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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8 ~ 08.22
태국 푸켓 4박 5일.
금번 하계휴가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으로 기념삼아 샌들까지 맞췄다.
이미 호적으로 끈끈하게 얽혀있는 관계지만 보다 더 긴밀하고 깊은 유대감이 느껴졌다.
다만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언뜻 보면 사이즈 가늠이 되지 않아 숙소를 나설때마다 자신의 문수 찾아 신느라
옷장 앞에서 서로 발을 뀄다 벗었다~ 세상 번잡했다는거다.
행선지를 태국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몇달전 동남아 여행의 첫 스타트로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오곤
나는 약간의 마상을 입어 울적해져 있었고,
마침 비슷한 시기에 직장 동료가 태국 방콕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동료로부터 건네받은 방콕 여행서적을 심드렁하게 넘겨보며 '언제 한번 가볼까~'
지극히 가벼운 마음으로 꽂아넣은 책갈피가 한달 뒤 본격적인 플랜을 꾸리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해서 그나마 공간이 넉넉하게 빠진 기내 맨 앞줄 프리미엄 좌석을 인당 27,000원씩 별도로 지불하였다.
왕복으로 근 16만원을 추가로 긁고나니 이번에는 내 통장 상황이 편치 않았다.
그나저나 샌들에 양말 신고 오지 말라고 그렇게나 염병을 떨었건만 아주 쌈빡하게 무시를 해주셨다.
별수없이 유대감 형성을 위해 다음부터는 내가 그냥 양말을 신기로 했다.
내래 아주 기냥 양말 가탱이를 무릎팍까지 끄댕겨서 신어주갔어~
갈때는 기내 좌측 프리미엄석을, 올때는 우측 프리미엄석을 선점하였다.
타고 내리는데에 수월하고, 널찍한 공간이라 다리를 내뻗기에 편하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그것을 단박에 상쇄하는 단점들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뻘쭘함과 부산스러움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쾌적하고 평안한 비행을 위해 통로측 좌석는 내가 고수하였다.)
이착륙 시나 기류 불안정으로 벨트 사인이 켜지면 승무원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착석 후 객실 상황을 실시간으로 주시하는데 그 자리의 위치가 내 바로 맞은편이었다.
칸막이 덕분에 서로의 모습이 절반씩만 보여지는데
뭔 아수라 백작도 아니고 그게 더 우스꽝스러워 서로에게 더 집중하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거리도 가까워 마치 교탁 바로 앞자리에서 6시간 반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는데,
덕분에 비행 내내 안면의 반쪽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벨트 사인이 꺼져있는 동안에는 '뻘쭘함'의 공백을 '부산스러움'이 대신하였다.
기내식 배식과 음료 판매, 면세품 판매, 입출국카드 배포로 승무원들은 수십번 통로를 오가고,
승무원들의 활동이 좀 잠잠해진다 싶으면 승객들의 똥깐 타임이 시작되어
시종일관 화장실을 들락날락~ 어수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초조한 기운으로 빠르게 옆을 스쳤던 이들이 이내 여유를 되찾고 느긋하게 나오는 모습에
본의아니게 그들의 건강한 생리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기분이라 착잡했다.
귀국편의 우측 프리미엄석이다.
좌측 좌석보다 조금 뒷편에 위치하고 있어 보다 공간이 널찍했지만
오가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람해야하는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그냥 혼자 낑겨가거나 화물칸으로 타야겠다는 다짐을 곱씹었다.
항공료에 기내식은 미포함이라 사전에 요금을 지불하고 신청하지 않으면
상공에서의 끼니는 각자가 챙겨야했다.
이른 시간이라 입맛이 없을거라고 판단해 탑승 게이트 근처의 매장에서
간단하게 김밥 3줄과 샐러드를 1팩을 사들고 기내에 올랐다.
이륙 후 일정 고도에 도달하자 승무원들은 창문 덮개 폐쇄를 지시했고
이내 기내 조명이 일제히 소등되면서 강제 수면 모드로 들어갔다.
허나 가만히 앉아서 이륙의 상황을 견뎌낸 것이 너무 고되고 대견했던 우리 가족은
그 컴컴한 어둠속에서 포장지를 뽀시락거리며 김밥 꽁다리를 베어물었다.
