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르시아의 서사시 <쿠쉬나메>에 대한 짧은 생각들 1
▲ KBS 1TV 파노라마 제1부 <폐르시아에서 온 왕자>편의 로고

<쿠쉬나메(Kush-nameh)>라는 생소한 이름의 다큐멘터리가 KBS 1TV에서 2부작으로 방송되는데, 그 제1부 <폐르시아에서 온 왕자>편이, 어제(5.17) 방송되었고 제2부는 다음 주에 방송될 예정이라 한다.
연극인 김명곤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 이 프로는 그 소재의 특이함으로 방송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은바 있었는데, 과연 ‘특종’에 해당될 정도의 독특하고 이색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반드시 보아야 할 프로였습니다. 물론 우리카페의 주된 테마인 ‘실크로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내용이고 또한 제가 요즘 경주 실크로드프로젝트의 추진위원을 위촉받은 상태라 그러했지만, 더구나 현재 계획중에 있는, 중앙아시야-이란-터키 까지의 탑사여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란쪽의 자료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메모를 해가며 관심 있게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기에 이에 대하야 몇 차례 꼭지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어볼까 합니다.
<쿠쉬나메>는 2010년 울산 ‘처용문화제’의 일환으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양대 인류학과 이희수교수에 의해 부분적으로 소개된바 있었습니다. 신라로 들어가는 국제항 울산을 통해 9세기 이후 페르시아계 이슬람 상인들이 대거 유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쿠쉬나메>의 내용을 비롯해 14세기에 들어 이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채색화들도 국내에 처음 소개한바 있었고 <쿠쉬나메>의 한글번역에 착수한다고 발표 했습니다만, 그 뒤 사정은 알려지지 않고 있었기에 이번 KBS에 의한 다큐화는 때 마침 부는 ‘실크로드 붐’과 상승작용을 하여 앞으로 많은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오리라 생각됩니다.

▲ 이슬람권 구술전승집 <아자히브>에 첨부된 삽화. 신라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의 결혼과정을 담은 <쿠쉬나메>의 내용이 묘사돼 있다.
<쿠쉬나메>는 이슬람권에서 서사시의 전성시대'로 불리는 11세기 무렵에 , 시대적 배경으로는 샤산조 페르시아제국이 이슬람의 거센 바람에 무너져가는 과도기적 시기에 시작되어, 수 세기 동안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면서 완성된 페르시아의 대 서사시로써, 14세기에 이르러 비로써 필사되어 기록되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의 원본이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최근(1998년) 이를 이란에서 영인하여 처음 출간하였다고 합니다. <쿠쉬나메>.는 전체 1만129절(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인데, 이중 2011~5925절이 신라와 관계된 부분이라 하니 이 또한 흥미롭다 하겠습니다.
특히 <쿠쉬나메> 속의 다량의 아름다운 채색화인 삽화 속에는 신라를 ‘신라섬[‘The Island of Sila]’으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데, 양탄자가 깔린 실내 바닥에 페르시아인 복장의 왕자가 앉아있고, 탁자처럼 보이는 좌대 위에 신라 공주가 앉아 있는 내용이어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끌게 만듭니다.
여기서 신라를 섬으로 표현한 것은 신라를 출입했던 당시의 이슬람 상인들이 해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지리적 인식부족으로 섬나라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역설적으로 해석해보면 “해상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자 시작점이 신라이다.” 라는 인식으로도 귀납되기에 이 또한 흥미롭다하겠습니다.
고대뿐만 아니라 근, 현대에 이르러 아랍권문화는 우리에게는 가장 생소한 분야의 하나였습니다. 그렇기에 마찬가지로 아랍권에서도 우리의 것은 낮선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점차로 밝혀지는 ‘가설’에 의하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랍권과 해동반도는 그리 낯설기 만한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신라 시대 귀신을 쫓나내는 효능을 가진, 친근한 ‘처용(處容)’이 바로 아랍인이었고, 지금도 괘릉(掛陵)을 지키고 있는 석상 중에 서역무인이 있고, 그리고 경주국립박물관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라 고분속에서 잠자고 있는 수많은(?) 페르시아산 유리공예품 등이 그 생생한 증거에 해당됩니다. 또한 8세기 혜초스님은 걸어서 아라비아반도 근처를 견문하고 이란까지 직접 발걸음을 하고 그 견문록을 남겼습니다.

