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의자
안선모
사흘 전,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누가 쓰레기봉투로 자꾸만 장난을 치네.”
나는 예전 일이 떠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 쓰레기봉투를 풀어 헤쳐 놓는 바람에 봉투 속의 천과 가죽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던 일. 마치 수십 종류의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했다. 그때 가파른 골목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흩어진 천과 가죽 쪼가리를 줍던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지만.”
그러면서 엄마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똑바로 세워놓은 쓰레기봉투를 왜 자꾸만 옆으로 뉘어 놓는 거지? 쓰레기가 쏟아지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이상한 일이야.”
“엄마, 걱정하지 마. 사흘 안에 내가 범인을 잡을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엄마의 말에 나는 부득부득 사흘 안에 범인을 잡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입으로 말했던 사흘이 지나가고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잡고야 말 테야.”
“아이고, 선재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나 해.”
엄마의 말에 나는 입을 쑥 내밀었다.
‘엄마는 공부 공부, 공부밖에 몰라. 내가 큰맘 먹고 뭘 하려고 하면 무조건 쓸데없는 짓이래.’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1인 1역할을 정할 때였다. 선생님이 ‘쓰레기 정리는 누가 할까?’ 말했는데 아무도 손을 안 들었다. 교실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도 괜찮은 듯했다. 그리고 그 일은 집에서도 자주 하는 일이었다.
“쓰레기 처리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일주일 동안 나온 쓰레기를 금요일마다 처리하는 일, 쓰레기를 꾹꾹 눌러 봉투 입구를 잘 묶어서 학교 건물 뒤편에 내놓는 일은 나에겐 정말 쉬운 일이었다.
금요일 오후였다.
“박선재! 너 왜 쓰레기봉투 정리 안 하는 거야?”
반장이 따지듯 물었다.
“쓰레기가 반도 안 차서 그래. 반도 차지 않은 쓰레기봉투를 그냥 내놓긴 아깝잖아. 일주일 동안 더 채워서 내놓으려고.”
그러자 짝꿍 유리가 힐난하듯 말했다.
“네 돈으로 쓰레기봉투를 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아껴? 하기 싫으니까 핑계 대는 거 맞지?”
유리는 나랑 짝이 된 게 싫어 나만 보면 툴툴거린다. 그게 뭐 내 탓인가. 키대로 짝을 정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걸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고.
유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반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쓰레기를 꼭 채워서 버리라는 법은 없어!”
“쓰레기를 교실에 오래 두면 냄새나고 건강에도 안 좋아.”
“봉투 아끼려다 건강 나빠지면 그게 더 손해 아닌가?”
모두 반장 편이었고 유리 편이었다. 억울했지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 말이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근데 만약 내가 아니고 다른 아이가 그랬다면 반 아이들이 벌떼처럼 저렇게 달려들었을까? 아이들 속에 있지만 나는 늘 혼자였고 투명 인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 학교로 전학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마을버스 타고 열 정거장이나 떨어진 사립학교에 꼭 다녀야 하는 걸까? 이건 내 뜻이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명문학교에 다녀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엄마, 아빠의 뜻이다. 그 덕분에 학교 친구도 동네 친구도 없다는 걸 엄마, 아빠는 알까?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보고 엄마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바로 이거다.
“얼른 들어가서 공부해.”
하지만 나는 방안에 들어가기가 정말 싫다.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고 좁은 방안에 있노라면 갑갑증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엄마, 아빠가 하루 종일 작업하고 남은 천 조각과 가죽 조각을 쓰레기봉투에 넣는 일이었다. 그건 엄마, 아빠도 말리지 못했다. 하루에 한 가지씩 부모님을 도와드리는 숙제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범인을 꼭 잡아야 할 텐데. 도대체 누가 그딴 짓을 하냔 말이다.
저녁밥을 먹자마자 엄마와 아빠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곯아떨어졌다. 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손과 발을 놀렸을 엄마는 딱 그 모양으로 잠들어 있다. 종일 재단대 앞에 서서 천과 가죽을 주물렀을 아빠도 마찬가지다. 누워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소금물에 푹 절여진 배추 같다.
