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육림(酒池肉林)
술로 가득한 연못과 고기로 된 숲, 질펀한 술자리를 밀한다.
酒 : 술 주(酉/3)
池 : 못 지(氵/3)
肉 : 고기 육(肉/0)
林 : 수풀 림(木/4)
거창한 술자리를 나타내는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백약지장(百藥之長)이나 시름을 잊게 해 준다는 망우물(忘憂物) 등 술을 찬미하는 말이 많은 만큼 술자리가 파한 뒤의 모습을 말하는 성어가 많다.
술잔과 접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배반낭자(杯盤狼藉), 술잔과 산가지가 뒤섞인 굉주교착(觥籌交錯), 밤낮이 이어지는 주연 복주복야(卜晝卜夜) 등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저리가라 하는 말이 술로 연못을 이루고(酒池), 고기로 숲을 이룬다(肉林)는 뜻의 이 성어다.
호사스러운 술잔치를 이를 때 일상에 많이 쓰이는 이 말이 폭군의 대명사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에게서 나왔으니 규모로 다른 말을 압도한다.
주왕은 앞서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桀王)과 함께 걸주(桀紂)로 칭하지만 술로 가득 찬 연못과 고기안주를 나무마다 매달아 숲을 이룬 이 성어만으로도 향락에 더 앞선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방탕한 주연이었기 때문에 장야지음(長夜之飮)이라고도 한다. 사기(史記)의 은본기(殷本紀)에 나온다.
주왕이 처음부터 이렇게 방탕생활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초기엔 지용을 겸비하여 전쟁에 나서기만 하면 승리를 거뒀다.
주왕이 유소씨(有蘇氏)를 토벌했을 때 전리품으로 얻은 달기(妲己) 라는 미녀를 얻고부터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엇이든 다 했다.
무거운 세금으로 녹대(鹿臺)라는 거대한 금고를 만들어 보화를 채웠고 간하는 신하들에겐 포락(炮烙)이란 형벌로 다스렸다.
또한 달기의 청을 받아들여 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 안주를 매단 나무로 이루어진 숲을 만들어 수많은 알몸의 남녀들이 그 안에서 서로 쫓게 하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以酒爲池(이주위지)
懸肉爲林(현육위림)
使男女裸(사남녀라)
相逐其間(상축기간)
爲長夜之飲(위장야지음)
꼭 이렇게 질탕한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호화판인 잔치는 곧잘 술 못에 고기 숲의 이 성어에 비유된다.
술을 백약의 으뜸이라 여기는 사람도 다수이고 술 취한 사람의 행위를 너그럽게 봐 주는 풍조도 겹쳐 건강을 해치는 사례도 많다.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 등에는 특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사기(史記)에는 紂(주)에 대해 말하면서,‘특히 달기(妲己)라는 여자를 사랑해서 그녀의 말이라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중략) 그는 사구(沙丘)에다 큰 유원지와 별궁을 지어 두고, 많은 들짐승과 새들을 거기에 놓아길렀다. (중략)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든 다음 남녀가 벌거벗고 그 사이를 서로 쫓고 쫓기고 하며 밤낮 없이 계속 술을 퍼 마시고 즐겼다’라고 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桀(걸)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고기는 산처럼 쌓이고, 포는 숲처럼 걸려 있었으며, 술로 만든 못에는 배를 띄울 수가 있었고 술지게미가 쌓여서 된 둑은 십 리까지 뻗어 있었다. 한번 북을 울리면 소가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이 삼천 명이나 되었다. 그것을 보고 말희(末喜)는 좋아했다’는 것이다.
주지육림(酒池肉林)
술로 만든 못과 고기로 이룬 숲이라,
극히 호사스럽고 방탕한 술잔치를 비유하는 말이다.
酒 : 술 주
池 : 못 지
肉 : 고기 육
林 : 수풀 림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 걸(桀)은 황음무도(荒淫無道)하고 탐욕스러웠으나 남다른 힘과 지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하나라를 망하게 한 여인이 있었는데, 바로 말희(妺喜)라는 여자이다.
걸왕(桀王)이 한창때, 유시(有施)씨의 소국(小國)을 공격했다. 유시씨는 대항할 힘이 없어 많은 진상품을 바치고 항복했다. 그 진상품 가운데 말희라는 여인이 끼어 있었다.
걸왕은 말희에게 한눈에 반해 빠지고 말았다. 말희는 궁궐을 다시 짓게 하고, 주지육림을 만들어 질탕하게 놀면서 걸을 부패하게 만들었다. 말희는 한 가지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을 꾸미어 하 왕조의 국력을 기울게 만들었다.
