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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왕과 남방왕과 북방왕은 누구인가?
그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즉, 여호와의 법도를 행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하며 자기 조상들의 신들(히브리어로 하나님)과 메시아를 버리고 이방신 특히 강한신, 제우스나 바알과 같은 태양신을 힘입어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주기도 한다. 이를 보면 그왕은 유대인 왕인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과 메시아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때 남방왕과 힘을 겨루지만 북방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바람처럼 와서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다. 그 북방왕의 권세로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 까지도 그의 시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북방왕은 자신의 장막 궁전을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며 마침내 그의 권세는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방왕을 물리치고 자신의 장막 궁전(자기 신에게 예배하기 위해)을 예루살렘 시온에 세웠으며 그 종말이 정해진 북방왕은 과연 누구일까?(단11:36-45)
2 봉건사회의 태동
분명 이 시대의 유대인 왕은 이방신을 힘입고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여러 백성을 다스릴 권세를 주고 다시 말해 지방 분권제를 실시하고 뇌물을 받고 땅을 나눠주기도 했다. 사실 돈을 받고 대제사장직을 팔거나 왕이 원하는 자에게 뇌물을 받고 대제사장으로 세웠다는 내용이 마카비서에 나온다. 또한 북방왕은 리비아 사람과 구스(수단) 사람을 종으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다.(단11:39,43) 이러한 특징들은 봉건사회의 모습이고 훨씬 이전에 마카비 시대부터 이러한 모습들이 있었다. 봉건 사회는 이슬람의 침입이 있어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4세기 말부터 10세기 말에 이르는 약 600년을 말하며 무력을 가진 사람이 치안을 담당하고 외부 침입을 막으며 사실상 지배하는 새로운 사회 질서가 태어났다. 중세 유럽 봉건제도의 특징은 주종제, 지방분권제, 농노제(노예제)이다.
3 다니엘 11장 상황은 이스라엘의 역사이므로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우선 다니엘 2장과 7장을 통해 이렇게 이해해왔다.
바벨론(금) BC 605-BC539 사자
메대바사(은) BC 539-BC331 곰
헬라(그리스,동) BC 331-BC168 표범
로마(철) BC 168-AD476 무서운 짐승
열국시대(철과 진흙) AD476-세상끝 작은 뿔
돌나라(뜨인 돌) 예슈아의 재림
이 해석은 철의 나라 로마제국 즉 로마가톨릭은 무서운 짐승으로서 마지막 때 다시 세력을 부활하여 열국시대를 이끌어 갈 것이고 적그리스도가 로마 가톨릭에서 나올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동의 나라보다 철의 나라가 훨씬 더 강하고 그 나라가 다시 부활할 거라면 헬라 제국보다는 훨씬 강한 나라가 로마제국이어야 한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통치 범위는 헬라 제국에 비해 훨씬 작다. 또한 이스라엘의 기준으로 보면 헬라 제국은 북방왕에 속하지만 로마 제국은 위치상 남방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니엘 11장에는 북방왕이 두번 나온다. 앞에서 말하는 북방왕이 헬라제국의 왕이라면 두번째 북방왕도 북쪽에서 일어나는 왕이어야 한다. 그런 모순이 존재한다.
또 다른 해석이 있다. 앞은 다니엘의 해석은 모두 같지만 철의 나라는 로마 카톨릭이 아니라 이슬람 제국일 거라는 해석이다. 그렇게 본다면 로마가 헬라 철학을 가지고 500~ 700년 정도를 더 다스렸고 이슬람이 이스라엘을 정복하여 이슬람 제국을 세우고 그렇게 마지막 때까지 가고 결국 스스로 분열하여 재림 예슈아에 의해 망할 거라는 말이다. 어떤 해석이 더욱 성경적이며 역사적으로 맞을지 알아보자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AD 638년까지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사상은 거의 헬라와 동일했다. 왜냐하면 로마는 헬라 철학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마카비서에도 보면 로마는 각 나라의 장점들을 수용하여 통치하였고 헬라 사상을 그대로 이어간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역사는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역사이다.
