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험 해 보신적 있으시죠?
무언가를 엄청 열심히 하다가 막상 끝나고 나면 허전하면서도 조금 더 열심히 할걸.. 하는 막연한 후회감? 같은거…
1년 4개월동안 여름방학 없이 여기 2년재 대학을 마쳤습니다. 오늘 학교에 가면 내일 집에 오고 친해진 새벽 청소부 아주머니들과 경비 아저씨들, 주말에 열려있는 학교 문들을 뒤로하고 3주째 그냥 집에서 먹고 자고 했더니 잡 생각만 많아 지고, 머리만 빠지네요.
20대 후반이 이렇게 흘러갑니다.
이젠 집에서 기다리시는 어머니 아버지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 보고 싶은데….
이런 생각 하신 적 있으신가요?
군대 갈 때 떨리는 목소리로 집에 전화 했었는데… 막상 어머니는 담담히 잘 갔다 오라 하시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리는…. 그렇게 2년 4개월의 생활을 마치고 한쪽 귀가 멀고 휴가 한번 제대로 못 나가 본 뒤에 집에 왔을 때 어머니 아버지께서 반갑게 맞아 주던 그 때, 심지어 자기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하던 강아지마저 잘 다녀왔냐면서 꼬리를 흔들어주며 그날만은 반겨줄때…
대단한 일 한거도 아닌데 그래도 부모님이 좋아라 하시니 나도 좋으네….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다시 사회로 던져 졌습니다…
이젠 그래도 좀 준비가 된거 같기도 한데…..
예…
접니다… 오후에 어정쩡한 인터넷이 삶의 교훈을 주는 바람에 지금 메모장에다가 적고 있는 그 사람… 담배도 사 두었겠다.. 이젠 맘놓고 적어봐야지…흣흣흣
고민거리 적을 껍니다요.
그것도 아주 길게… 안 읽으셔도 되요. 그냥 푸념하는 거니깐요. 악플을 다셔도 되지만 뭐랄까…음…
우리 얼굴도 안본 사이에 그러지는 맙시다요.
시작.
정말이지 부끄러운 학점으로 2005년 대학을 졸업하고…
왜냐면 전 경쟁이 싫었으니깐요. 미술전공을 한 것도 그 이유였는데… 경쟁에 등돌리니 경쟁은 등에다가 대검을 꼿더군요.
아실분들은 아시겠지만
2005년도엔 그래도 지금처럼 취업이 힘들지는 않았더라 기억합니다.
남들 다 가진 영어 점수도, 자격증 하나 없어도 그냥 당당했던건 미친짓이였죠. 그래도… 저 같은 놈도 희망을 가졌던 시기니…
이유야 어찌하였든 계산도 안해본 학점에 등에 칼꼿는 학점 따위 나도 눈하나 깜짝 안하겠다는 식으로 군대에 갔습니다.
이미 눈치 체신 분들을 그만 읽으려 하시겠죠…
예… 모든이의 적 ROTC..혹자는 로타리 오락실 테트리스 클럽이라고도 하더군요…
편한 간부 생활 이였습니다.
2년 4개월을 군에 있으면서 휴가를 딱 두번 나갔습니다.
한번은 일주일 동안 사격만 해서 한쪽 귀가 멀고 이명현상이 계속되어 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 훈련당일에 쓰러져서 병원간다고…
철원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인자하신 그당시 중대장님은 소대장에게 1박 2일을 허락하셨고,
안스러웠는지 우리 행보관님이 어쩔줄 몰라하시는 표정을 지으며 나중에 손꼭잡아 주시더군요…
한쪽 귀가 멀어 전투 소대장 임무가 끝나니 폐기처분 당하듯 동원사단으로 갔습니다.
나에게도 봄이 오는구나 생각했는데 동원 훈련장 관리부대라고 들어보셨나요?
예… 예비군들님께서 머무시다 간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다음에 들어오는 예비군을 정성스레 맞이하는…
훈련 부대는 잃어버린 물자는 내일 주겠다고 하고선 내일 찾아가면 다들 나몰라라 해서 기를쓰고 받아내려고
그러면 귀찮다고 가라고 발로 내동댕이 쳐 주시는….
12명의 중대원을 가지고 사단장님께서 외치는 실전 같은 훈련을 구사하며 부대 경계 근무를 계획하고 교육 훈련을 하며 동떨어진 연대에서는 왜 우리부대만 소식이 느리냐고, 386 컴퓨터로 인트라넷 메일 확인을 자주 하라며 난리를 치는… 그곳에서 휴가를 나간다는 것은 얼굴에 티타늄으로 도배를 하고 금광을 내지 않는이상 뭐…
그래도 인사과장님이 안쓰럽게 여기어 전역 전 1주일을 주시나이다…
그렇게 나갔더니 이미 결혼하자고 그랬던 아가씨도 떠나 있고, 머리카락은 각자 위치를 지키지 못하시어 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마냥 빠지시옵고..
