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인터넷에서 성리학을 검색해보면 관련 검색어 최상단에 나오는 것은 ‘성리학 쓰레기’이다. 다들 알법한 유명한 역사 강사마저 영상 제목을 ‘공자의 유학보다 심화된 비현실적인 학문 성리학’ 이라고 짓는 것을 보면 오늘 날에도 여전히 조선 철학사에 큰 축을 담당한 성리학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기만 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과거에는 그저 조선의 성리학은 중국 사대주의, 유교적 지치주의에 매몰되어 뒤쳐진, 흔히 말하는 ‘꼰대’ 의 사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 성리학의 시초가 당시 지식인들이 ‘고려의 몰락 속에서 이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라는 고민 속에서 등장한 개혁적인 학문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이 조선 왕조의 나라가 아닌 신하 즉, 성리학자의 나라를 꿈꾸며 고려 말에 들여온 주자학을 다양하게 해석하여 독자적으로 조선 성리학이라는 우리 고유의 학문으로 발전시켰다는 점, 윤리적인 실천과 민본(民本)사상을 통한 통치 주장 등 실천 중심의 모습도 보여주며 우리가 이미지로 상상한 ‘공자 왈, 맹자 왈’을 달달 외우기만 하는 꽉 막힌 지식인의 모습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단면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된 조선이라는 나라의 철학과 역사를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게 된 것일까?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파로 유명한 이완용은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구한국이 힘이 없어서기 때문이며...역사적으로 당연한 운명과 세계적 대세에 순응키위한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에 단행된 것이다.” 라고 당시 매일신보에 글을 적었다. 이 글로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이 ‘힘이 없기에 당연한 것’이라는 제국주의의 논리인 식민사관이 드러나고 있다. 2022년,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의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식민사관 옹호 발언은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할 정도로 큰 화제가 되었다. 어떻게 당시 일본 제국의 제국주의적 질서를 정당화하고자 만든 침략사상을 침략당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옹호할 수 있는 것일까? 이처럼 정진석 의원의 발언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인 식민사관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식민사관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문명적 발전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기에 침략 당한 패배자’라는 낙인을 찍을 뿐만 아니라 조선 성리학자들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성리학 역시 식민사관에 의해 근시안적 중국 사대주의 사상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때의 낙인과 오명은 오늘 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정체성인 역사와 철학을 그릇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과거의 역사들을 무능과 패배로 학문은 중국의 학문에 의존하는 단순한 형태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정체성인 역사와 전통 학문을 우리 스스로가 쓰레기, 무능, 패배, 사대주의와 같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인식한다.
‘성리학 쓰레기’, ‘공자의 유학보다 심화된 비현실적인 학문 성리학’,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서 망했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하지만 잊지 않게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진석 의원의 발언에 한 대학교 교수가 남긴 글을 소개해본다.
“성경을 열심히 외우면 '성도'가 되지만, 침략자의 교과서를 열심히 외우면 매국노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