가수원동부터는 완만히 흐르면서 진잠천·유성천·탄동천을 합쳐서 '갑천들'을 전개시키고, 다시 삼천 부근에서 유등천·대전천을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 신탄진 부근에서 금강 본류로 유입한다. 유등천은 금산군 진산면 청등리 산록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침산동에서 정생천과 합류하고, 안영동·복수동·유천동·도마동·수침교 밑을 통과하여 삼천동에서 대전천과 합류하여 갑천에 유입한다. 대전천은 금산군과의 경계인 만인산과 비파산 사이 소호동에서 발원하여 역시 북쪽으로 흘러 산내동·옥계동·석교동·인동·문창동을 지나, 삼성1동 부근에서 식장산에서 발원하여 판암동·신흥동·대동을 관류하여 내려오는 대동천과 합류하고, 다시 삼천동에서 유등천과 합류하여 갑천으로 유입한다. 대전분지 중앙의 이들 3개 하천이 합류하는 연변에는 넓은 충적지가 발달하고 있다. 이 충적지와 대전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 사이에는 경사가 완만한 산록완사면(구릉지)이 발달하고 있다.
대전은 내륙분지에 위치해 한서의 차가 큰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12.1℃이며, 1월 평균기온 -2.3℃, 8월 평균기온 25.5℃로 여름과 겨울의 연교차가 30℃에 이른다. 연 강수량은 1,120㎜ 정도이며, 70%가 여름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대전지방의 계절별 풍배도에 의하면 연중 최다 풍향은 남서풍계열이고, 연중 평균풍속은 1.8㎧이다. 대전 지방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북서계절풍 계통의 바람은 다른 지방에 비하여 약하게 부는 편이다.
역사
구석기시대 관련 유적으로 둔산동유적이 있다. 이 유적의 하층부에서 발굴된 몸돌·망치돌 등 석기 유물에서 돌려떼기 수법이 보이고 자갈층 석기들은 중기구석기시대, 붉은점토층 석기들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로 편년된다. 이에 따라 대전 지역에서 중기~후기 구석기시대에 인간이 살았다는 점이 증명되었으며 둔산동유적의 구석기문화가 충청도 권역의 공주 석장리와 마암리의 구석기문화권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둔산동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15기의 움구덩[竪穴]이 발굴되었고, 유적에서 다수의 바닥이 둥근 빗살무늬토기와 무문토기가 출토되었는데 빗살무늬토기의 양식으로 보아 유적의 시기는 신석기 중기로 편년된다(서기전 3000년~2000년). 석기는 줄지구가 주류를 이루며 그 외에 도끼, 그물추, 갈돌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유적은 계절적 이동을 하면서 원시농경을 하던 집단이 남긴 유적으로 보는 견해가 강한데, 청동기시대 저장시설로 보는 견해도 있다.
둔산동유적에서는 3기의 청동기시대 집터가 조사 발굴되었는데, 대전 지역에서 처음으로 청동기시대 집터 형태가 밝혀졌고 남한지역 최초로 주춧돌 주거 구조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중요성으로 ‘둔산식 주거지(屯山式住居址)’라 불리며 청동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집터 형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집터에서 팽이형토기편, 민무늬토기편, 토제대롱옥편, 양날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둔산동유적 부근에 선돌·고인돌이 분포하고 마제석기와 동검파두식(銅劍把頭飾)이 함께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문화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괴정동의 돌무지 및 석묘에서 출토된 세형동검·다뉴세문경·동탁(銅鐸) 등의 청동기류 유물로도 청동기문화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삼국시대 신라·백제의 격전지로 보이는 성터가 대전 부근에 수없이 흩어져 있는데, 이들은 백제의 수도인 공주와 부여를 방위하는 산성이 있던 곳으로 생각된다. 백제시대 대전 지방의 행정구역은 37군 가운데 하나인 우술군에 영속되어 그 밑에 노사지현(奴斯只縣: 지금의 유성 지방)과 소비포현(所比浦縣: 지금의 유성구 덕진동)이 있었다. 또한 대전 유성구의 진잠 지방은 진(정)현현(眞(貞)峴縣)이 있었는데, 지금 연산 지방의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에 예속되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지방제도를 개편하였다. 백제시대의 우술군은 비풍군(比豊郡), 그 영현인 노사지현은 유성현, 소비포현은 덕진현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진현현도 진잠현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고려 초기 비풍군을 회덕군(懷德郡)으로 개칭했고, 현종 때는 공주에 속했으며,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었다. 무신난 이후의 농민봉기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1176년대전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이었다.