BC 63-638 로마제국
638-1099 칼리프 (이슬람 제국 지도자 칭호)
1099-1187 십자군
1187-1516 이슬람
1516-1917 오스만 투르크 (소아시아 중심의 이슬람 국가)
1917-1948 대영제국 (로마)
칼리프와 이슬람과 투르크는 모두 이슬람 국가들이다. 즉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이슬람에 의해 거의 1000년 동안 다스려졌고 로마에의해 500~700년, 영국에 의해 30년정도 다스려졌다. 대영제국의 30년을 빼면 최근까지 이슬람 제국의 지배아래 있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입장에서 남방왕은 누구이며 북방왕은 누구일까? 또한 헬라시대에 차지한 영토에 비해 로마제국의 영토는 비교적 적은 범위이고 이것도 AD395년에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어졌다. 또한 이스라엘이 포함된 서로마 제국은 476년 멸망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인 이슬람에 1453년 멸망하기 까지 1000년 이상을 번영하여 1000년 제국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동로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역사와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다니엘 11장은 이스라엘 중심에서 말하는 역사이다.
성경은 계시록에 음녀에 대해 이처럼 말하고 있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계17:4,5)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바알을 섬기는 것과 같이 타락한 교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로마 카톨릭은 짐승의 등을 타로 있는 (적그리스도를 돕는) 음녀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인다.
5 헤롯은 에돔계 유대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헤롯은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인이 아닌 에돔인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마카비시대에 에돔인들을 유대교로 개종시켰으며 개종한 에돔의 유력 가문이었던 헤롯은 로마 공화국의 지지를 받아 유대의 왕이 되었다. 이미 헤롯은 에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유대인이었다고 보고 있다. 에스더서에도 많은 사람이 유대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모압인과 암몬인들도 마카비 시대에 유대인이 되었다. 죽을 위기에 처해있었으나 믿음으로 해쳐나가고 오히려 승리를 거두었을 때 오히려 그들이 죽이려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개종하여 스스로 유대인이 되고자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처럼 헤롯은 유대인이었다. 이 시대에 헤롯 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이나 지도자들이 조상들의 하나님과 메시아를 버리고 헬라 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제우스에게 제물을 받치는 등 스스로 부패한 역사들을 마카비서에서 볼 수 있다.
AD 362년 콘스탄틴 황제의 조카 줄리안이 황제로 즉위하였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했다 그래서 예슈아의 예언이 오류임을 증면하기 위해 모리아 산에 성전 재건을 약속했다. 그러나 성전을 지으려던 일꾼들이 지반에서 터져 나오는 이상한 불길에 의해 모리아 산에서 도망쳐 내려왔다. 그 이후로 성전산은 저주받은 땅으로 불렸다.
6 이슬람이 시작되었다.
AD 570-632년 갑자기 무함마드라는 사람이 메카에 나타났다. 당시 유대인은 로마제국 즉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인 사산 제국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이들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슬람군을 환영했다. 그러나 오히려 아랍에 사는 신자들은 반대로 로마 제국이나 페르시아 제국과 연합하여 이슬람과 전쟁을 하기원했다. 이들은 이슬람을 알고 있었다. 당시 이슬람은 사상적 응집력과 기동성이 좋았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가중 한 곳이 되었다. 오늘날 러시아를 제외한 어떤 국가보다 영토가 넓다. 이슬람은 마호메트의 죽음을 기점으로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고 시리아를 빼앗고 이집트를 빼앗았다. 결국 100년도 안되서 지금의 중동, 이집트, 북아프리카 전체에 스페인까지 점령하였다. 동로마의 본거지 이탈리아까지 나아갔다. 그래서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이 이처럼 많은 것이다.
AD 637년 사라센 제국(이슬람)은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예루살렘을 3번째 성지로 삼았으며 당시 예루살렘 성지는 전혀 중요성을 띠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곳을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라고 가르쳐서 중요성을 부과했다.
AD 650년까지 사라센 제국은 로마 비잔틴 제국을 축출하고 이스라엘을 점령하였다. 처음에는 유대인의 예루살렘 거주를 승인하고 유대인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같은 정책을 펼쳤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 강제 개종을 강요했다.
