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야생화에 관심을 가진적이 있었다. 고산지대에 사는 꽃들이 작고 모양이 이쁜데 한 10가지 키우다가 다 죽여 버렸다. 아파트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야생화를 키우기가 힘들다. 야생화 입장에서도 고문 중의 고문이리라. 햇볓, 바람, 이슬, 온도 등 어느하나 맞는게 없기 때문이다. 야생화는 그저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데 어쩌다 맘에드는 꽃을 만나면 캐오고 싶은 욕구가 발동한다.
특히 야생화가 많은 곳이 천마산이다. 산세야 그저 그렇지만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야생화들이 널려있다. 물론 이도 계절마다 다 다르다. 나이들어 할 일이 없으면 계절따라 달라지는 야생화만 구경해도 일년이 후딱 지나가리라. 그러던 내가 나이들어 춤을 배우면서 화류계로 빠져들었다. 춤방에도 꽃들이 그득하다. 모두 아름답다.
우리는 뭔가 한가지 자기와 맞지 않는 걸 보면 전체를 부정해 버린다. 춤추면 날나리, 담배피면 지저분한 놈, 술먹으면 한심한 놈, 연애하면 바람난 놈 전부다 부정적인 평가다. 이리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와 맞지않거나 어색한 것들을 부정하고 방어해야 할 본능이 발동하는거다.
좋게 보면 좋을 일이 나쁘게 보면 한도 끝도 없는거다. 좋다 나쁘다가 무슨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요 그저 자기가 어찌 느끼느냐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번 변한다. 그 또한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춤방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마음먹기에 따라 춤방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다만 변해서는 안되는 한가지가 있다면 그건 춤방에서는 즐거워야 한다는거다.
춤방에서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잘 어울리는 사람들은 나름 도가 튼 사람들이다. 그걸 헤프니 뭐니 하는 건 그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거다. 춤방에 가면 이리 활달한 아지매들이 몇명씩은 꼭 있다. 나는 그러한 아지매들을 믿는 편이다. 춤방에서의 연애는 이미 포기한 사람이기에 그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좋다. 왜 연애를 포기했냐고라? 춤방에서의 연애는 번거롭기 대문이다. 숨겨 놓은 애인하나만 있으면 될 일 아니던가.
좌우지당간 과거에 어찌 살아왔던 이제는 좀 정돈된 삶을 살고싶다. 그게 나이 먹은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향기 아니던가. 젊은 날의 부질없는 싸움은 더 할 자신이 없다. 깨끗하게 살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도 산 목숨인데 애인 뒷다리만은 죽어도 놓지 않고 붙들고 있으리라.
여기까지는 고상한 얘기고 말난김에 연애의 법칙을 얘기해 보자. 연애는 三女一年(삼녀일년)이다. 뭔소린고하니 애인은 3명을 두되 일년에 한번 만난다는 얘기다. 그러면 4개월에 한번꼴이다. 이게 연애의 정석이다. 자주 만난다고 좋은게 아니다. 잊어도 잊은게 아니듯이 문득 만나 일년에 한번 뽀뽀하면 그만인거다. 뽀뽀하기 싫으면 손만 잡던가.
그런데 一女一年(일녀일년)이라는 것도 있다. 나이 들어 괜히 설치다가 마누라한테 맞아죽을 수도 있는 법이다. 맞아죽는거야 대수가 아닌데 마누라랑 티격태격하는 것도 젊었을 때 얘기다. 나이들어서는 그저 휴전상태를 잘 유지해야 한다. 그러러면 애인은 1명으로 족하다. 一女一年(일녀일년)이란 애인 한명을 일년에 한번만 만난다는거다. 에고 그게 연애냐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무척이나 많다. 아니 일년에 한번 못만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는 것은 떨어져 있어도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一女一年(일녀일년)의 애인을 둔 사람은 무척이나 많다.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거다. 만약 그 정도도 못한다면 그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춤방을 다니는 것도 이러한 애인을 찾고자함 일수도 있다. 하지만 춤방에서 그리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지극히 적다. 그저 아무한테나 손 내밀었다가는 만났다 헤어지고를 반복하게 될 뿐이다. 그리보면 춤방이라고해서 남녀간에 무슨 썸씽이 이루어지는건 아니다.
나이들어 야생화 타령이나 해쌋고 一女一年(일녀일년) 같은 말만 늘어놓는 걸 보면 이제 나도 죽을 때가 가까워 오는 모양이다. 죽을 땐 죽더라도 오늘 밤 아싸라비아 지루박을 돌려보리라. 그만 떠들고 샤워하고 춤방이나 가보자.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닭다리잡고 삐약삐약.
첫댓글 잼있게 보고 갑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