그 뒤 이 지역은 몽고의 침략을 받았으며, 공민왕 때부터는 왜구의 약탈로 큰 피해를 입었다. 고려조에는 신라에 이어 불교가 더욱 융성했는데, 대전 지방 부근에는 보문사(普門寺)를 비롯한 많은 사찰이 있었다. 지금의 대사동(大寺洞: 한절골)은 큰 절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태종 13년(1413)에 전국의 군현제도를 새롭게 개편하였다. 이때 대전 지방은 고려 후기의 군현이 그대로 존속되어, 공주목의 임내(任內)였던 유성현과 덕진현은 폐현되어 공주목에 속하게 되었고 회덕현과 진잠현은 공주목의 영현이 되었고 대전(大田: 한밭)이라고 불렸다. 임진왜란 중 왜군의 후류부대(後留部隊)가 주둔하고 있는 금산을 목표로 하여 의병이 조직되기도 했다.
이 지방에서는 유학자로서 관직에 올라 이름을 떨친 인물을 많이 배출했는데, 박팽년(朴彭年)을 비롯한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권시(權諰)·윤휴(尹鑴) 등이 있다. 특히 이곳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호학파(畿湖學派)는 성리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권시의 손자이고 송시열의 외손인 권이진(權以鎭)은 유형원(柳馨遠)의 실학사상을 계승하였다. 이 밖에 문장가로서는 송인수(宋麟壽)·송기수(宋麒壽) 등이 있으며, 신흠(申欽)은 당시 시문학계의 중심을 이뤘다. 1862년(철종 13)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일어난 철종 연간의 민란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는데, 충청도 지역의 민란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대전지방을 중심으로 한 회덕·공주·은진(恩津)·연산(連山)의 민란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은 이 지역에 영향을 미쳐 그 해 6월회덕·진잠 두 현이 농민군에게 습격당하고, 10월 대전벌에서 청주진 남영(淸州鎭南營) 병사 70여 명이 몰살당했다. 그러나 곧 전세는 바뀌어 회덕의 농민군이 청주진에서 나온 관군과 격전 끝에 패배함으로써 이곳은 평화를 되찾았다.
한편,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됨에 따라 척사위정운동이 고조되었다. 이곳에서는 송병선(宋秉璿)·송병순(宋秉珣) 형제와 그 일문(一門)인 병엽(炳燁)이 앞장섰다. 러일전쟁에서 승세를 잡은 일본은 1904년 제1차한일협약을 체결하고 대전지방에 일본군을 주둔시켜 호서지방을 제압하였다.
이때 송병선은 한일협약에 항거해 약을 먹고 순사하였다. 송병엽은 문하생들과 더불어 의병투쟁에 가담하려고 했으나 일본군대와 영사관 경찰의 감시 때문에 좌절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독자적인 의병운동은 쉽게 일어날 수 없었고, 다만 뜻있는 몇몇 사람이 다른 지방의 의병조직에 뛰어들 뿐이었다.
한편, 이곳이 대전으로 불린 것은 1905년 일제가 경부선을 부설해 ‘한밭’마을을 그 통과지점으로 삼았을 때이다. 이와 동시에 일본인 거류민이 증가해 신사(神社)를 설치하고 일본불교를 들여오는 등 일본풍의 시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일합병 때 송병순이 자결, 순절하고 송씨 일가가 은사금(恩賜金)을 거절한 것은 대전 지방의 항일민족정신이 드높았던 것을 나타낸다.
1910년 한일합병 후 회덕군청을 한밭으로 이전하고 한밭을 기점으로 호남선 철도공사가 시작되어 1913년에 완공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회덕·진잠·공주 3개 군을 폐합해 대전군을 신설하고 군청을 대전에 두었다.
-1917년 면제 실시 때 대전면이 신설되었으며, 대전이 군사기지화되어 일제의 대륙침략의 거점이 되었다.
이처럼 철도 부설로 서울과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중심지가 됨으로써, 1932년 충청남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되었고, 일본인이 정착한 대전읍이 확장되어 각종 산업시설이 들어섰다.
-1935년 10월 대전읍은 대전부로 승격했으며
-1940년 다시 행정구역이 확장되어 32개 동을 관할하게 됨으로써 24개 부 중 17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부제(府制)에서 시제(市制)로 개편됨에 따라 대전시가 되었다. 6·25전쟁 때는 철도망·도로망의 중심지인 대전시를 방어하기 위해 한미 양군이 공동작전을 폈으나 북괴군에 함락되었다가 1950.9.29에 수복되었다. 이때 피난민의 전국적인 대이동으로 대전을 경유하던 사람들이 그대로 머물러 살면서 인구가 급증하였다.
-그 뒤 도시지역 확장에 따라 1984년 9월부터 유성 일원과 진잠·회덕 일부가 대전시로 편입되어 동구 30개 동, 중구 65개 동의 2구 95개 동을 갖게 되었다.
-1988.1.1에는 중구에서 14개 동을 분리하고 서구를 신설해, 3개 구가 되었다.
