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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왕성폭포, 수량이 이렇게 많은 건 드문 일이다.
盪邊岩上에 앉아보매 果然 急流-碭碎하고 萬縷-集하야 盪에 고인물이 오히려 다시 떨어지
기를 바삐 하는데 餘波-사방에 흩어져 瑩瑩然한 空花를 피어 그 끝이 없는 양은, 사람으로
하여금 술 아닌 술에 醉하자는 醉力으로 끌어드립니다. 이곳이야말로 造化의 苦心中作한 곳
이니 어찌 陶醉를 辭讓할 것이며 또한 어찌 陶醉를 避할 길 있으리까.
―― 노산 이은상, 『雪岳行脚』에서
▶ 산행일시 : 2018년 10월 20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4명(영희언니, 모닥불, 스틸영, 중산,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산정무한,
수담, 사계, 선바위, 향상, 해피, 오모)
▶ 산행거리 : GPS 도상 9.8km
▶ 산행시간 : 12시간 24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27 - 동서울터미널 출발
01 : 47 -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
03 : 08 ~ 03 : 40 - 설악동 주차장, 산행준비, 산행시작
04 : 20 - 비룡폭포
04 : 30 - 비룡폭포 위 토왕골 계류 건넘
05 : 45 - 노적봉 아래 너른 너덜지대
06 : 20 - 토왕성폭포 하단
07 : 18 - 토왕성폭포 중단
08 : 15 - 반침니 직벽
08 : 40 - 대슬랩
09 : 45 - 910m봉
10 : 20 - 토왕성폭포 상단 계류
10 : 53 - 1,073m봉
11 : 45 ~ 12 : 30 - ‘별 따는 소년’ 길, 점심
13 : 00 - ‘별 따는 소년’ 능선, 592m봉
13 : 30 - 허공다리골
14 : 00 - 은벽능선 진입
14 : 23 - 은벽능선, 581.9m봉
14 : 50 - 은벽 전위봉(440m)
15 : 30 - 육담폭포 입구 초소
16 : 04 - 설악동 주차장, 산행종료
17 : 35 ~ 19 : 54 - 설악동 C지구 설악온천 목욕, 설악항 저녁
22 : 44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 이렇게 진행하면 국공에게 여지없이 걸린다
2. 산행 고도표, 왼쪽 수직선의 고도는 잘못 표시되었다
▶ 비룡폭포, 토왕골
대청봉과 중청봉에 20cm의 적설이라고 산정무한 님이 설악산 관리사무소에 확인하여 단톡
방에 올렸다. 때마침 여러 언론도 이 소식을 다투어 보도하였다. YTN은 “사무소 측은 설악
산 고지대의 경우 15㎝ 이상의 눈이 쌓인 곳이 많다며 탐방 시 방한 의류 외에도 등산화 미
끄러짐을 방지하는 아이젠과 보온 역할을 하는 스패츠 착용을 당부했습니다.”
(2018-10-19 17:44) 라고 방송하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 혹은 칼레파 타 칼라(Kalepa Ta Kala, 좋은 일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그
리스 격언)이런가 적지 아니 불안하였다. 등산화는 비브람 창인 중등산화를 피하고 바위에
잘 붙는 대신 발목이 짧은 캠프라인을 신었다. 물론 아이젠도 준비하였다. 10m짜리 슬링도
넣었다. 상하의 두툼한 옷을 껴입고 여벌을 준비했다. 평소보다 간식과 비상식에도 더 신경
을 썼다. 헤드램프는 꾹꾹 눌러 충전했다. 배낭이 묵직하다.
무엇보다 안전제일을 주창하는 대간거사 총대장님의 불안과 걱정은 일행 누구보다 우심했
다. 선바위 님에게 강청하여 안내를 맡아달라고 하는 한편 암벽 암릉계의 고수인 설앵초 님,
옥지갑 님, 구름재 님, 진성호 님 등에게도 연락하여 부디 오셔서 우리를 살펴주시라 부탁하
였으나 그분들의 긴한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하였다. 선바위 님은 우리가 진행할 코스를 예전
에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으나 그새 달라진 데가 있을까봐 주중에 회사에 휴가내고 답사
까지 하였다.
