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아이들은 그리 순수하지 못하다. 자신이 어린아이임을 강조하며 구걸하거나, 물건 값을 덤터기 씌우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자기의 목숨은 제 손에 달려있음을 깨닫는 바람에 영악해져 버렸다고 할까. 이는 가난할수록 더하다. 말 배우기도 전에 입에다 손을 대며 먹을 걸 달라는 신호부터 배운다. 겨우 젖이나 뗐을까 싶을 만큼 어린아이들이다. 간혹 어려서 덜 자란 건지 영양실조로 못 자란 건지 힘없는 눈으로 손을 입에 대며 구걸 할 때면 마음이 짠해진다. 그렇다고 돈을 함부로 줄 수도 없다. 돈을 주는 순간 주변의 모든 거지들이 몰려들어 큰 곤욕을 치를 수 있다. 몰래 한 닢씩 주거나 모른 채 하기 일쑤다. 그래도 꼭 한 푼 쥐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처음 돈을 줬을 때가 '푸쉬카르'라는 작고 조용한 마을을 여행할 때였을 게다. 인도 창조의 신인 '브라마'를 저주한 그의 아내 '사비뜨리'가 모셔져있는 사원에 일출을 보러 갔다. 사원은 30분 정도 오르면 닿을 수 있는 작은 동산 꼭대기에 있다. 이곳은 일출의 명당이다. 동쪽에서 높은 산을 뚫고 해가 뜨면, 어둑어둑했던 남쪽의 드넓은 대지가 한 번에 황금색으로 물드는 절경을 선사한다. 천천히 산을 오르는데 새벽부터 저 멀리 음악소리가 들렸다. 근처로 가보니 대여섯명의 외국인들이 둥그렇게 몰려있다. 그곳엔 세살박이 코찔찔이가 귀여운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옆에는 제 형인 듯한 아이가 우리의 '해금'처럼 생긴 악기를 연주했다. 꽤나 괜찮은 실력을 자랑했다. 형의 멋들어진 연주가 끝나면 외국인들은 귀여운 동생에게 몇 푼 쥐어주고 사진을 찍어댔다. 주변에 여러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비주얼'과 '음악성'으로 승부하는 이 녀석들이 가장 잘 팔렸다.
이들이 하는 짓이 하도 귀여워서 나도 돈을 몇 푼 쥐어줬다. 그런데 구걸하러 나온 주제에 돈이 뭔지 모르나보다. 다른 외국인들의 돈을 몇 번 받고도 내가 돈을 주려니 그냥 멀뚱멀뚱 바라만 봤다. 힌두어로 "받지 않고 뭐해 멍청아!"쯤 돼는 듯한 욕을 듣고서야 덥석 받는데, 그러고도 그게 뭔지 모르는지 한참을 만지작거리며 서있었다. 그러는 녀석의 눈이 어찌나 맑은지 나도 사진을 몇 번이나 찍고서야 놓아줬다.
내가 지나가자 형은 주변에 사람이 더 없는지 살피더니 동생을 번쩍 안아들고는 제 옆에 앉혔다. 이윽고 형은 동생을 위해 내 귀에도 익숙한 'Are you sleeping'을 깜찍하게 연주했다. 녀석은 돈 대신 제 형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 또 멀뚱멀뚱 형을 바라봤다. 형은 연주를 멈추고 동생의 모자를 정리해줬다. 새벽이 한창 차갑던 푸쉬카르에 동이 트고 있었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에 살고 있는 '랄뚜'네도 끈끈한 형제애를 자랑한다. 바라나시는 '가트'라고 해서 신성한 갠지스에 더욱 잘 접근할 수 있는 신성한 계단을 만들어 뒀다. 인도인에게 갠지스와 가트는 소원을 빌고 업을 씻는 장소이지만 여행객들에게는 멍하니 죄책감 없는 시간 소비를 할 수 있는 최고의 휴식처다. 이곳에서 따뜻한 짜이(우유에 홍차를 넣어 끓인 인도 특유의 차)를 한 잔 마시며 볕을 쬐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바구니에 뭔가를 가득 담고 불쌍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이 바구니에는 '디아'라고 불리는 힌두교 성구가 들어있다. 디아는 작은 종이 접시에 꽃으로 장식한 초가 얹혀 있는 것을 말한다. 인도인들은 밤에 디아를 켜 소원을 빌며 갠지스에 띄우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바라나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한국인이 디아 1000개를 갠지스에 띄우며 프러포즈해 결혼에 성공했다는 전설같은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디아는 한 개에 5루피(200원)정도. 바라나시의 아이들의 대부분은 이걸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참고로 디아를 장식한 노란 꽃은 야외 화장터에서 운구할 때 시신 주변을 장식했던 꽃이니 냄새를 맡으며 낭만을 즐기는 모험은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다.