-1989.1.1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해안 개발시대를 맞아 중부권의 중추기능을 수행하는 성장거점도시로서의 구실을 담당하기 위해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직할시 승격과 함께 기존의 대전시 지역에 진잠면을 제외한 대덕군 일원을 편입하고, 유성구(儒城區)·대덕구(大德區) 등 2개 구를 신설해 5개 구가 되었다.
-1995.1.1 대전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9년대전광역시 시청의 위치를 중구 대흥동에서 서구 둔산동 1420번지로 변경하였으며, 2002년 4월 1일 중구청의 위치를 대흥동 125번지에서 중구 대흥동 499-1번지로 변경하였으며, 8월 8일 서구청의 위치를 서구 갈마동에서 서구 둔산동 1300번지로 변경하였다.
유물, 유적
고인돌은 서구 가수원동과 유성구 관리동에 내동리 지석묘(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호), 교촌동에 칠성당 지석묘군(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2호)과 대정동 등에 분포해 있다. 서구 괴정동의 돌무지 아래 석실묘에서는 세형동검·다뉴세문경·동탁 등의 청동기류와 민무늬토기·간석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교함과 세련됨을 보여준다.
이 밖에 탄방동에서는 세형동검과 동모가, 문화동에서는 세형동검 등이 나왔으며, 대덕구 오정동에서는 백제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철제류가 발굴되었다. 중구 무수동에 국사봉 유적(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8호)도 있다.
산성으로는 대덕구 장동의 대전 계족산성(大田鷄足山城, 사적 제355호), 중구 대사동의 보문산성(寶文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0호), 소정동의 사정성(沙井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4호), 동구 가양동의 능성(陵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1호), 용운동의 갈현성(葛峴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2호), 판암동의 삼정동 산성(三丁洞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7호), 직동의 노고산성(老姑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9호)·성치산성(城峙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9호), 호평동의 견두산성(犬頭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0호), 신하동의 백골산성(白骨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2호), 삼괴동의 계현산성(鷄峴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4호), 이사동의 비파산성(琵琶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5호), 마산동 산성(馬山洞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0호), 유성구 덕진동의 적오산성(赤鰲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3호), 안산동 산성(案山洞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6호), 성북동 산성(城北洞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8호), 신동의 소문산성(蘇文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3호), 구성동의 구성동 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제6호), 서구의 월평동 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제7호), 대덕구 비래동의 질현성(迭峴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8호), 읍내동의 우술성(雨述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9호)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동구 대성동의 고산사 대웅전(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 유성구 성북동의 석조보살입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 중구 정생동의 중암사 부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 석교동의 보문산 마애여래좌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 무수동의 보문사지석조(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호)·보문사지(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호)가 있다.
유교문화재는 대덕구 읍내동의 회덕향교(懷德鄕校)·회덕향교 대성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 유성구 교촌동의 진잠향교(鎭岑鄕校)·진잠향교 대성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호)을 비롯해, 서구 탄방동의 도산서원(道山書院,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 중구 안영동의 창계숭절사(滄溪崇節祠,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 동구 용운동의 문충사(文忠祠,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호), 이사동의 월송재(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1호)·은진송씨 승지공파 재실(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3호)이 있다.
고가옥은 서구 송촌동의 송용억 가옥(宋容億家屋, 대전광역시 민속문화재 제2호), 괴곡동의 파평윤씨 서윤공파 고택(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호), 대덕구 송촌동의 회덕 동춘당(懷德同春堂, 보물 제209호)·회덕 동춘선생 고택(懷德同春先生古宅,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동구 소제동의 송자 고택(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9호), 대덕구 중리동의 회덕 쌍청당(懷德雙淸堂,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 등이 있다.
송시열이 건립한 가양동의 남간정사(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는 송시열의 제자들이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발간한 곳이다. 또한 동구 석교동의 봉소루(鳳巢樓,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5호), 대덕구 미호동의 취백정(翠白亭,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호), 비래동의 옥류각(玉溜閣,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은 송준길이 창건해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이 밖에 유성구 원내동의 기성관(杞城館 및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9호), 대덕구 중리동의 송애당(松崖堂,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 읍내동의 제월당 및 옥오재(玉吾齋),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 서구 변동의 수정재(水晶齋,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0호), 동구 가양동의 삼매당(三梅堂,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도 유명하다.
대덕구 법동의 은진송씨 정려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송촌동의 이시직공 정려각(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6호), 중리동의 고흥유씨 정려각 및 비(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 동구 가양동에는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판(宋子大全版,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 등이 있다.
대덕구 중리동의 초려 이유태 유고(草廬李惟泰遺稿,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농암진적(農巖眞蹟,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을 비롯해 권준(權樽)의 준호구(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와 사전인 운부군옥(韻府群玉,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호), 윤돈(尹暾) 등이 재산을 분배받은 것을 기록한 윤돈 등의 동복화회입의(同復和會立議,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 서구 탄방동에 만회집 탄옹문집 판목(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 흑성동에 상제집략 판목(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용천련고 판목(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2호), 중구 무수동에 유회당 판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동구 이사동에 금암집 판목(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서구 변동의 동국사략(東國史略,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8호)·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청구풍아(靑丘風雅,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0호)·양성당 제영(養性堂題詠,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호)·문정공 왕고 간독(文正公王考簡牘,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2호)·화산세가 필적(花山世家筆蹟,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3호)·박인년 교지(朴引年敎旨,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4호) 등이 있다.
