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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퓰리처상 사진전
비도로/임건일 추천 0 조회 100 14.09.05 07:3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

   

 

     

     

 

   
 

 

 

퓰리처상 사진전 -
70여 년간의 역사를 한 눈에 보다!!



과학, 평화, 문화 등에 주는 노벨상,

똑똑한 수학자에게 주는 필즈상,

해마다

가장 우수한 소설에게 주는 프랑스의 콩쿠르상,

영화의 유명한 아카데미상,

연극의 토니상,

스포츠를 통해 인류화합과 세계평화에

힘쓴 사람에게 주는 서울평화상 등

유명한 상은 많다.

"누구나 자기만의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노래를 불러주죠.

저널리스트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까요?"

1982년 퓰리처수상 작가 존 H. 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의 노벨상이라는 '퓰리처상'을 만든

저명한 언론인 J.퓰리처는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1917년에 이 상을 창설하였다.

언론 분야는

뉴스·보도사진 등 14개 부문,

문학·드라마·음악 분야는

7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에 있는

퓰리처상 선정위원회가 매년 4월에 수상자를 발표하고,

5월에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시상식이 열린다고 한다.

수상자에게는 1만 달러의 상금을 지급하며,

공공봉사상 수상자에게는 금메달도 수여한다.

언론 분야에서는

미국 신문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문학과 드라마, 음악분야는

반드시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미디어의 온라인 사용이 급증함에 따라

1999년에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온라인 작업이 처음으로 인정되었고,

언론 분야에는 2006년 부터 허용되었다.

2007년 부터는

사진부문을 제외한 전 영역의 수상 대상에

온라인 콘텐츠를 포함시키고 있다.

(참고- 풀리처상 사진전 참고물)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는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제 1,2전시실에서

퓰리처상수상작품 198작품과

제3전시실에서 한국전쟁특별전 33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기간- 2014년 6월 24일 ~ 9월 14일)













1949년 수상작- '베이브 루스, 등번호 3번을 은퇴하다'
사진- 나다니엘 페인


야구왕 베이브 루스의 은퇴식을 찍은

나다니엘 페인은

뉴욕 양키즈의 영구결번 3번을 달고 있는

야구왕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를 대표하는 등번호와

그의 마지막 등장에 환호하는 팬들의 모습은

야구영웅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하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특별했던

베이브 루스의 영광의 시대를 떠올리며

그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것이다.



1958년 수상작 '신념과 신뢰'-
사진- 윌리엄 C.비얼(William C. Beall)


퍼레이드 행진 중 경찰관과 아이의 대화 중,

아마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도로 위로 올라서야 한다아~
경찰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의 표정이 순진무구하여 사랑스럽다.



1969년도 수상작- '깊은 애도'
사진- 모네타 슬리트 주니어(Moneta Sleet .Jr)


"나도 울고 있었겠지요"-
1955년,

모네타 슬리트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앨라배마 몽고메리에서

버스 파업 현장을 주도했을 때 현장에 있었다.

그는 1964년

킹이 노벨 평화상을 받던 장소에도 있었고,

킹이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행진을

진두지휘하던 1965년에도 거기에 있었다.

또한

에틀랜타의 에베네저 침례교회에서

그 위대한 인권 운동 지도자를 애도하던

1968년 4월 9일에도 슬리트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격수의 총탄에

킹 목사가 쓰러진 지 5일이 지났다.

코레타 스콧 킹 여사는

남편의 장례식을 취재하는 언론인 중에

흑인 기자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모네타 슬리트가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 어떤 기자도

사진을 찍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슬리트는

목사의 가족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킹 여사가 딸을 위로하는 것을 봤습니다.

나는

그 딸이 엄마 무릎 위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거리고 있는 것을 찍었어요.

이날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감정이 고조돼 있었지만

킹 목사의 마지막 환송회에서

일한다는 생각에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사실,

일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울고 있었겠지요."

-전시회 사진 설명 중-



1973년 수상작- '베트남- 전쟁테러' AP
사진-후잉 콩 닉 우트


저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탄

'닉 우트'씨가 '네이팜탄(알루미늄, 비누, 참유, 휘발류 등을 섞어

젤리 모양으로 만든 유지 소아탄이

섭씨 3000도의 고열을 내며

반경 30m 이내를 불바다로 만든다)

폭격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40여 년 전 당시의 상황을 찍은 사진.

AP통신 종군기자였던 형의 죽음으로

그 형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사진 기술 덕분에

형의 후임으로

닉 우트는 종군기자가 되었다고 한다.



1974년 수상작- '터져나오는 기쁨'
사진- 슬라바 베더(Slava Veder)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 트라비스 공군기지에서

베트남전쟁 포로였던 로버트 스텀이 가족과 상봉하는 장면.



1984년 수상작- '굶어죽어가는 아이'
사진- 앤소니 수오

"지금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에티오피아 전역을

기근과 전쟁이 휩쓸 당시,

안소니 수오는

덴버 포스트지의 사진기자였다.

덴버 포스트지는

기자를 파견해야할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수오를 보내려다 취소한 일도 있었지만,

그는 무조건 가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때 난 27살이었습니다.

미국 밖을 처음 나갔던 거였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참상을 직접 목격하는 일은

내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어요."

수오는

나라 전체가 폭력과 기근에

시달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에티오피아 반란군은

10년간 정부군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심각한 가뭄이 계속되면서 농지는 황폐화됐고,

수십만 명이 굶어 죽어갔다.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병든 채 굶어 죽고 있었습니다.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모습에 집중해서

여러 장을 찍었어요.

찍다보니 이 사진이

메시지를 전달할 사진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수오가 미국에 돌아왔을 때

그의 사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죽어가는 아이의 사진은

아프리카에 흔히 있는,

굶어 죽는 어린아이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었다.

