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으로 빚어낸 마법, 지브리 애니메이션 A to Z
Anti-Militarism 반(反)군국주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2차 세계대전과 일본 군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한 그의 혐오는 작품 속에 자주 드러난다. [
붉은 돼지](1992. 사진)가 대표적인데, 이 영화는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 공군 파일럿의 일상을 그린다. 낭만주의와 허무주의가 동시에 넘쳐나는 이 작품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무정부주의자가 된 미야자키의 자전적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미야자키 스스로도 '중년 남성을 위한 만화영화'라 일컬은 작품.
그러나 무거운 주제 의식을 떠나, 아름다운 이탈리아 해변과 박진감 넘치는 비행 활극 덕분에 한 편의 오락영화로도 손색이 없다. [붉은 돼지]는 원래 JAL 항공사의 기내용 영화로 제작되었다가, 이후에 장편 길이로 확장되었다.
Before Ghibli 지브리 이전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전 과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데, 이는 그가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 애니메이터로서 밟아야 할 모든 단계를 착실히 거쳤기 때문이다. 경영학도였던 미야자키가 본격적으로 애니메이터 활동을 시작한 때는 1963년 도에이 영화에 입사하면서부터.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친분을 쌓은 것도 이 시기다.
스태프로 활동하던 미야자키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은 TV 시리즈 [
미래소년 코난](1978. 사진). 일본 TV 애니메이션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알렉산더 케이의 SF 소설 [남겨진 사람들]이 원작이지만, 개성 있는 캐릭터와 소년 소녀의 모험담을 미야자키만의 스타일로 끌어올렸다. 특히 여주인공 '라나'는 미야자키식 히로인이 출발점이 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Computer Graphic 컴퓨터그래픽
셀 애니메이션의 명가답게, 지브리는 수작업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날로그 이미지를 자랑한다. "종이에 손으로 직접 그리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근본"이라는 미야자키의 철학 때문이다. 그러나 지브리도 전통과 테크놀로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빠듯한 작업 스케줄과, 셀이 턱없이 부족해진 때문. 지브리는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을 작업하면서 디지털화를 추진하다가 1995년에 컴퓨터그래픽 부서를 개설했다.
엄청난 분량의 [
모노노케 히메](1997) 역시 디지털의 힘을 빌려, 디지털 페인팅과 셀 기법이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는 순전히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게다가 디지털 작업으로 만들어낸 장면은 전체 분량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
이웃집 야마다군](1999. 사진)에서는 100퍼센트디지털 작업을 시도했는데, 덕분에 수채화풍의 배경과 인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혁신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지브리는 다시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돌아왔다. 특히 [
벼랑 위의 포뇨](2008)는 100퍼센트 수작업으로 영롱한 바다 컬러를 만들어냈고, 그러면서 컴퓨터그래픽 부서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전 세계에 3D 영화가 넘쳐나고 있지만, 지브리에서 3D 애니메이션을 만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Deeply Influenced 영향을 받은 작품
월트 디즈니 만화가 전 세계를 장악할 무렵,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히려 다른 작품들에서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의 레프 아티마노프가 연출한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1957. 사진)이다. 이 작품은 고전 동화를 소재로, 눈의 여왕에게 잡혀간 소년 '카이'를 찾아 나선 '겔다'의 모험을 담았다. 미야자키는 [
눈의 여왕]이 섬세하게 묘사한 심리와 내면 갈등에 매료되었다. 이는 당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씩씩하게 고난을 헤쳐 나가는 '겔다'는 미야자키식 여주인공의 모태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미야자키는 왕성한 독서를 통해, 이야기와 캐릭터 전개 방식을 배웠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비롯해, 어슐러 K. 르 귄, 루이스 캐럴, 다이애나 윈 존스, 쥘 베른, 로알드 달의 소설이 그의 대표적인 레퍼런스들. 한편 미야자키는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 일본판 커버의 일러스트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Environment 환경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주인공으로 기능한다. 강한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숲이나, 자유를 표현한 하늘, 자연 숭배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거목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모습이 미야자키식 유토피아라면, 기계 문명의 편에서 자연을 공격하는 인간의 모습은 미야자키식 디스토피아. 미야자키의 환경론적 세계관이 가장 많이 반영된 작품은 단연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사진)다.
