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1, 신정2-1, 도봉3구역 관계자들이 시공기업인 삼성물산의 손금처리를 촉구하고 있다/제공=참여연대© News1 |
기업들 "원금은 회수해야"…대여금 손실처리 '난색'
사당1 등 3개 구역 주민들 "삼성물산, 사업좌초 책임 분담해야"
서울시 "정부국고 보조 없이는 손실보전 어려워"
(서울=뉴스1) 임해중 기자 =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중단될 경우 대여금 상환과 관련된 기업과 주민들 분쟁을 방지하고 조합원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도입된 '정비사업 매몰비용 손금산입법'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올해 초 '조세특례제한법'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개정되면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참여한 기업이 법인세 감면을 통해 투입한 비용의 일부를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비용을 손실로 처리하는 기업이 없어 '매몰비용 손금산입법'이 있으나 마나 한 법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업해산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일부 구역의 주민들은 사업에 참여한 건설기업을 상대로 대여금을 손실처리하고 매몰비용과 관련된 고통을 기업이 분담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참여연대와 사당1구역 조합해산 동의자 모임, 신정2-1구역 내재산수호정화위원회, 도봉3구역 비상대책자치위원회 관계자들은 30일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들 구역의 시공기업으로 있는 삼성물산의 매몰비용 손금처리를 요구했다.
도봉3구역은 토지등소유자 과반수가 동의하며 지난해 조합설립 승인이 취소된 바 있으며 사당1구역은 조합 해산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인 곳이다. 신정2-1구역의 경우 토지등소유자의 약 40%가 해산동의서를 제출한 상태로 이들 3개 사업장의 시공기업은 모두 삼성물산이다.
도봉3구역과 사당1구역, 신정2-1구역 조합에 각각 30억원, 56억원, 100억원 가량의 대여금을 빌려준 삼성물산은 이들 구역의 사업 해산 절차가 진행되자 조합원의 재산을 가압류하는 등 자금 회수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장동엽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관계자는 "100억원의 대여금이 나간 신정2-1구역의 경우 사업중단에 주민들 40%가량이 동의하는 등 사업진행이 불투명해지자 삼성물산은 이 구역에 더 이상 사업비를 대여하지 않고 있다"면서 "삼성물산도 사업좌초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매몰비용을 손실처리하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매몰비용을 둘러싼 주민들과 시공기업간 갈등이 첨예한 이유는 '매몰비용 손금산입법'이 세금감면을 통해 손실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방식이어서 투입비용 전부를 돌려받기 원하는 기업들이 채권 포기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사업시행자인 추진위나 조합이 시공기업에게 대여금을 빌리는 형식으로 사업경비를 조달한다. 이 돈은 설계비나 행정용역비, 감정평가비 등의 용도로 사용되며 조합은 사업이 완료되는 시점에 시공기업에게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여금 상환은 조합원들이 분양계약을 체결한 뒤 납부하는 중도금을 통해 이뤄지지만 사업이 해산되면 분양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조합에게 대여금 상환부담이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이 경우 시공기업이 자금회수를 위해 추진위나 조합 등 주민들 재산을 압류하는 경우가 발생해 정비사업장 분쟁의 원인이 돼왔다.
'매몰비용 손금산입법'은 이같은 분쟁을 막고 조합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시공기업이 대여금을 손실로 처리하면 법인세 감면을 통해 비용의 22%를 간접적으로 보전해준다는 게 핵심이다.
장동엽 간사는 "시공기업이 대여금 회수를 포기하면 업무상 배임에 해당될 수 있지만 조특법이 개정되며 이를 손실로 처리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마련됐다"면서 "문제는 단돈 한 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기업들이 채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건설기업 관계자들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지만 대여금을 회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반응이다. 삼성물산 역시 조합에게 빌려준 돈은 사업 진행여부에 상관없이 돌려받아야 하는 자금이기 때문에 최소한 원금은 회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연히 받아야할 돈인데 이 금액의 80% 정도를 포기할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민사상 가압류는 채권을 보전하기 위한 합법적인 절차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설기업들이 재산 압류 등을 통해 대여금을 회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매몰비용 손금산입법이 효과를 거두려면 국토부와 국회가 건설기업이 재개발·재건축 조합원들의 재산을 가압류해 비용을 회수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후속조치를 마련해야만 한다"며 "정비사업 출구전략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도 관련 예산을 늘리는 등의 방식을 통해 매몰비용 처리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매몰비용 손금산입법은 강제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이 해산된 구역의 조합원과 관련기업에게 비용을 손실처리하면 법인세를 감면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알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라면서 "조합이 설립된 구역의 사업이 중단되면 매몰비용도 막대하기 때문에 정부의 국고 보조 없이는 손실을 따로 보전해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