사진은

덴버 포스트지에 게재되고,

다른 출판물에도 실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전 세계는

이 이야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근과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시회 사진 설명 중-



1990년 수상작- '자유의 등장'
사진- 데이비드 C. 턴리(David C.Turnley)


한 청년이 베르린장벽을 부수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 있던 사진
.



1993년 수상작-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
사진- 캐빈 카터(Kevin Carter)

남아공 출신의 사진가 케빈 카터가 찍은

'수단 어린이를 기다리는 게임'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수단 여자 아이를 노리는 독수리를 사진에 담았다.

이 사진은

뉴욕타임즈에 게재되자마자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전세계의 원조를 이끌어 냈다.

1993년 2월까지 10년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진기자 케빈 카터는

고국의 정치적 투쟁에 관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총격전을 누비고 다니며

"천분의 일초 만에 죽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마지막 사진으로

무엇을 찍을지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흔히 말했다.

새로운 변화를 원하던 카터는

동아프리카의 무자비한 기근을 취재하기 위해

수단으로 향했다.

수단 아요드 한 배급소에서

그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한 시간에 20명 꼴로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굶주린 이들의 퀭한 눈과

부풀어 오른 배를 찍던 카터에게,

수풀 속에서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굶주림에 지쳐 구호소로 갈 힘조차 잃은

작은 소녀가 거기 있었다.

카터는 카메라를 준비했다.

갑자기

근처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카터도 그 독수리도

그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터는

사진을 찍은 다음 그 새를 쫓아냈다.

그리고

그는 나무 아래 앉아 엉엉 울었다.

그의 사진은

세계 주요 신문들에 실렸다.

카터는 분노에 찬 편지와

밤중에 화가 나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야 했다.

"왜 그 아이를 돌보지 않았느냐?"는

분노 섞인 목소리였다.

수단에서 취재 중인 기자들은

전염 위험 때문에

기근 희생자들을 만지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카터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이를 안아주지 못해 너무나,

너무나 미안하다."

카터는 친구들에게 계속 말하곤 했다.

1994년 7월 26일,

개인적인 문제까지 겹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케빈 카터는 자살했다.

그의 나이 33살이었다.

-전시회 사진 설명 중-


남아공 출신의 사진 기자 캐빈 카터(Kevin Carter)



1993년 수상작- '가벼운 대화'
사진- 그레그 깁슨(Greg Gibson)

1993년 빌 클린턴의 유세장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사진기자는

"빌 클린턴의 장점은

바로 상대방을 중요한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거죠."
'내가 모자를 뒤집어쓴

저 꼬마라면 분명 그렇게 느꼈을거야.'



1996년 수상작- '로스토프의 록콘서트에서 춤추는 옐친'
사진- 알렉산더 젬리아니첸코(Alexander Zemlianichenko)

1996년 재선에 도전하여

각종 달콤한 정책을 내세워

재선에 성공하려했던 옐친 대통령은

언론을 이용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록 콘서트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까지 연출하였다.

결과는 근소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옐친은 경쟁자인

주가노프를 물리치고 재임에 결정됐다.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알레산더 젬리아니첸코는

'옐친과 수상 영광을 나눠야 할 것'이라는

소감을 말했다고 한다.



1999년 수상작- 1999, '코소보 탈출'
사진- 캐롤 구지


4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여성 사진가 '캐롤 구지'의 '코소보 탈출'은

절박함 속에 묻어 있는 희망을 찾아낸 사진이다.

알바니아 쿠케스의

임시 캠프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살라 가족이 상봉햇다.

가족은 울타리 너머로

두 살 난 '아킴 샬라'를 조부모의 손으로 건넸다.



2008년도 수상작- '사명을 띤 한 남자'
사진- 데이먼 윈터


'사명을 띤 한 남자'-
버락 오바마의 선거 유세가 시작되면서,

뉴욕 타임즈지의 사진기자 대이먼 윈터에게

첫 선거유세 취재가 주어졌다.

그는

'정치 사진은 확실히 다르구나'라고 깨달았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변화가 적었기에,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정치적 이슈들을 파악하며,

세부사항들을 찾아내야 했다.

역할에 익숙해지면서

윈터의 카메라는 훌륭한 관찰자가 되어갔다.

군중 속에서

눈에 띄는 얼굴들을 탐색하였지만

주로 오바마를 포착했다.

오바마에 의해

쓰여지는 역사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이 그의 비전이었다.

'인지도가 높지 않은 흑인'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휴먼스토리'는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윈터는

유권자가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대통령 후보 오바마'를 지켜봤다.

사실

유세 초기에는

오바마의 비전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어떤 장면을

담아야 할지 결정이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바마의 비전은 확실해졌고,

윈터는

선택적으로 사진기자의 사상이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오바마에게 접근하려는

다른 사진기자들과의 경쟁 또한

매일 새로운 작품을 만즐어가는 데

좋은 자극제가 됐다.

존 매케인이 궂은 날씨를 이유로

펜실베이니아 주 체스터에서 열린

집회에 불참했던 어느 날 밤,

오바마의 열정은 빛을 발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오바마는 자리를 지켰다.

비가 그의 옷과 머리칼을 적셨지만,

오바마는

강인함과 견단력 있는 모습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이 순간,

윈터의 카메라의 잡힌 오바마의 모습은

'사명을 띤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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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9.05 16:31

    첫댓글 비도로님 덕분에 많이 생각케 하고 살아있는 사진 잘봤네요. 이귀한 자료 어데서 발췌하셧는지요?
    몇 몇 그림은 본듯한것도 있군요. 감사합니다.*^^*

  • 14.09.06 07:43

    좋은사진과 좋은 글 감사히 보고 또 같이하고 있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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