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9: 6 일하지 아니할 권리 - 고전 9: 9 곡식을 밟아 떠는 소
고전 9: 6 일하지 아니할 권리 -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
주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아 복음 사역에 전념하는 자가 의식주의 필요를 공급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1]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본 절은 사도들이 교회로부터 그들의 생계비를 받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이러한 것을 결코 반대하지 않았다.
* 딤전 5: 18 -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바울과 그의 제1차 전도 여행시 동역자였던 바나바는 이러한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생계를 위한 기술을 한가지씩 익히는 관습이 있었다. 더욱이 철저한 유대인이었던 바리새인들은 모두 스스로 생계비를 벌었는데 바울 역시 그리하였다. 그러나 헬라인들은 육체적인 노동을 천하게 생각하였으므로, 혹자는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이러한 삶의 방식을 매우 특이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Grosheide).
고전 9: 7 자기 비용으로 -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
바울은 본 절에서 두 가지 예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군인들이 자신의 비용으로 봉사하지 않는다는 것과 일꾼들이 포도원이나 목장에서 일을 할 때에 보수를 기대하고 일을 한다는 것이다.
* 신 20: 6 -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1]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바울은 이 같은 실생활의 예를 들어 그들이 보수를 받는 것이 당연한 순리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 자신도 교회로부터 생계비를 보조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주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 복음 사역에만 전념하고 의식주의 필요를 공급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세상에 자비(自費)로 군인이 되는 자는 없다.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의무적인 군 복무도 의식주와 약간의 용돈을 공급받는다.
복음의 역군들(딤후 2: 3-4)과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3: 6) 그리고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요 21: 15)들이 보수를 받고 신령한 일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세속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 딤후 2: 3-4 –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 고전 3: 6 -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 요 21: 15 -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자기 비용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옵소니오이스'(*)는 '옵손'(*, '양식')과 '오네오마이'(*, '구입하다')의 합성어로 문자적인 뜻은 '스스로 구입한 양식'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후에 '군인들의 봉급'을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바울은 이러한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자신의 수고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피력한다.
2]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세상에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 열매를 먹지 못하거나 양떼를 기르고서 양떼의 젖을 마시지 못하는 일은 없다.
일꾼이 먹을것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 권리를 다 쓰지 않았다. 그는 친히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필요한 돈을 벌었다.
* 행 18: 1-3 –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그는 에베소 장로들에게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다”고 말했었다.
* 행 20: 33-35 –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고전 9: 8 사람의 예대로 -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
바울은 구약 신명기를 인용하면서 ‘모세 율법’이라고 언급하였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구약의 처음 다섯 권의 책들을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바울은 그중 하나인 신명기를 모세의 책으로 증거하였다.
1]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안드로폰'(*)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습(人習)이나 생각에 따라'의 의미이다. 이 말이 때로는 육체의 그릇된 이해를 따른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 롬 3: 5 -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본 절에서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임금 지불의 도리가 당연하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6절에서 예를 든 것처럼 사람의 피습을 따른다 할지라도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바울은 보다 더 결정적인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제시하였다.
2]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노모스'(*)는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인 모세 오경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바울은 인간적인 생각과 하나님의 계시인 율법이 서로 일치함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혹자는 인간을 만드신 분과 인간에게 계시를 주시는 분이 같은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Grosheide).
고전 9: 9 곡식을 밟아 떠는 소 -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
인용된 말씀은 일차적으로 소에 대한 말씀이지만, 그 이치는 비슷하다.
소를 먹이면서 일을 시켜야 하듯이, 교회는 복음 사역자들에게 의식주의 필요를 공급해야 한다.
1]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본 절에서 인용된 구절은 신명기 25: 4이다.
* 신 25: 4 -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떠는'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알로온타'(*)로서 '할론'(*, '둥근 모습')에서 파생된 말이다.
동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소를 이용하여 곡식을 터는 방아를 돌리거나,혹은 일정한 반경(半徑) 안에 있는 곡식을 소로 하여금 발로 밟아 떨게 하였다. 혹자는 이 때 이집트나 다른 이방 지역에서는 소가 곡식을 먹지 못하도록 그 입에 망을 씌웠다고 한다(Lenski).
그러나 모세의 율법에서는 이것을 금(禁)하였다. 소가 일을 할 동안에는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뿐만 아니라 짐승들과 자연에게까지 관심과 사랑을 베푸시는 모습을 가르쳐 준다.
* 욥 38: 41 -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 시 147: 9 -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도다.
* 마 6: 26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눅 12: 24 -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이 말은 하나님께서 소들을 염려하시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마리 새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신다. (마 6: 26).
바울의 의도는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에 대하여는 가축도 율법에 의해 보장을 받는데 하물며 인간들이 일한 것에 대해 보상을 받는 것은 더욱 당연한 일이다.
바울은 구약에서 달리 인용할 말씀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본 절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 신 24: 15 -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이처럼 일꾼의 품삯을 예로 들지 않고 가축을 예로 든 것은 짐승들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은 더욱 소중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사람들 사이에 서로를 귀중하게 대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Calv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