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15-12-21 22:29 조회 : 1309 |
| | | 한 번쯤 아내와 마주해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아내의 손끝에 시선이 머물렀다면 아내의 손이 남과 다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아내의 손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일부러 숨기려 숨긴 것이 아니라 보고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체 그렇게 지나는것을 상대에 대한 배려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아내의 손에 얽힌 사연을 털어놓음으로써 세상 밖으로 드러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슴에 묻어만 두고 지내기엔 살아온 세월이 간단치가 않다. 아내의 입장에서야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겠으나 시련도 추억이라 했으니 이 쯤에서 지난 이야기를 반추한들 무슨 큰 흉이 될까. 약혼반지를 맞추러 가기로 한 날, 다방에 마주앉은 여자의 입에서 반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는 소리가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서른다섯 늦나이에 이제 겨우 제 짝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던져진 여자의 한 마디는 나에겐 그대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불길한 예감과 함께 잠시 침묵이 흐른 뒤였다. 여자가 내민 것은 가운뎃손가락 한마디가 잘려나간 자신의 손이었다. 선한 눈매에 끌려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청혼한 남자에게 여자의 손이 왜 그렇게 낯설어 보였는지 일수가 없었다. 세상 풍파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앳된 여자에게도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숨어있다는 것일까. 궁금증이 고개를 드는데 여자는 담담히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했다. 너나없이 어렵던 시절. 여자는 이른바 주경야독으로 학교에 다녔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 5남매의 장녀인 여자로서는 일찌감치 직장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금속제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각종 쇠붙이가 잘려나가는 작업환경이다 보니 위험 요소는 어디든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 날 일이 꼬이느라 그랬는지 자기 분야도 아닌 남의 일에 불현듯 호기심을 느낀 것이 화근이었다. 한참 돌아가는 기계에 여자가 무심코 손을 댄 순간이었다.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사람들이 달려오고 피 흘리는 양손을 감싸 쥐고 나서야 자신의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희미하게 깨달았다.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감과 함께 그나마 가졌던 꿈도 접어야 한다는 생각이 잠깐이었지만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신기한 것은 그 와중에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만은 또렷이 떠올랐다는 점이다. 야간 수업이 늦게 끝난 밤, 아버지는 언제나 동구 밖 정자나무 아래에 자전거를 받치고 기다리셨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딸의 움직임만은 용케 찾아내 손을 내밀던 아버지. 뙤약볕 아래서 밭고랑을 일구던 어머니의 수심에 찬 얼굴도 스치고 지나갔다. ‘뭐라고 말하지? 뭐라고 말하지?’해를 꼴딱 넘기면서 놀던 아이가 늦은 귀갓길을 걱정하듯 여자는 벌어진 상황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것만 내내 마음을 졸였단다. 말을 마친 여자가 쓸쓸히 웃으며 한 마디 보탰다. 이런 손에 반지를 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늦은 밤, 아내의 손을 들여다본다. 손톱 없는 손끝이 뭉툭하다. 가늘고 흰 손. 잘려나간 손마디만 아니었다면 남들처럼 예뻤을 손이다. 의학 기술이 지금처럼만 발달했어도 한쪽 손가락은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던 언젠가 아내의 말이 귓가에 쟁쟁하다. 한창 민감했을 나이에 세상 원망인들 왜 없었을까.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두려움에 처음엔 자포자기 심정으로 지냈다는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신기하게도 결혼과 함께 모든 것을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여자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치 않았다. 홈패션 일에서부터 우유 배달, 회사식당 조리원, 당시로는 이름도 생소했던 베이비시터 등, 지금까지 거쳐 온 일만 대충 세어도 여덟 가지가 넘는다. 남이 보면 억척스러우리만큼 일에 매달렸다. 넉넉지는 못해도 꼬박꼬박 쥐여 주는 남편의 월급봉투가 있었음에도 무슨 까닭인지 한시도 손 놓고 지내본 적이 없다. 함께 숫자를 나타내는 수신호를 주고받을 때가 있다. 아내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면 당연히 둘인 줄 알면서도 ‘하나 반?’하고 내가 묻는다. 온전히 두 손가락을 다 펴 보이지 못하는 아내의 손은 정상인의 손에 비하면 분명 결격 사유가 있지만 한 가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아내의 손이야말로 내겐 더없이 소중하고 위대한 손이다. |
| 윤행원 | 15-12-22 12:27 | | 강승택 선생님, 아내의 손...잘 읽었습니다. 옛날의 아픈 추억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그리고 아내의 건실한 삶의 역사를 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올올이 배여 있는 남편의 감사의 마음을 봅니다. 이 글 속에 두 분의 모든 陰陽理致가 들어있어 감동과 함께 존경심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강 선생님은 훌륭한 수필가임에 틀림없습니다. | |
