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몽골에 갔다가 왔다. 가족여행으로 갔지만, 사실상 말만 탔다. 어머니가 승마를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드넓은 초원 위, 말 위에 앉아 하늘을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볼이 얼얼할 정도로 시린 바람, 몸을 덥히는 따뜻한 햇살, 풀을 뜯는 복실한 양, 편히 누워 낮잠을 자는 작은 소까지 모두 평화롭게 보였다. 그러나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이목을 끈 것은 유목민이었다. 아직도 양이나 소를 몰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들의 삶의 모습과 일상 속 사소한 생각까지 궁금해졌다. 물론 잠깐 보고 들은 것으로 유목민들의 생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얼핏 본 모습은 내가 한때 꿈꾸던 삶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판을 거닐며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니 문득 노자의 소국과민이 생각났다.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을 뜻하는 소국과민은 노자의 이상사회이다. 인위적 문명을 최소화하며 백성들은 소박하고 순수하며 자족하는 국가이다. 나는 현대 유목민들이 노자의 이상사회 속 훌륭한 백성처럼 보였다. 현대 유목민들은 더 이상 다른 부족이나 국가를 침략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대의 건축물이나 공장식 축산업 대신 여전히 게르와 방목을 선택한다. 이런 모습을 보며 유목민들이 현대 도시인들보다 편하다고는 못해도 더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는 현대 문명에 익숙해졌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도 그 속에서 산다. 그러나 상선약수처럼 겸허와 부쟁의 자세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물이 아래로 흐른다는 점에서 겸손하게 만물을 이롭게 하며(겸허) 흐르는 과정에서 장애물과 싸우지 않고 옆으로 돌아가는 모습(부쟁)이 떠올랐다. 이를 따라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며 흐르는 대로 도에 따라 살자고 다짐하게 됐다.
그렇게 3일 동안 나를 태워준 말의 목을 두드리며 몽골과 작별했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질러 다시 한국에 왔지만, 아직도 이국에서의 추억과 생각은 내 마음속에 환하게 남아있다.
첫댓글 "엔클로저", 곧 경계를 소유로 전환하면서부터 우리는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삶, 곧 노마드적 삶을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관광이라고 하면 정치가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는 것, 곧 오늘날 말로 하면 견학에 가까운 의미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노자의 소국과민을 액면 그대로만 본다면 우리는 관광도, 여행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무소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적 삶에 충실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줄이고, 타고난 그대로 사용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미 서구적 근대국민국가질서체제가 확립되어 있습니다. 서구 근대주의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계약에 의해 이것을 수용하고 있지만, 때때로 우리가 주권의 일부를 양도한 국가에 의해서, 또는 나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불안하게 됩니다. 그것을 보정해주는 기회가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온전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타고난 것"인지도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