설악동 주차장. 새벽 3시 8분인데 등산객들로 완전 북새통이다. 이럴 줄을 몰랐다. 우리는 이
곳 주차장 한편에 주차하고 차 안에서 한잠 푹 자고나서 4시에나 일어나 느긋하게 산행을 준
비하려고 했는데 주차장은 이미 만차이고 주차안내원은 경광봉을 휘두르며 얼른 차를 빼라
고 다그친다. 미적거리다가 마지못해 차에서 내린다.
인파에 휩쓸려 소공원에 들어서고 비룡교를 건너니 한산하다. 조금 더 가면 화장실이 나오고
그 옆에 국공초소가 있다. 국공이 혹시 불러 세워 캄캄한 밤중에 육담폭포나 비룡폭포를 보
려고 가시는 것은 아닐 테고 어디를 가시려느냐 검문한다면 대답할 준비는 미리 해두었다.
최근 개방한 토왕성폭포 전망대에 올라 일출을 맞는 토왕성폭포를 자세히 보려 한다고.
아까부터 우리 뒤를 따라오는 등산객 일행이 있었다. 그들은 어디를 가려는 것일까? 선바위
님이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울산바위를 간단다. 그들에게 울산바위 가는 길을 알려주고
나니 우리 일행뿐이다. 국공초소를 지난다. 초소는 캄캄하다. 육담폭포 가는 대로는 질척거
리고 곳곳에 물이 고여 있다. 어제 여기는 큰비가 내렸다. 어둠 속 육담폭포의 게거품 문 굉
음이 요란하다.
불안이 또 한 가지 늘었다. 비룡폭포를 지나 토왕골을 한참 거슬러 오를 것인데 그 계류를 무
사히 건널 수나 있을까? 아무튼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용기로 간다. 산에 들면 도지
는 버릇으로 줄달음한다. 육담폭포의 비경을 어둠에 묻어두고 간다. 비둔하게 옷을 껴입었던
터라 금세 땀난다. 가던 걸음 멈추고 웃옷을 벗어 배낭에 넣는 일행이 속출한다.
비룡폭포. 소리가 대폭이다. 비룡폭포 정면으로 돌기 직전 왼쪽으로 데크계단 난간을 타고
금줄을 넘는다. 헤드램프 밝혀 인적이 뚜렷한 소로의 오르막길이다. 되게 가파르다. 앞사람
이 내민 스틱에 머리 찍힐라 안전거리 유지한다. 잡목 붙들어가며 사면을 트래버스 하여 토
왕골에 내려선다. 비룡폭포 위다. 큰물 흐르는 계류를 반쯤 잠긴 징검다리로 건너고 너덜을
간다.
드문드문 바위 위에 돌 서너 개씩 포개 얹어 놓은 건 선답의 표시다. 우리보다 앞선 일단의
등산객(4명)들을 만난다. 그들은 너럭바위에서 아침을 지어먹고 가겠단다. 이들은 당분간
우리와 같은 코스를 간다. 조금 더 가자 2명의 암벽꾼을 만난다. 머리에는 헬멧을 쓰고 어깨
에는 자일을 무겁게 걸치고 허리에 두른 하네스(안전벨트)에는 크고 작은 비너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아마 침봉인 선녀봉이나 ‘별 따는 소년(별따소)’을 오르려나 보다.
3. 토왕성폭포 앞에서, 여명이라 빛이 부족하였다
4. 노적봉
5. 토왕성폭포
6. 토왕성폭포의 상단과 중단
7. 암벽 위 능선은 별따소 가는 길
8. 토왕성폭포 왼쪽 석축
9. 아침 첫 햇살 받는 노적봉, 마터호른의 그것과 흡사하다.
10. 암벽 위 능선은 별따소 가는 길
11. 토왕성폭포 중단 아래에서, 스틸영 님
▶ 토왕성폭포
너른 너덜지대가 나오고 오래 휴식한다. 입산주 탁주 분음한다. 오늘 산행은 험로라 금주를
특히 강조하여 술이라고는 나와 사계 님이 겨우 각각 탁주 1병을, 향상 님이 비상약으로 50
도 독주인 백주를 300ml 정도 가져왔다. 그러니 더욱 술맛이 난다. 이제 큰 한 고비 넘기면
토왕성폭포라고 하지만 우리를 내려다보는 노적봉의 위압적인 서슬에 주눅이 먼저 든다.
예전에는 골을 따라 계류를 거슬러 토왕성폭포를 갔다고 하는데 오늘은 물이 불어서도 어렵
거니와 더 쉬운 길이 개척되었다. 오른쪽 슬랩을 오르고 슬랩을 트래버스 하는 길이 잘 났다.