| | 강승택 | 15-12-23 18:10 | | 윤선생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칭찬까지 얹어주시니 힘을 얻습니다. 나이들면서 가족, 특히 아내에 의지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 기회되면 따끈한 쐬주한 잔 올리고 싶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
| | 김권섭 | 15-12-24 07:08 | | 강승택선생님, 인자하시고 속 깊으신 그 마음 흠모합니다. 인간이란 살아 갈 수록 외모보다는 마음씨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옛날 조상님들은 선도 보지 않고 가문과 말만 듣고 결혼해도 이혼하지 않고 내조 잘하고 자손들의 귀감이 되지 않았습니까! 부인께서 생활력이 강하시고 강선생님이 그 토록 좋아하시니 천생연분 한쌍의 원앙입니다. 부부가 늘 건강하시고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
| | 강승택 | 15-12-24 16:39 | | 김선생님, 감사합니다. 어제 어느 방송에서 들은 내용입니다만 출연자 중 한 분이 그러더군요. 결혼부부 가운데 90%는 살면서 한 번쯤 이혼을 생각했을 거라고~. 글쎄요. 순간적으로야 무슨 생각인들 못하겠습니까만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면 어찌 쉽게 매듭을 쉽게 풀수 있을까요. 김선생님이나 저나 이제 오로지 믿을건 마나님뿐, 심기 건드리지 말고 충성을 다 합시다요!. ㅎ~ | |
| | 이방주 | 15-12-24 13:55 | | 강승택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감동이었지만 "아내의 손"은 더 크고 따뜻한 감동을 안겨 주셨습니다. 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부족한 것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오히려 훌륭한 삶의 표상인 신체적 부족을 부끄러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의 모든 것을 깊이 사랑하시는 그리고 그 사랑이 글자마다 스며있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 자신을 뒤돌아 봅니다.
감사합니다. | |
| | 강승택 | 15-12-24 16:51 | | 이방주 선생님, 안녕하시지요?이제 쯤 퇴직후 생활도 많이 안정되어 선생님만의 색깔을 지니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글, 공감하신다니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아내의 손'은 지나온 부부의 연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많이 울컥해 오는 것을 삼키면서 쓴 글입니다. 선생님,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크리스 마스 인사 곁들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
| | 김용순 | 15-12-25 08:10 | | 강선생님, 그까짓 손가락 한마디 쯤이야 무슨 대수겠습니까. 아내의 손가락이 있는지 없는지모르고 살고 있는데.......... 몸에 난 작은 상처 정도 이겠지요. 그보다도, 더 강한 생활력과 가정을 위한 예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아무튼 선생님은 백번 장가 잘 가셨네요. 사모님 덕분에 오늘의 영광이 있으니..........요즈음 많이 바쁩니다. | |
| | 강승택 | 15-12-25 13:41 | | 김선생님, 감사합니다. 부산 집은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가보지요? 한 때는 함께 막걸리 잔도 어지간히 했는데 이젠 그나마 기회도 없으니 허전하네요. 부디 남쪽 포구 고향 바다에서 그동안 못다 이룬 꿈 실현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 |
| | 류인혜 | 15-12-25 09:26 | | 강승택 선생님, 수필의 진수를 맛보는 성탄절입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못박힌 손을 생각하며 어려운 시절을 지내왔는데 이제 사모님의 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진심을 알아주는 바깥양반의 사랑이 너무나 커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좋은 수필 잘 읽었습니다. | |
| | 강승택 | 15-12-25 13:45 | | 류인혜 선생님, 감사합니다. 독실한 기독교도이신 류선생님께 오늘은 남다른 의미가 있으시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성탄절을 축하 드립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격려의 말씀까지 주시니 저에겐 또 다른 의미의 성탄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 |
| | 김창식 | 15-12-31 19:11 | | 세밑에 눈자위를 붉히게 하는군요, 강승택 선생님! | |
| | 강승택 | 16-01-01 18:13 | | 김선생닠, 오랫만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어쩌면 온 몸을 불사르듯 글 쓰기에 열심이신 김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 |
| | 임병식 | 16-01-01 05:47 | | 너나없이 어렵던 시절, 생활전선에 나섰다가 손마디 하나를 잃은 사모님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신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상처로 느끼지 않고 여유롭게 바라보는 마음이 더 없이 아름답습니다. 생활력 강하신 사모님과 함께 여생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작품을 흐뭇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 |
| | 강승택 | 16-01-01 18:16 | | 임병식 선생님, 제가 작가회에 입회했을 당시 임선생님이 회장님이셨기에 늘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선생님,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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