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부산에서 "저기 수평선 상에 아스란히 보이는 섬이 대마도이다."라는 어른의 말을 듣고
35년 세월이 흘러서야 환상으로 그리던 쓰시마 이즈하라에 도착했다. 우스개 소리로 한국과 워낙
가까워 여권을 가져가는 걸 깜박 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풀 세트 등산복과 DSLR 카메라로 완전무장한 사람들이 한국인들인지라, 길에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대마 주민은 보기도 어렵고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쁘고 한가로운 항구에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관광 안내소에서 아유도모시 가는 버스 시간과 정류소를 물었더니 친절히 가르쳐 주는데
"그기에 별로 볼 것이 없는데요" 라고 말을 흐린다. 타아라 쇼핑 센터에서 내일 히타가쯔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였더니 아침 7시 5분, 11시 15분 차. 이른 시간이라,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는 아유도모시 가는 걸
포기했다. 돌아오는 시간표도 어중간했다.
런던 토박이로서 대영박물관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분을 영국에서 만나듯, 호텔에 체크인하여
최익현 선생 순국비가 있는 슈젠지(수선사)를 물었더니 직원이 모른다. 사장을 불러 물어 보더니 걸어서 5분.
그러닌까. 자기가 평생 가 본 적이 없다는 소리이겠다. 일본의 작은 불상이나 지장보살에 젖먹이 아기들
가슴받이 천으로 감싸져 있다는 게 특이한다. 최익현 선생은 지리산에 들어가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그 사람 잡아오면 돈 준다는 말에 혹한 조선인에 의해 잡혀서 대마도로 끌려갔고 여기서 곡기와 물을 끊고
굶어 돌아가셨다. 같은 동족을 팔아 넘겨야 했던 것은 그 당시 우리 민생 수준이였을 것이다.
"제발 저희 집 현관 계단에 앉지 마세요. 이 골목에서 떠들지 말아주세요"가 슈젠지 절 앞의 가정집 문앞에
붙어 있었다. 이런 문구를 본다는 게 상당히 괴로운 일이다. 대마도 경제를 먹여 살리는 것도 한국이고,
가장 피해를 많이 입는 쪽은 대마도 주민들이다. 그들은 한국 관광객과 무관하다.
"이것은 쓰레기 통이 아닙니다. 제발 쓰레기 넣지 말아 주세요" "여기는 대나무 밭입니다. 제발 들어가거나
쓰레기를 던지지 말아 주세요" "여기 더럽히면 천벌 받아요" 하소연들이 곳곳에 많다.
2차 세계 대전, 일본 본토를 공습 포격해야 할 때 연합군들이 고민했던 것은 이토록 깨끗하고 아름다운 미를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나라에 포탄을 쏟아 부어야 할까 하는 갈등이 있었다. 역시 이즈하라도 밝고 깨끗하고
아늑했다. 골목과 거리가 산뜻했다. 쓰시마 호텔에서 500엔으로 자전거를 빌렸다. 다른 데는 1000엔에서
1500엔까지에 보증금 1000엔을 더 주어야 한다. "자전거 빌리러 왔다." "저기 있다. 가져가라" 500엔 끝.
여권과 이름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보니 핸들이 멋대로 돌아가 애먹었다.
높이가 500 미터 정도 된다는 아리아케 산을 갈 생각으로 덕혜공주 봉축 결혼 기념비를 찾아갔더니
한국 아줌마 부대가 점령했다. 길을 물어야 하는데 일본인이 아무도 없다. 우체국 배달부를 한 모통이에
만나 반가워 등산로 입구를 물어 보려고 했더니, 애인과 휴대폰 통화중. 밑도 끝도 없이 통화한다. 기다리다
답답하여 등산로 입구 좀 알려줘라. 손짓으로만 요리조리 알려준다. 대나무와 숲이 우거져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길이 어둡고 무섭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 전초기지와 병참기지로 성을 쌓았다고 한다.
성벽이 들어가면 안에 또 있고, 또 들어가면 또 성벽이 나오고 겹겹히 성벽이다. 이즈하라 시내 전역이
눈 앞에 들어온다. 조망은 끝내준다. 바람이 휑, 웽 불어 날아 갈 것 같다. 아리아케 정상까지 천미터 더 가야 한다.
청수산에서 산행 마감. 내려오는 길에 꼬마들이 골목에서 축구를 하는데 나보고 지금 뭐 하냐고 묻는다.
그냥 구경한다고 했더니 함께 공차자고 한다. 여가가 없어 못한다 했더니 엉뚱하게 미국 사람아닌가 또 묻는다.
시골애인지라 질문이 좀 황당하다.
월요일 이즈하라 맛집은 모두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쓰시마 버거 맛이나 보자고 들어갔더니
햄버거 안에 해초, 톳도 있는 것 같고 오징어도 있고, 고기는 언양불고기 식으로 다져져 있다. 레몬소다,
프렌치 프라이 세트로 맛도 괜찮은 편이다. 자전거 타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동네 주변에
공동묘지가 있는 게 영국과 마찬가지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영국과 일본이 섬나라로 좀 통하는 게 많다.