능묘 및 비로는 동구 가양동에 박팽년선생 유허(朴彭年先生遺墟,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호)·박팽년선생 유허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유성구 가정동에 김익희(金益熙) 묘(대전광역시 기념물 제5호), 전민동의 김반·김익겸의 묘(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 서구 원종동의 송준길 묘(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5호), 과곡동의 김여온 묘(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6호), 평촌동의 유혁 묘(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8호)가 있다.
웃다리농악(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대전의 앉은굿(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 유천동 산신제(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 장동산 디마을 탑제(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5호), 불상조각장(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호), 소목장(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7호), 매사냥(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송순주(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9호), 연안이씨가 각색편(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0호), 단청장(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악기장(북메우기)(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 들말두레소리(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3호), 가곡(여창가곡)(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등이 있다.
교육, 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회덕향교와 진잠향교가 대덕구 읍내동과 유성구 교촌동에 각각 있었다. 이 밖에도 숭현서원(崇賢書院)·도산서원·정절서원(靖節書院) 등이 있었다. 숭현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9년(광해군 1) 송남수(宋柟壽)가 재건한 것으로, 원촌동에 유적지가 남아 있다.
정절서원은 1684년(숙종 10)계양동에 세워졌으며, 도산서원은 1711년탄방동에 세워져 지방유생들의 교육에 힘썼으나,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이 밖에 개인이 설립한 서당과 강학당을 통해서도 많은 교육이 행해졌다.
1585년(선조 18) 남분붕(南奮鵬)의 봉소재(鳳巢齋)가 석교동에 건립되었으며, 인조 때 회덕2동에 김경여(金慶餘)가 송애당을, 숙종 때는 송시열이 남간정사를, 그리고 조선 말기 송병선이 성남동에 석남재(石南齋)를 설립해 학문 연마와 후학 교육에 큰 공헌을 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1년 회덕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13년 대전공립보통학교가 세워진 뒤 각 면에 보통학교들이 설립되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20년에 와서 대전공립상업보습학교가 세워졌으며, 그 뒤 각급 교육기관이 점차 증설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46개교, 중학교 88개교, 고등학교 62개교, 특수학교 5개교, 전문대학은 대덕대학교·대전보건대학교·우송정보대학·혜천대학교, 한국폴리텍Ⅳ대학 대전캠퍼스 등 5개교, 국군간호사관학교·대전대학교·목원대학교·배재대학교·우송대학교·을지대학교·충남대학교·침례신학대학교·한남대학교·한밭대학교·한국과학기술원 등 11개교가 있다.
도서관으로는 대전평생학습관, 학생교육문화원, 한밭도서관, 용운도서관, 갈마도서관, 성남도서관, 유성도서관, 대덕구 안산도서관, 점자도서관, 가수원 도서관, 동구가오도서관, 판암도서관 등이 있다.
1954년에 설립한 대전문화원은 각종 문화예술행사를 주관해 향토문화의 계승과 개발에 공헌하고 있으며, 매년 가을에 시민들의 민속·문화·체육행사인 한밭제가 열리고 있다. 공연시설로는 공연장, 영화상영관, 야외음악당이 있으며, 전시시설은 박물관, 미술관, 화랑이 있다. 문화보급전수시설은 문화원, 국악원, 전화회관이 있으며, 지역문화복지시설로 문화의집이 있다. 체육시설에는 공공체육시설, 골프장, 빙상장, 종합체육시설이 있다. 청소년수련시설은 수련관, 수련원, 유스호스텔, 청소년문화의 집, 야영장이 있다.
의료시설은 종합병원, 병원, 의원, 특수병원, 요양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 한의원, 조산소, 부설의원,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 부랑인시설, 장애인복지시설, 양노시설, 정신요양시설이 있다. 아동복지시설로는 영아·육아 시설등이 있으며, 부녀복지시설은 모자보호, 가정폭력피해자보호 등이 있고, 보육시설이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유희와 오락을 주로 들 수 있다. 어린이들의 유희인 닭잡기놀이와 이거리저거리놀이를 들 수 있다. 닭잡기놀이는 10세 내외 아이들의 집단놀이이다. 먼저 살쾡이(술래)와 닭을 정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원형을 이룬다.