맨앞줄에 앉아서 이륙 10분만에 허겁지겁 밥상을 펼치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승무원도 덩달아 분주해져서 종이컵에 물을 채워주며
일가족의 급체를 미연에 방지해주셨다.
그리고 2시간 뒤, 기내식을 사전 신청한 승객들에게 식사가 배식되기 시작하자
그 황홀한 냄새에 김밥먹은 기억이 순식간에 리셋되었다.
결국 개당 4,000원하는 컵라면(小)을 종류별로 하나씩 주문하여 허기를 달랬다.
물부족 국가라 그런가, 물을 너무 적게 넣어 컵라면이 세상 염전이었지만
가격을 떠올리고는 건더기 하나 안남기고 비워냈다.
부모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지 나중 수거한 빈용기들을 보니
지금 당장 절간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말끔했다. 발우공양의 1인자들이었다.
지난 베트남 여행 시 만든 동(VND)지갑과 같은 방법으로
이번 태국 여행에도 명함첩을 개조하여 바트(TBH) 전용 지갑을 챙겨갔다.
(명함 비닐속지 두장을 겹쳐 양쪽 가탱이에 스템플러를 박으면 화폐 단위별 수납 공간이 생기고
여분의 속지에는 당시 사용한 영수증을 보관하는 용도로 활용한다.)
5장의 지폐와 6개의 동전을 사용하는 태국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지폐의 색상만 다를 뿐
인쇄된 위인은 동일했는데 2018년 국왕이 바뀌면서 구권과 신권이 같이 통용되고 있다.
구권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20바트 참고),
신권은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500바트 참고)이다.....와치ㄹ.......발음에 유의하도록 하자.
단위는 20바트, 50바트, 100바트, 500바트, 1000바트로
한화로 환산시 800원, 2,000원, 4,000원, 20,000원, 40,000원 정도인데 (바트에 40 곱하기)
태국은 지속적으로 환율이 상승하는 추세라 가벼운 맘으로 쌈짓돈 조금 챙겨서 떠났다간
숙소에서 주구장창 컵라면만 말아먹고 올 수도 있다.
과장을 좀 보태긴 했지만 그만큼 그 옛날 값싼 동남아 여행쯤으로 치부하기엔 무리라는거다.
특히나 관광사업으로 유지되는 푸켓은 서울 물가와 별반 다를게 없는 수준이라
야시장이나 로컬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끼니 비용을 인당 만원 이상으로 책정해야했다. (부가세 17% or 팁 금액까지 포함해서)
100달러를 다발로 챙겨가 현지에서 바트로 환전할까하다
이중 환전이 귀찮기도 하고 수수료 우대를 받으면 크게 차이도 없을 것 같아
그냥 주거래 은행에서 100만원을 25000바트로 환전하였다.
근데 바트를 보유하고 있는 지점이 여의도에 있어 버스를 타고 가야했는데
기본 왕복차비에, 졸리다고 사먹은 아이스라떼, 외롭다고 사먹은 고로케,
덥다고 들어간 IFC몰에서 벌인 돈지랄 향연을 생각하면
그냥 이중 환전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장장 6시간이 넘는 자발적 감금 상태에서 해방~
드디어 태국-푸켓 땅을 밟았다.
정신과 시간의 방을 방불케하던 입국심사 줄에서 잠시 호흡이 가빠지는 위기가 있었지만
심사대를 통과하고 공항 로비로 쏟아져나온 후로는 속전속결이었다.
유심 구입도, 바트 환전도, 픽업 서비스도 모두 한국에서 준비하고 신청해뒀던지라
환전소나 유심 판매처를 찾아 헤매일 필요가 없었다.
남은건 출구로 나가 준비된 차량에 올라타기만 했다.
이런 치밀하고 신속한 행동력에는 어떡해서든 현지인과 영어로 나누는
의사 소통의 기회를 최소해보자는 속셈이 있었다.
입국장 3번 출구를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생각보다 선선한 기온에 '가을이여~' 손부채를 걷어내고 그늘을 벗어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웰컴투 동남아가 시작되었다. 굉장히 맑고 화창한 '폭염'이었다.
통로를 구분해놓은 펜스 곳곳에는 다양한 국적의 이름이 적힌 피켓들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는데
자신의 돈줄들을, 아니 고객들을 찾는 픽업 직원들의 부담스러운 아이컨택에
걷는 내내 인중 아래가 못견디게 가려웠다.