대륙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자존심으로 지켜 내다보니 생겨나는 것들.
밤이면 포장마차나 차에서 라면 팔겠지 생각했더니 본토와 달리 그런 게 없다. 티아라로 건너가 회를 두 도시락
사와서 젖가락없이 손을 씻고 그냥 집어서 먹었다. 한국 초고추장 봉지는 공짜로 주는데, 그것도 삼천원 받는 것 같다.
그래서 간장과 와사비 만으로, 회는 한국보다 싸고 신선한 것 같다. 사과, 딸기, 바나나 값이 장난이 아니다.
사과는 아오모리에서 오다보니 운반료가 붙어 속칭 섬 값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히타가츠 발음이 요상타. 히타는 음독이고 가츠는 훈독인데 이걸 붙여써는 것 같다. 上 한자를 카미로 읽는 것도
신기했다. 버스는 구비구비 완행으로 바다인지 호수인지 저수지 인지 분간이 가지 않지만 가다보니 경치 좋은 데가
눈에 많이 들어온다. 2시간 걸렸다. 히타가츠에 도착하여 한국 식당 동백 가든에 들어갔더니 가게가 텅 비었다.
월요일은 이즈하라가 공휴일, 화요일은 히타가츠가 공휴일인지, 식당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히타가츠는 아주 작은 항구였다. 직선 코스로 500미터 걸어가면 모든 게 끝이다. '나가사노유 온천' 버스시간표를
보니 하루 Free Pass 버스표가 무용지물이다. 카미소 호텔로 걸어가 체크인 하고, 여기에 목욕탕 있으니,
별 시설도 없다는 나가사노유 온천 가는 걸 포기, 호텔 주변을 둘러보니 바닷물이 맑아 2, 3미터 수심 아래 물고기 노는 게 투명하게 보인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해변가의 물빛은 에메랄드 옥빛이다. 혼자서 해수욕장과 바닷가를 한참 걸었다.
카미소 호텔 석식은 대박이었다. 1200엔 정도 예약 하였는데, 한국돈으로 3만원 정도 이상의 정식이 풀 세트로 나온다. 작은 면발이 국수 같기도 하고, 수프 같기도 한 것은 물었더니 서빙 아줌마가 뭔가 일본 말로 '톳'이라 하는 것 같다. 이럴 때 빙글 돌려 물어보는 것도 외국어 인데, '바다에서 나는 야채'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한국에서 톳은 안먹냐고 묻길래, 먹기는 하는데 이런 식 요리는 없다고 대답했다. 돌에 구워서 나오는 전골에는 생선, 버섯, 고기, 소라, 새우 다양하게 있다. 20년전 토쿄 호텔에서 일본인도 평생 먹어 보지 못한다는 궁중식을 여자가 기모노 입고 사미센 악기 연주를 들으며 먹은 적이 있는데, 난생 처음 먹어보는 고급 음식에 대해서는, 혀가 그 기준을 잡지 못하기에 '맛있다, 맛없다' 분별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확실히 맛있다. 둘러보니 한국인은 나 혼자이다. 온통 일본인 가족 여행객들 뿐이다. 뭔가 내가 잘 몰라 헷갈리는 것 같으면, 어디서든지 일본 아줌마가 튀어나와 시중과 설명을 해준다. 너무 그러니 심적부담이다. 그것 빼고는 훌륭한 요리를 견식했다.
다다미 방은 4명이 자도 될 만큼 크고, 옥외 경관이 그림 같다. 작은 섬 하나가 둥실 떠 있고 아름답다. 목욕탕에 가서
아픈 다리를 녹였다. 흑맥주 두 캔 마시고, 텔레비전 보니, 호주령의 남태평양 작은 나라가 차츰 물에 가라 앉는다고
한다. 그 나라에 일본인 여자가 시집가서, 말하자면 남편, 시동생, 시누이, '시'자 붙은 시댁 식구 7명을 먹여 살리는데
일본에서 가져온 돈으로 식비와 전기료, 물값을 낸다. 여자가 예쁘고 너무 착하게 생겼다. 왜 저런 나라에 가서 생고생을 할까. 그 작은 나라에는 일자리가 없어, 남편과 시댁 식구는 모두 백수 신세이다. 남편이 '최고의 일본인 아내'라고
고마움을 표하는데, 그런 나라에 딸 시집 보낸 부모와 친구들 속 마음은 편할까 싶다. 저렇게 예쁘고 착한 여자, 순종적인 여자랑 결혼하면 좋겠지. 서서히 물에 잠기는 나라를 보다가 서서히 잠이 들었다. '세계 속의 일본인' 프로그램.
한국인도 전 세계에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그런 인생들을 많이 보았다.
쓰시마는 한적하고 고요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어촌이다. 관광 할 것은 별로 없다. 1박 2일 여행 패키지로 돌아다닌
아줌마들이 '두 번 올 것 까지는 없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지만 조용히 쉬어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겠다.
