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인터넷검색)
여자 연예인들이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 소문들이 도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재벌총수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인터넷검색)
그런 소문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존재한다.
70년대를 풍미했던 절세미인으로
제1회 미스 롯데에 뽑혀 연예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서미경이 바로 그다.
실제로 보면 여신 중에서도 上여신이라는 서미경은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롯데 그룹의 총수인 신격호 회장의 세번째 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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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회장은 대단한 사업 능력 외에도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한데,
그 같은 구설수가 사실임을 증명한 것이 서미경이라 하겠다.
신격호 회장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의 사랑을 받는 샤롯데에서 그룹 이름도 '롯데'라고 지었는데,
서미경이 신격호 회장에게 열정적인 사랑의 대상인 '샤롯데'와 같은 존재라고.
1958년 생인 서미경은 1977년 자사의 모델을 뽑는 '미스 롯데'대회에서
1위를 연예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귀여운 인상이었던 기존의 여배우들과는 달리
큰 이목구비의 서구적인 마스크였던 서미경은 한국의 오드리 햅번이란 찬사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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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서승희'라는 가명으로 연예계 활동을 하며
1973년부터 영화 '방년 18세', 1974년 '여고교사', '청춘불시착', '혼혈아 쥬리', '김두한 제3,4편',
'속 협객 김두한', '동거인', '강력계', '홍길동', '천의 얼굴', '여수 407호', '춘풍연풍'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껌은 롯데 껌!'을 외치며 CF로도 얼굴을 많이 알렸고,
1978년 TBC 드라마 '상노'에서 용녀(龍女) 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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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80년 갑자기 유학을 떠나겠다며 미국으로 떠나버렸고,
이후 신격호 회장과 여러 소문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1983년 신격호 회장의 딸인 신유미를 출산하고,
처음에는 딸을 동생으로 호적에 올렸다가
1988년 유전자 검사까지 하고는 신 회장의 호적에 입적시키며 딸의 존재를 공식화 했다.
(사진출처: 인터넷검색)
이후로도 서미경은 두문불출하며 일부 지인을 제외하고는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
으며 은둔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활동 이후의 사진은 거의 드러난 것이 없는데.
2006년말 롯데시네마에 공급하는 팝콘 등을 제공하는 '유기개발'과
롯데백화점에 음식점을 입점한 '유원실업'의 사업가로 재계에 등장해 사람들을 놀래켰다.
(사진출처: 인터넷검색)
딸인 신유미 또한 롯데호텔의 고문직을 맡으며 서미경에 대한 신격호의 애정이
남다른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롯데 그룹의 후계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딸인 신유미 씨는 호텔 롯데 도쿄 사무실에서 일하며 월급은 3000~4000만원 수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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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생인 신격호 회장과 무려 37살이나 차이 나지만
서미경에 대한 신 회장의 애정은 각별해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미경씨가 운영하는 유원실업은 롯데시네마 중에서 매출이 가장 높은
서울,경기 일대 매점 운영권을 독점하고 있다.
영화 관련 산업에서 매점부문의 수익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
가장 매출이 높은 지역을 독점하게 해준 것부터가 상당한 배려라는 이야기.
(사진출처: 인터넷검색)
또한, 실질적인 오너로 올라있는 유기개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전국 롯데백화점 매장에 11개 음식점을 직영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식당가 입점은 국회의원 뒷심으로도 안된다고 할 정도로 노른자 사업이기에,
신격호 회장의 서미경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유독 폐쇄적인 롯데 그룹의 내부 문화 때문에신 회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려하지만,
여배우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대중의 호기심을 여전히 자극하는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