그런 어수선한 환대 속에서 수줍은 탐색전을 펼쳐가다
눈에 익은 업체명을 발견하고는 반색하고 다가갔다.
KLOOK. 액티비티 전문업체로 각종 투어나 공연, 픽업 서비스를 대행해주는 여행사로
베트남에 이어 두번째 이용이었다.
10여분 뒤 픽업 기사가 도착하고 준비된 차량에 짐을 싣었다.
으레 조수석으로 향하려는 아빠의 걸음을 막아서곤 입을 열었다.
- 내가 앞에 탈게. 길도 봐야하고 팁도 줘야항게~
하며 본네트를 돌아 차문을 열려는 시늉을 하자
트렁크에 캐리어를 올리던 기사님이 서둘러 다가와 내 행동을 저지하였다.
뒷좌석에 3명이 구겨져서 타라는 의미인가? 아님 여자는 앞에 안태운다는 철칙이 있나?
조금은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다시금 문짝에 손을 가져다대자
기사님은 더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빠르게 손잡이를 고쳐잡곤 한마디 하셨다.
- 아임 드라이버.
태국은 운전석이 오른쪽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운전석 문짝을 집적거리며 기사님의 밥줄을 끊으려고 했다.
문짝 너머 핸들을 발견하곤 반대편으로 호다닥 돌아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타국서 날아온 웬 듣보 여인으로부터 자신의 소듕한 운전대를 사수한 기사님은
그제서야 굳어진 표정을 풀고는 마저 짐을 싣고 부모님을 뒷좌석으로 에스코트 하셨다.
출발과 동시에 멋쩍은 마음에 사이드미러에 시선을 고정하곤 소심하게 뱉었다.
- 코리아 핸들, 레프트...............레프트.
- ...........
- .................(대시보드에 핸들을 그리며) 이즈 히얼.
..............이것이 바로 12년 정규 교육으로 다져진 실전 영어다!!!! 문법 어디?!!!! 맥락 무엇?!!!!
앞에 앉아 뻘소리 지껄이는 딸래미를 외면하고 싶으셨던지
부모님은 초면인 것처럼 일절 내게 말을 걸지않으셨다.
뒤에서 두분이서만 속닥거리며 거리 풍경에 대해 감상을 나누셨는데
타국에서 합승한 기분도 들고~ 갑자기 개똥벌레 노래 부르고 싶고~ 여튼 되게 외롭고 좋았다.
오후 1시 30분, 공항에서 약 50분을 달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첫째날의 숙소는 남부 까론비치의 4~5성급 만다라바 리조트로
야트막한 산 위에 위치해 있어 우거진 열대림과 바다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까론비치와는 도보로 10분 거리로 해변가와 근접해있지않는 대신에
리조트 내에는 5개의 대형 풀장과 풀억세스룸 전용의 미니풀이 곳곳에 있어 원없이 물장구를 칠 수 있었다.
입실은 오후 2시인데 30분이나 일찍 도착해버려 로비 소파에 앉아
웰컴티를 홀짝이며 시간을 죽였다.
로비는 3면이 뚫린 구조라 야외의 날씨를 절반치는 공유하고 있었는데
뜨뜻미지근한 날씨 속에 조금은 따분한 표정으로 소파를 지키고 있는 부모님이 마음에 걸려
직원에게 얼리 체크인이 가능한지 요청했지만 객실 청소가 완료되지 않아 어렵다는 답변이 전해졌다.
좀 더 뭉개고 있어야한다는 상황을 설명해드리자
부모님은 '괜찮아. 하나도 안더워.' 염려와는 다른 매우 쌩쌩한 회신이 돌아왔다.
딸내미 기분 맞춰주려고 부러 힘든 내색 안하시는걸까 싶었지만
부모님의 컨디션은 정말이지 양호한 상태였다.
내부의 조형물이나 장식품을 구경하며 로비 구석구석을 훑고 다니시거나
아이패드로 전국노래자랑을 보며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거리시기도 했다.
그런 부모님 곁에 절인 배추가 하나 있었는데.....
사실 더위는 내가 가장 심하게 타고 내 체력이 가장 즈질이었다.