이 영화는 지브리의 첫 작품으로, 전쟁으로 환경이 오염되어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미야자키가 이 영화를 구상할 무렵, 일본은 고도 경제 성장으로 공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미야자키는 "일본 미나마타 항구에서 발생한 수은 오염으로 물고기 떼가 죽은 사건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Flight 비행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늘을 나는 장면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에서 중력은 가볍게 무시된다. 구름의 묘사가 극대화되거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파란 하늘이 단골로 등장하는 것도 비행에 대한 열망 때문. 미야자키의 가족은 '미야자키 항공'을 운영하며 제로 전투기의 부품을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미야자키는 비행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키웠다.
지브리의 초호화 대작 [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사진)는 비행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 [걸리버 여행기] 3장에 등장하는 '하늘 위에 떠다니는 섬'을 참고로, 숨 막히는 공중전을 재현해냈다. 미야자키의 익숙한 플롯인 '소년과 소녀 모험 활극'의 결정판인 동시에, '수직의 미학'이라 평가 받은 걸작이다.
Goro Miyazaki 미야자키 고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남. 건축가로 일하다가 애니메이터로 전향했고, 지브리 미술관의 관장을 겸했다. 현재 지브리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는 것인데, 미야자키 고로(사진) 역시 확실한 후계자 감은 아니라는 평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초부터 가족 중심의 애니메이션 왕국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 아들이 스스로 애니메이터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야자키 고로의 데뷔작 [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2006)은 전설적인 원작에도 불구하고, 기대치에 한참 떨어진 작품. 이 영화는 원래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출을 맡기로 했으나, [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제작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원작자 어슐러 K. 르 귄을 오랫동안 설득하는 과정에서 지쳐 있었던 것도 사실. 이후 그는 아들이 이 대작을 책임질 만큼 준비가 되었는지를 두고, 한동안 트러블을 겪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으니, 미야자키 고로의 이후 작품이 더 중요해진 셈이다.
Howl's Moving Castle 하울의 움직이는 성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대작. 마법에 걸려 90세 노인이 된 소녀 '소피'가 엉뚱한 마법사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나이를 뛰어넘은 마법 같은 러브 스토리가 인상적. 다이애나 윈 존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역시나 원작에 충실하기보다 미야자키의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됐다. 이를테면 비행이나 자기 구원, 아름다운 자연 풍경, 귀여운 생명체, 산업 사회의 활발한 노동력, 전쟁 등 익숙한 주제 의식이 담긴 것.
특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깊은 분노를 느꼈던 미야자키는, 하울을 통해 날카로운 반전 메시지를 담았다. 한국에서는 전국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흥행작.
Isao Takahata 다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지브리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감독. 도에이 영화사에 근무하던 시절, 두 사람은 노동 조합 활동을 함께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이후 다카하타가 연출한 [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1968)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메인 스태프로 발탁되면서, 돈독한 동료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의 작업 스타일은 확연히 다른데, 개성을 최대한 배려해 간섭하지 않았던 것이 오랜 파트너십의 비결이라고. 다카하타의 스타일은 다큐멘터리 수법을 사용해, 일상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
반딧불의 무덤](1988)이나 [
추억은 방울방울](1991)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 사진) 등이 객관성이 두드러진 대표작. 그 중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내레이션을 강하게 부각시켜 '공상적 다큐멘터리'로 불리기도 했다.
Joe Hisaishi 히사이시 조
지브리 영화에 마술을 불어넣는 단골 음악가 히사이시 조(사진). 기타노 다케시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릴 때, 당연히 따라붙는 이름이다. 1981년부터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지브리의 음악을 담당한 것은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때부터인데, 그 이전까지만 해도 히사이시 조는 미니멀리즘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이후에는 동요부터 오케스트라, 실험 음악 등 다양한 사운드를 동원해 시각적 아름다움을 한 차원씩 높였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높이 평가 받는 이유는, 이미지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가 창조한 영화음악은, 고요한 자연의 소리마저 그대로 살리면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Kiki's Delivery Service 마녀 배달부 키키
13살이 된 소녀 키키가 마녀 수업을 받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페미니스트'란 수식어를 달아준 작품이다. 고풍스런 유럽식 풍경과 시원한 비행 장면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사춘기 소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늘을 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키키는,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힌다. 낯선 도시에 적응해야 하며, 식료품을 사는 등 의식주에 관련된 모든 것까지 홀로 해결해야 한다. 마녀이지만 결국 평범한 소녀에 지나지 않는 키키. 이 영화는 10대 소녀들이 흔히 겪는 독립에 대한 두려움, 성장통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지브리 대작들에 비해 극적인 맛은 확실히 떨어지지만, 일상이 주는 가치를 온화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Lupin III: Castle of Cagliostro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모리스 르블랑의 인기 캐릭터 '루팡'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루팡 3세] 시리즈의 두 번째 극장판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편 데뷔작이다. [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은 칼리오스트로 백작의 성을 배경으로 왕녀 클라리스를 구하고 위조 지폐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모험을 담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루팡 3세] TV 시리즈에서 익힌 경험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유쾌한 활극 한 편을 완성했다. 그 결과 루팡을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애니메이션 중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했고, 무명의 미야자키는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나 [루팡] 시리즈의 원작 팬들은 이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원작의 시니컬하고 바람기 다분한 루팡 캐릭터에 비해, 미야자키가 창조한 루팡은 지나치게 선한 감이 있었기 때문.