AD 717년 유대인은 공적인 행동, 종교의식, 법적 지위에서 제한을 받았고 세금의 중과, 사회적, 경제적 차별대우를 받았다.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더욱 심해지자 스스로 예루살렘을 떠났고 소수의 유대인만 남게 되었다.
이슬람 사원은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세곳이 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원은 황금돔 바위성원이라고 부른다. 예루살렘 모리아산을 유대인은 아브라힘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이고 번제를 드린 곳이라고 믿는데 무슬림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을 바치려 했으며 모리아 산이 아니라 메카 인근 아라파트 산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예배할 때 메카를 행해 절하며 기도한다. 즉 태양이 뜨는 동쪽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태양신 바알 숭배자들인 것이다. 반대로 유대교는 문이 동쪽에 나있고 재단이 서쪽에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결과적으로 재단을 향해 등을 돌리고 동쪽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다.
7 예루살렘에 이슬람 사원을 세웠다.
AD 691 년부터 이슬람 제국에 의해 사원이 세워져 지금까지 오고 있다. 성경에서 북방왕이 예루살렘에 장막 성전을 세울 것이고 마지막에 그의 종말이 예언되어 있음을 보면(단11:45) 북방왕은 가장 세력이 강했던 이슬람이 아닐까? 그리고 이슬람의 부활이 마지막 때의 모습이 아닐까? 현재까지 가장 큰 범위를 차지하고 유대인을 극도로 증오하고 대립하고 있는 종교가 이슬람이다.
8 누가 여호와의 집을 무너뜨렸는가?
성경은 62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것이고 그 재국의 마지막은 홍수처럼 휩쓸림 같을 것이고 끝까지 전쟁이 있고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다고 예언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백성일까? (단9:26)
"지금 어느 한 사람이 디도 장군에거 뛰어온다. 그리고 그에게 불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는 굉장히 급하게 올라가서 그 불을 끄기 위하여 그 거룩한 집으로 뛰어갔다. 그의 뒤에는 그의 모든 지휘관들이 따라왔고 그리고 그들 뒤에는 몇몇 군단들이 따라왔다. 아주 놀랍게도 거기에는 큰 소란과 소동이 일어났고 군대에도 당연히 무질서한 동작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하는 큰 소리로 싸우고 있는 군사들을 향하여 큰 소리를 지르며 그의 오른손으로 신호를 보내고 그 불을 끄라고 명령했다. 그 집 자체가 아직 보존될 수 있다고 가정한 디도는 서둘러 와서 군사들에게 불을 진압하라고 설득하는데 온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시저에 대한 열정이 크고 그들을 막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큰 만큼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과 그들과 싸우려는 열정적 성향 또한 컸고 너무 지나쳤기 때문에 그 거룩한 집은 시저의 공식적인 허락 없이 전소되고 말았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서~~)
여기에서도 볼 수 있듯 로마가 공식적으로 성전을 전소하도록 허락한 것이 아니라 군사들의 유대인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증오심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과연 이 군사들은 누구였는가?
당시 로마 군사들에 대해 학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퍼블리우스 코넬리우스 태시투스: 로마제국의 공회원, 역사가
이웃을 증오하고 유대인들을 증오하는 강한 아랍계의 특색을 동반하였다.
로렌스 케피: 로마 역사 학자
주후 68년 이후에는 군대가 전적으로 지방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안토니오 산토수오소: 스토밍 헤븐에서
처음 1세기 초에는 49%가 이태리 사람이었고 주후 70년까지 5%정도로 떨어졌으며 1세기 말에는 1%만 이태리 사람이었다
사라 엘리스 팡:로마 군대의 임무 저자
동방 군대는 동방 사람들로 구성했다는 것은 의심 없는 표준 과정이었다. 이태리 사람으로 구성되었던 군대가 점차 지방 사람들로 바뀌면서 로마에 대한 충성심이나 공통된 연합이 없어졌다.