내가 어서 객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야했다. 얼리 체크인 해달라고오!!!!!
정확히 2시 정각이 되자 직원이 다가와 야외에 대기 중인 셔틀카로 우리를 인도했다.
리조트내 부지가 워낙 넓고 복잡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오르막과 내리막 구간이 많아 짐이 많거나 어린자녀, 노약자가 있는 가족 무리에게는
셔틀카 탑승이 필수였다.
나는 부모님에게는 어린 자녀였지만, 도가니 상태를 보면 노약자에 가까웠기 때문에
직원분에게 캐리어를 맡기고 낼롬 셔틀카에 올랐다.
1번 리조트 로비를 기준으로 우리 객실까지 찾아가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냥 가장 멀고 높은 지대를 향해 걷고 또 걸으면 된다.
붉은색으로 표기해둔 ZONE 8 구역으로
얼마 안남은 도가니 지대로 갈아버리는데 최적의 위치에 입지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서면 살벌하게 펼쳐지는 내리막 로드에
우리는 가급적 바깥 외출을 삼가하면서 지붕아래에서만 활동하는 은둔형 외톨이 가족으로 거듭났다.
그래도 엄마와 나는 틈나는대로 사부작거리며 오르내렸는데
아빠는 식사와 풀장 입수를 제외하면 정말이지 침대에서만 생활하셨다. 요양온 줄...
객실 타입은 디럭스 풀억세스룸으로 기본 2인 요금에서
엑스트라 베드 추가하여 총 3인, 2박 조식 포함하여 한화로 70만원 정도를 지불했다.
두밤 자는데 숙박비가 인당 10만원이 넘는다고 생각하니 그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종일 침대에 누워서 앓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아빠는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매우 충실하게 이행해주셨다. 진심 요양온 줄2222.....
추가로 들인 엑스트라 베드때문에 공간이 다소 좁게 느껴졌지만
전면이 통유리 발코니로 되어 있어 많이 갑갑하진 않았다.
방 크기가 고만고만하던 것에 비해 욕실의 규모는 꽤 큼직했다.
샤워 부스와 욕조가 위치한 한쪽 천장깨에는 지붕을 유리로 시공하여
해가 지기전까지는 눈이 부실만큼 쨍한 볕이 쏟아졌고
물놀이 후 젖은 옷가지를 가볍게 세탁해서 널 수 있는 건조대와 두개의 세면대,
샴푸나 칫솔 등의 기본적인 어메니티도 깔끔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2박 내내 왱왱대는 똥파리 하나가 날라다녀 이건 뭔 옵션인가 싶었지만
널찍하고 쾌적한 시설에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미닫이로 열고 닫는 욕실문의 걸쇠가 좀 허술해서
잠궜다고 여기고 순산 자세를 잡고 있으면
여지없이 엄마가 문짝을 벌컥 열고 들어와 나 따위는 아랑곳 않고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거나 양말을 빨았다.
내 개인 프라이버시가 1도 존중되지 않아 매분 매초가 스릴 넘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발코니 문만 열면 바로 풀장으로 입수가 가능한 풀억세스룸이다.
좌측에는 개인용 자쿠지와 우측에는 썬베드와 티테이블, 정면에는 미니풀로 이어지는 대문이 있다.
본래 신청한 객실 타입은 디럭스 풀억세스룸이었는데
직원분이 슈페리얼 프라이빗 풀억세스룸으로 룸업그레이드를 해주셨다.
차이는 숙소 밖 풀장 앞에 대문이 달려있는지의 여부로
객실 내부가 오픈되지 않아 사생활 보호에 유리하여 좀 더 값이 나가는 방이었다.
헌데 실은 우리 가족에게는 딱히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
다들 침대에서 자리보전하고 있느라 굳이 보호해야 할 사생활이 없었다.
그리고 룸 업글이 된 사실도 입실을 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는데
체크인 당시 리조트 시설이용 관련하여 직원분과 5분 정도 얘기를 나눴고
분명 룸업글에 대해서도 언급이 됐을테지만...............미안하다. 조식 시간 빼고는 거의 못알아들었다.
어르신들 끼니때는 놓치면 안되기에 밥먹는 시간만 챙기고 나서는
대충 '오케이~ 으흠~ 으흠~ 어예, 으흠~ ' 개같은 추임새로 100% 이해한 척 했다.