터닝 포인트.
전역 후, 회식 할때만 말 잘 듯고 목소리가 커지는 아해들의 식성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날아오는 카드 고지서와 자주 못나와 미안하다며 질렀던 친구들의 술값에 허덕이던 중…
“아들, 오늘은 일찍 들어와” (문자를 터득하신 어머니 아들에게 단문의 강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문자 전송)
그리하여 일찍 들어간 집에는 이미 큰 강아지는 큰방에 들어가 자고있고, 제 방에 어머니와 작은 강아지는 드라마를 시청 중이였습니다.
“아들, 영어는 필수 인거 같다… 영어공부 하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그리하여 20대 중반에 해외라고는 늘 외할머니가 계신 백령도가 외국적이라 생각하며 지내던 저에게 기회가 옵니다.
근 3년의 캐나다 생활을 뒤돌아 보면 나름 개과천선 하고 열심히 살았더래요.
물론 다 제가 잘나서 그런 것도 아니요,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는 ‘아들은 원래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았어’라는 주문도 아니오, 그저 단 한가지… 못하면 열심히라도 하자는 나름의 각오였지요. 거기다가 억세게 좋은 사람운.
홈스테이에 1년을 머물면서 가끔은 꼬마 녀석 숙제도 도와 주고 원래 말이 없어서 아줌마 하는 이야기만 들어주면서 맞장구 쳐주다가 술판으로 번지고 술마시고… 파티가 되어버리고… 아줌마네 가족이 해외여행 간다고 집을 통체로 맡기고 가길래 일주일동안을 집안 안보와 치안에 힘쓰는등…
지금도 연락하며 가끔씩 밥먹으러 가는 친절한 캐네디언 가족…
현재 다니는 대학이 토론토 근처 Oakville인데 이사올 때 처음 본 집에 그냥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가 너무 좋아서 그냥 계약했는데 이젠 아들보다 친한 사이가 되어버려서… 가끔씩 아주머니 집에 가서 수영하고 연어구이 얻어먹고 온다는….
어머나… 되돌아보니 참 자랑이 아니고 열심히 살긴 살았네요.
그리고 몇 안되지만 밤샘과 주말을 불사르는 숙제로 나를 인정해주고 아낌없는 도움을 주고 있는 캐네디언 친구들… 저도 한국에선 꽤 큰편에 속했는데 여기서는 다들 my little Korean…이럽디다..
대들기도 힘든게.. 이놈들 어찌나 키가 길고 덩치가 큰지….젠장..
그렇게 학교도 이젠 누구앞에 말할수 있을정도로 당당한 학점을 받았습니다. 아… 말하고 싶어..ㅋㅋ 쫌 좋게 받았어요.
지금도 생각하지만 제가 대학을 다닐만한 영어도 아니였을 뿐더러, 대학 준비반을 갈 수 있는 실력도 제 자신마저 의심이 드는 부분이긴 합니다. 그냥 이놈들보다 못할꺼면 적어도 일찍 준비해서 많이 해가자는 식으로 했지요. 제가 끝냈다고 끝난게 아니였습니다. 다 쓰고나면 적어도 2,3시간은 튜터와 함께 문장 자체를 쏴악 고쳐주는 대 수술을 하고, 전공 관련 용어나 튜터가 모르는 부분은 제가 영어로 일단 설명을 해야 하니 말보다 빠른 그림으로 이해 시키고… 당연히 남들 하루 꼬박 밤세면 완성되는 것이 저에게는 일주일 장기 프로젝트가 되어버리고…
더욱 힘들었던건 그룹과제였지요. 풍요로운 이곳에서 주말에도 일하면 일단 두가지의 시각으로 저를 보더군요. 미친놈 과 불쌍한 놈. 시간이 지나자 지금 가까운 친구들은 이해를 하더군요. 미친놈이라고… ㅋㅋ 다행이도 마지막 학기는 정말 뜻이 맞는 친구들이 모여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전 교수가 저희 과제를 다음학기부터 예시로 쓸거라고 할 때 가슴에 한줄기 자랑스러운 눈물!
과정과 결과의 중간점.
지금까지 읽어주시는 분들은 뭐 따로 적어서 나중에 보답이라도 해야 하나…. 감사해서…이거…
요즘 한국에 입사 원서를 내다보니 과거를 돌아볼 시간이 많아지고… 왜 자기소개서 있자나요..
그래서 글이 길어졌네요..
그렇게 3년의 캐나다 생활동안 많이 얻고 느끼고 영어는 늘 제자리 걸음이지만 뭐 조바심 안가집니다. 가끔씩 친구들 입이 왔다갔다 하는거랑 눈색깔 확인하면서 대화에 끼어있고 눈치봐가면서 웃어주면 넌 정말 좋은놈이야 그러더군요.
