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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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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知性 마태복음(2) 마5장의 산상보훈의 청취자와 누가복음18장의 영생 하나님의 나라 구원의 단어사용
탈무드 추천 0 조회 105 09.02.17 21:03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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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2.17 23:05

    첫댓글 그렇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일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자랑거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공로주의 신학이야 말로 인본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감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넘보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천국이 이르기 전까지는 인간의 이런 시도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시행될 것이구요. 그것이 사단이가 인간에게 교묘하게 불어 넣어준 의도이기도 합니다.

  • 09.02.18 15:44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동했던 모든것들이,..하나님의 인도요 보살핌이라고 고백하는것이 믿음의 고백인것이지,..구원을 잃어버리지 아니하려고,.열심히 순종했다구 생각하면,.그 얼마나 피곤한 삶이 되겠습니까?...내안에 하나님 뜻대로 살아본적이 없는것 같은,.허물투성이요!!~죄많은 인생인것 같은데,.그래도 끝까지 나를 붙들고 계시는 그 은혜로 사는것입니다!!~~

  • 작성자 09.02.17 23:50

    위 내용 중에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를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라고~~

  • 작성자 09.02.18 13:04

    다음에는 저자 마태가 이 산상수훈을 기록한 목적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왜 거기서 거짓선지자가 언급된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곧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그리고 마태가 쓴 복음을 읽을 수신자들의 상태를 살필 것입니다. 유대적인 색채와 예수님의 복음의 색채가 같이 나타나는 이유를 밝히면 산상수훈이 규범인지 구원의 길인지 아니면 거짓선지자와 참 신자를 가릴 수 있는 표지인지 드러날 것입니다. 별로 논쟁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은혜를 나누고 싶을 뿐인데~~~~한 번에 많이 싣기도 어려운 형편이라서~~ 이렇게 가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냥 빠른 결론을 내리는 방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 작성자 09.02.18 17:35

    지금까지 본 것은 예수닝의 직접청취자이고요~~ 마태의 청취자로 넘어와야지요. 앞에 누가 개혁주의적 하나님 나라를 아는지 모른다고 야단치는 댓글을 달았던데 지금 그것이 이 논의의 목적이 아니며 마 4- 시작하여 나타난 부분은 현재적으로 다스림이라는 단어하나로 이미 충분한데~~ 자꾸 논의의 방향이 흔들리려고 하네요. 부족하지만 이 글을 그냥 함께 성경을 펴고 보시면서 그만큼만 나가시면서 아 이런 견해도 있구나 하면 될 것같아요. 그리고 그 것이 맞으면 인정하시면 되구요

  • 작성자 09.02.18 13:15

    하여간 이 부분은 너무 양극단으로 해석하여서 문제가 많은 곳이지요. 이 번에 한 번 다시 보게 된 것을 감사하며 읽고 있답니다.

  • 09.02.18 20:25

    산상수훈이 팔복으로 시작되지요. 팔복의 시작은 "복되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여"이고요. 가난한 자는 거지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자신에게 내세울 것이 없으며 누군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에 기꺼이 감사함으로 받는 사람이지요. 곧 인생을 찾아오신 하나님, 예수님을 통하여 찾아오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기꺼이 감사함으로 받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산상수훈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 언약의 말씀이랍니다.

  • 09.02.18 20:28

    그 말씀을 직접 듣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믿는 자들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산상수훈 자체가 새 언약의 말씀이고 각 내용이 새 언약의 백성들의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 팔복은 새 언약의 백성의 인격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는 구체적인 삶의 정황을 토대로 주어진 생활 원리이고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란 새 언약의 백성으로 그 인격을 갖추고 삶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지요. 그러한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십니까?

  • 작성자 09.02.18 20:46

    참복음님 그들의 열매로 그 나무들을 알리라를 해석해보세요. 이 문맥과 연관하여 주석해보세요 그리고 끝까지 가면 알 것입니다. 부자청년의 스토리에서 영생 하나님의 나라 구원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군요.

  • 09.02.19 12:45

    산상수훈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의 삶은 이러한 것이다"라는 것이지, 산상수훈이 "구원을 위한 필요조건"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참님의 주장은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형입니다. 그런 자들이 늘 잊고 있는 사실은 구원에 관한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사실입니다. 행위로 구원얻는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서 타자의 주장들은 전혀 비성경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참님이구요.

  • 09.02.19 12:53

    그러나 참님이 알아야만 하는 사실은, 인간이 구원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빼앗아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에 자꾸 인간이 비집고 들어가 무언가를 한 것처럼 말하게 하는 사단의 본성적인 내용이 그대로 발현되는 주장이 알미니우스의 주장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을 대적하기 시작했을 때 루터란들과 가톨릭의 지원을 받아서 알미니안주의가 자랐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로서, 알미니안들은 가톨리즘과 떨어질 수 없는 인과관계에 있습니다.

  • 09.02.19 12:57

    가톨릭이든 알미니안이든 같은 나무, 같은 뿌리로 이해됩니다. 부연해서, 이와같은 인본주의 종교는 인간의 능력을 최고치의 값으로 선정하는 바벨탑 사건의 근저에서 자란 것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입김에 무너져 내려야 할 사단적 본성 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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