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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야간 미운행, 예약제 때문에 아파도 병원 못 가
민간위탁 때문에 공공성 잃었다는 지적도
충청 전역 생활권 아우르는 B1 버스, 저상버스 0대
B1 버스 앞부분. 활동가들이 피켓을 덕지덕지 붙여 놨다. 사진 하민지
충청 지역 장애인 이동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충북 옥천군은 점심시간에 장애인콜택시(특별교통수단)를 운행하지 않는다. 충북 충주시 장애인콜택시는 충주 관내만 다니고 다른 지역으로는 안 넘어간다. 대전에서 세종을 거쳐 청주까지 오가는 B1 버스는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없는 계단버스다. 충남 저상버스 도입률은 2020년 기준 10%로 전국 꼴찌다.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충북장차연) 등 충청권 장애인운동단체는 11일 오전 11시, 충북 청주시 오송역 근처 버스환승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이 충청권 전역을 차별 없이 다닐 수 있는 이동체계를 확립하라”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 후에는 버스환승센터에 들어온 B1 버스를 20여 분간 점거하고,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스티커 수십 장을 붙이며 투쟁했다.
오송역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충청권 이동권 대응 장애인 단체 공동행동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점심시간과 밤에는 안 다니는 택시가 있다?
옥천군민이자 휠체어 이용자인 임경미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데 너무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임경미 소장은 “점심약속이 있어서 하루 전날에 예약하려고 전화했더니 점심시간엔 운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운전원의 식사·휴식시간도 당연히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장애인 이동권도 함께 보장해야 하지 않나. 점심약속은 아예 안 잡은 지 꽤 됐다”라고 성토했다.
점심시간 미운영만 문제가 아니다. 임 소장은 “야간운행은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다. 이때는 장애인콜택시가 1대밖에 다니지 않는다. 이마저도 옥천군 관외로는 안 넘어간다. 예약은 아침 8시 차부터 할 수 있는데, 전날 예약해야 한다. 옥천군은 지역면적이 넓어서 어딜 가든 한 시간 이상씩 걸리는데 장애인콜택시 이용하기가 너무 불편하다”라고 호소했다.
충주시도 하루 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이정아 충주사나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이마가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하루 전 예약이 아니라서 장애인콜택시를 보내줄 수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 이정아 소장은 “구급차에는 휠체어가 안 들어간다. 급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게 장애인콜택시밖에 없는데 탈 수 없었다. ‘내일 아플 예정’이라고 예측해서 택시 예약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루 전 예약도 원활하게 되진 않는다. 이 소장은 “다음 날 탈 택시를 예약하기 위해 아침 8시부터 전화를 계속 해야 한다. 충주 시내는 차로 30분이면 다 다니는데, 이보다 더 긴 시간을 예약하는 데 쓴다”고 지적했다. 또한 오후 9시 30분이면 운행이 종료되고 야간운행은 하지 않는다.
충주시 관내만 이동 가능한 것도 문제다. 관외운행은 청주 충북대학교 병원, 원주 세브란스병원, 서울 3차 종합병원 등 병원 이동으로만 제한한다. 이마저도 3일 전에 예약해야 하고, 시범운행이라 사라질 수도 있다.
이정아 충주사나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기자회견에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이동권 없이는 삶도 없다, 이동권을 즉각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었다. 사진 하민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에 장애인콜택시 운영을 맡기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옥천군은 지체장애인협회가, 충주시는 사단법인 행복천사가 장애인콜택시 운영을 위탁받았다. 특히 충주시의 경우 행복천사 센터장이 업무추진비를 자신의 차량비로 사용하고, 마을금고 이사장 선거에 운전원을 동원하는 등 비리가 적발돼 시정조치를 받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공모에 또 선정돼 논란이 큰 상태다.
박철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국장은 “지역 장애인콜택시를 민간이 위탁받아 운영하다 보니 문제점이 너무 많다. 공공성을 잃어서 장애인 이동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시도 민간위탁이었지만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전장차연)의 끈질긴 투쟁으로, 2018년에 대전광역시사회서비스원(구 대전복지재단)이 운영을 맡으며 공공운영이 시작됐다. 현재 대전 장애인콜택시는 법정대수(중증장애인 150명당 1대)를 충족했고 즉시콜도 가능하다. 다만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인 야간에는 1대만 운영한다.
최명진 대전장차연 공동대표는 “대전시는 ‘이만하면 훌륭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에 비해 훌륭한 것이지 아직 부족하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이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B1 바로타 버스는 장애인은 절대 바로 탈 수 없는 버스’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었다. 사진 하민지
- B1 버스 투쟁 1년 훌쩍… 언제 저상버스 도입하나
충청권은 저상버스 도입률도 매우 낮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충청지역 저상버스 도입률은 2020년을 기준으로 대전 31.3%, 세종 27.9%, 충북 20.1%, 충남 10%다. 충북과 충남은 전국 평균 27.8%에 한참 못 미친다. 충남은 저상버스 도입률 전국 꼴찌다. 특히 청주시 오송역에서 대전역까지 106km를 오가는 B1 광역버스에는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
이 버스는 오송역, 세종충남대병원, 정부세종청사, 세종고속시외버스터미널, 대덕구청, 대전역 등의 주요 공간과 여러 아파트 단지 등을 지난다. 외곽에서 도심 한가운데를 빠르게 지나는 ‘직행좌석버스’ 중 승객 수 2위를 기록할 만큼 수요가 많지만,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이 버스를 타지 못한다.
B1 버스를 5분간 점거하는 캠페인을 1년 넘게 진행해 온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문경희 대표는 “캠페인을 오래 하다 보니 이동권 보장 요구 스티커를 붙인 채 달리는 B1 버스를 세종시 곳곳에서 본다. 우리가 붙인 스티커는 세종과 대전을 자유롭게 오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B1 버스를 타지 못한다. 장애인도 자유롭게 지역을 넘나들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한 활동가가 B1 버스에 ‘비장애인만 타는 차별버스 즉각 저상버스로 전환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붙이고 있다. 휠체어에는 ‘행복도시(?) 세종시는 장애인 시민에겐 불행한 도시,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걸었다. 사진 하민지
충청권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은 2월 24일부터 3월 11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에는 버스환승센터로 들어온 B1 버스에 이동권 보장 요구 스티커를 붙이며 직접행동을 이어갔다. 버스에 접근하기 위해 차도로 내려간 휠체어 이용자들이 턱 때문에 인도로 다시 올라올 수 없어 경사로를 찾아 한참을 돌아와야 했다. 이들이 도로를 점거하는 줄 알고 경찰 수십 명이 출동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충북장차연은 11일로 기자회견을 마무리하지만 충북, 충남, 대전, 세종 등 충청권 전역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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