Mythology 신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저자 헬렌 매카시는 미야자키를 "애니메이션계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라고 표현했다. 단순히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것 이상으로, 신화적 시각과 인간의 감수성을 절묘하게 결합했다는 것이다. 사실 [
붉은 돼지]나 [
마녀 배달부 키키] 등의 작품을 통해, 미야자키 작품의 특징은 '무국적성'으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한편 [
이웃집 토토로](1988)나 [
모노노케 히메] 등을 보면, 그의 작품이 일본 신화에 기반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미야자키 작품의 내러티브가 힘을 발휘하는 것도, 저변에 신화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적인 것을 가장 시각화한 작품을 꼽자면 단연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사진)이다. 미야자키 버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표현되는 이 작품에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요괴나 신들을 모시는 사당 등이 상당수 등장한다. 심지어 신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기괴한 장면은 일종의 '마츠리'(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본의 축제)로 해석되기도 한다.
Nausicaa of the Valley of the Wind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미야자키 하야오를 흥행 보증수표로 만들어준 작품. 미야자키가 아니메 전문 잡지 <아니마주>에 14년 동안 연재한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인간의 이기심, 기계 문명이 일으킨 환경 오염, 자연과의 상생 등 묵직한 메시지가 일으킨 반향이 제법 컸는데, 그만큼 미야자키는 이 작품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하도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작품이다 보니, 미야자키 스스로도 "차라리 이 작품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푸념하기도 했다고. 이 거대한 전투 영화는 바람계곡 족장의 딸, 나우시카가 환경 오염으로 황폐해진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우시카의 희생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점에서, 나우시카를 '메시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Osamu Tezuka 데츠카 오사무
'아톰의 아버지'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츠카 오사무. 그가 일본 만화 산업에 끼친 영향은 아주 지대한데,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학창 시절을 [우주소년 아톰]을 즐겨 읽으며 보냈다. 그러나 1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미야자키는 데츠카 오사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야자키가 스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것은, 도에이 영화사에 취직하며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데츠카 오사무를 강력하게 비판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데츠카 오사무가 '리미티드 기법' 즉, 1초당 사용되는 셀의 수를 대폭 축소하면서 제작비를 낮췄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애니메이터들은 박봉에 시달렸고, 과로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처럼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의 노동 착취 문제가 불거지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데츠카 오사무에게서 '신의 손'을 봤을 때 나는 그와 결별했다]는 에세이를 쓰며 맹렬하게 비난했다.
Princess Mononoke 모노노케 히메
제작비 20억 엔, 제작 기간 3년, 1,300만 관객 동원, 일본에서만 108억 엔 수익을 올린 어마어마한 히트 상품.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최초의 시대극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일본에 철기 문화가 도래한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숲을 지키려는 세력과 문명의 대결을 그렸다. 일본 고대의 생활상과 샤머니즘, 원시림 등이 장대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사지가 잘려나가고 선혈이 낭자한 표현 수위로도 화제가 됐다.
이 영화가 발표될 당시, 일본은 경제 불황과 고베 대지진, 옴진리교 사건 등으로 극도의 불안에 시달렸다. 미야자키는 이런 위기 의식을 반영해 [
모노노케 히메]를 만들었다. 일본에서 [모노노케 히메]가 개봉할 당시, 관람 인파로 영화관 앞이 혼잡해지자 경찰까지 동원되는 소동을 겪었다고.
Quotation of Hayao Miyazaki 미야자키 하야오 어록
"나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관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는 다음 50년의 변화에 대하여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류가 어리석고 위험한 짓을 더욱더 많이 행하고 있어서 인류의 비극과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위기를 이겨낸다면, 우리는 더 좋은 방안을 찾게 될 것이고, 문제는 개선될 것이다."