가파른 슬랩을 긴 한 피치 기어오르고, 슬랩을 왼쪽으로 트래버스한다. 고정 슬링이 매달려
있다. 한 사람씩 지난다. 발 먼저 내딛어 미끄러지지 않는지 안전을 확인한 후 슬링 잡은 손
이 나아간다.
절벽 아래 테라스를 잡목 번갈아 붙들어 지나고 암벽 모퉁이 넘자 다시 슬랩을 트래버스해야
하는 구간이 나온다. 고정 슬링이 없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지 뒤돌아서 가고 오
며 살피기를 반복한다. 외길이다. 보이는 것이 없는 어둠이 또 따른 용기인 법인데 어렴풋하
여 아득히 직하하는 슬랩 아래로 눈길이 자주 가게 되고 이게 겁을 부추긴다. 가만히 눈을 감
고 진정한다.
슬링을 걸었다. 선바위 님이 먼저 맨손으로 건넜으리라. 한 손은 암벽 틈을 비집고, 한 손은
슬링을 붙들고 나아간다. 갑자기 앞이 환해진다. 토왕성폭포 앞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3단
의 장폭이 쏟아지는 소리가 마치 수만 군중이 일제히 쏴아 하고 환호하는 것 같다. 얼굴 들어
언뜻 맞는 차가운 기운은 공화(空花)의 낙화다. 우리 또한 기상천외한 장관에 탄성을 합창
한다.
1927년 9월 7일자 동아일보의 「山明秀麗하고 地味가 肥沃」이라는 제하의 순회탐방기 ‘토
왕성폭포’의 대목이다. 스트레이트인 밋밋한 표현이다.
“……北路로 冋下하자면 一大瀑布의 掛流된 것이 보인다. 高가 數百尺에 銀河落九天의 勢로
注下하야 石粉玉碎의 水滴이 날이여 三伏蒸炎에 더위를 아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西南으로
石築의 城壁이 縈廻되고 東北으로 天然斷崖의 要址를 點하얏다.”
나는 토왕성폭포(土王城瀑布)의 이름을 오해했다. ‘토왕성’을 토왕성(土王星)으로 잘못 알
았다. 토왕성폭포가 일반 등산객으로는 좀처럼 다가가기 어려우니 이에 걸맞게 토왕성(천왕
성, 해왕성 등으로 이어지는)이라는 머나 먼 행성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토왕성’이라는 행성은 없다. 토성이다.
토왕성은 『여지도서』「양양도호부」고적조(古蹟條)에 “토왕성(土王城) 부(府) 북쪽 50
리 설악산 동쪽에 있으며, 성을 돌로 쌓았는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세상에 전해오
기를 옛날에 토성왕이 성을 쌓았다고 하며, 폭포가 있는데, 석벽사이로 천 길이나 날아 떨어
진다.”고 기록 되어있다. 『양양부읍지』에도 같은 기사가 실려 있는데, 모두 토왕성으로 되
어 있다.(한국지명유래집)
토왕성폭포는 화채봉에서 흘러 칠성봉을 끼고 돌아 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로 총
길이가 320m의 3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연폭(連瀑)으로 하늘에서 비류하는 광경은 천상의
절경이다. 마치 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 위에 널어놓은 듯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동주 이민구(東州 李敏求, 1589∼1670)가 읊은 「천후산 권토성 비
룡폭포 식당동 권금성 선정암을 유람하다(遊天吼山權土城飛瀑食堂洞權金城禪定庵)」에서
‘쇠줄 엮어 맨 신선 사다리 보일 듯 말 듯하고(仙梯鐵鎖明還滅)’가 토왕성폭포를 보고 읊은
것이 아닌가 한다.
산사 저물녘에 서늘한 바람 부는데 祗林暮景涼翛翛
나와 고을 수령 설악에 올랐어라 我與使君登嶽遙
옥을 깎아 만든 당황이며 안치를 배열한 듯 玉削堂皇排雁齒주1)
은하수 기울이고 무지개 허리 걸어 놓은 듯 銀傾河漢掛虹腰주2)
쇠줄 엮어 맨 신선 사다리 보일 듯 말 듯하고 仙梯鐵鎖明還滅
우담바라 핀 각로는 고요하다가 표풍 이네 覺路曇華定又飄
골짝 안 구슬 나무에 학이 깃들려는데 洞裏欲棲珠樹鶴주3)
세상에는 부질없이 백운요만 퍼졌구나 人間空播白雲謠주4)
천후산은 울산바위의 다른 이름이고, 비선대의 옛 이름이 식당암이고, 비선대가 있는 골짝을
식당동이라 한다. 권토성과 선정암은 미상이다.