한국인 할아버지 사이클 부대를 자주 만났는데, 이즈하라에서 히타가쯔까지 2박 3일 종주는 힘에 버거워 탈진 상태라고 한다. 종주하는데 대략 150km, 오르막길이 많아 더 힘들다. 자전거 종주는 무리이겠다. 그러나 버스 타고 둘러보니
그림 같은 마을이 참 많더라. 민박 하면 좋을 것이다. 단,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라 일본어로 의사소통된다면
즐길 만 한 곳이다.
식당도 크게 맛난 곳은 없는 것 같고, 슈퍼에서 김초밥, 쓰시, 튀김(덴부라), 오텡(완전 순살이다), 회, 도시락 사먹는 편이 차라리 싸고 맛있다. 도시락 세트 하나 만큼은 정갈하고 맛있다. 한국 대형 마트에서 파는 것과 질이 다르다. 우리가
연구해 볼만하다. 김초밥은 약간 단맛이 적다면, 국내에서 사라진 김초밥 맛을 오랫만에 쓰시마에서 재현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교통은 상당히 불편한 편이고(운행 횟수 제한), 호텔은 화장실 빼고 방과 침대는 넓고 조식은 좋은 편.
참고로 호텔은 머릿수 두당 개념인데, 이번에 탐색해 본 결과 혼자 체크 인 하고 둘이 몰래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어떤 확신감이 들었다고 할까. 4명이 온 사람은 4인 값을 다 지불했더라. 쓰시마는 약간 심심한 곳이다. 딱히 볼 만한
곳이 많지는 않다. 가게와 식당도 손님이 없으면 문을 닫아 버리는 곳이 많다. 또 영업시간이 아니면 손님을 받지도
않고, 도대체 저 식당이 영업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분간이 가지 않는 곳도 많고......해수욕장은 국내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물이 맑고 투명하다. 해수욕장이 작고 아늑한 곳이 많은 듯.
일본 여중생과 여고생은 양복점에서 바로 재단하여 나온 것 처럼 세라 교복 정장에 양발, 구두까지 반짝반짝 한다.
어떻게 저렇게 새로 산 것 처럼 모두 복장을 갖추고 다닐까. 인사성도 밝다. 차 건널목을 지나면 차가 멈추어 주어서
고맙다고 크게 절을 하고 인사한다. 물론 운전자는 쳐다 보지도 않지만. 그러닌까 모두가 저렇게 해 입고 다닐 정도로
규율과 기강이 철저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그것이 무형의 압력 아니겠는가. 특히 여자라고 하여 더 가혹한 순종과
순응을 강요하겠지. 남학생들은 그러지 않더라. 그렇게 예쁜 여학생들과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지만(마음 속으로)
내가 또 치한 행세를 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귀엽게 생긴 여학생이 최고 볼거리였다.
그런 일본 여자애들을 보다가 한국인 젊은 커플과 아줌마를 보면, 신체가 크고 활달하고 웃고 싶으면 웃고, 떠들고
싶으면 떠들고, 남 눈치 안보고 제멋에 겨워 산다는 것.
생선 비린내. 쓰레기, 배에서 새어 나온 기름으로 어지러운 항구는 아니고, 집, 거리, 동네, 항구가 그토록 깨끗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얼마나 많을까. 뭔가를 정리정돈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풀리는 것인지.
어망도 집에 들어가 손질 하는 걸 보았다. 우리라면 방파제에서 너도나도 없이 나와서 널부러지게 앉아 수선을
할 테이지만......저것도 눈에 거슬린다 생각하는 것인지.
조용히 산책하고 헤엄치고 석양을 바라본다면 쓰시마는 다시 한 번 더 찾아가고 싶다. 항구와 어촌이 냄새 안나고
깨끗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첫댓글 표고버섯, 소주, 다시마, 팥이 든 카스테라 이외에 특산품도 없습니다. 면세점에도 살 게 거의 없구요. 배 안에서 파는 양주가 국내에서 제일 싸다고 하더군요. 아줌마들이 양주를 많이 사더군요. 술은 배 안 면세점이 최저가라 합니다. 공항, 항공기 보다 무지하게 싸다고 하는데, 제가 술을 안 마셔서 싼지 비싼지 감이 없었어요.
저도 DSLR 본체와 렌즈가 많은데, 여행 가서 들고 다니기 무거워 1200만화소 똑딱이를 5만원 주고 사서 촬영했는데 카메라가 솜털 처럼 가볍고 장난감 같아....셔터를 눌러도 찍혔는지도 모르겠고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같아요. 가벼워 좋은데 뽀대는 안나고, 셔터 스피드가 아무래도 느리데요. 한국인들 그 무거운 DSLR 에 금테 렌즈를 모두 두르고 다니던데 사진 찍을 줄도 모르면서 폼생폼사 합니다. 엄청 무겁죠.
쓰시마 꼭 가보고 싶네요,
이강님 여행기를 읽고 나니 이미 다녀 온 듯해요. 돈 벌었네요. ㅎ
여행다녀 온 뒤 일상이 째금은 덜 지루하신지.
대마도 여행 잘 다녀오신 거 같네염..
대마도가 다른 것은 몰라도 조용히 산책하고
한가롭게 헤엄치고 석양을 바라볼만한 곳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