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능
조선의 왕릉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만큼 잘 보존 되어 있다. 서울에서 2호선 타고 강남에 있는 선릉역에 가면 선정릉이란 곳이 있고 이곳에는 성종 내외의 선릉과 중종의 정릉이 있다. 또 6, 7호선의 태릉입구역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중종의 세 번째 왕비가 묻힌 태릉과 아들 명종 내외의 강릉이 있다.
그런데 중종의 능과 중종 왕비의 능은 왜 다른 곳에 있는가? 궁금하다. 호기심이 생긴다. 정릉에도 가보고 태릉에도 가보고 옛날을 반추해 본다.
첫 왕비 단경왕후는 중종반정 때 왕비의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 세력에 의해 처형되면서 단경왕후도 폐출되고 말았다. 두 번째 왕비가 된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은 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고양시에 있는 희릉에 묻혔다. 남편인 중종은 사후에 당연히 사랑했던 장경왕후 옆으로 갔다.
그런데 세 번째의 문정왕후는 명종의 어머니인데 인종이 일찍 죽어서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아들을 위하여 수렴청정을 했다. 문정왕후는 남편을 장경왕후에서 떼어내고 내가 남편 곁에 묻히겠다는 시샘을 하였고 또한 수렴청정을 하는 권력가였었으므로 남편인 중종의 묘가 풍수상 자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마침내 남편만 정릉으로 이장시키고야 말았다.
문정왕후가 죽었을 때 중종의 정릉 옆에 묻히려고 땅을 팠는데 돌이 너무 넓고 깊게 박혀 있어서 능을 조성하기가 어려웠다. 인근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마침 강남 일대에 엄청난 홍수가 나서 아들이 왕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명종은 부득불 선조들이 있는 동구릉 부근의 태릉으로 문정왕후를 모시게 되었던 것이었다. 왕비의 단릉임에도 불구하고 왕릉을 능가하는 규모이다. 이후 명종 내외도 그쪽 부근으로 가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미 죽어서 다른 여인과 함께 있는 남편의 묘를 장차 자신이 갈 자리쪽으로 옮겼다는 엄청난 사실에서 이것이 정치적 영향력이었나를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남편 중종의 곁에 묻히려고 거액이 드는 큰 공사를 감수하면서 능을 옮겼다는 사실만 보면 중종에 대한 애착과 부부의 정이 컸고, 왕비로서의 자존심, 장경왕후에 대한 경쟁심 그리고 사후에 가지는 상징성도 고려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가진 태릉은 문정왕후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능’이라는 측면에서는 새삼 흥미로운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원비인 단경왕후는 훗날 영조가 양주 온릉에 모심으로서, 제1계비 장경왕후의 고양 희릉, 제2계비 문정왕후의 강북 태릉 그리고 중종 본인의 강남 정릉으로 길길이 나뉘어 지게 되었는데 어째 혼자 있는 능은 왕릉을 능가하는 규모인데도 외로워 보인다.
첫댓글 그렇군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능을 읽으며
싸움이 잦으시던 어르신들
죽어서 절대로 합장하지 말라고 하시던 얘기가 생각나서
살짝 웃어봅니다.ㅎ
그래도 합장해주기를 내심 바란다고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