침대에 누워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엄마가 가방을 뒤지며 주전부리로 싸온 초코바를 찾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어르신들 당 떨어지기 전에 어여 뭔가를 바쳐야했다.
모처럼 푸켓에 왔으니 현지 식당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이다 절절 끓는 기온 아래서 식사를 하실지
아님 밋밋하게 시원한 객실에서 전화 한통으로 룸서비스를 시켜드실지
부담없이 의견을 말씀해주십사~~ 전화기 앞에 서서 답정너 가득한 안건을 던졌다.
20여분 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라탄 바구니를 든 직원이 객실을 찾았다.
메뉴는 스프링롤, 새우-치킨 볶음밥, 돼지고기 볶음국수.
17% 부가세 포함해서 4만원이 조금 안되었던 같다.
- 볶음밥이네~?허허허허~ 양이 많네~허허허
볶음밥을 앞에 둔 아빠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숟가락의 포장을 벗겨냈다.
반시간 전의 일이었다. 셔틀카를 운전한 직원이 객실 내부까지 들어와 시설 이용에 대해 간단하게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이는 태국식 감사 인사를 전했다.
- 컵쿤 캅~
그리곤 남자는 컵쿤 캅~ 여자는 컵쿤 카~로 인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발음의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같은 의미의 단어를 다른 발음으로 서너번 반복하여 알려주셨다.
그렇게 직원분과 어설픈 영어 스피킹으로 짧고 얕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데
소파에 앉아있던 아빠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배움과 소통의 장을 개판 놓으셨다.
- 볶음밥 달라는데? 볶음밥~ 볶음밥~으허헣헣헣헣
흐즈마..........
식사 후 빈 접시의 처치를 두고
직원을 부르니~ 문밖에다 내놓니~ 퇴실 전까지 소중히 간직하니 마니~ 사소한 논쟁을 이어가다
익일 룸클리닝 시 수거할 수 있도록 물로 헹궈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로 했다.
든든하게 배도 채웠겠다, 에어컨 빵빵하게 잘 나오겠다
슬금슬금 침대께에 엉덩이를 디밀고 자세를 잡았다.
아빠는 화장실 가는데 가깝다고 엑스트라 베드를 차지했고,
엄마는 쿠션감이 편하다며 작달만한 소파에 몸을 뉘였다.
두분이 나와 같은 침대를 쓰는 것을 꺼리는 기색이 느껴져
'저랑 자는게 싫으세요들?!!!!!!' 대자로 누워 역동적으로 펄떡거렸더니
쉴때만큼은 딸내미 혼자 편히 자라며.......나와의 침구 공유를 극구 거부하셨다.
그런고로 2박 내내 킹사이즈 침대를 떡하니 차지하고는 본의 아니게 불효를 저질렀다.
셋이 조로록 누워 아리랑 TV에 채널을 맞춰놓고
한국의 퓨전 국악과 베트남 여자 태권도 다큐를 시청하며 교양을 쌓았다.
매우 교육적이면서 노잼이었다.
그렇게 다들 덧없는 얼굴을 하고는 오수 전의 나른함에 빠져들고 있던 중
무심코 옮긴 시선 끝에 발코니 너머 찰랑대는 푸르름이 걸려들었다.
뭐에 홀린듯 비슬대며 일어나서는 캐리어를 뒤적거렸다.
그리곤 납작하게 포장된 튜브 2개와 휴대용 발펌프를 찾아 침대 위에 올렸다.
기껏 풀억세스룸으로 잡아놨는데 물구경만 하다 가는건
보다 비싼 급으로 룸업글을 해주신 직원의 배려와
돈지랄 쌈바로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내 통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뜬금없이 열정 넘치는 발펌프질을 하자
아빠는 시끄럽다며 내게서 튜브를 뺏어가서는 배는 더 현란한 발놀림을 보여주셨다. 화나신 줄...
그렇게 15분간 쉬지않는 짝다리 펌프질로 두개의 튜브가 형태를 갖추었고
반대로 아빠는 기력을 잃고 몸져누우셨다.
튜브를 띄우고 조심조심 바닥을 디디며 몸을 적셨다.