▲신라와 페르시아가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로마 양식의 유리그릇과 황금보검.
그간 아랍권에서는 우리의 신라를 신라(Shilla), 바실라(Bashilla), 알신라(Alshilla)로, 페르시아 문헌에선 베실라(Beshilla)' 등으로 표기하여 왔었는데, 이번에 알려진 <쿠쉬나메> 처럼 방대한 분량의 신라 관련 서술이 발견된 것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를 갖는다하겠습니다.
이런 분량이외에도, 아직은 제가 <쿠쉬나메> 전문을 보지 못했기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 내용에는 신라의 어느 도시의 아름다움, 도로와 골목 풍경, 정원의 새 까지 세세히 묘사되어 있다고 하니 이로써 실크로드의 주역이었던, ‘신라’를 아랍권의 자료를 통해 볼 수 있으니 큰 의미를 지닌다하겠습니다.
자 이제 <쿠쉬나메>의 줄거리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쿠쉬나메’란 “ ‘쿠쉬’라는 영웅의 전설을 노래한 구전설화” 라는 뜻으로, 사산왕조 페르시아(226~651)가 아랍의 공격으로 멸망한 이후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며 멸망한 페르시아 유민들을 이끌고 동쪽 중국으로 피신한 ‘쿠쉬’라는 인물이 주인공입니다.
현재 일부만 번역된 스토리에 따르면, 여기서 신라에 관련된 부분은 쿠쉬의 어린 시절의 후견인인 아비틴(Abtin)에 집중돼 있는데, 산중에 버려진 어린 쿠쉬를 거둬 키워준 페르시아 유민 지도자 아비틴은 위기에 몰리자 중국의 변방국가인 마친(Machin) 왕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직접 도움을 주는 대신 이웃의 신라 왕인 타이후르(Tayhur)에게 추천하며 “신라는 낙원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침략을 받지 않은 나라” 라고 알려주며 추천 편지를 써주고 그들을 떠넘깁니다. 이에 이 말을 믿고 쿠쉬와 유민들은 배를 타고 먼 항해 끝에 신라삼에 도착하여 마친왕의 편지를 신라왕 타이후르(Tayhur)의 왕자 가람(Karam)에게 전달하고 극진한 영접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뒤 신라에 정착한 아비틴은 신라왕과 함께 폴로(격구)와 사냥을 다니고 국정의 조언자로 활동하면서 한편 신라공주인 프라랑(Frarang)에게 청혼을 합니다. 신라왕은 공주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아비틴 앞에 비슷한 모습의 처녀 10명을 놓고 찾아보라 말하는 시험을 치루게 하는데, 아비틴이 정확히 공주를 지목하자 왕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공주가 임신한 상태에서 페르시아 사람들은 조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자 항해에 능숙한 신라인의 안내로 페르시아로 향하던 중 프라랑 공주는 왕자 파리둔(Faridun)을 출산하게 됩니다.
그는 훗날 아랍군을 물리치고 이란 유민들의 원수를 갚고서 외조부인 신라 왕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왕은 이미 서거하였지만, 왕위에 오른 태자(외삼촌)와 교류를 이어간다는 스토리입니다.
첫댓글 흥미진진~ 기대만땅~ 후속편~~
네, 현재 자료를 찾아가며 다음 편을 준비하는 중입니다만, <쿠쉬나메>의 번역본을 구할 수가 없어서 답답합니다.
공부 좀 해야겠네요.
아유타야 허황옥이 가야에 올 수 있었다면, 혁거세가 토함산에 오를 수 있었다면, 처용이 서라벌 달밤을 돌아댕길 수 있었다면, 신라 왕자도 배 타고 마냥 흘러 흘러 아라비아까지 갈 수 있었겠지요..... 저는 요즘 <화랑세기>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는데.....
혼자 읽지만 마시고, 좀 공유하시지요.
KBS푸로만 보고는 좀 미진했었는데, .....안복입니다.
실크로드학의 귀중한 자료가 발굴되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