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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인테리어 원문보기 글쓴이: 아모스(명애)
1984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1894-1988 場 건축 인테리어 근무 1990 애시스 설립 1994-1997 KOEX ‘LIVING DESIGN FAIR’ 초대작가 1995-1997 한국 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 이사(KOSID) 실내디자인학회 분과위원(KIID) 1996 대한민국 실내건축대전 심사위원 1997 한국 인테리어디자인대전 심사위원 1998 계원조형예술대학 실내건축과 강사 1995 대한민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 공로상 수상 1996 대한민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 협회상 수상(작품:샤브센) 1997 한국실내건축가협회 협회상 수상(작품:청구 블루힐 하우스) |
난,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오랫동안(거의 10년) 江을 내려다보며 일을 했다. 너무 오랫동안 벗을
삼으면 우울해 보인다는 속설도 있지만 江은 내게 끊임없이 흐르면서 잔잔한 이야기를 건네주었고
夜景을 통해서는 꿈틀거리는 도시의 설레임을 보여주었다. 헌데, 지금은 남산 끝자락에서 숲의 사계절을
보며 일을 한다. 많은 눈이 내렸던 지난겨울에는 순백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쫓기듯 사는 생활의 리듬을
가라앉히고 우두커니 창밖을 주시하게 한다. 그것은 일종의 여유로움이다. 창밖 아카시아 나무위에
큰 까치집이 있다 -그것은 때론 떨어져 있는 가족에의 그리움을 북돋우고 내 창의 ‘그림’이 된다.
글쎄, 내 작업실? 여행의 흔적들이 있다. 감성적으로 다가왔던 소품들과의 대화 난 여행에서 그들을
하나씩 사 모았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난 이미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곤 한다. 작지만 풍요로움이
있는 내 공간. 내가 일할 수 있는데 대한 고마움과 몰두할 수 있는 열정에 감사한다. 아직까지는...
출처 : 월간 인테리어 ...
변함없는 그 모습. 디자이너 최시영 | |
다들 제자리를 가지고 있는 듯 그곳에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각자 그 몫의 소리만을 내고 있었다. 공간의 오브제들과 함께 호흡한 지 10분 남짓. 그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이미 디자이너 최시영을 만나고 있었다. |
처음 만나자마자 최시영의 말이다.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바쁘지는 않겠지. 대체 무엇이 이 사람을 이다지도 바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7년 전 인테리어지에서 그의 작품을 보았을 때 그는 디자인을 공부하던 나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고, 3년 전 우연히 길에서 만났을 때는 마치 연예인을 만난 듯 가슴이 뛰었다. 최시영 선생님을 만나기 감히 한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을 인터뷰 했다고 말하지 말라며 최시영 선생님을 만나기를 권유하는 주변인들에게 아직 그를 만나기에 준비가 안된 것 같다며 고사한지 1년.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었다. 디자이너 최시영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제1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다. 특히, 주거공간에 있어서 그를 선두에 두지 않고 무얼 어찌 설명하랴. 주거 공간을 특히 많이 한 이유를 물었더니 사람 냄새 나는 주거공간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냐며 되묻는다.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공간과 달리 사람이 살아가는 그 세월이 묻어나는 주거공간의 매력 속에서 좀처럼 헤어나오기가 힘들단다. 화가가 꿈이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시대 여느 부모가 그랬듯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건축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바와 달리 꿈을 만들어내는 최시영에게 건축과는 그 끼의 발산을 막는 테두리였다. 그래도 그 가능성은 누군가에게 눈에 띄게 마련. 감각이 살아 있는 최시영에게 그 지도 교수님께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길을 권유했다. |
우여곡절 없는 전문가 없고, 준비 안된 전문가 없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신의 선물이다. 혹자는 오는 기회를 꼭 잡으라 말하지만, 디자이너 최시영은 모든 기회에 순수한 마음이기를 강조한다. 무엇보다 클라이언트들의 마음을 보아야 한다. 고객의 기대하는 바를 십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디자이너의 몫이란다. 그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무슨 일이든지 일의 크기보다는 가치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디자이너 최시영의 미덕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타고난 디자이너는 없다. 성실한 자세로 한 분야에 몰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성장하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그의 모습과,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대한 신뢰감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나가 소위 말하는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
문득 과거를 돌아보면 무모하리만큼 모험을 했던 자신을 발견한다. 오히려 힘들었던 순간의 모험이 지금의 그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난단다. 물질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기 마련이고 그 속에 인간은 그 건강과 자신을 둘러싼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다. 자기 자신과 그 환경에 대한 관심 고조는 결국 그것은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진다. 그 속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획일적으로 찍어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우리의 대표 주거공간인 아파트들이 IMF이후 국민 소득이 다시 만불을 넘어 갈 때 즈음 아파트 분양가 자유화 속에 변화를 보였고 그 중심에 바로 디자이너 최시영이 있었다. 그는 건설사에 주거공간의 디자인 중요성을 강조했고, 차별화된 디자인이 공간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나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나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확연하게 보여주어 현재의 아파트 역사를 만들어 낸 인물로 평가 받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주거 공간을 디자인 하는 디자이너는 현재를 디자인 하기보다 미래를 예측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
제주도의 산굼부리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의 디자인 철학이다. 억새의 흔들림 속에 볼 수 없는 느낌속의 바람을 보았고, 그 안에 단순, 절제, 그리고 여백의 힘을 알았다. 특히 주거공간의 경우 디자인에 따라 그곳에 삶을 담는 이들의 모습이 변화하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공간에 반영하면 무엇보다 살아가는 이에게 편안해야 할 공간이 디자이너의 멋부림에 희생되기 쉽상이다. 더 이상 주거공간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이의 삶과 바램이 스며들어있고 그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리조트같이 때로는 레스토랑같이… 다양한 공간을 주거공간에 녹여낸다. 반복되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용기를 가지고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경험이 중요하다. 설계가 3,4일만에 끝난다고 그 설계를 3,4일짜리 설계로 보면 곤란하다. 그 짧은 기간에 디자이너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녹여내고 그것이 반복되는 가운데 자신만의 전문성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디자이너에게 경험은 정말 중요한 재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아직까지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늘 새로운 경험을 추구한다고. 아직 자신만의 색을 입히고 있는 중일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보낼 한마디를 구했다. 특별한 이에게 특별한 대답을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스스로 찾아낸 방법으로 그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며 그 전문적인 개성을 강조하라는 평범한 대답이 돌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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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째 폴인님 스딸~~ 같은디요~ ㅎㅎ 비땜시 시내공사 맘에 멍만 들고 끝냈네여~ ㅡㅡ; 중화산동은 또 먼공사에여?? 궁금한디 함 보고잡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