어느 햇빛 좋은날 가트에 안자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메모를 하고 있었다. 10살쯤 돼 보이는 한 녀석이 으레 디아 바구니를 들고 "소원을 이루어주는 디아예요. 하나만 사주세요"라며 최대한 울상을 지으며 다가왔다. 말끝에는 꼭 'please'를 넣었다. 배고프다는 시늉도 했다. 난 귀찮다는 듯 다음에 사주겠다며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내 핸드폰을 굉장히 만져보고 싶다는 표정으로 핸드폰과 내 눈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불쌍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내 핸드폰을 곁눈질로 봤다. 이때 만큼은 마냥 아이의 얼굴이다. 도저히 안 빌려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핸드폰을 빌려준 게 연이 되어 내가 앉을 때 마다 옆에 와서 말을 걸고 놀았다. 그의 이름은 '랄뚜'. 삼형제 중 맏이다. 그의 동생들 모두 가트에서 디아를 판다.
어느 날 랄뚜와 잡담하며 놀고 있는데 머리가 꽤나 큰 깡패 녀석이 가트 주변을 헤집고 다녔다. 주변의 아이들은 어수선하게 피해 다녔지만 한 녀석이 딱 걸렸다. 깡패 녀석은 자기 키의 반도 안 되는 아이의 디아 바구니를 별 이유도 없이 엎어 버렸다. 주변에 쉬고 있던 외국인들의 모든 시선이 한 번에 그에게 집중됐다. 아이는 그만 울어버렸고, 깡패 녀석은 큰 소리로 뭐라고 지껄였다. 옆에 있던 금발의 여성 외국인이 쏟긴 디아를 바구니에 담으며 '왜 이런짓을 하느냐. 두 번 다시 그러지 마라'고 훈계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 옆에 있던 랄뚜는 그걸 보더니 벌떡 일어나 깡패 녀석에게 달려갔다.
랄뚜 역시 그 녀석의 배꼽 정도 밖에 안 되는 덩치였지만 삿대질까지 해가며 그 녀석에게 큰 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한창 둘이 티격태격하더니 깡패 녀석의 손이 슥 올라갔다. 랄뚜는 놀랐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모든 외국인들이 소리 질렀다.
"어이! 그만해! 니가 만약 그(랄뚜)를 건들이면 나도 똑같이 해줄거야!“
외국인들이 갑자기 우르르 나서 랄뚜를 보호하니 깡패 녀석도 적잖이 당황했나 보다. 높이 올랐던 손이 뚝 멈추더니 랄뚜에게 '앞으로 조심해'쯤 되는 경고를 남기고는 떠났다. 랄뚜는 그 녀석을 한참 바라보더니 엉덩이를 툭툭 털며 다시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별일 아니라는 듯 내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내가 화가나 녀석에게 물었다.
"뭐 땜에 그래? 저 녀석은 누구야?"
랄뚜는 '동네 깡패인데 괜히 아이들 괴롭히고 다닌다'고 말했다. 디아를 파는 구역 때문에 간혹 이런 싸움이 있단다. 그런데 왜 나섰냐고 물으니 당한 아이가 친동생이란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지만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린다. 녀석, 어지간히 무서웠으면서도 동생이 당하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나 보다.
이런저런 계기로 랄뚜와 친해져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나눠 마셨다. 마지막 날 랄뚜를 두고 떠나려니 어찌나 섭섭하던지. 안타까운 마음에 괜스레 학교는 안 가냐고 묻자, 자기는 비즈니스가 바빠서 갈 수 없다며 '뻐드렁니'를 한껏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동생들은 자기가 모은 돈으로 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말하던 랄뚜. 그 앳된 얼굴에서 '형'의 든든한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한편,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는 부유한 아이들도 큰 유적지에서는 종종 눈에 띈다. 오히려 이런 아이들이 외국인을 더욱 신기한 존재로 여긴다. 하긴 랄뚜 같은 아이들은 늘상 외국인을 보니 덜 신기했으리라. 현지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무리 지어 지나가면 인도아이들은 우리가 아이돌 그룹인것 마냥 소리 지르고, 사진 찍고, 악수하려 달려든다. 기분이다 싶어 한 번 정도 사진을 찍어주노라면 수십 명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주위를 둘러싼다. 사진 찍어 준다고 '하나, 둘, 셋'하면, 서로 나오겠다고 밀고 당기고 난장판이다.
인도의 아이들의 인권은 한국 아이들에 비해 비교적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비교적'이란 말도 사실 상류층에게만 쓸 수 있다. 하층민들은 어린 나이에 일터로 내몰리고 교육은 받지 못하며 심지어 부모에게 버림받기도 한다. 이쯤되면 아이들은 큰 상처를 가지고 짐승 이하의 삶을 산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제 나름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 행복이 무엇인지 솔직히 난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엔 순수함이 그 누구보다 가득하다.
한국 아이들은 일터로 내몰리는 대신 학원으로 내몰린다.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한다지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관계 맺기에 서툴다. 손에는 언제나 게임기나 핸드폰을 쥐고 있다. 친구들과 깔깔대며 뛰노는 모습은 갈수록 보기 힘들어졌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부모의 얼굴을 자주 못본다.
분명 한국 아이들이 인도 아이들 보다 훨씬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누리고는 있다. 그러나 정말 인도 아이들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도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마주할 때면 한국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따로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