나는 엄마, 아빠가 깰까 봐 조용히 일어섰다. 범인을 잡는다는 핑계로 저녁이면 밖에 나와 게임을 했었는데 이제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잠깐 게임을 멈추고 어둠이 촘촘히 내려앉은 좁은 골목길을 훑어보았다. 하루 종일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럽던 골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 가게 유리문 앞마다 쓰레기봉투들이 눈사람 마냥 우두커니 서 있다.
‘오늘도 허탕인가?’
휴대폰 화면 시계를 보니 8시가 넘었다. 순간 모레까지 해야 할 숙제가 생각났다. 환경에 대한 사진을 수집해 오는 일이다.
‘아, 이럴 때가 아니다. 빨리 사진을 찾아야 내일 문방구에 가서 프린트할 수 있어.’
가게 안으로 들어간 나는 아쉬운 마음에 작은 투명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였다. 골목 위에서 한 아이가 내려왔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쓰레기봉투 몇 개를 꾹꾹 눌러보더니 그 중 하나를 골라 옆으로 뉘어 놓았다.
‘아싸! 네가 바로 범인이었구나.’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내 고함소리에 놀란 아이가 휙 몸을 돌려 언덕길을 거슬러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범인을 잡는구나. 사흘 안에 꼭 잡겠다고 했는데 드디어 오늘!’
미소가 절로 나왔다. 나는 아이를 잡으려고 뒤따라 달렸다. 곧 회오리 골목에 도착했다. 좁은 골목이 마치 회오리바람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골목이었다. 뛰다 보니 숨이 턱턱 막혔다.
언덕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 대(大)자로 누웠다. 거친 숨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와, 별 많네. 얼마만이야, 이런 하늘이.”
아이가 감격한 듯 말했다.
뭐야 쫓기는 주제에! 어이가 없었지만 나도 아이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울로 이사 온 후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었나? 그 아이 말처럼 밤하늘은 별들의 잔치가 열리는 듯 했다. 넋을 잃고 별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누워있던 아이가 발딱 일어났다. 나도 덩달아 발딱 일어났다. 발아래 도시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꼬불꼬불 오래된 골목, 좁은 골목길 양옆으로 꽉 들어찬 지붕 낮은 집들.
“우와, 그림 속 한 장면 같아. 환상적이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이사 온 지는 꽤 됐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 보았어.”
“요 근래 별을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말이 딱 맞아.”
아이의 말을 듣자 가슴이 약간 벅차올랐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런 걸 감동받았다고 하나?
그러다 문득 언덕 꼭대기까지 숨차게 달려온 이유가 생각났다. 나는 놓칠세라 아이의 팔을 꽉 잡았다.
“범인은 바로 너였어!”
“범인이라니! 내가 뭘 어쨌다고!”
아이가 팔을 빼려고 몸을 뒤틀었다.
“쓰레기봉투에 왜 손을 대는 거냐고!”
“쓰레기봉투에 손대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아이가 당당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쓰레기봉투 하나쯤 옆으로 뉘어 놓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
“큰일 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우물쭈물 혼잣말을 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아이한테도 꼼짝 못하다니! 나는 괜스레 역정이 나서 큰소리로 물었다.
“근데 너, 몇 학년이야?”
내 말에 아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 4학년.”
“뭐? 이렇게 작은데 4학년이라고!”
내 말에 아이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아, 미안미안.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나하고 똑같은 4학년이어서 놀라서 그랬어.”
나의 빠른 사과에 아이의 표정이 금세 풀렸다.
“너 어디 살아? 여기 근처야? 여기 동네 학교 다녀?”
내 질문에 아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한 가지씩 질문해. 내가 사는 곳은 바로 저기!”
아이가 어두운 공원 맞은편 작은 집을 가리켰다. 동네가 다 내려다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작고 허름한 집이었다.