아버지께선 늘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한 사람이 되라고… 과정에 정말 충실했던 3년이였습니다.
부모님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더욱이 이루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눈도 팔지 못하고 가끔씩 밀려오는 향수병도 그렇게 이겨냈드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과정과 결과를 이어야 할때가 왔습니다.
결과란 것이 또다른 과정으로 가기위한 절차이긴 하지만….
두 가지 생각이 상충하네요.
10년 가까이 집을 나와서 부모님께 부담만 안겨드렸으니…. 이젠 한국으로 가서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번듯한 직장 구해서 명절때라도 찾아뵙고 주말에 한번씩이라도 전화드리는 쌍놈의 시끼가 되고싶기도 하고…
여기서 그렇게 죽어라 배운것들 써먹으면서 돈벌고 싶기도 하고….
한국에 떨구어 놓고 돌보지 못해 각기 흩어지는 친구들을 구재하여 다시금 한대 모여 웃고 떠들고 술먹고 만신창이… 아 이건 아니고 아무튼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그렇다고 여기서 만난 인연을 저버리고 싶지도 않고….
집 떠날때만 해도 그렇게 날 반겨주던 강아지가 이젠 늙어서 수술을 2번이나 했다는데….보고싶어 가끔 눈에 아른거려 가봐야 할거 같기도 하고….
지금 가끔씩 찾아와 밥달라고 하는 길고양이는 내가 없으면 섭섭해 할텐데…
푸념의 끝에서
철강 왕 Andrew Carnegi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Do your duty and a
little more and the future will take care of itself."
아직 완전히 수긍하기 힘들지만 학교생활에 있어서는 100% 그렇더군요. 남들이 아이디어 스케치 10개 내라고 할 때 10개만 딱 낼 때 30개 냈더니 교수가 일단 인정해 주더군요. 모르는거 하루에 이메일 5통씩 보내면서 물어봤더니 교수가 프리젠테이션 당일에 니껀 완벽하다고 한마디 해주더군요… 10만불 예산에서 1불 남기고 꼼꼼하게 예산을 다 쓰는 계획서를 만들었더니 교수가 보고 놀라더군요. 20대의 후반에서 이렇게 푸념의 끝을 마무리 하면서 읽어주신 분들께는 다시한번 감사드리고 모든 회원님들께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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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귀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데요... ㅋㅋ
우아:D 정말 멋있으셔요~ 제 자신을 뒤돌아보게되네요^^
쑥스럽네요... 감사합니다
와...소설같이 긴~글을 재밌고 감동도 있고..그렇게 읽었네요. 참..멋지게..장하게 사셨군요.대단한 분들이 많이 계시네요. 하핫. 그래서 세상이 돌아가는 건가 봅니다. 너무 수고했다고 너무 큰 걸 조급하게 바라지 않고, 계속 해나가신다면, 어느새 높이, 멀리 가 계시는 자신을 발견하시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쁘고 듬직한 아들에, 정있는 개의 주인이며, 막 놀지만...(하하 )믿음가는 친구시군요. 또 멋진 한 이곳의 회원님이시네요.
감사합니다... 힘이 절로 나는거 같네요
와 존경,, 멋지네요 난 머하는걸까..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이 엠 프라우드 어브 유!
땡큐! 유 알 어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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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힘이 나네요
어찌하면..눈이시큰시큰...쬐끄만글씨에도 불구하고..숨한번안쉬고(ㅋㅋ) 끝까지 읽을수읽게만드는..
신기하고도신기한.. 글재주가생길수있나요..
아~~부러워용~~^^
모자란 글 끝까지 읽어주신점 너무 감사하구요. 지나친 칭찬도 너무 감사합니다.
와 .글도 잘 쓰시기도 잘 쓰셨지만 멋지시기도 합니다. ..와 ... 앞으로 좋은일만 가득하시겠네요. 훤히 보입니다 ^^ 미래가 화창합니다. !
I read this three times(on the day you wrote this, a few days later and today).. not intentionally tho. Your writing is very dalicate but strong. I feel like I'm reading MY story, except the army service part; cuz I've never thought of becoming a soldier (Yes, I am a girl lol). Anyway. I hope you made a better decision. I couldnt use the word 'the best decision' because whatever you choose, you may look back and think. Even tho you dont mean to regret. I don't know you, I've never saw you but I think You Will Succeed. And So will I. Have a great evening.
오랫만에 들어와서 참 잼나게 읽었어요...글이 아주 맛깔스럽네요....이런 글을 쓸 수 있음은 아마도 예술적인 감성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한국가셔서 꼭 원하는 job을 얻기바랄께요~~~~ 아마도 반드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