"나는 독선을 내세우는 사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의 독선, 이슬람의 독선, 이런저런 윤리 집단의 독선, 그린 피스의 독선, 기업가의 독선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하나같이 그들만의 기준에 맞도록 다른 사람들을 억압할 뿐이다."
"수작업을 하다 보면 선이 약간 휘거나 뒤틀릴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선들이 가끔은 의도하지 않은 감각적인 동작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런 역동성이 좋다."
"본질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기뻐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들의 1시간은 어른의 10년과 맞먹는다. 어렸을 때 인상 깊게 본 작품은 어른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남는다.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Retirement 은퇴
[
모노노케 히메]를 완성한 후,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시적으로 은퇴 선언을 했다. 지브리의 모든 제작 과정을 다 체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집필과 디자인까지 병행하는 것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몸이 받쳐주지 않는 게 문제였다. 특히 시력 저하는 애니메이터로서 커리어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당시 지브리에서는 [
귀를 기울이면](사진)의 곤도 요시후미가 지지를 받으며 후계자로 떠오르면서, 어느 정도 든든한 상태였다. 그러나 곤도가 1998년 1월21일, 동맥 파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지브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결국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던 미야자키가 현장에 복귀했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브리를 책임질 후계자를 양성하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Spirited Away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 선언 후 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무렵, 그는 친구의 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바로 그 소녀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작품인데, 이는 현실에서 영화의 소재를 얻는 미야자키 특유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혹은 [오즈의 마법사]의 일본 버전으로 표현되는 이 영화는, 요괴와 도깨비들의 세상에 빠진 소녀 치히로의 모험을 따라간다.
일본적인 색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작품이지만, 동서양의 경계를 뛰어넘어 전 세계 관객들로부터 보편적인 찬사를 얻었다. 서구 평론가들은 그 해 베스트 영화 리스트에 주저 없이 올려놓기도. 흥행 돌풍을 일으킨 것은 물론, 2002년 베를린영화제 금곰상과 오스카 장편애니메이션상까지 챙겼다. 그러나 미야자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의미로,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The Borrower Arrietty 마루 밑 아리에티
영국 동화작가 메리 노튼의 소설 [마루 밑 바로우어즈]가 원작. 마루 밑 세계에 10센티미터의 소인들이 살아간다는 발상이 독특하다. 14살 소녀 아리에티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작은 주인공이지만, 호기심이 많고 용감하다는 점에서 지브리 히로인들과 일맥상통한다. 인간과 똑같은 모양새를 한 소인들의 집,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자연, 서정적인 시골 풍경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하지만 [
마루 밑 아리에티]가 마냥 화사하고 낙천적인 작품만은 아니다. 심장병을 앓는 소년과 종족 멸종 위기에 놓인 소녀. 이 유한한 존재들끼리의 만남은, 불안하고 서글픈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젊은 시절 원작 소설을 읽고 매료되어 영화화 계획을 세웠다고 하는데, 더불어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것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라는 젊은 감독이다. 미야자키는 이 영화에 아낌없이 칭찬했는데, 이것을 두고 지브리의 새로운 후계자가 나타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돌고 있다.
Utopia 유토피아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주인공의 신분을 높게 설정하지 않는다. 이는 젊은 시절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되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력 때문이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바람계곡이나 [
모노노케 히메]의 '타타라 제철 집단', 심지어 [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공동체 안에서 함께 노동하고 도우며 살아간다. 여주인공들은 더러운 공간을 청소하고, 남성 캐릭터들은 농부나 선원 등 프롤레타리아 성향이 다분한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이처럼 지브리 세계의 인물들은 자연과 상생하며, 집단 공동체를 이룬다.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간만이 신에 의해 선택된 최고의 존재라는 관념에 넌더리가 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를 증명하듯 지브리 작품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 편견 없이 손을 내미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
벼랑 위의 포뇨](사진)의 인간과 물고기 소녀, [
마루 밑 아리에티]의 소인과 인간처럼.