물색이 너무 파래서 냉수마찰을 각오했는데 생각보다 미지근해서
입수 전, 예열한답시고 과격한 새천년 맨손체조로 난동을 피웠던게 조금 뻘쭘해졌다.
외부의 시야를 차단하던 대문을 밀어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 여행 내내 방수팩을 거꾸로 잘못 끼워 야외 풀장에서 찍은 사진이 죄 흔들리고 흐릿하다.
그것도 하필 렌즈 쪽에 PVC 이중 마감되는 부분과 겹쳐서리
결과물이 뭔....고도 난시가 세상을 마주하는 컷처럼 나왔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렇지 뭐.
50미터 남짓한 길쭉한 형태의 풀은 풀억세스룸 숙박 전용으로
규모가 크지 않는 반면에 이용객이 적어
만다라바에 묵는 2박 동안 개인 풀장에 가깝게 사용했다.
튜브를 킥판 삼아 몸을 띄우고 무던히도 발장구를 쳤지만
몸뚱아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멈춘줄 알았다.
강력한 물기포로 등판 아작내는 자쿠지에 앉아 한참을 달달거리기도 하고
정처없이 둥둥 떠다니다 삶이 고단해지면 곳곳에 놓여진 썬베드에 반쯤 널부러져누워
한쪽 다리를 동당거리기도 했다.
그리곤 이국의 색이 물씬 묻어나는 야자수와 쾌청하게 펼쳐진 하늘을 감상하며
'자외선 차단제를 발랐었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안발랐더라. 이것이 바로 푸켓 뙤약볕으로 완성되는 기미 작렬 에디션.
바캉스 기분낸다고 모처럼 귀염뽀작한 수영복을 챙겨갔다.
헌데 주제도 모르고 스몰로 주문을 넣어버려
입고 벗을때마다 진심으로 사지가 뒤틀리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내가 욕을 그렇게 잘하는 줄 몰랐다.
돌아오는 카타르 월드컵을 치르면 나도 곧 마흔인데
이게 뭔 주책인가 싶었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만년 어린아이 아닌가~
프릴로 장식된 밑단을 휘날리며 한바퀴 돌자
그런 염병을 묵묵히 지켜보시던 엄마가 마지못해 입을 여셨다.
- 아이고...귀엽네...
십수년전 개판 친 수능성적표를 보여드렸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담담한 살의마저 느껴졌다.
튜브를 근처에 주차시키고 썬베드에 누워있다
선글라스 모양만 남기고 전신이 시커먼스가 될 것 같아 잠시 객실로 복귀하기로 했다.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를 위해 남들은 돈 주고도 하는 태닝이지만
내가 태우면 걸쭉한 춘장 느낌 뿜뿜이라
썬크림을 처발하든가 래시가드로 무장하든가 뭔 조치를 취해야했다.
결국 겨드랑이살 압박하는 수영복은 벗어던지고
염병하기 편한 워터레깅스와 바람막이로 환복 후 다시 풀장으로 뛰어 들었다.
뒤늦게 합류한 엄마와 튜브를 주거니 받거니 끌어당기며
풀장의 끝과 끝을 수차례 왕복했다. 본격 수중 재활운동이었다.
그러다 폭이 좁고 길쭉한 미니풀이 갑갑해진 우리는
사람은 무릇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리조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망고풀로 장소를 옮겼다.
도보 5분 거리로 멀진 않았지만 리조트 구석구석을 탐험하느라 (=지대로 헤매느라)
정수리가 노릇해지고서야 풀장에 도착했다.
망고풀은 생각보다 거대하진 않았지만 이곳 외에도 대형 풀이 4개가 더 있다보니
이용객들이 분산되어 언제가도 한산함을 유지했다.
풀 중앙에 위치한 풀바에서는 간단하게 요기를 때울 수 있는
음료와 주류, 간식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펼친 메뉴판에 적혀있는 가격을 확인하고는 (가격이 좀 사악...)
바체어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튜브 구멍속으로 쏙 들어갔다.
군더더기 1도 없는 매우 자연스러운 퇴장이었다.
뭍으로 나오니 파이어에그가 생겼다.