폴라드: 옥스포드 대학교 로마 역사학 교수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사람들이었다. 즉, 다수가 중동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실질적인 지배자들은 심지어 1세기 초부터 중동 사람들(북방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9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은 북방왕의 손에서 벗어난다
성경은 북방왕이 영화로운 땅에 들어가고 많은 나라를 멸망시킬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이 그의 통치를 벗어날 것도 말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북방왕의 통치를 피한 것일까? 에돔과 모압과 암몬은 모두 요르단 지역이다. 그리고 암몬의 지도자가 아니라 암몬 자손의 지도자라고 특정하고 있다. (단11:41)
그러나 성경은 원수 에돔, 원수 세일(모압에서 가장 뛰어난 산)이라고 부르며 이스라엘의 유산이 되고 남은 자들은 멸절될 것을 발람을 통해 예언했다. 또한 아말렉은 이스라엘 남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다. 이들도 에돔과 세일과 함께 심판이 예언되어 있다.(민24:18-20)
이사야 선지자도 에돔에서 오는 이, 보스라(에돔의 한 장소)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분의 의복이 분함으로 심판하셔서 붉고 포도즙틀을 밟은 자 같을 거라고 예언하고 있다. 즉 에돔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다. (사63:1-3)
심지어 요한도 예슈아께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아 피 뿌린 옷을 입고 계실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즉 종말까지 원수들의 심판은 작정된 것이다. (계19:13-15)
현재 무슬림 인구는 약 18억이다 지구상에 가장 큰 영토와 백성과 영향력있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 이들에 대해 성경이 한 구절도 말하고 있지 않을까? 심지어 이스라엘은 이 무슬림들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요엘 선지자는 사면의 민족들을 여호와께서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전쟁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지도에서 보는 것 처럼 이스라엘의 사면 민족은 분명하게 무슬림들이다. 이들이 마지막에 곡과 마곡으로 전쟁할 자들이며 심판받을 대상들임을 알 수있다. 즉 북방 민족은 무슬림이며 북방왕은 이슬람 제국인 것을 알 수 있다.(욜3:11,12)
BC10세기부터 성경에 등장하는 암몬족의 나라가 있었는데 오늘날 암만이다. 헬레니즘 로마시기에(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별명을 따서 필라델피아로 불렸다. 이곳은 750년 경 그리고 그 이전에도 지진이 연달아 발생하여 도시가 쇠퇴하였다. 베두인들이 '사막의 항구'라고 부를 정도였다. 에돔과 모압 접경지에는 BC1400~1200년 경 페트라가 자리하였다. 필라델피아는 고대 도시의 고통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AD 17년 지진으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계속되는 지진으로 끊임없이 집이 허물어져 도시에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았고 대부분 농촌으로 이주하였다. 필라델비아는 사랑의 필로스와 형제의 아델포스가 합친 '형제 사랑'의 의미이다. 그리고 이 지역을 이슬람 사람들은 '알라쉐히르' 즉 알라의 도시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을 요구했지만 빌라델비아만은 끝까지 개종하지 않고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신앙을 지키려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곳이 진정 '신의 도시'라고 인정하여 부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계시록에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며 예슈아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는 은혜가 있었다. 여기서 '면하다'는 '지켜주신다'는 의미이다. 시험에 때해 지켜주시는 은혜를 입게 된 것이다.(계3:7-10) 이들은 지진으로 도시에 있을 수 없었고 결국 시골로 내려가 폐트라가 이들의 은신처가 되었을 수 있다. 또한 지진이 많아서 북방왕도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암몬족의 지도자들은 북방왕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AD 1300년 무렵까지 역사가들은 암몬족이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리고 1878년 오스만 투르키인들(무슬림)이 다시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1차 세계 대전 후 영국이 1921년 팔레스타인 서부지역에 트란스 요르단을 신생국으로 세우고 암만을 수도로 삼았다. 1946년 요르단이 독립한 후 빠르게 성장하여 1948~49년의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 후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왔다. 난민 문제는 1967년 '6일 전쟁'으로 더욱 심각해졌다. 이처럼 요르단은 암몬 자손과 상관이 없다. 이미 암몬 자손은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졌다. 요르단에 정착한 난민들은 모두 오스만 투르크일들과 러시아에서 온 난민 무슬림들이다. 왜 이런 신생국이 필요했을까? 난민이 처음에는 72만명이었는데 이제는 420만명 이상 증가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슬람은 어떤 종교인지 등은 다음 시간에 나누기로 하겠다.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 30분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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