걸왕의 이런 행태를 보다 못 한 현신 관룡봉(關龍逢)은 눈물을 흘리면서 간하다가 참수되고 말았으며, 선관(膳官; 궁궐의 주방을 맡은 관리) 이윤(伊尹)은 충간을 듣지 않는 걸왕을 버리고 당시 상(商)나라의 수도였던 박(亳)으로 도망쳐 탕왕(湯王)을 섬겨 상나라 창업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당시 탕왕은 덕을 갖춘 군장으로 제후들의 협력을 얻어 국력을 확장해 가고 있었다. 걸왕의 횡포가 날로 자심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그를 떠났다는 것을 안 탕왕은 드디어 걸왕 타도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걸왕은 명조(鳴條)의 싸움에서 대패하여 달아나다가 남소(南巢)에서 죽었다.
이로써 초대왕 우(禹)로부터 제17대 왕 걸까지 약 500년에 걸쳐(BC22세기∼BC17세기) 존재하였던 중국 최초의 왕조였던 하나라는 문을 닫고 말았으며, 탕왕의 상나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에 나온다.
그런데 상나라(殷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도 하나라 마지막 왕 걸왕의 전철을 밟고 말았다. 주왕은 자질이 뛰어나고 식견이 높았으며, 두뇌가 명석하여 남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총명할 뿐 아니라 용력도 뛰어나 맹수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뛰어난 체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자질을 덕을 쌓는 데 쓰지 않고, 자만에 빠져 신하들이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뛰어난 입담으로 자신의 비행을 합리화하거나 덮어 버렸다. 그는 천하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한 주색과 향락에 대해서도 아주 호탕하여 달기(妲己)라는 여인에게 빠지고 말았다.
달기는 유소(有蘇)씨의 딸로서, 일찍이 주왕이 유소씨를 토벌했을 때 전리품으로 획득한 미녀였다. 주왕은 달기를 얻고 아주 기뻐했으며, 달기의 아름답고 요염한 자태에 빠져 그녀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했다.
주왕은 달기가 원하는 대로 궁중의 음악을 더욱 관능적이고 분방한 음악으로 바꾸고, 수도 조가(朝歌)에 녹대(鹿臺)라는 거대한 금고를 만들어 무거운 세금으로 그 금고를 채웠으며, 거교(鉅橋)에 곡식 창고를 세워 곡식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사구(沙丘)의 이궁(離宮)을 더욱 확장하여 그 안에 길짐승과 날짐승을 놓아길렀다. 그는 귀신에 대해서도 오만하고 불경했다. 주왕은 또한 달기의 청을 받아들여 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 안주를 매단 나무로 이루어진 주지육림을 만들어 수많은 알몸의 남녀들이 그 안에서 서로 쫓게 하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益廣沙丘苑臺, 多取野獸飛鳥置其中. 慢於鬼神.
大聚樂歡於沙丘, 以酒爲池, 懸肉爲林,
使男女裸相逐其間, 爲長夜之飮.
불평을 하는 백성들에 대한 공포정치의 일환으로 불구덩이 위에 기름을 칠한 구리 기둥을 걸어 놓고 그 위를 걷게 하는 포락(炮烙)의 형(刑)을 시행하였다.
당시 은(殷) 왕조에는 천자의 정치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으로 서백 창(西伯 昌; 후의 周文王), 구후(九侯), 악후(鄂侯)가 있었다.
구후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어 주왕의 부인이 되었는데 주왕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구후도 죽임을 당하여 그 시체가 젓으로 담가졌다. 악후가 이를 간(諫)하다가 역시 죽임을 당하고 시체는 포(脯)로 만들어졌다.
서백 창은 이를 듣고 탄식하다가 유리(羑里)의 옥에 갇히고 말았다. 서백의 가신들이 주왕에게 미녀와 재물을 바치고 그를 석방시켰다. 서백은 자신의 영토의 일부인 낙서(洛西)의 땅을 바치고 포락의 형을 면제받은 후, 자기 땅으로 돌아갔다.
충신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주왕을 간하였지만 대부분이 죽음을 당하거나 스스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왕자 비간(比干)은 간하다가 심장을 갈기갈기 찢겼으며, 기자(箕子)는 옥에 갇혔다. 주왕은 이 밖에도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가르고 뼈가 시려 강을 건너지 못하는 노인의 다리를 자르는 등, 포악한 짓을 자행하였다.