그 원 속에 닭을 넣고 원 밖에서는 살쾡이가 닭을 노리며 “닭아 닭아 달걀 몇 개나 있니?” 하고 물으면 “열 개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살쾡이가 닭에게 “달걀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제의하는데, 이때 “못 주겠다.”라고 대답하면 살쾡이가 “야아!” 하고 소리치며 닭을 잡으려고 원 안으로 달려든다. 이때 원형을 이룬 아이들은 빙빙 돌며 살쾡이가 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놀이이다.
이거리저거리놀이는 남녀 아이들의 방안놀이로서 몇 사람이 양쪽으로 마주앉아 두 다리를 섞어 뻗고 한 사람이 다리를 짚으면서 “이거리 저거리 밥거리 인사만사 두만사 주머니끝……”의 노래를 하는데, 그 노래가 끝날 때 짚은 다리를 빼내게 된다. 이렇게 몇 번을 되풀이해 먼저 두 다리를 빼내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이 고장에서 지내는 동제는 산신제로 시행되며, 동제를 지내는 모든 마을은 거리제를 지낸다. 제일은 대부분 정월 열나흗날이며, 거리제는 노신(路神)을, 산신제는 보문산 산신을 대상으로 지낸다. 제장은 산사당·석장승·누석단(累石壇) 등이며, 제주는 부정이 없는 사람 중에서 선정하고 제주의 금기는 그리 엄격하지 않은 편이다.
삼정동의 거리제는 100여 년 전 농사에 방해가 되는 큰 느티나무를 베어내자 마을에 청소년 10여 명이 급사하는 변이 일어난 뒤 나무신에게 제를 지냈던 데서 유래한다. 삼정동은 큰삼정·골삼정의 두 마을에 누석단이 축조되어 있고 큰삼정의 할아버지신과 골삼정의 할머니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관은 생기복덕한 자로 10일 전에 선출해 문전에 황토를 깔고 금줄을 치고 어육식을 금하고 새로 떠낸 정화수를 이용한다. 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 11시 전후해 거행된다. 제일 전야에 주민들이 마을 입구의 거목 아래 모여 굵기 2㎝, 길이 200여 m의 새끼를 꼬아 5m 간격으로 길지(吉紙)를 매달아 제주의 집에 보관한다. 다음 날 청년들이 거목에서 야산까지 전날 꼬아놓은 금줄을 매달고 누석단의 동서남북 중앙에 오방장군기를 세우고 누석단에도 여러 줄의 금줄을 걸어놓는다. 제전에는 부정이 없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례할 수 있다. 그리고 제단 곁에는 ‘달불’이라 부르는 모닥불을 제의가 끝날 때까지 피운다. 제차는 강신분향·사배·참신·진찬(進饌)·독축·헌작·사신(辭神)·분축·소지·철찬·음복 등 유식 제례로 진행된다. 이때 소지는 만동소지(萬洞燒紙)·제주소지가 올려지고 나면 마을의 최고령자로부터 시작해 연령순으로 10세 소년까지 각자의 소지를 올려준다. 제의가 끝나면 주민들은 제전이나 제관의 집에 모여 제관의 노고를 위무한다.
설화, 민요
이 고장은 산·방죽·바위 등 자연물에 관한 설화가 주류를 이루며,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도 많다. 지금부터 50년 전만 해도 장자정(長者井)이라 하여 소제동에 큰 방죽이 남아 있었는데, 여기에는 장자못 유형의 설화가 남아 있다.
옛날 장씨라는 부자가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심술궂고 인색해 보문산에서 시주를 구하러 온 도승에게 쌀 대신 쇠똥을 퍼주었다. 이를 본 장씨의 부인이 쫓아나가 아무 말 없이 돌아가는 도승에게 잘못을 빌었다. 그러자 도승은 부인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따라오라고 하며 보문산으로 향했다. 나지막한 고개에 이르렀을 때 뒤따르던 부인이 깜박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이 순간 벼락과 천둥이 치며 장씨의 집은 물바다가 되었고 부인은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다.
