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인터뷰를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3사관학교 여군 후보생들의 숙소에 잠시 들렸다가 마주친 그녀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매서웠기 때문이다. B사감 같은 앙칼진 목소리로 후보생들의 눈물을 쏙 빼놓던 그녀의 모습. 그런데 후보생들이 입을 모아 닮고 싶은 인물로 꼽던 사람이 이세리 중위였다. 궁금해졌다. 그녀의 매력.
“지금 뭐하는 겁니까!” 이세리 중위와의 첫 만남
“동기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군 후보생들이 집합 과정에서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후보생 간에 살짝 부딪혔나 보다. 예리한 눈매를 가진 이세리 중위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바로 후보생들에게 혼쭐을 냈다.
“이기적인 사람이 가장 싫습니다. 나 살자고 내 동기를 내팽겨 치는 것은 군인이 모습이 아닙니다.”
‘왜 내가 군인이 돼야 하지?’ 운명처럼 다가온 군인
태어날 때부터 군인을 목표로 했을 것처럼 무서운 이세리 중위는 사실 군인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활발하게 대학생활을 즐기고 친구 좋아하던 이세리 중위. 대학교에서 체육을 전공했던 이 중위는 원래 교수가 꿈이었다. 처음 부푼 꿈을 안고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갔을 때 교수님이 ‘너는 군인이 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다지 새겨듣지 않았다.
“‘왜 내가 군인이 돼야 하지?’ 생각했죠. 아마도 제가 체력이 되는 것처럼 보여서 교수님도 그렇게 절 보신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캠퍼스를 지나다 여군 모집 현수막을 봤고... 그 날 바로 그녀는 장교후보생들이 가입해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 만 개 쯤 되는 글을 밤을 새며 다 읽었다. 그 날부터 그녀는 여군 장교를 목표로 2년간 철저한 준비를 했다.
결국 그녀는 장교후보생으로 선발이 됐다.
부드러운 모습으로는 야전 적응 못해... 그녀의 리더십 철학
야전에서 소대장을 했던 그녀는 동기들의 권유로 훈육장교를 선택했다. 야전에서는 동기가 많지 않아서 동기의 소중함을 몸소 느꼈기 때문에 그녀는 동기가 있는 후배를 만들고 싶었다.
이세리 중위는 악독하기로 소문이 났다. ‘쓰나미’라는 별명이 붙은 건 이 중위가 지나가기만 하면 그 주변 후보생들이 초토화되기 때문이라고. 엄하게 후보생들을 단련시키다 보니까 후보생들에겐 저절로 동기애가 생기게 된다. 이 중위는 바로 그 점을 노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제 리더십이 강하기만 한 리더십이었어요. 자신 있었거든요. 여자로서가 아니라 군인으로서 자신감이 있어서 여성성보단 남성적인 리더십을 보였어요. 하지만 그게 옳은 방법만은 아니더라고요.”
남군이든 여군이든 그들은 어머니 같은 리더십을 원했다. 당연히 이 중위의 강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남성적 리더십은 그들에게 부작용이 있기도 했다.
“군기는 있는데 얼굴은 어둡더라고요. 그제서야 알았죠. 제 훈련 방법을 좀 바꿔야 한다는 걸. 그래서 그 때부터 교육할 때는 엄하게 하되, 생활관에서는 엄마 같이 먼저 다가가게 됐어요.”
그래서 그녀는 누구보다도 무서운 훈육장교지만 또 누구보다도 감동 주기도 한다. 생일자 훈련생이 있으면 불러다가 몰래 초코파이 케이크을 만들어 챙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후배들이 쪽지에 ‘엄마 같다’는 말을 적어놓은 걸 보면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고.
여군? 아니죠, 군인 이세리 입니다!
호랑이 훈육장교 이세리 중위는 자기관리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화장실을 다녀와도 항상 구두를 닦는다.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훈련생도 그대로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체력관리에서도 그녀는 남달랐다. 야전에서도 남군과의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배수로 파는 일이 있으면 직접 같이 임했던 것처럼 훈련생들이 구보를 뛸 때도 그녀는 항상 같이 했다. 매일 아침 1.5km를 뛰고 오후에는 4~10km를 뛰는 그녀는 체육학과 출신 답게 체력도 좋았다.
“제가 축구랑 족구도 좋아합니다. 족구는 군인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죠. 보통 여군들은 잘 못하던데 여군들도 남군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뭐든지 적극적으로 열심히 해야 ‘남군’ ‘여군’ 차별 없이 ‘군인’으로 대우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중위는 스스로 원해서 군인을 택하기 때문에 여군들이 더 악바리 근성으로 군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인정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군 선배들이 그만큼 힘든 과정에서 길을 잘 다져줬다고 생각해요. 여군이라고 해서 눈물부터 흘리는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서러워도 그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맡은 일에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선배들에게서 많이 봐왔어요.”
“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군인이고 싶어요.” 그녀의 꿈
아직도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이세리 중위. 그녀에게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 달라고 했다.
“아마도 서른 후반일 텐데... 인정받는 여군이고 싶죠. 군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고 싶어요.아직 방향을 모색 중이긴 한데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또 그 때 쯤이면 한 가정의 어머니이기도 하겠죠?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기도 하고....하하”
항상 스스로에게 당당한 군인이 되자고 다짐하기 때문에 그런 마인드를 후배들에게도 심어주고 싶다던 그녀. 이제 곧 지금 이 중위에게 매섭게 단련된 여군 후보생들이 장교로 임관한다. 이 중위는 마지막으로 무한한 애정을 담아 후배들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제가 칭찬하는 것도 또 받는 것에도 인색해요. 웃으면서 훈육장교로 있었다면 후보생들에게 의지가 됐을 텐데, 제가 악독하게 해서 더 힘들게 한 것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전 그 인원들을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잡초로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모두 다 사랑하는 후배들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여군을 꿈꾸는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막연한 동경이라면 오지 마세요. 전 힘들기 때문에 여기로 왔고, 여기는 또 그런 곳입니다.”
첫댓글 이 글 전에도 봤었어요ㅋ 카리스마ㅎ
고작중위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