서백 창이 죽고 그의 아들 발(發)이 그 뒤를 이었으니, 그가 바로 주(周)나라의 공식적인 초대 왕인 무왕(武王)이다. 무왕은 아버지 서백 창을 문왕으로 추증하고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을 사부로 삼아 민심을 끌어 모으고 군대를 정비하여 포악한 주왕을 응징하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갔다.
그리고 때가 되자 무왕은 주왕을 멸하기 위해 동쪽을 향해 진군을 계속하여 은의 교외인 목야(牧野, 하남(河南) 기현(淇縣) 서남)에서 진을 쳤다. 주왕도 70만의 병력을 동원해서 목야로 나왔다.
하지만 주왕의 폭정에 시달리던 은나라 대부분의 군대는 무왕의 토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으므로 항복하지 않으면 주나라 군대에 가담해 버렸다. 은나라 군대는 일패도지(一敗塗地)하고 말았고, 주왕은 목야에서 도망쳐 수도 조가에 있는 녹대 위로 올라가 불을 지른 후, 보석으로 장식한 옷을 입고 그 속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사기 은본기(殷本紀)와 사기 주본기(周本紀)에 나오는데, 하나라의 걸왕과 은나라의 주왕이 각각 말희와 달기에 빠져 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 안주를 매단 나무로 숲을 만들어 즐겼다는 말에서 주지육림(酒池肉林)이 유래했다.
酒(주)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닭 유(酉; 술, 닭)部와 水(수; 액체)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어떤 명 아래에 쓰이어) 술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용례로는 술을 마시며 즐겁게 노는 간단한 잔치를 주연(酒宴), 시골의 길거리에서 술이나 밥 따위를 팔고 또 나그네도 치는 집을 주막(酒幕), 술을 따라 마시는 그릇주배(酒杯), 술 친구를 주붕(酒朋), 술을 마시며 노는 자리를 주석(酒席), 술이 못을 이루고 고기가 수풀을 이룬다는 주지육림(酒池肉林), 주량은 체구의 대소에 관계없음을 주유별장(酒有別腸), 술과 음식을 축내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주대반낭(酒袋飯囊) 등에 쓰인다.
池(지)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둘러 싸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也(야)로 이루어졌다.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못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못 택(澤), 못 당(塘), 못 소(沼), 못 연(淵), 불을 윤(潤)이다. 용례로는 쇠로 만든 성과 끓는 물을 채운 못이라는 금성탕지(金城湯池), 술이 못을 이루고 고기가 수풀을 이룬다는 주지육림(酒池肉林), 연못에 사는 물고기의 재앙이라는 지어지앙(池魚之殃), 재앙이 연못 속 고기에 미친다는 앙급지어(殃及池魚), 용이 때를 만나면 못을 벗어나 하늘로 오르듯이 영웅도 때를 만나면 세상에 나와 큰 뜻을 편다는 비지중물(非池中物) 등에 쓰인다.
肉(육)은 상형문자로 신에게 바치는 동물의 고기의 썬 조각, 俎(조) 따위의 글자에 포함되는 夕(석) 비슷한 모양은 肉(육)의 옛 자형(字形)이지만 나중에 月(월)로 쓰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것을 日月(일월)의 月(월; 달)과 구별하여 月(육달월部)라 부른다. 육이란 음은 부드럽다의 뜻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용례로는 고기의 맛을 육미(肉味), 육체에 대하여 과하는 형벌을 육형(肉刑), 육체에서 풍기는 느낌을 육감(肉感), 고기가 많이 있는 호사한 모양을 육림(肉林), 적진에 돌진 육박하는 일을 육탄(肉彈), 육탄이 되어 싸우는 전투를 육탄전(肉彈戰), 마주 덤벼 돌격하는 싸움을 육박전(肉薄戰),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하는 소를 육우(肉牛), 육식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육식가(肉食家) 등에 쓰인다.
林(림/임)은 회의문자로 나무 목(木; 나무)部를 둘 겹쳐 나무가 많은 수풀을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무 목(木), 수풀 삼(森), 나무 수(樹)이다. 용례로는 산과 숲을 산림(山林), 나무가 많이 우거져 있는 곳을 삼림(森林),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깊은 숲을 밀림(密林), 푸른 숲 속에 사는 호걸이라는 녹림호걸(綠林豪傑), 푸른 숲이라는 뜻으로, 도둑의 소굴을 이르는 녹림(綠林), 화적이나 도둑을 달리 이르는 말 녹림객(綠林客), 대나무의 숲의 일곱 현인이라는 죽림칠현(竹林七賢), 매실은 시기 때문에 이야기만 나와도 침이 돌아 해갈이 된다는 매림지갈(梅林止渴)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