유등천 근처에는 아들바위가 있다. 옛날 이 곳에 아기를 못 낳는 며느리가 살고 있었는데, 5대 독자인 아들을 둔 시부모는 대가 끊어지는 것을 염려해 며느리를 쫓아내려 했다. 이에 남편이 사정해 3년의 말미를 얻고 기다렸으나 끝내 아들을 낳지 못했다. 남편은 아기를 낳으면 끓여주려고 준비한 미역 한 다발을 쫓겨나는 부인에게 주어 보냈다. 며느리는 쏟아지는 눈 속을 걸어 비구니가 되려고 절로 향했는데, 날이 어두워져 바위 밑에 미역 다발을 숨겨놓고 걷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며느리의 몸 위로 눈이 수북이 쌓였으며, 겨울이 가고 봄이 와 눈이 녹으니 사람 형상의 바위가 나타났다. 그 뒤 이 바위를 아들바위, 미역을 숨겨둔 바위를 미역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지금도 아들바위에 와서 정성을 들인다고 한다. 은행동의 목척교에는 명명(命名) 유래담이 있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돌로 놓은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아침 저녁으로 그 곳을 지나는 새우젓장수가 있었다. 그는 꼭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지게를 받쳐놓고 쉬고는 했는데, 받쳐놓은 지게가 꼭 목척(木尺) 같아 그 뒤 다리가 완공되어 다리 이름을 목척교라고 했다 한다. 이 밖에 대전의 동쪽을 에워싼 식장산에 관한 다양한 설화와 송시열과 보문산 설화는 대덕에서와 같이 이곳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 설화이다. 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비기능요가 주류를 이룬다. 노동요는 도시의 발달로 노동현장과 유리되어 기능을 잃고 잘 불리지 않지만, 근교에 모내기노래·논매기노래 등이 일부 남아 있다. “해다갔네 해다갔네/ 골골마다 저녁연기가 나는구나/ 오늘해는 여기서 놀고/ 내일해는 어느곳에서 놀까나.”라는 「모내기노래」는 모내기가 끝나가는 저녁 무렵에 부르는 저녁노래로, 모두 소리를 모아 느리고 애수적인 가락으로 부른다. “장구배미 다매고/ 북통배미로 넘어가나/ 어럴럴럴 상사디야/ 북통배미도 다매고/ 반달만큼 남았구나/ 어럴럴럴 상사디야/ 저건너 갈미봉에/ 비바람 들어온다/ 어럴럴럴 상사디야/ 우장을 둘러치고/ 삿갓을 써라/ 어럴럴럴 상사디어.”는 ‘상사디어’계 여음을 사용하고 있는 「논매기노래」이다. 사설은 '모심기노래'와도 비슷한 것이 있고 전라도 민요인 '육자배기' 사설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창방식은 선창자가 메기면 여음을 모두 부르는 선후창방식이고 곡조는 느리며 매우 애수적이다. 여성들이 일하면서 부르는 '시집살이노래'가 있고 어희요계인 '나물노래'도 있다. 또,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라버니 있어서/ 누룩으로 담을치고/ 명지전대 울띠맸나/ 내집에는 없어서/ 나무전대 울띠맸나/ 포록포록 뜯은나물/ 옴솥에 삶어서/ 입벌리고 더넣드니/ 첫숟갈에 온(溫)기돋고 두숟갈에 숨이도네/ 아홉아들 아들인가/ 외딸이 딸이지……”라는 「오라버니노래」가 여성들이 부르는 서사민요로 전하고 있다. 이 노래는 생명수나 저승꽃으로 사람을 살린다는 무가 계통의 노래와 비슷한데 뜯어온 나물로 오빠를 살리는 내용이다. 동요로는 “까치는 깍깍/ 동애줄은 독독/ 너어디 가나/ 금산에 간다/ 뭣하러 가나/ 새끼치러 간다/ 몇마리 쳤나/ 열두마리 쳤다.”와 같이 유희를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까치요'가 있으며, '파랑새요'와 '불무요' 등도 있다. 이 밖에도 타령류인'사랑가'·'범벅타령'·'흥타령' 등이 불린다. 산업, 교통 이 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2·3차 산업도시로서 이는 산업별 사업체수 구성에서 잘 나타난다. 전체 산업체 10만 9535개는 농업 8개, 광업 4개, 제조업 7,438개, 전기·가스 및 수도사업 31개, 건설업 3,694개, 도소매업 3만 36개, 숙박·음식점업 1만 9647개, 운수·창고·통신업 1만 1278개, 통신업 1,116개, 금융·보험업 1,367개, 부동산임대업 3,988개, 사업서비스업 1,644개, 공공행정 및 사회보장행정 251개, 교육서비스업 5,486개, 보건 및 사회복지 4,625개, 오락 문화 및 운동관련 서비스업 3,401개, 기타서비스업 1만 2604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조업은 대전 제1·2·3·4공업단지, 대덕테크노밸리 등 5개의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전 제1·2·3·4공업단지는 대덕구의 갑천변에 입지한다. 대덕테크노밸리는 유성구 탑립동에 입지하며, 38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대전 제1·2공업단지는 대덕구 대화동과 읍내동 일대에 입지하며, 금속·석유화학·섬유·식품·제지 업종 등의 137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대전제3공업단지는 대덕구 문평동·신대동 일대에 입지하며, 기계금속·섬유·화학·제지 업종 등의 66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대전제4공업단지는 대덕구 신일·목상·문평동 일대에 입지하며, 기계·전자·자동차 업종을 중심으로 177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대덕연구단지는 출연기관 19개, 민간기관 30개, 공공기관 11개, 벤처기업 170개 등 251개 기관이 입주해 있다. 