Voice 목소리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어느새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이 되었다는 증거는 바로 쟁쟁한 목소리 연기 출연진이다. 다음은 미국 개봉시 더빙에 참여한 배우들이다. [
벼랑 위의 포뇨]의 케이트 블랜챗, 맷 데이먼, 리암 니슨. [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크리스천 베일(하울. 사진), 진 시몬스(할머니 소피), 로렌 바콜(황무지 마녀), 빌리 크리스털(캘시퍼). 특히 로렌 바콜과 미야자키 하야오는 서로 오랜 팬이었다가 목소리 출연으로 인연을 맺게 됐으며, 크리스천 베일은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감동을 받은 후 즉시 목소리 출연을 수락했다고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픽사의 수장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절친한 친구 존 래세터가 더빙 과정을 감독했다. [
모노노케 히메]에는 질리언 앤더슨, 클레어 데인즈, 미니 드라이버, 빌리 밥 손튼이 참여했고, [
마녀 배달부 키키]는 커스틴 던스트가 '키키'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또한 [
천공의 성 라퓨타]가 2003년 재개봉할 당시에는 안나 파킨이 '시타' 역을 맡았고, [
붉은 돼지]의 '돼지' 목소리는 마이클 키튼과 장 르노가 각각 영어와 프랑스어 버전을 맡았다.
Walt Disney 월트 디즈니
지브리의 작품이 해외에서 상영되기 위해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삭제와 편집 금지. 한때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30분 가량이 삭제되고 캐릭터의 이름이 바뀌면서 주제 의식이 변질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대단히 분노했고, 이후 일본어 대사의 정확한 번역과 어떤 장면도 삭제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후에 미라맥스의 공동 회장 하비 와인스타인이 [
모노노케 히메]를 좀더 상업적으로 편집할 것을 제안했을 때도, 지브리 측에서는 "노 컷!"이라는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
이 원칙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배급사가 바로 월트 디즈니다. 지브리는 1996년부터 월트 디즈니와 업무를 제휴하면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대로 된 버전으로 미국에 소개할 수 있었고, 이후로도 꾸준한 배급 파트너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우정으로 맺어진 결과일까? [
토이 스토리 3](2010, 사진)에 지브리의 간판 스타, 토토로가 우정 출연한 걸 다들 확인하셨는지?
(e)Xternal Works 그밖의 작업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 외에도, 다양한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캐릭터 사업은 물론, 뮤직비디오와 다큐멘터리, CF 등의 제작도 겸해온 것.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차게 & 아스카'의 타이틀곡을 프로모션하기 위해 만든 뮤직비디오 [
온 유어 마크](1995, 사진)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었던 차게의 의뢰로 만들어졌으며, '차게 & 아스카'의 전국 순회 콘서트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온 유어 마크]는 어느 미래, 두 경찰관이 추락한 천사를 구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 두 경찰관은 곧 '차게'와 '아스카'를 표현한 것. 희망의 메시지를 실험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Young Woman 젊은 여성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여성 캐릭터를 사랑한다는 점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 [
미래소년 코난]의 '라나' 캐릭터로 출발해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중성적인 히로인, [
마녀 배달부 키키]의 사춘기 소녀, 그리고 최근작 [
마루 밑 아리에티](사진)의 씩씩한 소녀 아리에티까지, 지브리의 작품에서는 늘 여성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는 남성으로부터 정복당해온 여성과, 문명으로부터 고통 받는 자연이 닮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남자 주인공으로는 관습적인 이야기밖에 만들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남자 주인공으로는) 결국 나치, 즉 누가 보더라도 악한 세력인 어떤 적과 맞서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담으로, 지브리 스튜디오에는 여자 화장실이 훨씬 더 넓다는데, 이 역시 페미니즘의 발로?
Zillions of Product 엄청나게 많은 상품들
지금 미야자키 하야오란 이름은 '성공한 영화감독' 이상의 어떤 의미를 지닌다. 일본 내에서는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국민 감독'으로 불리며, 사상가이자 시인, 철학자로 통한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는 애니메이션의 최고 브랜드다. 특히 지브리의 인장이 박힌 캐릭터 사업은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그중 [
이웃집 토토로](사진)는 지브리를 먹여 살리는 '스테디셀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웃집 토토로]가 개봉할 당시, 지브리는 토토로 인형의 예상치 못한 판매 수익으로 [
마녀 배달부 키키]의 제작비를 조달할 수 있었다는데, 그건 출발에 불과했다. 이후 토토로는 세계 어딜 가도 만날 수 있는 황금알이 됐다. 토토로 봉제 인형, 토토로 화보집, 토토로 손수건, 토토로 시계, 토토로 액자…. 앞으로 또 어떤 상품이 만들어질지, 팬들의 관심은 계속된다.
첫댓글 미야자키가 전쟁을 소재로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제국주의자라는 말이 떠돌긴 했었는데...솔직히 그다지 깊히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러면 그렇지...반일감정이 너무 앞선 나머지 근거없는 루머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