주1) 당황은 울산바위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주2) ‘무지개 허리 걸어 놓은 듯’은 비룡폭포를 읊은 듯하다.
주3) 주수는 삼주수의 준말로 구슬이 열린다는 신선세계의 나무이다.
주4) 백운요은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노래이다.
12. 토왕성폭포 상단
13. 토왕성폭포 상단
14. 토왕성폭포 상단과 중단
15. 노적봉
16. 토왕성폭포 상단 아래
17. 토왕성폭포 상단
18. 토왕성폭포 상단 아래, 가을이 군데군데 모여 있다
19. 노적봉
20. 대슬랩을 오른 후
21. 속초
▶ 토왕성폭포, 910m봉
한편 토왕성폭포를 보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진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하나
를 지워야 하니 그렇다. 사진으로만 상상으로만 내 안에 있을 때 언젠가 만나보리라는 희망
에 부풀었는데 막상 이루고 나니 그 희망 또한 없어졌다. 이제 어떤 폭포가 내 눈에 찰 것인
가? 다른 폭포는 모조리 시시하게 보일 것이어서 이점이 아프게 걸린다.
토왕성폭포 중단에 오르는 길도 쉽지 않다. 한 발만 삐끗하면 여지없이 골로 간다. 슬링 걸고
슬랩을 트래버스한다. 폭포 물줄기가 우선 볼만하지만 그 주변의 ‘성벽이 영회(縈廻, 휩싸여
빙빙 돌아감)하는’ 석축 또한 그에 못지않은 볼거리다. 저 위 첨봉들의 이름이 석가봉, 문주
봉(文珠峰), 보현봉, 익적봉(翊滴峰), 노적봉, 문필봉, 선자봉(扇子峰)이라고 하는데 나는
겨우 노적봉만 알겠다.
토왕성폭포 중단에서 오른쪽의 긴 슬랩 사면을 지나고 암릉인 능선을 오르게 된다. 수담 님
이 잠시 선등한다. 괜히 마대장이 아니다. 곧장 하늘로 치솟던 암릉이 잠깐 멈칫하여 둘러 앉
아 아침요기 한다. 주변 경치에 도취해 빵과 인절미를 맛 모르고 그냥 씹는다. 아침 첫 햇살
받는 건너편 노적봉이 스위스 마터호른의 그런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암벽 모퉁이 돌고 반침니 수직의 오르막이다. 약간 느슨한 암벽을 중간쯤 오르면 두 가닥 고
정 슬링이 달린 암벽과 맞닥뜨리게 된다. 암벽은 축축하니 젖어 있어 미끄럽다. 선바위 님이
선등하며 발 디딜 곳과 슬링 잡는 요령을 시범한다. 사실 재미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중산 님
과 한계령 님이 고전이다. 두 번을 시도했으나 미끄러져 내리니 그만 지쳤다.
선바위 님이 다시 내려와 배낭을 벗게 하여 대신 지고 오른다. 이번에는 중산 님 가슴에 슬링
을 두르게 하고 위에서 선바위 님과 향상 님이 끌어 올린다. 성공이다. 한계령 님도 그렇게
올랐다. 하네스가 없어 가는 슬링을 둘러매는 바람에 가슴이 엄청 아프더라고 한다. 이 다음
울퉁불퉁한 홀더 많은 암릉을 한 피치 오르고 암벽 모퉁이를 왼쪽으로 돌면 대슬랩이 연속해
서 나온다.
첫 번째 슬랩. 고정 외줄 자일이 낭창낭창하다. 한 번에 오르기는 힘이 부친다. 암벽에 납작
엎드려 가쁜 숨을 고르고 나서 덤빈다. 밑은 내려다보지 않기로 한다. 이때는 주변 경치가 눈
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 번째 슬랩. 고정 슬링이 달렸다. 첫 번째 슬랩보다 더 가파르다. 선등
하여 안내하는 오모 님이 슬링을 그냥 잡지 말고 손목에 한 번 감아서 잡으라고 한다. 손목에
훨씬 더 힘이 실린다. 어렵지 않게 통과한다.