제조업은 이 외에도 경부선 신탄진역과 경부고속국도 신탄진인터체인지 일대에서 1960년대 이래로 공업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1965년에 설립된 동양 굴지의 연초제조창인 한국담배인삼공사 등 자동차타이어·방직·제지·식품 등의 공업이 발달했다. 대전에는 모두 154개의 유통시설이 있는데, 사설시장 60개, 슈퍼마켓 87개, 백화점 7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유통시설은 기존의 중심지인 중동·원동·인동·은행선화동을 중심으로 입지해 있다. 유통시설 가운데 롯데백화점, 세이백화점, 앤비백화점, 홍명상가, 중앙로지하상가, 대전농수산물도매시장 등이 핵심을 이룬다. 최근에는 새로 개발된 둔산신시가지에 동양타임월드, 한신코아백화점을 비롯한 대형 유통시설이 입지하면서 새로운 상업지를 형성하고 있다. 대전광역시는 남서쪽으로 호남지방, 남쪽으로는 한반도 남부의 중심부를 뚫고 남해연안, 남동쪽으로는 충청북도의 남부를 거쳐 영남지방 등으로 통하는 삼남의 관문으로서 경부선·호남선 등의 철도와 경부고속국도·호남고속도로지선, 국도가 분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서울까지 167.3㎞, 부산까지는 294㎞, 광주까지는 169㎞ 거리에 있고, 남한의 심장부에 있어 중도라고도 부른다. 시의 동북부를 관통하는 경부고속국도와 서부를 관통하는 호남고속도로지선이 회덕에서 분기하고, 경부선 철도와 호남선 철도가 홍도동 일대에서 분기해 수도권·영남권·호남권간의 교통의 결절지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교통중심성은 대전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도로는 총연장 길이가 2,267㎞이며, 포장율은 100%이다. 이 중 고속국도 176㎞, 일반국도 19㎞, 광역시도로 2,071㎞이다. 경부고속국도 구간에는 신탄진·대전인터체인지, 호남고속도로지선 구간에는 북대전(엑스포)·유성·서대전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시내 교통망에 연결되고 있다. 경부선 철도 구간에는 신탄진·회덕·대전·세천역, 호남선 철도 구간에는 서대전·가수원·원정역이 설치되어 있다. 대전지하철은 1996.10.30 1호선 10공구가 착공되었다. 동구 판암동역~유성구 외삼동역의 구도심과 신도심을 연결할 1호선은 22개 역 22.6㎞ 구간이 건설되었다. 2003년 개통을 목표로 하였으나 공사기간 부족과 경제위기 등의 여파로 연기되어 2006.3.16 1단계 구간을 개통하였고, 2007.4.17에 2단계 구간을 개통하였다. 이밖에 2~5호선도 신설하여 총 연장 102.35㎞를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경제성 문제로 4·5호선 건설계획은 폐기되었다. 진잠역을 기점으로 서대전4가~정부청사~도안 신도시를 운행할 2호선은 36.7㎞ 구간의 도심순환 노선이다. 정부청사~대전오월드를 운행할 3호선은 26.1㎞ 구간의 동북부 도심연결 노선이다. 1996년 4월에 발족한 대전광역시 산하의 지하철건설본부에서 건설 및 운영을 담당한다. 대전은 충청남도의 공주·연기·금산·논산, 충청북도의 옥천·보은·청주 등지로 통하는 국도와 지방도도 개설되어 있어 고속국도 및 철도와 연계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성구 지역과 동구 지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한밭대로가 완공되어 시가지 교통 혼잡을 크게 줄여주고 있다. 또한 동쪽의 경부고속국도변의 산내동과 서쪽의 호남고속도로지선변의 진잠동을 연결하는 남부순환도로가 건설되었다. 유성구와 서구·대덕구 사이를 흐르는 갑천에는 원촌교(院村橋)·둔산대교·대덕대교·유성대교·만년교(萬年橋)·가수원교(佳水院橋) 등이 개설되어 시내교통을 원활히 해주고 있다. 고속버스터미널은 대전인터체인지 부근의 용전동과 유성에 입지해 있다. 용전동 터미널에는 서울·인천·천안·부산·대구·전주·광주 등지로 연결되는 노선이 개설되어 있고, 유성터미널에는 서울, 광주 노선이 개설되어 있다. 일반버스터미널은 동부·서부·유성 등 3곳에 입지해 있다. 동부터미널에는 천안·아산·금산·청주·충주·보은·무주노선, 서부터미널에는 공주·논산·부여·예산·홍성·서산·대천 노선 등이 개설되어 있다. 한편, 경부선·호남선 철도는 시가지를 관통하고 있어 도시개발, 환경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장애가 되기도 한다.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지선 역시 개발제한구역과 더불어 시가지의 외연적 확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덕구 미호동 일대의 대청다목적댐, 유성구 봉명동 일대의 유성온천, 중구 대사동 일대의 보문산공원, 유성구 도룡동의 엑스포과학공원, 유성구 갑동의 대전국립묘지·유성컨트리클럽 등이 대표적인 관광거리이다. 특히 유성온천은 수온 42∼55℃의 알칼리성 라듐 온천으로 유명하다. 유성구에 있는 엑스포과학공원·대덕연구단지·한국과학기술원·국립중앙과학관 등은 새로운 과학테마 관광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유물·유적도 관광거리로 유명하다. 