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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진붉게 진다
김영자
“따르륵-”사잇문 닫기는 소리에 시어머님은 누운 채로 장판을 “짱”내리쳤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까지 곁들면서 그 북두갈고기 같은 손으로 또다시 장판을 내리칠때 나는 문을 닫다 말고 되돌아섰다.
“후- 또 똥칠했나봐…”
아침나절 똥 매질한 구들 닦고 빨래하고 목욕시키고 금방 염증 온 그 곳을 냉수로 씻어드리고 부드러운 화장지 받쳐드리고 아기분 쳐드리고 돌아서던 나였다. 누운 자리에서 시어머님은 두 손으로 팬티를 벗느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이구, 남은 저 나이에 영감을 얻어 씽씽 시집도 가는데…”
이태째나 하루에 네댓 축씩 해야 하는 시어머니 뒷시중에 언제부터 인지 나는 이런 생각을 마주 떠올랐다.
“시집살이는 차돌이 말할때를 기다려 사는 법이네라…”
“네, 알았어요.”
데퉁스러운 아들 하나와 참새같이 역은 딸 셋을 거느리고 서른 살 과부로 거북스럽게 쉰 고개를 넘긴 박씨 가문으로 시집가던 날 엄마는 눈굽을 찍으며 말씀하셨다.
“엄마, 너무 걱정 말아요. 내 잘할게요.”
“응, 그래…”
엄마는 응석둥이 막내딸로 자란 내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힝힝 잘하는 대답에 안심이 되지 않아 또 입을 열었다.
“집안일엔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 넘기구 벙어리 삼년, 소경 삼년, 귀머거리 삼년으루 사느라문 그저 가는 세월이 약이네라…”
암범 같은 과부 사돈댁이 걱정되어 엄마는 천 당부 만 당부했다.
친정어머니의 칙지를 높이 받들고 시작한 첫날밤, 나는 온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마을 맨 동쪽 끝에 자리 잡은 나의 시집은 여름에 뜰앞에서 가물에 자란 해바라기키만큼 놓은 오두막이였다. 그나마 토방도 없고 명색이 두칸짜리 집이라지만 사잇문조차 없었다.
첫날밤, 방구들에 편 모본단 첫날 이불은 반나마 정주 구들에 펴졌다. 큰 시누이 명옥이가 못마땅해 하는 눈치였다.
“엄마, 저 방문에 횃댓보라도 얻어다 쳐줄거지, 첫날밤인데…”
시누이래도 나보다 두살위인 명옥이는 이제 내달로 잔칫날을 받은 처지고보면 그만한 것쯤은 알아봐줄줄 알았다. 시어머님은 말없이 힝 나가더니 이슥하여 커다란 학 두마리가 소나무에 서있는 횃댓보 하나를 들고 들어와 방문틀 량쪽에 대못을 뚝뚝 박더니 그 횃댓보를 쳐주었다. 생산대 구락부 무대에 쳐놓은 풍막 같은 그 횃댓보를 쳐다보며 오늘밤 남편과 응석부리기는 영 틀렸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문도 없는 방에서 어찌 첫날밤을 보내나 하고 마음 좋이던 차 그런 횃댓보라도 쳐주는 시어머님이 고맙기만 했다. 나는 그 횃댓보가 재작년에 잔치한 경철이 각시의 횃댓보라는 것을 알았다. 하긴 온 동네에 횃댓보를 친 집이 네댓 있기는 했으나 학 두마리가 소나무위에 서잇는 횃댓보는 경철이네밖에 없으니 말이다. 시끌벅적 끓던 잔치객들이 돌아가자 시어머님은 진작 불을 끄고 세 딸을 데리고 누우며 첫날 이불을 횃댓보 안으로 꿍꿍 밀어 넣었다. 자정이 다 되었어도 난 속옷 벗을 엄두를 못 냈다. 어쩌라고 엄마는 첫날 이불안을 그리도 꽛꽛하게 풀질했는지 자리를 펼때 벌써 설거덕거리는 소리에 잠은커녕 근심부터 앞섰다.
