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몇 년 전부터 반재경 전도사님이 작성한 글로, 매년 교정 및 첨삭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
신약성경에 '받으라'고 번역된 단어는 대부분 영어로는 receive이고 헬라어로는 '람바노'입니다. 정확한 뜻은 '이미 내 것으로 구분된 것을 취하다'입니다. 우리말로 '받다'는 왠지 수동적이지만 영어 receive는 내가 주체가 되어서 '받아들이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어인 '람바노'는 영어보다 더 적극적인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람바노'를 '취하다'로 해석하는 순간, 왠지 '엄청나게 부족한 자원을 타인들과 싸워서 가까스로 취해내다.'의 뜻으로 들릴 수가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원뜻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세미나를 한다고 해 봅시다. 참석하신 분들, 한 사람에 하나씩 교재를 준비해 왔으니 나와서 자기 교재를 직접 가져가라고 했을 때, 가서 자기 몫으로 준비된 것을 가져오는 것이 바로 '람바노'의 뜻입니다. 또 뷔페식당을 예로 들면, 들어갈 때 이미 돈을 다 냈지만 앉아 있는다고 뭐 안 나옵니다. 직접 가서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그릇에 담아 와야지요. 그러나 타인과 경쟁할 필요는 없고 풍성하게 준비된 것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오는 이런 것이 '람바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러한 '람바노 시스템'을 사용하실까요? 제가 짧게나마 사역을 해 보니,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원치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억지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끌려가는 사람은 끝까지 끌고 가야만 따라옵니다. 손을 놓는 순간 원위치로 순식간에 돌아갑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끌고 가려고 하면 목적지로 가려는 나까지 갈 길 못갑니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도 이것을 알았습니다. 어학원에 돈 내고 오는 아이들은 출석 체크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양학과 수업은 선택과목이라고 해도 의무적으로 성적을 받기 위해 오기 때문에 가르치는 입장에서 괴로울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어학원까지 의무화가 되었는데 그때 저는 그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저의 DNA는 그런 것을 견디지 못하거든요. 더 이상 아무 의욕 없이 앉아 있는 애들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공짜는 이런 병패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소테리아)은 철저히 값없이 이미 공급되어 있지만 원하는 사람만 그것을 믿을 것이고, 믿어야만 내 안에 이미 있는 것이 풀어지는 시스템입니다. 여러분들은 원하셔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십니다. "그 사람도 이걸 알게 되면 좋겠는데...."하고 지금 생각나는 그 사람은 원치 않으니까 안 읽는 것입니다. 원치 않는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원한다는 것은 바란다는 것이고, 믿음은 바라는 것(소망하는 것)의 실상이기 때문에 바라는 것이 없이는 믿지는 않습니다.
왜 나는 바라고 그 사람은 안 바라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이것을 설명할 수 없어서 예정론이 나왔지요.) 이 바라는 마음, 즉 소망을 우리에게 넣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곳까지 달려갈 수 있는 원함을 계속해서 넣어달라고 기도합시다.
아버지,
저는 하나님의 최선을 원합니다. 최고를 원합니다. 당신의 뜻이 최선이고 최고입니다. 어떠한 차선에서도 만족하지 않게 저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소서.
할렐루야!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