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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말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우리의 선조, 순교 성인들을 기리며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오늘 말씀은 전(前)문맥인 첫 번째 수난예고(22절)와 후(後)문맥인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9,2836) 사이에 위치하여 추종의 의미를 더욱 확고하게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이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보편적인 초대입니다.(23절) 성경에서 ‘따라간다’는 것은 제자 됨, 곧 예수님의 삶과 사명과 운명을 함께 나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추종은 명백한 의지와 더불어 행동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23ㄴ절) 이는 예수님과 하느님 나라를 위한 복음이 우리 존재와 생명을 초월하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추종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추종을 방해하는 자아를 포기하는 결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할 때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지상의 가치에서도 자유로워집니다. 그것은 자신을 버려 얻고자 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참으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마태 13,4446 참조)
둘째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수행입니다.(23ㄴ절)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선택의 여지 없이 질 수밖에 없는 삶의 십자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기껍게 고통을 인내하며 견디는 것입니다. 십자가 자체는 모든 이에게 고통일 뿐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인생의 장애가 되기도 하고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십자가는 거부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 실존에 따르는 필연적인 것이기에 극복할 수밖에 없는 과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받아들여 묵묵히 지고 갈 때 십자가는 참된 삶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도구로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로서의 수행은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며”(시편 1,2) 날마다 주어지는 자신의 십자가를 봉헌하는 일상 안에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루카 9,24) 투신을 통해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일상 안에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교란시키고 결단에 장애를 초래하는 지상의 가치들이 있습니다. 곧 부귀·권세·명예·학벌·인맥·성공 등의 지상 가치는 명백한 목표를 제시하며 기쁨과 보람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투신하게 되는 가치, 곧 자아 포기, 헌신적인 십자가의 희생(23ㄴ절), 나눔(루카 18,22; 사도 4,3435), 무한한 용서(마태 18,22), 이웃 사랑(루카 10,27. 2937) 등은 신앙 안에서 빛을 발하며 보이지 않게 다가섭니다.
이렇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투신의 향방을 제시하지만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2코린 4,18)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루카 9,25) 사도 바오로께서도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필리 3,14)
그러나 ‘예수님과 그 말’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은 그 가치에 대한 미온적 자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머문 자리에서 예수님께 드린 불명료한 신뢰와 사랑은 그분이 오시는 영광의 날에 우리를 부끄러움으로 몰아세울 것입니다.(루카 9,26) 이는 그분께서 우리를 내치시기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드리지 못했던 우리 사랑이 너무 작고 초라한 탓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난예고와 거룩한 변모를 통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려주시며 영원한 생명의 길, 곧 그분의 길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야곱의 우물)
묵상해봅시다
‘내 뒤를 따라오려면’ 하는 추종의 전제 조건은 그 중심점이 ‘예수님과 그 말씀’에 있어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따르는 그 중심점은 무엇인지를 성찰해 봅니다. ‘저 자신을 버리겠지만 그러나…. 제 십자가를 지는데 그러나…. 제 목숨을 바치겠는데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그러나’로 가르며 예수님의 길을 비켜서 걸어왔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오직 한마음으로 순교의 길을 걸었던 신앙 선조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분들의 삶에는 세상의 가치, 세상의 잣대가 없었을까요? 인간적 기대를 접고 고통을 감수하며 죽음 앞에서조차 웃음 지었던 순교자들, 이 땅의 후손들 안에서 다시 피어나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그분들의 신앙을, 오늘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로마 8,3139 참조)(야곱의 우물)
오늘의 말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알아봅시다
1.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한국 천주교회는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다가 신앙을 받아들여 시작되었다. 이승훈은 1784년 북경에서 서양인 신부에게 교리를 배우고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벽, 정약종, 권일신, 권철신 등에게 세례를 주고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다. 한국의 천주교회는 외국인 선교사 없이 우리 민족 스스로 진리를 찾다가 신앙을 받아들인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때 한국 사회는 전통과 위계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의 평등사상과 충돌하였다. 또한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천주교는 박해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신해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들 순교자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 사도였던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103명을 우리나라에서 시성하였다(매일미사)
2. 상본과 이콘
상본(像本)이라는 말은 중국천주교회에는 없는 한국천주교회의 용어다. 예수회에 의해 처음으로 중국에 성화(聖畵)가 전파되었을 때 부작용이 속출했다. 마치 부적(符籍)처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이 점을 우려하여 성화가 한국에 전파될 때 성화를 다른 용어로 바꾸어 불렀고 다음과 같은 규칙을 세웠다.
상본(像本)이라는 말은 그 형상-상(像)의 근본-본(本)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모든 성인은 잡신(雜神)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의인들로서 그 그림이 추구하는 것은 모두 하느님의 영광과 성인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상본의 인물과 그림의 내용이 모두 다르지만 결국 하느님으로 귀결되며 우리 역시 그러한 삶을 살 때 성인이 된다는 내용이며 절대로 부적처럼 사용하거나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다만 성경이나 기도서에 책갈피처럼 사용하게 허락하였고 세례나 영명축일 때 선물하도록 하였다. 상본(像本)이라는 말은 우리 신앙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드러내는 용어다.
교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상숭배에 대한 염려와 상징을 통한 신적 실재와의 만남 사이에서 고민을 해왔고 그 해답을 보이지 않는 성부를 그대로 드러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았다. 한국천주교회의 초기 교우들이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이러한 교회의 고민을 이미 했고 우상숭배로 흐를 수 있는 성화(聖畵)가 아닌 상본(像本)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5)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보다 가깝게 다가갔다.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면서 신앙을 표현하는 그림들도 많아졌다. 그중에서 이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나 기도하는 성모님 등도 볼 수 있다.
4세기 말경에는 순교자들의 일생을 그린 작품들이나 성인들의 초상화로 교회 내부를 장식했는데 일종의 교육적인 기능을 담당했으나 아직 경배의 대상은 아니었다.
목판에 그려진 이콘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6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려져 후에 시나이의 성 가타리나 수도원에 옮겨진 ‘성 모자 이콘’과 ‘그리스도와 성 메나스 이콘’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부터 동방에서 이콘은 전례 안에서 특별한 위치와 가치를 획득했다. 서방에서 성인들의 유물을 공경하고 특히 13세기 이후에는 성체 공경이 강했다면 동방에서는 이콘을 공경했다.
8세기 초 성화에 대한 종교적 공경을 이교적 우상숭배로 배격하면서 ‘성화 파괴 운동’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다마스커스의 요한이 729년부터 성화 파괴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반론을 제기했다. 그리스도 자신이 보이지 않는 성부의 “모상”(이콘)이시며(콜로 1,15) 따라서 그림으로도 묘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787년에 열린 제7차 니케아공의회에서 성화에 대한 ‘공경’이 엄숙히 승인되었고, 원상(原象)에 대한 ‘흠숭’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에게만 유보된다는 교의결정문을 공포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 수행”이라고 정의된 전례는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실현되며 구체적인 표현에 있어서 예술을 필요로 하고, 예술에는 이콘도 당연히 포함된다.
다만 성화들과 성상들, 그리고 성모님과 성인들께 드리는 ‘공경’과 삼위일체 하느님께만 드리는 ‘흠숭’은 잘 구분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신문)
손석준엘리야
전남대학교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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