“밤새 저걸 덮고 소리 나서 어떻게 자나. 습관 되지 않은 잠자리 스물두 살 여태까지 혼자 자는데 습관 된 내가 곁에 또 한 사람과 함께 그것도 다 숙성한 세 시누이와 홀로 시어머님을 횃댓보 하나를 가리고…맙소사!”
난 정말이지 마음이 어찌나 심란한지 막 울고 싶었다. 그나마 사잇문이라도 한마을에 있는 소리 나는 대로 누워 잤으련만 옹송그리고 앉아 있노라니 한마을에 있는 지금 비어있을 엄마네 내 윗방이 그리웠다. 팔간집 한 윗방, 미닫이문만 닫으면 불빛 한점 새지 않는 윗방에서 나는 처녀로 고이 자랐고 결혼 등기한 날 한밤중에 찾아온 그이의 불같은 성화에 못 이겨 내 처녀를 유감없이 맡겼다. 곱게 응석까지 부리며 떼도 쓰며
“이 밤처럼 엄마네 윗방이 그리울때는 내 평생에 다시 없을거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환한 달빛에 내처 무릎을 세워 안고 앉아있는 나를 어이없이 보던 남편은 데퉁스럽긴 해도 내 마음을 알아차리곤 이불속에 들지 않고 부드러운 모본단 이불거죽 위에 번듯이 누운채 자기 팔을 베고 누우라고 손짓으로 알렸다. 그제야 나는 옷을 입은 채로 도적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그 모본단 이불거죽위에 누운 남편 품으로 기어갔다. 남편의 품은 불같았다. 어찌나 숨 막히게 꽉 죄어 껴안는지 내가 하마터면 끽하고 소리낼뻔한 그 아슬아슬한 순간 정주간에서 와당탕하는 소리에 우리는 혼비백산했다.
“야, 엄만 밤중에 뭘 하려구 일어나요. 남 다 자는 밤에 남세스리…”
또랑또랑한 둘째 시누이 명희의 핀잔이다.
“입 다물구 자기나 해라. 그래 누워서 오줌 누래?”
“키익…”
셋째 시누이 명화가 제 엄마 소리에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는 모양이다. 자취소리를 보아선 명화가 분명 횃댓보 곁에 누웠다. 난 다급히 남편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잠들기는 다 틀린 밤이다. 이 밤을 두고 꾸었던 수없이 곱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시름만 짙어갔다. 엎치락 뒤치락 이불소리 내는 남편이 민망스러워 드문드문 꼬집어 놓았다. 그렇게 두 눈이 맨송맨송한채 있노라니 시집에서 몇대나 물려쓰는지 모를 낡은 벽시계가 끄르렁 뗑뗑 세점 치는 소리가 정적을 깨며 들려왔다.
그제야 정주간에서 높게 낮게 들리는 고르로운 숨소리와 드르릉 드르릉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닭알침을 울대 소리 나게 삼끼던 남편은 어느새 술기운에 쓰러졌는지 잠에 곯아떨어졌다. 나는 서러워서 혼자 눈물을 삼키면서 속옷 입은 채로 모본단 이불거죽 한귀에 누웠다. 갑자기 숨 막혀오는 무게에 몸부림치며 소리치려니 커다란 손이 내 입을 막았다. 깜짝 놀라 깬 나는 소스라치듯 남편을 사정없이 밀쳤다. 어느새 날이 활짝 밝았다.
“내일 아침, 늦잠 자지 말구 명심해 일어나 꼭 아침밥 지어라…”
엄마가 일러주던 말 피뜩 떠올랐다. 나는 부랴부랴 옷을 입고 횃댓보를 들고 정주간에 나섰다. 어느새 정주간의 이불들은 개켜져 있었고 가마에서는 다 끓은 밥 냄새가 풍겼고 큰 시누이 명옥이는 화장을 끝내고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땋아 드리우고 있었고 명희와 명화는 싼거리 비닐 크림을 돌려가며 바르고 있었다. 시뚝하니 돌아앉아 아침 밥상에 반찬 그릇들을 올려놓은 시어머님을 대하자 얼굴은 급기야 화끈해지고 말았다.
이틀 밤, 연속 횃댓보를 쳐주시던 시어머님이 삼일이 되던 날 아침엔 횃댓보를 훌훌 개키더니 경철이네 집으로 가져가라고 막내 시누이를 시켰다.