대덕구 송촌동의 동춘당, 중리동의 쌍청당, 동구 가양동의 남간정사, 유성구 교촌동의 진잠향교, 동구 대성동의 고산사 대웅전, 대덕구 장동의 계족산성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대전관광은 충청남도 천안시의 독립기념관·공주시의 계룡산국립공원·금산군의 대둔산도립공원, 충청북도 보은군의 속리산국립공원, 충주시의 수안보온천 등지와 연계되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식장산은 대전 동남쪽에 솟은 높이 623.6m의 산으로 자연생태 환경이 잘 보존된 산이다. 산기슭에는 고산사, 개심사 등 명찰이 있고, 호수와 어울린 세천공원의 봄꽃이 유명하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보문산은 대전의 한가운데 솟은 높이 457.6m의 도시자연공원이다. 백제시대의 보문산성을 비롯하여 유회당, 봉소루, 보문사지 등 문화재가 많고 보문랜드, 푸푸랜드, 청년광장, 사정공원 등 휴식공간이 잘 갖추어져 있다. 구봉산은 높이 264.1m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옛날에도 구봉촉석이라 하여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산의 남쪽은 갑천이 흐르고 있어 가을단풍이 아름답다. 서구 장안동의 장태산은 높이 186m의 나지막한 산으로 심산궁곡에 자리잡고 있다. 약 23만평의 자연휴양림의 유원·운동시설 등 편의시설과 삼림욕장, 주차장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계족산은 백제시대의 계족산성과 산자락에 우암사적공원, 동춘당, 쌍청당, 옥류각 등 문화재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놀이공원으로 대전동물원은 체험시설인 2종류의 사파리를 비롯해 13종의 최첨단 놀이시설, 조각공원, 삼림욕장 등 다양한 시설을 구비하고 있어 모든 연령층의 관람객에게 문화, 오락, 교육,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 대전꿈돌이랜드는 중부권 최대의 테마파크로서 365일 야간 개장을 통해 위락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 관리본부는 공공기관, 정부출연연구원 등 대덕연구단지에 입주한 각 연구원을 열람할 수 있다. 초·중·고등학생 및 일반인의 견학시스템도 지원하고 있다. 국립중앙과학관은 23m 돔의 천체관에서 광활하고 신비스러운 우주를 배경으로 전체현상과 인간의 우주개발 모습을 보여준다. 대전시민천문대는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공개관측을 실시한다. 엑스포과학공원은 대전엑스포 행사 폐막후 첨단기술과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을 높이는 교육의 장으로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과학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로 조성되어 청소년들의 학습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밭문화제는 1983년부터 시작되어 2009년 현재 제26회를 맞이하는 시민화합형 종합문화축제로 대전이 예로부터 “충청도 양반”이라는 호칭과 더불어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선비정신이 배어 있는 본 고장으로 7년 전부터 기본 컨셉을 선비축제로 정해 선비의 삶을 체험케 하고 선비정신과 그 가치관을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정(靜)적인 시연행사와 동(動)적인 체험행사를 주제로 특성화 시키면서 시민의 자긍심을 결집시키고 대중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축제로 개최되고 있다. 행사장소는 원도심인 서대전시민공원과 신도시인 둔산대공원(시립미술관 주변)을 중심으로 시민화합축제, 선비축제로 구분하여 각기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단순히 보는 축제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행사로 이루어져 있다. 잊혀져가고 있는 뿌리의식을 배울 수 있는 우리의 민속놀이최고 전통놀이의 한마당으로, 1만여 주민의 참여 속에 서구의 젖줄인 갑천둔치에서 행해지는 갑천문화제는 민속놀이, 전통 예술공연, 아파트 가족문화 한마당 등 각종 문화 행사로 검소하고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밖에도 싸이언스페스티벌, 9~10월 사이에 개최되는 유성건강페스티벌, 참여하고 즐기는 것으로부터 전통 문화 예술의 계승을 시작하는 동춘당문화제, 우암 송시열선생의 정신과 사상, 학문 예술등에 대하여 전시민에게 이해시키고 널리 홍보함은 물론 추모사업 등 우리고유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우암문화제, 대전 도심의 한복판인 구 은행동 문화의 거리에서 매년 5월, 약 일주일 정도 치러지는 으능정이축제, 신탄진봄꽃축제 등이 있다.
관광
캐릭터는 한꿈이, 마스코트는 꿈돌이이다. 2001년 말 현재 일본의 오다[大田], 미국의 시애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중국의 난징[南京], 캐나다의 캘거리, 스웨덴의 웁살라,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즈번 등과 자매결연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