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보다 찬란한 황금 비늘
비단결 마냥 은은한 지느러미
온통 외모로만 살아가는
저 화려한 몸짓을 시샘하다
아니, 어쩌면 저리도록
겉멋으로만 살아갈까, 끌끌 혀를 차려다가
언뜻 금붕어의 두 눈이
촉촉이 젖어있음을 발견한다.
이 눈물은
언제부터인가 관상어가 되어 버린
꺽어버리지 못한 동계교배의 죄
지난날을 기억하며
가까이 발을 옮겨 얼굴 비추자
아련히 저려오는 금붕어의 날숨 소리
아, 석양마저 빨려들어간다.
"이제 그만 내 손을 잡으렴..."
오래동안 지켜보던 조화가
아무리 손 내밀어도
온 몸을 흔들며 거부하는 어항 속 금붕어.
맴돌던 행인 하나 톡,톡
어항을 두들기자
미소 한아름 입안에 머금고
보드랍게 꼬리 흔드는 금붕어.
그렇다. 금붕어의 눈부신 비늘은
속죄로 굳어진 눈물방울들이
알알이 맺혀 있는 것이다.
바둑에서 찾다
[점]
좀체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짓눌렀기에 격자 무늬 속 깊이 숨어드는 것일까. 어딘가에 분명 감추고 있을 뿌리를 찾아내는 일이란 끝없이 펼쳐진 우주 공간에서 하나의 블랙홀을 발견하는 일보다 어렵다. 나는 기꺼이 길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찾지 못하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하나씩하나씩 수를 읽어 나간다.
[선]
나는 너를 밀어내고
너는 나를 밀어내고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안식하지 못한 선을 긋는다.
형체를 알 수 없어라
둥글게 만들어지는 선
단단한 무기질의 세상에서
동전 하나 얻기가 그리 쉬운가.
이리저리 흩날리던 소리들
무릎 꿇은 관객 없이 무대 위에
발걸음 서서히 요동을 친다.
[원]
이정표가 이끄는 대로 장고 끝자락을 부여잡고 낮은 바위섬들을 돌고 돌아 쉼 없이 달려온 길. 무엇을 향한 몸부림인지 완강하게 버티던 단수 드디어 떨어져 나가고 텅 빈 하얀 속살 들여다 본 순간. 나는 휩쓸린다. 하나의 점이 선이 되고 원이 될 때까지······
대나무꽃 피었다
대나무 가지마다 꽃이 피면
물 좋은 마을도 망한다더니
천년만년 걸어 온 머나먼 길에
쥐들이 정말 모여들고 있다.
메마른 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나무 줄기 하나쯤 단단히 붙들고
바쁜 걸음 치열하게 재촉했을 우리
정자나무 그늘목에 앉아
서로 지친 어깨에 몸 기대나 볼 걸
외로 두려운 대나무 꽃을 본다.
눈부시지 않은 전설에 이루지 못한
죽부인 사랑 붉은 다리 올리고
단심가 고개 강강수월래 돈다.
사실, 꽃을 피우는 일은
소슬바람에 몸을 꺾는 일보다 어렵다.
나는 뿌리내리는 법도
너무 가벼워 아직 익히지 못하고
눈부신 것만을 쫓아다녔지.
작열하는 생명의 경이여!
다시 시작하는 뿌리로 엉켜
우리 눈물겹게 마주하기 위해
유성을 타고 겨울을 건너는 대나무꽃이
이른 봄 봉황의 밥으로 영글 때
연둣빛 때깔고운 새순 돋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