“오늘 밤은 어쩌지? 횃댓보마저 없으니…”
누가 낸 법인지 삼일만에 친정에 가는 법을 낸 이한테 절하고 싶도록 고마웠다. 친정집에 들어서는 길로 윗방에 가 한잠 푹 자고만 싶었다. 이틀밤이나 곁을 주지 않은 나때문에 잔뜩 골이 난 남편은 두 눈이 벌겋게 핏발이 섰다. 벙어리 속은 난 어미도 모른다고 그런줄을 모르는 우리 넷째 고모님은 우리 절을 받으며 남편을 놀려주었다.
“너희들 참 좋은 세월이다. 재미 좋겠다. 얘, 너 작작 힘써라. 그래서 아들 되는게 아니니깐 . 에크나 저눈에 핏발 선걸 보지? 너 신랑하구 작작 애교를 부리구…”
남편은 허구픈 웃음을 피씩 흘렸다.
삼일 잔치 보러 온 손님들이 다 돌아가자 나는 가만히 엄마와 투정질했다.
“엄마두, 이불안 풀질을 어쩌문 그리두 세게 했어요. 당초에 한번 돌아눕자 해두 그 버스럭 소리에 정신이 아찔해요…가뜩이나 사잇문조차 없는 집에서…기막혀서…”
“아니, 잔치한다면서 그래 신방에 사잇문 하나 달지 않았던? 어찌 그럴수 있니? 그래 어떻게 첫날밤을 보냇니?”
“어떻게 보내긴요. 경철이네 횃댓보 치구 장밤 뜬눈으로 앉아 새웠지 뭐예요. 이불 소리가 너무나 굉장해서 누울 생각은 하지두 못하구…”
“세상에…별일 다본다. 그래 삼일 잔치 온 새각시가 남편과 한자리에두 못 들구 왔니?”
“한자리에 들다니요. 그저 두 눈이 맨송맨송한 채 무릎 안구 이틀밤을 샜지 뭐. 그래서 명화 오빤 화가 났는지 저렇게 두 눈이 핏발이 서구…”
엄마는 윗방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는 남편한테로 나를 막 떠밀어 들여보냈다. 한 마을이다보니 그날로 시집에 돌아갈수 있건만 넉살좋은 남편은 하룻밤 묵어간다며 늦장을 부렸다. 나도 밀린 잠도 실컷 자고 어리광도 쳐보고 싶어 그러기를 바라던 참이었다.
“엄마, 내일 갈때 내 덮던 이불 주시겠어요? 그 나리꽃 이불 말이에요…”
“건 왜?…”
“야참, 첫날이불 못 덮어요. 소리가 높아서…”
“그게 뭐 풀이 세다고 그러니? 니 언니들이 시집갈대도 다 그렇게 했는데…응, 그래라. 그 나리꽃 비단이불 갖구 가라…”
그래서 삼일후론 정주로 통하는 문에 횃댓보도 치지 않은채 우린 제각기 제 이불을 덮고 잤다. 난 시도 때도 없이 한밤중이면 불쑥불쑥 내이불속으로 열기 뜬 발과 손을 들이미는 남편때문에 얼마나 잠을 설쳤는지 모른다. 다행이랄까 한마을에 계시는 아량 있는 우리 엄마가 며칠에 한번씩 닭 잡았다. 떡 해놓았다, 고모님 놀러왔다 하면서 꼭꼭 저녁때식에 우리를 불러내서는 하룻밤씩 묵어가게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장모님 만세를 불렀고 나는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남편 품에서 달게 자군 했다. 허나 그것도 장구지책은 못되었다. 사돈과 측간은 멀어야 한다더니 엄마의 소행이 시어머님의 비위를 긁어놓을 줄이야…
“쳇, 딸을 시집보냈지 정배 보냈냐? 굶기는줄 아나베, 화작스레 쩍하문 불러 내가구…”
한번 씩 친정집에서 자고 오는 날에는 어머님은 기색이 온종일 흐려져 있었다. 떡심 좋은 남편은 모른척 했고 나는 어디 편찮으시면 약 지어 오겠다고 미안해 설설 기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웃는 낯에 침 뱉으랴 해서인지 어머님의 냉랭한 얼굴은 느긋해지기 시작했다.
