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주로 경제계를 중심으로 공휴일이 많다는 논의가 일어났고 관계자들은 우리 공휴일이 딴 나라에 비하여 많다는 보고서를 제출해서 여론을 몰고 갔다. 당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여 보면 문화부 장관으로 갓 부임한 이어령 장관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서자, 공휴일에서는 제외하더라도 문화 행사 등을 더 활발하게 펼치도록 지원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얼렁뚱땅 한글날의 위상을 땅에 떨어뜨리는 반문화적 결의를 하고 말았다. 그 뒤 10년동안 한글날의 행사 규모는 나날이 축소되고 학교나 직장에 나가지 않는 일부 한가한 인사들만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 되었다. 당시 총대를 맨 총무처 장관은 이연택씨로 알려져 있다.
< 호소문 >
한글날은 마땅히 국경일이 되어야 합니다
1. 한글날은 새시대 문화를 창조하는 "문화의 국경일"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각국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경쟁력을 높이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일본은 "문화의 날(11월 3일)"을 정하여 "국민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글날을 거족적인 "문화의 국경일"로 정하여 우리 문화를 되살피고 새로운 문화 창조를 설계하는 전기로 삼아야 합니다. 현재의 국경일인 개천절, 삼일절, 광복절, 제헌절은 문화와는 직접 관련이 없으므로 이번 기회에 문화 민족의 긍지와 창조력을 드높이는 한마당을 마련해야 합니다.
2.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하는 일은 우리의 주체성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한글날은 우리 겨레와 문화의 주체성을 확립한 날입니다.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자, 가나 문자, 아니면 서양 알파벳 글자를 빌려 쓰는 신세가 되어 우리의 문화는 물론 우리 민족은 독립성을 잃고 딴 나라의 문화적 속국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한글날은 민족 문화의 주체성 확립을 기리는 최대 국경일이 되어야 합니다.
3.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선포한 "민주사상"을 되새기는 의미 깊은 날입니다.
한글 창제 당시는 전제 군주가 백성을 우매한 상태에 남겨두고 독재를 하는 것이 상례였는데도, 세종 임금은 그와는 정반대로 백성을 가르쳐서 "민본 정치"를 펴고자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주 국민은 숭고한 민주 전통을 드높이고 세계에 펼치는 큰 축제날을 마련해야 할 사명감이 있습니다.
4. 한글날은 온세계에서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문화의 축제날입니다. 창제자와 창제 날짜가 정확히 밝혀진 글자는 세계 문자 역사에서 한글밖에 없습니다.
이런 특전을 지닌 슬기로운 민족임을 자손 만대가 깊이 아로새기고 세계에 과시할 수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글날이 온국민의 축제날이 되어야 합니다.
5. 한글날은 한글을 지켜온 선각자의 숭고한 정신을 높이 기리는 날이어야 합니다. 한글을 가다듬고 깨우치는 데 한평생을 바친 숱한 선각자들의 희생과 노고로 오늘의 한글 시대를 꽃피우는 터전이 마련되었습니다. 이제 한글 선각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거족적으로 기리기 위해서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드높여야 합니다.
6. 한글날은 세계 석학들이 찬탄하는 한글의 참가치에 걸맞는 세계적 대축제일이 되어야 합니다.
온 세계의 석학들은 한글의 위대한 문화적 가치를 찬탄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봅니다. 세계적 대언어학자 맥콜리 교수(시카고대학)는 20여년 동안이나 한글날을 손수 기념하고 축하하였으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글날이야 말로 세계 언어학자나 세계 문화 애호가가 다 같이 공휴일이나 축제일로 기념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타당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20여년 동안 해마다 우리 모두의 한글날을 축하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명한 문자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영국의 샘슨 교수(서섹스 대학 인지컴퓨터 학부)는 한글의 전무후무한 독창성에 대하여 증언하고 "한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생리학 교수이자 프리처상의 수상자인 다이아몬드 교수는 진화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글은 인류가 개발하여 온 문자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문자임을 발견하였다"고 말하며 그 근거를 과학적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유네스코에서는 훈민정음 곧 한글을 "세계 기록 문화 유산"으로 지정하였고, 세종대왕 탄신일을 "문맹퇴치의 날"로 정하였으며, 문맹 퇴치에 뛰어난 공적이 있는 이에게 "세종상"이라는 문맹퇴치상을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글은 온세계가 그 위대성을 찬탄하고 있는데 막상 그 주인인 우리는 1991년에 공휴일에서조차 제외하였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7. 한글날은 한글의 놀라운 정보화 성능에 맞갖은 큰 잔치날이 되어야 합니다. 정보과학자 중에는 "일찍이 세종대왕은 오늘의 정보화 시대를 내다보고 거기에 가장알맞고 뛰어난 성능을 갖춘 한글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또 이 놀라운 한글의 특성을 잘 살려 활용한다면 우리는 일본이나 미국의 정보화를 앞지를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한글의 정보화 성능을 크게 기리고 격려하는 한글날이 되어야 합니다.
8.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문화적 가치 창조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므로,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사실, 우리의 연간 휴일은 65-67일로서 일본의 124일, 스위스의 118일, 독일과 벨기에 118일 등과 비교해서 매우 낮습니다. 앞으로 토요일을 휴무로 한다 하더라도 휴일이 114-117일 안팎이 되므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많지 않습니다. 1990년 공휴일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것은 일부 과장된 주장을 노태우 정권이 무비판
적으로 수용한 데서 빚어진 일대 과오이므로 이제 그 잘못을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에 우리 국민은 한글날을 국경일로 드높이는 일에 다함께 일어서야 합니다. 이는 한글 전용이니 한자 혼용이니 하는 문제를 초월하여 우리 모든 국민과 자손 만대에 자랑스런 유산을 남기기 위한 거족적인 일입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01년 2월 5일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
추진 본부장 서 정수
추진 위원장 전 택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