“언제 이사 왔어? 한 번도 못 봤는데?”
같은 동네 살아도 학교가 다르니 보기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또 물었다.
“지난겨울에 이사 왔어. 서울로 이사 온다고 해서 조금 기대를 했거든. 근데 서울에도 꼬불꼬불 골목이 있고 요렇게 작은 집들이 있네.”
“그러니까 시골에서 살지 뭐 하러 왔대?”
내 말에 아이가 씩 웃었다. 물어본 내가 바보 같았다. 이사를 결정할 때 아이들의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 그런 질문을 하다니.
“근데 너 왜 자꾸만 쓰레기봉투를 옆으로 눕혀 놓는 거야? 쓰레기 수거차 기사님이 차에 실을 때 불편하잖아. 가뜩이나 바쁘신 분들을 성가시게 하는 이유가 뭐야?”
내 말에 아이가 미안한 듯 말했다.
“쓰레기봉투, 오늘만 의자가 되는 거야.”
“오늘만 의자?”
“다리 아픈 우리 할머니 언덕길 올라오실 때 힘드시니까 중간에 잠깐 쉬었다 오시라고 만들어 놓는 거야. 어차피 밤 10시면 쓰레기 수거차가 다 가지고 가잖아. 이 안에는 천하고 가죽 같은 것만 들어 있어서 엄청 푹신하고 좋아. 고약한 냄새도 나지 않고.”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아이의 말에 좀 놀랐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시골에 살 때는 잠깐 앉아 쉴 곳이 참 많았는데….”
아이의 말을 듣자 내가 살았던 시골 풍경이 떠올랐다. 마을 입구에 있었던 커다란 느티나무, 그 아래 놓여 있던 널따란 평상. 일하다 지칠 때면 누구든 쉬어가던 곳. 온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로 늘 복작복작 거렸던 곳.
“이 골목 정말 가팔라. 꼬불꼬불하기도 하고. 우리 같은 아이들도 오르락내리락하기 힘든데 노인들은 얼마나 힘들겠어? 할머니가 식당에서 늦게까지 일하시거든. 언덕길 올라올 때 무릎이 얼마나 아프시겠어? 그래서 내가 잠깐이라도 앉았다 오시라고 쓰레기봉투를 뉘어 놓았던 거야.”
“그러니까 그게 의자란 말이지? 할머니의 의자!”
내 말에 아이가 어둠 속에서 활짝 웃었다.
“몇 개나 만들어 놓는 거야?”
“다섯 개 정도? 할머니가 언덕길을 오르면서 내가 만들어 놓은 의자에 앉아 잠깐 쉬었다 오니까 너무 좋다고 하셨어.”
“그래? 그럼 이제부터 우리 집 앞 의자는 내가 만들어 놓을 게.”
아이랑 헤어져 골목길을 내려오면서 휴대폰 시계를 보았다. 9시 30분. 이제 30분 정도 있으면 쓰레기 수거차가 올 것이다. 나는 아이가 뉘어놓은 쓰레기봉투에 앉아보았다. 푹신푹신하니 고급스런 소파 같았다.
‘어? 좋은데? 여기 앉았다 가면 피곤이 싹 풀리겠어.’
나는 방으로 들어와 숙제를 하려고 컴퓨터를 켰다. 엄마,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온 방안을 흔들고 있었다.
‘그 아이랑 같은 학교에 다니면 좋을 텐데.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고 함께 의자도 만들고. 아! 다음에 만나면 이름을 꼭 물어봐야겠어.’
아이와 만난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엄마, 아빠한테 졸라서 이 동네 학교로 전학 보내 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앉아 있는 방이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좁고 답답한 방이었는데 말이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착하네요
아련한 시절 이야기네요
서울 달동네에서 실제로 본 쓰레기봉투 의자를 보고 쓴 거예요.
글나라 동화숲에 올려주세요 ㅡ
예, 알겠습니다^^
@바람숲 복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