이른 봄에 잔치를 한 우리는 그럭저럭 한여름을 맞았다. 그동안 큰 시누이가 시집가고 명희는 방작공장에 추천되어 떠났고 명화는 유치원교사 훈련반에 불려갔다. 집은 한결 공간이 넓어졌으나 그래도 잠잘 때만은 한번도 시름 놓고 못 잤다. 고추당추 맵다 해도 시어머님보다 매우랴 배춧잎처럼 푸른 시어머님 때문에 밤이면 살얼음 딛는 기분이 었다. 나는 시어머님이 어렵다기보다 무서웠다. 그만큼 온 동네에서 입살이 세고 이악스럽기로 암범으로 치부되니 말이다. 젊은 시절에 아랫마을에 사는 갑산집 명준의 아버지가 아내를 잃은 이듬해에 하룻밤 나의 시어머님한테로 찾아와 청혼을 하다가 그만 넉살 먹은 후론 그 누구도 다신 혼삿말을 내지 못했다.
재작년에 이모부가 사망되고 삼년상을 넘긴 이모가 열다섯살이 된 금이를 시집에 두고 재가할대 시어머님은 하늘이 낮다고 이모를 욕했다.
“어디에 가 날벼락 맞자구 새끼를 떼 놓구 가느냐? 옆채기에 바람 들어두 여간내기가 아니구나…새끼 두구 가서 발편잠 잘만하겠어? 새빠진 년…”
“언니 , 너무 그러지 마우. 금이를 데리구 가려 해두 시집에서 주질 않는거 어떡하오? 내 무슨 바람나서 재가하오? 제 사람 없으니 가는게지… 언니두 너무 그러지 말구 더 늙기전에 명화를 시집 보내구 환갑전에 언니두 영감 얻소.”
“안간다. 안가. 여태까지두 혼자 살았는데 이제 뭐 뉘 영감태기 서답(빨래)질 하자구 가겠니? 난 그런 머저리짓 안한다. 데럽게스리…”
시어머님은 그 후 이모가 이모부를 데리고 큰 시누이 잔치에 왔을 때도 썩 달갑잖아 하며 이모마저 시큰둥하게 대했다. 잔치에 왔던 이모는 언니의 시답잖아하는 거동에 그만 화가 나서 잔칫날 저녁 버스로 돌아가셨다. 이모와 이모부가 나란히 마을을 벗어날때까지 시어머님은 집 뒤 둔덕에 선채 멍하니 바라보다가 먼 산에 주먹질하듯 듣지도 못하는 욕을 한바탕 해댔다.
“뭐, 뭐 다신 내 집에 안 온다구? 나그네한테 빠져 제 정신이 다 돌았구나.”하는 바람에 신명난건 친정엄마였다.
“에구, 과부 시어미 모시구 어간 문두 없는 집에서 제 남정 품에두 시름 놓고 못드니 애 설이두 안하구…”하면서 집 재목을 대주었다.
한달만에 우리는 화장실 빼고 객실 달린 번듯한 새 벽돌집을 지었다. 주방과 잇닿은 온돌방에 어머님이 들고 객실에 붙은 서쪽 방에 우리 부부가 들었다. 새집들이를 하고 부터는 우리 부부가 첫날 이불을 덮었다. 정작 덮고 보니 그리 소리 높은것도 아니였다. 풀이 센것도 아니었다. 활짝 핀 모본단 이불거죽의 꽃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 잠들수 없는 첫날밤이 생각나서 킥하고 웃었다.
“왜 웃소?”
“훗, 훗, 훗…”
남편도 어이없던 그 첫날 밤이 생각나서 쿡쿡 웃엇다.
“나 참, 그날 밤 맹랑하더라구, 아무리 어려두 당신 말 듣지 않구, 지랄같이 그 놈은 뻐쳐대구 훗훗훗…”
남편은 싱글싱글 웃으며 내 허리를 껴안았다.
