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마치고
김장을 돕지 못했다고 사위가 ‘홍천 사과 축제’에 가서 사과를 사주겠다고 한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산허리에는 어둑한 것이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화창한 가을 날씨라면 축제장 분위기도 더 좋을 테인데 우중충한 것이 비가 오락가락한다.
사과 축제장에 도착해 보니 입구에서부터 장마다 또는 행사장마다 찾아다니는 장사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먹거리들이 사과를 사기 전부터 진을 치고 있어서 주머니 사정을 털어내기에 딱이었다. 목적은 사과였는데 말이다. 올해는 모든 농산물값이 올라 깜짝깜짝 놀랐다. 특히 과일값이 만만치 않다. 특히 우리 부부는 사과를 좋아하는데 사과값이 금값이라 한다.
어쨌든 먹거리 유혹을 뿌리치고, 사과를 파는 곳은 막다른 골목처럼 행사장 맨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주인공이 마지막에 등장한 공연장 같은 기분이랄까
이런 장소 배치는 어떤 이유가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만약에 사과를 입구에 배치해 둔다면 많은 사람들이 목적만 달성하고 행사장을 떠나버릴 것이라는 계산 속인지도 모르겠다.
사과를 파는 곳으로 가보니 많은 농가에서 잘 키운 사과들이 진열되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노란 사과에서 빨간 사과, 큰 사과, 아기 주먹 크기 정도의 앙증스런 사과도 있었다. 주머니에 넣어도 좋을 듯하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일정하지 않았다. 흠집이 있어도 우리는 저렴하게 많이 가져갈 수 있는 사과를 사고 싶었는데 흠집 있는 사과도 선뜩 사기에는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부담되지 않는 소포장들을 많이들 사 들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무엇을 선택하는데 오래 고민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대충 보고 먹기에 부담되지 않는 크지 않은 것으로 골라서 한 박스 샀다.
노래를 부르는 무대에서는 요란한 음악 소리가 크게 울려 행사장 분위기를 한껏 흥을 돋우어 주었다. 물론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민요를 부르는 가수는 힘을 다해 목숨을 다해 목청 껏 노래를 하였다. 물 한잔이라도 마시고 하였으면 했는데 물도 마시지 않고 몇 곡을 쉬지 않고 독무대를 지키며 노래를 했다.
나름 볼거리도 많았고 소비하기에 좋은 물건들도 많았다. 대체적으로 ‘홍천사과 축제’장에서 본 것은 다른 지역보다 물건 값이 저렴하다는 것을 느꼈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행사가 끝나는 날까지 장사하는 사람들이 웃으며 풍선처럼 가벼이 떠났으면 좋겠다.
우리는 홍천에서 이름난 ‘수타사’산을 가기로 했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관광객을 태우고 왔던 대형차량이 몇 대가 주차장에 있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먹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마치 바늘과 실처럼 말이다. ‘수타사 초입새에 들어서면 상처 난 소나무들이 있다. 그 상처를 보존하고자 시멘트로 발라놓았다. 일제 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해갔다는 것이다. 나라 잃은 백성이나 자연도 온전한 것 없이 수탈을 겪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을 보았다. 큰 상처를 안고도 소나무는 거뜬하게 잘 자라고 무색할 만큼 건강해 보였다.
일행과 함께 발맞추어 걸어야 하는데 성격 급한 나로서는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서 걸어가고 말았다. 가는 내내 오가는 사람 없어 주변에서 무엇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무서움이 일기도 했다. 무엇이 나타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에 기다란 나뭇가지 하나 주워서 들고 좌우로 내 저으며 걸었다. 영서 지역은 어딜 가나 산이 깊고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시냇가 물은 생명수 같다. 맑기가 수정이다. 깊은 산속이다 보니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단풍잎이 선홍색이다. 무서움도 떨칠 겸 나뭇가지로 단풍나무를 툭 치니 붉은 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바람에 떨어질 것을 굳이 건드려서 떨어뜨리는 심보는 무서움을 떨쳐버리려는 마음에서였다. 이불처럼 큰 바위를 지나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싶은 호기심도 일었다. 한참을 혼자서 걷다 보니 김삿갓이 생각났다. 삼각형 모자를 쓰고 긴 지팡이를 짚고, 계곡 깊은 강원도 영월 산을 오르내리던 김삿갓도 무서워서 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닌 것은 아니었을까? 일종의 호신용으로 말이다. 그 당시에는 깊은 산에서는 큰 짐승도 많았을 것이다. 무서운 짐승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지금 보이는 것은 겨울을 준비하는 앙증맞은 다람쥐만 열심히 내 앞을 겁 없이 지나간다. 다람쥐는 열심히 먹이를 찾아 겨울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감춰둔 곳을 찾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작은 동물이다. 그렇게 혼자서 한참을 걷다 보니 중년의 남성 둘이 지나가면서 내게 건네는 말이 자연스럽다.
“혼자서 가을을 즐기는 멋쟁이군요.”라고 한다. 씽긋이 웃어주었다. 사실 반갑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혼자서 어딘가를 갈 때 사람이 없어도 무섭지만, 사람을 만나도 무섭다. 산을 다 내려왔는데도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주차장에 와서야 만났다. 그 많은 사람들은 가벼이 걷다 중도에 돌아갔다. 무엇이든 목적을 달성해야만 하는 성격 때문에 두려운 시간을 견디며 산에서 내려온 것이다.
목적을 달성해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이놈의 성격 변할 수 있을까? 누가 말했더라 “사람의 성격이 변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첫댓글 김장하고 비싼 사과도 사다놓고 부럽네요. 나는 무밭에 무가 얼었을까 봐 걱정되는 아침이랍니다. 에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