이제 자일이나 슬링에 의존하는 오르막이나 내리막은 없다. 그렇다고 쉬운 데도 없다. 이어
지는 수직의 사면은 선답의 발자국 계단이거나 흙 후벼 나무뿌리라도 움켜쥐어야 하고, 사면
을 돌아 오르는 암릉에서는 돌부리를 붙들어야 한다. 어쨌든 기고 또 기어오르다.
마침내 910m봉이다. 비로소 허리를 편다. 설악이 어디인들 시원찮은 조망이 있을까. 신선봉,
상봉, 울산바위, 황철봉, 저항령, 권금성, 안일암 그리고 속초, 수평선 …….
토왕성폭포 상단으로 내려가는 길이 오지보다 더 잘났다. 이곳은 가을이 이미 지나갔다. 주
춤주춤 긴 한 피치 내리면 토왕성폭포 상단의 낙하하기 직전인 계류다. 폭포에 다가가면 아
지 못할 장력에 이끌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밑을 내려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계류 건
너고 풀숲 한 쪽에 4기의 추모비가 있다. 겨울철에 빙폭으로 변한 토왕성폭포를 오르려다 목
숨을 잃은 20대 꽃다운 청춘들이다.
22. 앞은 권금성과 안일암(아래), 울산바위 뒤는 신선봉과 상봉
23. 뒤는 황철봉
24. 토왕성폭포 상단에서
25. 노적봉 주변
26. 노적봉
27. 노적봉
28. 가운데 골로 토왕성폭포가 흐른다
29. 토왕성폭포 중단
30. 노적봉 주변의 가을
▶ 1,073m봉, 별따소, 은벽
별따소(별 따는 소년) 가는 길. 우선 1,073m봉을 올라야 한다. 하늘 가린 잡목 숲속의 긴 오
르막이다. 눈은 거짓말처럼 다 녹았다. 더욱이나 한기를 느낄 암릉의 험로가 아니고 ‘노가다
적인 발걸음’(선바위 님 버전이다)이니 겉옷 벗고 반팔 셔츠차림 해도 비지땀을 쏟는다. 좌
우사면은 사뭇 오지의 분위기를 연출하여 향긋한 손맛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연신 기웃거려
보지만 빈 눈이다.
1,073m봉. 산행교통의 요충지이다. 위쪽은 칠성봉, 숙자바위, 화채봉으로 가고, 아래쪽은 별
따소, 선녀봉, 은벽, 피골 동릉으로 간다. 대간거사 님은 시간이 넉넉하것다 여러 안전을 고
려하여 무난한 등로인 화채봉을 올라 송암산 쪽으로 진행할 것을 고려하였으나, 선바위 님은
우리에게 토왕성폭포 주변의 비경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자 별따소, 은벽 길을 적극 주장하
여 관철시켰다.
별따소 가는 길. 긴장한다. 내리막길이 그다지 수월하지 않다. 방금 전의 오르막길과 다르게
가파르고 까다로운 암릉도 나온다. 뚝뚝 떨어진다. 우리가 둘러앉아 점심 먹을 만한 자리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안부를 한 피치 남겨두고 평평한 소나무 숲이 그중 명당이다. 여태 휴
식할 때마다 맨입이 아니었으나 점심은 그와는 별개다. 산행의 한 의식이고 과정이다.
토왕성도 식후경이다. 밥과 더불어 라면, 닭 가슴살 샐러드, 백주, 케이크 곁들인 커피로 입
가심한다. 부른 배 어르며 가파른 사면을 내린다. 안부 지나고 약간 오르막인 암반 길을 간
다. 왼쪽은 다가가기 겁나는 절벽이다. 토왕성폭포는 암릉에 가렸다. 우리가 올랐던 길 또한
험준한 암릉이라 어떻게 저기를 올랐던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침봉들을 사열하며 별따소에 다가간다. 나이프 릿지 끄트머리에 있는 별따소는 한 두 사람
만이 설 수 있는 암봉이다. 그 뒤 돌올한 봉우리는 자일이 있어야 오를 수 있는 선녀봉이다.
별따소는 우리의 호프인 향상 님, 스틸영 님, 사계 님이 대표로 다녀온다. 은벽을 향한다. 잡
석 깔린 사면을 이슥히 내리면 허공다리골이다. 가을은 울긋불긋 여기에 몰려 있다.