“야, 인제야 발편잠 자게 됐어. 그동안 유격전에 신물이 났다구…”
“여보세요. 나, 아기는 천천히 갖구파요. 당신을 실컷 차지하고 싶어서요.”
“그래애? 그럼 엄마가 실컷 좋아한 다음 오라구 하지, 지레 오문 엄마가 미워한다구 그래…”
잔치한지 딱 돌이 되는 때에야 나는 만 시름 싹 놓고 남편의 뜨거운 애무에 무작정 내맡겼다. 밤이 되어 객실 문만 닫으면 우리 부부의 별유천지였다. 그냥 이 맵시로 한 오백년 살고지고.. 때때로 나는 흥얼거렸다.
헌데 좋은 날은 오래 가지 못했다. 새집에 들어 며칠 안되어 열풍에 죽여주는 그 시각을 넘긴 우리는 둘 다 너부러져서 진한 잠에 빠졌다. 느닷없이 객실을 울려오며 창창 두드리는 빨래방치 소리에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남편이 잠꼬대처럼 줄얼거렸다.
“아니, 웬 빨래를 이 밤중에 해요? 우리 엄만 어린 자식 죽는다구 해질녘에두 빨래하지 않는데…참 스산하게두…”
우리는 다시 재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머님은 밤새 덮고 쉬던 이불을 뜯어 하얗게 씻어서 빨랫줄에 가득 널어놓았다. 아침 밥상에 마주앉아 남편이 주뼛거리다가 한마디 말했다.
“엄마두 쩍 하문 밤주엥 어째 빨래를 함둥? 남 다 자는 밤에 남세스레…”
“늙은게 무슨 잠이 그렇게 많겠니? 장밤 멀뚱히 뜬눈으로 새우자니 아름차서 그런다. 내 무슨 니들 자지 말라구 붙들구 있니? 제 잠을 실컷 자구두 타발이냐?”
“엄마두 참.”
남편은 더 말하지 않았다. 워낙 불같은 엄마 성질을 아는지라 지레 사잇문을 꾹 닫으며 피해버렸다. 어머님은 아들이 들어가며 꾹 닫히는 사잇문을 한참이나 쏘아보며 들었던 밥숟가락을 상위에 덜렁 놓았다. 그러는 시어머님의 눈시울엔 물기가 어렸다. 서른 살 과부로 네 자식을 키우며 살았지만 여태껏 싸움 한번 져본적 없고 과부 설움 한번 내비친적 없다는 어른이신데 이 아침에 닫힌 그 사잇문 하나로 눈물짓다니…어머님은 끝내는 눈물만은 떨어뜨리지 않았다.
“미우면 밉다고 해라. 사람 나드는 문마저 꿍꿍 걷어 닫으며. 거미 신세지. 새끼두 다 자라 제짝을 맞춰 놓으니 남 좋은 노릇이지 쓸데없다. 제절로 자란것처럼 뻗대는 꼴 보지.”
그 말은 마치도 여편네 치마폭에 작작 감기라고 아들을 꾸짖는 것 같기도 했고 옆구리 질러 절 받는다고 자네 남정네를 자그마치 꾀이라는 침질 같기도 했다.
‘제짝을 맞추어 놓으니 어쨌단 말인가? 이제 며칠이나 시름 놓고 잤길래…’
나는 슬그머니 화가 났다.
‘남 좋은 노릇?’
내가 뭐 당신 아드님을 도적질했는가? 내가 덩달아 욕먹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아들을 자래웠지 며느리까진 자래우지 않았으니깐.’
하는 배짱이 팔뚝만큼 굵어지었다. 팔뚝만큼 굵어진 배짱은 그 후엔 더 굵어지지 못했다. 하긴 시어머님의 기분에 따라 집안의 오르내리는 온도 때문에 두루두루 둥글둥글 넘기라는 엄마 말대로 귀머거리 될때가 많았다. 시집오던 날 엄마 말대로 살아가노라면 세월이 약이겠거니 하면서 내 마음을 달랬다.
