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속에 잠든 영원
세상은 필연적으로 시간이 흐른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배운다. 시간은 우리의 일상과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 아침이 오고, 해가 지고, 다시 밤이 찾아오는 리듬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뉘는 시간의 틀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위치시키며 살아간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은 과거와 미래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찰나의 순간만이 존재한다. 과거는 이미 흘러간 기억의 흔적이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허상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찰나, 바로 지금 이 순간뿐이다. 우리는 시간이 이어지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얼마 전 나는 조상님의 묘를 정리하러 벌초를 다녀왔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산소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변화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친척 동생들을 보니,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큰아버지의 검은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나는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산소조차도, 고정된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소는 그 자리에 있지만, 주변의 모든 것은 변하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과거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어릴 적 벌초를 하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그때와 지금이 교차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산소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 세계. 두 사이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간을 새롭게 발견했다. 현재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진짜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 시간을 살아가야 할까?
페르메니데스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존재는 오직 현재의 찰나 속에만 존재한다. 과거는 지나간 기억의 흔적이고, 미래는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변하는 듯 보이는 세계에서도, 그 찰나의 순간은 변하지 않는 본질로서 존재한다. 현재라는 찰나 속에서 모든 것이 존재하며, 변화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환상이다.
이러한 관점은 시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이해를 깊이 있게 해주며, 현재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진정한 존재는 그 흐름을 초월하여 영원히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시간의 한 순간은 다른 모든 순간을 담고 있다. 시간의 본질은 그 어느 때나 현재에 있다." - 티에스 엘리엇
첫댓글 엘리엇의 격언은 불교철학적으로 말하면 '찰나(순간) 속에 겁(영원)이 있다.'가 되겠네요. 근현대 물리학에서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고정 불변한 절대적인 것인 아니라, 상대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양철학 전통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모든 것은 생성 변화한다'고 주장했고,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것은 고정불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엘레아 학파의 제논은 모든 것이 고정불변하며 따라서 운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역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성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생물학적이건, 철학적이건 변화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늘 긴장하게끔 만듭니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상상하고, 그러한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우주의 생성과 변화 과정 중에서도 그것을 계량화할 수 있는 단위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태양계의 경우, 지구가 태양을 1회 공전하는 주기가 1년이며, 지구가 1회 자전하는 주기가 1일로, 그것이 태양계의 생성 때부터 그러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찰나와 겁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