허공다리골 계류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허공다리폭포 위쪽을 돌아 오른다. 아직도 우리가 감
탄해야 할 경치가 남아 있다. 은벽능선 길에 올라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가슴 두근거리는
감흥을 되새김한다. 나지막한 암봉을 넘고 넘는다. 봉봉마다 경점이지만 은벽 전위봉은 그
절정이다. 멀리 아스라하게 보이는 토왕성폭포 상단은 피안으로 흰 비단을 드리운 듯 혹은
무지개 허리 걸어 놓은 듯하다.
첨봉인 은벽은 그 정상의 명품 소나무에 공수만 하고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 넘는다. 파장이
다. 부드러운 능선 길을 간다. 국공을 십분 존중하여 발소리 말소리 숨소리까지 죽여 가며 내
린다. 만일을 대비하여 삼삼오오 내린다. 그랬는데 얕은 지계곡 건너고 내쳐 국공초소가 지
켜보는 육담 주계곡을 건너려 다가갔으니 무사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이리 오세요 하는 누군
가의 손짓에 해피 님이 다가가서 보니 생전 처음 만나는 국공이더란다.
다른 일행들은 산중에서 방향 없이 흩어지고 해피 님 외에 나를 포함하여 3명이 자수하였다.
초소로 안내받아 들어갔다. 국공의 조사에 협조하면 선처하겠다는 뜻은 내비쳤다. 어떻게 적
발할까요? 제발 저 혼자만 적발해 주십시오. 주저하지 않은 해피 님의 제안을 국공은 두말없
이 받아들였다. 무척 싸게 막았다. 내 여태 대망하고 소망했던 토왕성폭포를 직접 보고 만졌
으니 말이다.
국공의 책상 위 노트에는 오늘 우리를 포함한 3개 팀이 비지정 등로 탐방으로 적발되었다.
금강소나무 지나 비룡교 가는 길. 해거름인데도 비룡폭포 보러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31. 토왕성폭포 중단
32. 이슬을 먹고 사는 소나무
33. 은벽 길에서
34. 왼쪽 봉우리 끄트머리가 별따소이다. 가운데 봉우리는 선녀봉
35. 선녀봉 주변
36. 토왕골 주변
37. 울산바위
38. 은벽 전위봉에서
39. 은벽과 은벽 정상의 명품 소나무
첫댓글 멋지다!
부럽다!!
잘 보고 갑니다.
언젠간 함께하고 싶습니다.
악수님은 어떻게 담아 오셨을까~ 궁금했습니다
역시나~ 토폭의 3단을 멋지게..설악의 육중한 근육을 제대로 담으셨네요
오지엔 악수님이 계셔야 모든 회원이 편안하게 산행합니다~~ㅎㅎ
다시 생각해도 선바위 정말 대단했쥬? 짝짝짝. 오모도 앞에서 끌고 댕기느라 수고했고, 다들 한가닥씩 했네요. 우리같은 뚜벅이가 무사완주한 것만도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자축~!!!
선방하셨네여~명품길 걸으셨슴다...거사님 등산화는 걍 마인들 가튼데? 역쉬~ㅎ
이슬을 머금고 찾아나선 길에서
한폭의 산수화를 바로 코앞서 대면하는 순간 !!!
그 짜릿함과 몽롱함이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글과 사진으로 보는건만으로도
그나마 고마울뿐입니다.
** 악수형님 ! 이후에 여분 사진 더 올려주십쇼 !!
과연!! 토왕성폭포의 자태가 입체감있게 살아난 사진입니다. 별따는 소년, 은벽 가는 길 생생하게 그날의 감동이 다시 느껴집니다.
긴장, 초초... 환희, 감격 그자체입니다(휴 안가길 잘했넹)
저도~ 못가길 다행입니다.
산행글 보면서 오금이 저립니다.
갔으면 저는 중도포기 했을 듯 !!!
뭐니 뭐니 해도 첫장이 작품입니다
명품길~명품산행기~명품사진...역시 악수님에 오지팀입니다 ^^ ... 국공은 필요악 ?? ㅋㅋ
보고 또 보면서 마음 한 켠이 아립니다. 언제 이 감동을 직접 느낄 수 있을지
짜릿했습니다
같이 수고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