내가 시집가서 몇 해 안 돼 우리 동네에는 로인회가 섰다. 시어머님도 로인회에 들었다. 오십대부터 무어진 로인회는 우리 동네 그 어느 조직보다 활동이 다채롭고 재미있었다. 하긴 백여명 되는 로인회에 남자가 사십명도 되지 않고 말짱 여자들이어서 말썽 없는 것은 아니였다. 그러던차 여태껏 쉰여섯까지 홀아비로 지우던 명준의 아버지가 아들을 장가보낸후 로인회에 들자 여자들한테 인기가 대단했다. 워낙 키꼴이 크고 북 잘치고 소리 잘하는데다 알뜰한 며느리가 시아버지 옷차림을 어찌 걸맞게 해드렸는지 그가 문구장에 나설라치면 금시 운동장은 뜨거워지곤 했다. 얼마후 시어머님과 제일 친하게 보내던 동갑내기 오 과부가 분바르고 눈썹 그리고 원피스 입고 나다니자 시어머님은 괜히 눈꼴시어했다. 전에는 ‘성님, 동생’하며 서로 오가던것이 언제부터인지 차츰 발길이 서로 뜸해지더니 이즈음엔 아예 딱 끊기고 말았다.
오 과부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자 로인회에 들면서부터 느슨해지던 어머님의 성미가 또 까다오워졌고 영문 없이 우리와 성깔을 부렸다. 하늘 조화와 시어미 조화는 맞추기 어렵다더니 옛말 그른데 없었다. 저녁이면 나는 감히 출입문을 닫을 엄두를 못했다. 때로는 자리에 누우면 남편이 출입문을 닫을라치면 나는 닫지 못하게 했다. 인젠 어머님이 잠드신후에 기다려 닫는것이 굳어진 버릇으로 돼버렸다.
“흠, 남편을 옆에 두구 언제까지 잠자리 시집살이해야 하나…”
정말이지 그럴때면 당장이래도 땅막이고 뭐고 남편을 끌고 세간나고 싶었다. 벽시계가 열두점을 쳤다. 초저녁잠을 깬 남편이 환한 달빛 아래 나에게 신호를 보내왔다. 출입문을 닫으라고.
나는 잠든 시어머님이 깰세라 속옷 바람으로 도적 고양이마냥 살금살금 기어가 어머님이 깊이 잠드셔나 동정을 엿듣느라고 골을 내 밀었다. 그순간 무언가 내 머리를 탁 들이박는 바람에 놀란 나머지 난 기겁한 소리를 내질렀다.
“엄마야…”
남편은 제꺽 스위치를 눌렀다. 맨 팬티 하나만 달랑 입은 시어머님이 후줄근한 젖통을 드리운 채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다 손목을 쥐인 양 어색하게 문전에 서있었다.
“아니, 어머님?”
어쩔 바를 몰라 하면 쩔쩔 매며 서있던 어머님이 대충 얼버무리며 돌아섰다.
“쥐, 쥐! 아 아니 무...문을 닫아주려구…”
우리는 다시 전등을 끄고 누웠지만 홍심이 깨져 기분 없이 뒤채이다가 잠들어버렸다.
시어머님이 중풍으로 드러눕기는 이태 전 일이다.
그날은 웬일인지 아침부터 어머님은 그릇들을 왱강댕강 부시며 온 집안을 흐려놓았다. 입덧이 나서 맥없이 축 늘어진 나는 죽여줍시사 하고 모르는 척했다. 돼지죽을 들고 나간다고 어머님은 아들 보고 버럭 소리쳤다.
“내가 뭐 이집 머슴이니? 그저 나가지 말구 이 죽을 들어다 돼지구시(구유)에 쏟아라. 전에는 낳는 날까지 보리방아 찧어서 삼시를 (세끼)해먹었건만 언제까지나 드러누울 작정인지…남 다하는 노릇에 요란하기두..."”
나는 잔치한지 오래간만에 손군(손자) 보시겠다고 기뻐하실줄 알았는데 막상 시어머님이 이렇게 나오니 제 설움에 훌쩍거렸다.
“어이구, 눈물두 헤프다. 난 한뉘를 혼자 살아두 눈물을 모른다. 생때같은 나그네를 차구 살면서 눈물은 무슨 눈물…”
생억지라도 유분수지. 며느리도 과부로 살았으면 꼴 좋겠네. 입안에서 당장 튕겨나오는 말을 나는 용케도 참아내는데 로인회 부녀회장이 어머님을 찾아왔다.