세상 숭하다며 엄마가 기겁을 하셨다ㅋㅋㅋ
만다라바에 묵는 동안 느낀거지만 오며가며 마주하는 이용객의 70%는 서양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식당이든 풀장이든 대체로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물론 30%를 차지하는 중국인 무리가 등장하면 조금 소란해졌지만
적당히 들떠서 주고받는 대화 수준이라 크게 거슬리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거슬리는건 풀장을 들락날락할때마다 옵션으로 생기는 내 파이어에그 밖에 없었다.
원치않는 에그를 달랑거리며 다시 객실로 돌아왔다.
젖은 옷가지를 널고, 샤워를 하고, 거울 속 말간 내 얼굴에 탄복하는 시간을 갖다보니
어느덧 밤 8시를 향하고 있었다.
달게 주무시고 있는 아빠를 깨워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밖을 나섰다.
리조트 내에 고급스럽고 분위기있는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가격이 좀 개사악...)
기왕 푸켓에 온거 발품을 팔아 로컬 식당을 뚫어보기로 했다.
리조트를 빠져나와 내려가는 길,
도보는 전반적으로 폭이 좁고 사위가 어두워
자연스럽게 선두는 내가, 바로 뒤에는 엄마, 그리고 좀 더 떨어져서 아빠의 순으로 걸었다.
이런 뭔...비틀즈 횡단보도 건너는 대열은 여행 내내 지속되었는데
분명 사이좋은 한가족이거늘 이동할때만큼은
널찍한 한줄 걷기로 세상 데면데면한 간격을 유지했다.
대화라도 할라치면 서로간의 거리가 멀어 의도치 않게 샤우팅을 내질러야 했다.
다음번 여행때는 무전기를 챙겨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리조트 로비에서 5분 정도 걸어내려왔을까.
조금 큰 대로변으로 접어들면서부터 편의점과 마사지샵,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까론비치 부근의 큰 야시장까지 진출할 생각이었는데
리조트 근방의 로컬 식당들도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활기를 띄고 있길래
그 중 테이블이 절반 정도 들어찬 [똠양] 식당으로 발을 들였다.
사방이 오픈된 구조라 조금 후텁지근했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밤바람과
곳곳에 놓인 대형 선풍기 덕분에 크게 덥지는 않았다.
문제는 내 바로 뒷편에 자리한 선풍기의 회전풍 때문에
식사 내내 미친갱이마냥 대가리털이 사방팔방 나부껴
마주 앉은 부모님의 정신을 매우 사납게 만들었다.
손때가 잔뜩 탄 묵직한 메뉴판을 받아들고 한참을 팔랑거렸다.
가짓수가 너무 많기도 했고 메뉴의 생소한 이름과 비쥬얼에 당최 감이 오지않아
부모님쪽으로 메뉴판을 슬쩍 디밀었다.
매우 신속하게 내쪽으로 토스되었다.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얻고 들은 정보를 떠올리며
식사로는 파인애플 볶음밥과 팟타이를(볶음국수),
안주 대용으로는 무난하게 새우구이를 선택했다.
그리곤 아빠와 내 몫의 맥주를 주문하면서 입이 심심할 엄마를 위해
수박쥬스, 파인애플 쥬스를 각 한잔씩 주문했다.
고랭지 절임배추마냥 늘어져있던 부녀는 맥주를 주문하고부터 눈에 띄게 화색이 돌면서 눈빛이 형형해졌다.
그 기적에 엄마는 두번째 담담한 살의를 내보이셨다.
맥주와 쥬스는 오더 직후 서빙되었지만 메인 요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미적지근해진 맥주를 홀짝이며 근 30분을 안주없이 버텼다.
주문이 누락된게 아닌지 염려된 엄마는 직원을 불러 요리의 진척 상황을 체크해보라며
가급적 입다물고 조용히 살다가고싶은 나를 매우 독촉하셨다.
옆을 지나는 직원을 멈춰 세워 요리의 진척 상황과 주문누락 가능성에 대한 내용을 함축시켜
'팟타이, not yet?' 하고 묻자
올모스트 어쩌고하면서 다급하게 주방 쪽으로 사라지셨다.
'좀전에 오도바이 출발했습니다~'의 마법이 통한건지 이내 새우구이와 팟타이,
볶음밥이 순서대로 테이블 위로 날라졌다.
