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30년 전 호주에서 교도관이 되기 위해 법의학적 심리검사를 받았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에 시험은 소변이 급해 잠시 뛰어갔다 온 시간을 빼고 5시 까지 치루어서 내 생전에 그렇게 긴 시험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영어가 짧아서 그런가 했더니 백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시험은 비슷비슷한 질문을 여러 각도에서 반복했다. 처음에는 적당히 내숭을 떨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질문이 거듭되자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질문에 어떻게 답했는지 기억하면서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해도, 질문의 관점이 조금씩 달라지면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생각의 습관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의 본색을 이렇게 잘 파악할 수 있는 검사라면 결혼하기 전에 신랑 신부가 함께 받아 보아도 좋겠다고. 그러면 적어도 서로에 대해 모르고 결혼했다는 이유로 이혼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4 시간짜리 심리검사 하나로 인간의 본색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검사 상황에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반복되는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일관성을 잃고, 무엇을 방어하려 하는지 살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80 가까운 인생살이 동안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이었다. 위로는 대통령이 된 사람들부터 아래로는 살인 직후의 범인의 가족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와서 남보다 인간공부를 곱배기로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최근에 만난 디지털형은 24 시간을 AI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SNS에 게시하면서 자기 생각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여기서 내가 발견한 바는 아날로그형 심리검사는 반복되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감추거나 통제하려는 것을 드러내게하는 반면에 AI와의 대화는 반복되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강화할 기회를 제공해서 심리적으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성찰은 자기 안에 서로 충돌하는 욕망과 감정, 모순을 견디고 그것을 충분히 소화하여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꾸어가는 과정이다. 인간에게는 스스로 고민하며 자기 자신과 씨름하는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AI에게 계속 질문하는 삶에서는 그런 경험이 결핍될 수 밖에 없다. 즉 ‘성찰의 외주화’ 인 것이다. AI라는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심리적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끊임없는 에너지로 주변 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그런 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는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를 찾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라캉식으로 표현하자면 AI가 대타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SNS가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실현하는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Narcissism적 욕구는 Narcissistic injury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자신이 옳다는 확신, 유능하다는 자신감,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기대를 흔드는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 태도가 전방위적 공격 태세로 전환되어 주변의 불안요소로 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