“아유 이 로친, 상기 옷두 갈아입지 않구 뭘 하우?”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옷 갈아입구 이러우? 불시루 산보라두 가우?”
“야 밤중이다. 오 로친하구 명준의 아버지 오늘 합한다오. 아들 며느리가 점심에 동네 로인회를 청한단데. 무슨 준비래도 있어야지 빈손에 가겠수? 호호호.”
“그, 그래유. 그, 그럼 먼저 가, 가보우. 내 따라가지.”
어머님은 이상하게 말을 더듬었다. 돼지죽 물통을 들고 멍하니 서있던 어머님은 “얼른 챙겨 입구 오오.”하는 말에야 “양, 양…”하면서 먼 대답을 했다. 그리곤 어머님은 비틀비틀 돼지죽을 들고 문턱을 넘어섰다.
갑자기 “이 사람…”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창밖을 내다보니 어머님은 돼지우리 옆에 모로 쓰러지는 것이었다. 남편은 다급히 어머님을 안아다 집안에 눕혔따. 어머님은 단통 말씀을 못하시며 걷지 못하고 몸져누웠다. 그렇게 드러누워 어머님은 이태가 지난 지금도 입안으로 웅얼웅얼 하시다나니 그 말을 항상 들어오는데 습관된 나와 남편이나 의사를 대충 알아들을수 있었다. 다 일그러진 입, 감각을 잃은 두다리는 아무리 약과 침구를 해도 그 상이 장상이었다.
나는 아기를 낳자 시어머님 대소변 시중에 아기 똥오줌 건사에 탈망살이에 빠지고 말았다. 내 정상이 하도 가긍하여 엄마가 아기를 업어다 우유로 키웠다. 아기는 별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가기만 하는데 어머님은 인젠 어떤 사유마저 오락가락 했다. 늘 자리에 똥오줌 뭉개다나니 무더운 삼복철이 되자 그만 허벅다리 보드라운 살결과 깊은 속살의 잎마저 염증이 와 더뎅이 지고 진물이 나서 고생이었다. 나는 매일 찬 냉수로 어머님의 부어서 멀뚱해서 속살을 뒤번지며 그 속에 끼인 오물들을 씼어내고 말끔히 닦아드리곤 했다. 그때마다 이상하게도 말 못하시면서 흐뭇해하는 표정은 다만 깨끗이 씻어드려 시원한 감각만이 아닌성싶었다. 그런다고 내게 보내는 고마운 찬사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런 묘한 기색이었다.
하늘이 높아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떨어지자 그동안 약빠르고 씻어드리고 했더니 어머님의 염증은 다 나아졌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내내 손으로 팬티를 내리밀며 자꾸 씻어달라고 손시늉했다. 대소변 뒤치다꺼리도 애가 난 일인데 생뚱같이 매일 수없이 씻어달라는 그 성화에 나는 어떤 땐 이름 못할 역겨움이 불쑥불쑥 솟곤 했다.
“앓음 앓아두 망측하게 앓지. 내내 며느리 보구 모진 살 어루만져달라니. 세상에…”
그때마다 나는 괴상하게 동성연애라는 어구를 떠올리곤 했다. 자꾸만 씻어달라는 성화에 나는 대소변 볼때마다 씻어드리고는 철모르는 아이의 칭얼거림으로 치부해 내버려두었다. 그랬더니 언젠가부터는 아이들처럼 홀랑 옷을 다 벗어 내치고 알몸으로 누워 있기가 일쑤였다. 아무리 입혀놔도 반시간은 안 되어 또 벗어내치곤 했다. 못 벗기게 단추나 실로 단단히 꿰매놓으면 아예 입을 씹어서 찢어버리곤 했다. 그 통에 나는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모른다.
요즈음 아침나절 벌써 옷을 두 번쨰 홀랑 벗어 내친채 어머님은 별스레 혼자 히물히물 웃다가 “시…시…부…가…아…지-“하며 나를 쳐다보고 웅얼거렸다.
“뭘 잡숫자는 게로구나. 시큰 과일? 시루떡?”