한참을 맥주 주둥이만 핥으며 입맛만 다셔서인가,
아님 오랜만에 튜브에 얹혀서 둥둥 떠다니는 과격한 레저활동을 해서 그런가
따뜻하게 내어진 음식들을 보고 있자니 급격하게 허기가 지면서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룸서비스에 이어 두번째 접해보는 팟타이는
적당히 짭짤한 양념에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숙주의 식감에
부모님도 거부감 없이 연신 면발을 덜어갔고,
특별한 조리법 없이 소금 치고 바삭하게 구운 새우구이는
한국에서 먹는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더욱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다.
문제는 파인애플 볶음밥이었는데,
파인애플 피자를 만든 사람은 태형에 처해야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나는
고개를 내젓을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새콤달콤한 딸기를 보리밥에 비벼먹는 수준의 쇼크였다.
허나 각종 해산물과 함께 조리한 볶음밥은 파인애플 특유의 달큰한 향이 느껴지긴 했지만
생각보다 고소하고 간간해서 우려와는 다르게 부지런히 숟가락을 가져다댔다.
다만 양이 많아 성인 3명이서 집적댔는데도 간신히 절반 정도만 덜어낼 수 있었다.
이후 엄마의 싸늘해진 눈초리와 맞서 싸우며 맥주를 대여섯병 추가하고
한시간을 더 뭉개고 있다 자리를 정리했다.
1040바트, 한화로 41,000원 정도가 나왔다.
예상보다 오버된 지출에 메뉴의 가격과 주문 수량을 正자로 꼼꼼히 따져 셈해보니
금액이 딱 맞아떨어졌다.
훗, 내 카드값도 이런식으로 나가더라고......반박해서 이겨본 적이 없어.
다시 리조트로 복귀하는 길.
스티키라이스, 망고밥을 판매하는 노점 상인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과일과 곡식이라는 조합의 파인애플 볶음밥으로 한단계 성장한 기분이 들었던걸까,
주저없이 1개 포장을 외치곤 지갑을 열었다.
100바트, 한화로 4,000원 정도이니 거리 로컬푸드치고는 다소 비싼감이 들었다.
하지만 또 한국에서의 망고 가격을 생각하면 저렴한거 같기도 하고...
'비싼거 같아...아냐, 한국으로 치면 싼거지 뭐...근데 현지가로는 비싸.....아니 싸! 아니 비싸! 아니 싸! 아니 비싸...'
상인분이 요령좋게 망고를 손질하는 동안 홀로 서서 고독한 언쟁을 이어나갔다.
본디 인생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는가............아니다. 하지 않는다. 아니다. 한다.
이거 뭐 해리성 장애야 뭐야..
아빠와 내 손엔 편의점에서 구입한 캔맥주와 마른 안주거리 따위가 담긴 봉다리가 한짐이었다.
리조트 로비 도착 후 셔틀카를 요청하려 했지만 데스크에 몰려있는 사람들이 많아
밤공기도 쐬면서 천천히 올라가보기로 했다.
리조트 내부 곳곳을 밝히는 가로등을 하나 둘 지나며
수십채의 객실들이 품고 있는 저마다의 간질간질한 소란함,
야자수 나무들의 짙은 녹음과 미미하게 느껴지는 바다내음 등
낮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정취를 좇아 체감 경사 90도의 오르막길을 등정하였다.
부모님의 도가니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불효자였다.
와웈ㅋㅋ2탄주세여ㅠㅠ현기증난다구여
필력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어ㅠㅠㅠ여행가고싶닼ㅋㅋㅋ
글 진짜 잘쓴다 ㅋㅋㅌㅋㅋㅋ 재밌게 봄 소설 같아 ㅜㅜ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ㅌㅌㅌ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글 진짜 ㅈㄴㅇㄱ 잘봣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리수풱!!!1
필력 진짜...이야... 너무 재밌게 읽었어 ㅋㅋㅋㅋㅋㅋ
뭐야 나 정독했어ㅋㅋㅋㅋㅋㅋ 잘봤어 재밋다ㅋㅋㅋㅋㅋㅋㅋㅋ
아보는내내 끌끌대면서웃엇다 ㅋㅋㅋㅋ글쓴이 필력 대박이다
이탄.. 언제나와요..
개재밌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탄 주시라구뇨~٩(๑^ㅅ^๑)۶•*¨*•.¸¸♪
다시 와줘...
재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