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의 삶이 어떤 과거의 결과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습니다. 알고 나서 생기는 충격과 변화를 견뎌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기에 말입니다. 아니면 그것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좋을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모르는 가운데 뿌려진 씨가 자라서 만들어진 열매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는 그냥 과거로 머물러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씨가 뿌려지면 싹이 나서 자라 나무가 되고 꽃을 피우듯 말입니다. 하기야 씨를 뿌릴 때 그런 결과가 있으리라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 전에 충격과 감동을 받은 영화가 있습니다.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입니다. 쌍둥이 두 남매가 엄마의 유언을 따라 과거를 더듬어갑니다. 그리고 알아낸 놀라운 사실에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운명이라 할 수밖에 없겠지요. 어쩌면 역시 전쟁으로 빚어진 비극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두 남매가 찾은 남자, 아빠인가 오빠인가, 기막힌 사연이 밝혀집니다. 그냥 멍멍해질 뿐입니다. 그 비극을 안고 살아온 엄마의 가슴을 다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알고 난 그 때부터는 두 남매가 이어받은 짐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냥 묻어둘 수밖에 없는.
내 밭에 자라는 작물을 위해 밉상의 이웃(?)의 밭으로 가는 물줄기를 막았습니다. 때문에 장애를 가지고 있던 그 사람은 삶의 터전을 잃은 셈입니다. 아마도 그 총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모양입니다. 어린 딸 ‘마농’이 염소를 키우며 살아갑니다. 마을에서 다 알고 있습니다. ‘꼽추의 딸’ 그리고 제멋대로 사는 소녀, 사람들 보기에는 막돼먹은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어린 소녀가 자기 살고자 발버둥 치며 애쓰는 것입니다. 아빠가 하던 꽃 재배는 물 때문에 할 수 없게 되고 양을 키우며 조그만 짐승을 덫을 놓아 잡아 팔아서 생계를 꾸려갑니다. 마을 사람들의 눈 밖에 나있는 여자일 뿐입니다. 십년 세월 마농도 처녀가 되었습니다.
마을 유지로 있는 ‘수베랑’은 후손이 없습니다. 남은 친척이라고는 조카 ‘세자르’뿐입니다. 나이도 이미 30이 넘었고 남아있는 유일한 피붙이입니다. 그러니 기회가 되는 대로 결혼할 것을 종용합니다. 후손이 귀하다 보니 아내로 맞을 여자에 대해서도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아기를 잘 낳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젊은 남자가 어디 그렇습니까? 꽃 농사를 하며 틈틈이 사냥을 하는 세자르가 어느 날 산속을 지나며 연못에서 목욕하는 마농을 보게 됩니다. 한눈에 빠져버립니다. 그리고 마농이 다니며 덫을 놓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 자기가 잡은 새나 토끼를 그 덫에 꿰어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요.
한편 마농은 마을에 새로 부임해온 총각 선생님에게로 마음이 갑니다. 우연의 만남에서 서로의 눈이 맞습니다. 세자르가 그것을 목격합니다. 속이 타지요. 그런데 어느 날 산을 지나며 마을 사람 둘이서 나누는 대화를 마농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에 숨겨진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기 아빠가 그냥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속이 뒤집어집니다. 마을사람들이 공모하였고 그 주모자가 바로 수베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동굴 속의 물 근원지로 들어가서 물길을 막아버립니다. 갑자기 마을에 들어와야 할 물이 끊깁니다. 야단나지요. 이제 꽃 농사가 한창인데 하루하도 물이 없으면 큰일입니다. 마을이 시끄러워집니다.
다급하면 하나님 찾습니다. 그동안 나오지도 않던 주민들까지 성당 미사에 참여합니다. 신부님이 꼬집습니다. 급하기는 급한 모양입니다. 어쩌면 고해성사를 들어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죄가 있으니 이런 재앙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일침을 가합니다. 여기저기 웅성댑니다. 마농의 복수라고 짐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때 무리들 앞에서 세자르가 마농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자기 가진 것 다 줄 테니 결혼해달라고. 응할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짐작하였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도망가더니 목매답니다. 수베랑이 기막혀합니다. 정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장례식에 오랜 이웃할머니 ‘델핀’이 와서 수베랑에게 옛이야기를 합니다.
연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보낸 편지에 수베랑이 답신을 하지 않았던 일생일대의 실수를 탓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전선을 이동하며 참전하던 수베랑은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답신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임신을 알리고 결혼할 것을 통보한 것인데 답이 없으니 떠난 것입니다. 억지로 낳은 아들은 장애를 가졌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꽃 농사를 잘 짓다가 그만 마을사람들의 시기 질투를 받아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엄마는 도시사람이니 진작 떠났습니다. 그러니 딸인 마농만 남아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 무슨 비극인가 싶지요. 그래도 마농은 그 선생님과 결혼하여 살아갑니다. 영화 ‘마농의 샘2’(Manon of the Spring)을 보았습니다. 1986년 작품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