종래로 듣다 첫소리어서 도무지 해득이 가지 않았다. 시어머님이 중풍으로 드러누운 후론 그 얼버무리는 말씀 해석에는 나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종래로 어머님의 의사를 삐뚤게 맞춘적이 없는 나였다.
“시루떡에 가지 채를 자시겠습둥?”
한평생 남편의 품의 뜨거움을 모르고 차갑게만 살아온 시어머님, 그 건장하고 사내다운 아드님을 내 남편으로 키워 온 고마움에 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인생에 잡숫고 싶다는거나 실컷 대접해 보내야지 한느 것이 내 마음이었다.
“뭐 자시겠습둥?”
한참이나 그러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섰다.
“어머님 옷을 빨리 입히오. 로인회서 문병 온다는구만.”
“그래요.”
“어마이 빨리 옷을 입깁소. 저 로인회서 어마이 보러 오꾸마.”
식미를 잃은 지 며칠째나 되었건만 옷만 입히자구 하면 어디에서 힘이 솟는지 도저히 입혀낼 재간이 없었다. 애가 탄 나는 생각다 못해 큰소리로 말했다.
“빨리 옷을 입깁소. 저, 영감들이 보겠습꾸마. 우리 집에 영감들이 오꾸마…”
“시…시…시”
어머님은 삐뚤어진 입을 더욱 삐뚤게 일그러뜨리었다. 느침이 입귀로 흘렀다. 내 판단에는 분명 웃는거였다.
남편이 나를 거들어 옷을 입히었다.
“어마이, 빨리 옷을 입깁소. 이게 뭐입둥…”
남편이 서둘러 옷을 입히었다. 어머님은 옷을 입히는 아들을 꽉 잡더니 또 뭐라고 말했다.
“미주이, 미주이…”
남편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예. 메주를 저 사람이 장 담갔습니다.”
갑자기 어머님은 “이, 이, 웬수야…”하며 악을 쓰고 당신 아드님의 얼굴을 그 나무등걸이 같은 손으로 뻑 후벼 놓았다.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랐다. 과부 살림에 그 아들 하나를 기둥같이 믿고 평생을 버티었다던 어머님이 아니신가.
“원수라니?”
어쩌면 저승길에 가실 때 정떼고 간다더니…남편은 허비인 얼굴을 돌리며 후딱 일어서서 나에게 화를 냈다.
“빨리 옷을 입히오. 사람들이 오겠소. 말귀는 차차 캐구…”
내가 남편이 입히던 팬티를 다시 입히려니까 어머님은 낚아채서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애가 번진 나는 버럭 소리쳤다.
“어째 이리두 옷 입기 싫어함둥? 새옷이꾸마 저기 영감들이 숱해 오꾸마 봅소 명준이 아부지두 막 들어오는데…”
내 말에 어머님은 쥐었던 팬티를 스르르 놓았다. 급기야 두 팔을 쭉 벌려 꿋꿋이 가슴 앞으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나를 꽉 그러안았다. 어마지두 놀란 나는 덴겁해서 어머님을 밀치고 싶었지만 그대로 품으로 받아주었다,. 어머님의 가냘픈 몸은 무섭게 육박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머님은 두손을 공중에 뻗친채 “끅,끅”심하게 딸꾹질을 했다.
내처 그렇게 딸꾹질이 멎지 않더니 잠드는 듯이 이 세상을 버리는 것이었다.
어머님의 죽음은 어쩌면 나한테는 시름거리를 던 개운한 일일수도 있었지만 한편 나는 뭔가 괴롭고 착잡함에 시달려야 했다.
유치하기도 하고 어쩌면 참혹하기도 한 그 어떤 한을 표현하면서 떠나간 어머님의 모습은 슬픈것이었다.
이제 나는 다른 사람 아닌 오로지 하나뿐인 어머님의 아들이고 나의 남편인 그이 앞에 어머님의 한을 두고두고 외쳐주고 싶고 읊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꽃은 너무너무 붉었습니다. 또 그렇게 붉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꽃은 진붉은 애원을 했습니다. 불태워주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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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잘읽엇습니다 그고생어디에다하소연 할소만 하늘나라에가신분 명분빌면서 부디 좋은일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