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기권에 사는 사촌 자매들 단톡방에
막내가 봄맞이 여행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3월 중순쯤 남해로 2박3일 다녀 오자고 했는데
ㅇㅈ에 사는 고종사촌 언니가 불참 의사를 밝히자
두어명이 더 이런저런 사정을 내세웠다.
갈수있는 사람만 가자고 하고 말았지만 사실상
무산된거나 마찬가지지 싶다.
이대로라면 몇해전에 다같이 코타키나발루를
다녀온후 일년에 한번씩 국내외 여행을 하자고
합의를 본게 말로서 끝날것 같다.
고종 언니는..올해 팔순을 맞으신 형부가 치매
진단을 받은터라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들 딸이 같은 동네에 살고있고
워낙 점잖으셨던 양반이라 아직까진 가족들을
그다지 힘들게 하지 않는다지만 집을 비우는건
무리 일거다.
언니가 처녀때 나와 특별한 추억이 있어 나는
언니가 누구보다 살갑게 느껴진다.
코타키나발루 여행때 나는 언니랑 같이 방을 썼다.
이밤이 새도록 그때 얘기를 나누고 싶어 운을
띄웠는데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듯이 시큰둥하게
굴고는 쿨쿨 잠만 잤다.
나는 김이새서 저러니 살만 찌찌..혼자 구시렁 거렸다.
이쯤에서 언니와의 추억을 상기하지 않을수 없네요
발동만 걸리면 추억팔이 하는 이것도 팔자려니 합니다 ㅎㅎ
당시 언니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아버지
입김으로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우리집에서 생활했다.
시골에서 예쁜이로 통했던 언니는 나날이 촌티를
벗어면서 점점 더 예뻐졌다.
그때 이웃에 잡지사에 다니던 언니가 있었는데
펜팔난을 메꾸기 위해 언니를 꼬드겨서 등록시켰다.
첨엔 내켜하지 않던 언니는 곧 그 재미에 빠져들었다.
날마다 우리집 마당에 편지들이 날아들었고
우리는 밤마다 이마를 맞대고 그 편지들을 읽으면서
키득거렸다.
대부분 유치찬란 하기 짝이 없었는데 어느날
눈이 번쩍 뜨이는 장문의 편지를 발견했다.
반듯반듯한 글씨체며 수려한 문장력을 갖춘
그 편지에 우리는 심봤다~를 외쳤고 언니는
그 편지의 주인공한테 올인했다.
주기적으로 편지가 오가던중 드디어 ㅇㄱ라는
그 남자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모월 모일 모시에 서울역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파란 모자를 쓰고 있겠다면서...
언니는 자기 원피스를 입혀서 나를 데리고 갔다.
근데 서울역앞에 왠 파란 모자들이 그렇게나 많던지...
지게를 지고 왔다갔다 하는 파란 모자들을 보고 불길한
예감을 느꼈는데..
드뎌 우리의 레이더망에 한 남자가 포착됐다.
씨름선수 같은 거구에 얼빵하게 생긴 남자가
하늘색 운동 모자를 쓰고 어슬렁 거리는걸 본
언니는 내손을 끌고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쳤다.
그 와중에도 잽싸게 봤는지 두툼한 입술이 썰어
놓으면 한접시는 될거라고 했다^^
그후 그 남자 한테선 소식이 없었고 일장춘몽에서
깨어난 언니는 마음잡고 조신하게 지냈는데..
어느휴일날 언니랑 목욕탕을 다녀오는데 어떤
젊은 남자가 우리집 대문간을 기웃 거리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언니 이름을 들먹였다.
검정 뿔테안경을 쓴 해사한 모습이 가수 전영록을
닮았었다.
그 남자와 나가서 두어시간을 있다온 언니가 잔뜩
흥분해서 하는 말이..
그 남자는 ㅇㄱ씨의 친구로 숫기없는 친구를 대신해서 편지를 대필해준 사람이라고 했다.
사태파악을 하고 양심 선언을 핑계삼아 그간 글정도
들었을 언니를 만나러온 ㅈㅅ씨에 의해 언니의 심지엔
다시 불이 붙었다.
그 ㅈㅅ오빠는 휴일이면 꼬박꼬박 언니를 만나러
왔고 언니는 데이트에 나를 꼭 데리고 나갔다.
딸리는 문장력으로 고심하는 언니를 스리슬쩍
거들어줬던 공로를 인정해서지 싶다 ^^
겨울로 접어들던때 그 오빠는 말없이 사라져서
언니의 애를 태우더니 크리스마스 무렵에 잠깐
나타나서 근황을 전하고는 영영 잠적했다.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서 도피자 신세가 됐다고
했다.
그렇게 핸섬해 보이던 그 오빠가 그런일에 가담
했다니..
나는 크게 실망 했는데 언니는 오죽 했을까..
첫사랑의 홍역을 단단히 치른 언니는 한결 성숙해진
모습으로 얌전히 지내다가 중매로 ㅍㅎ제철 사원
이었던 지금의 형부를 만나 결혼 했다는요.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젊어 한때 펜팔에 대한 추억 있으신 분들 잠시
추억소환 해보는 시간 된다면 감사 하겠습니다^^
첫댓글 저도 진학지를 보고
한때 펜팔 추억이 있습니다만..
지나고 나니 다 아련한 추억이 됩니다.
3월말 4월초 남해 여행은 참 좋지요...
옛날에 학생지를 보고 펜팔한 추억 더러 있지요
저는 직접은 아니지만 외삼촌이나 저 언니로
인해 펜팔의 묘미를 알았답니다.^^
예전에 갔던 남해 독일 마을이 넘 좋아서
한번 더 가고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가을님 흔적 고맙습니다 .좋은날 되세요^^
재미난, 추억의 펜팔 이야기를 하셨네요.
펜팔이 아니라,
남학생으로 부터 쪽지만 받아도
겁이 나서 쩔쩔매던 생각이 납니다.
사촌언니는 정말 다행이었네요.
중매로 만난 분이 직장도 튼튼했으니요.^^
나이 80세를 넘기면,
몸이 아프거나, 약간의 치매가 있는 분도 생겨납니다.
몸 아픈 남편 간호하느라, 동창회에 못나오는 친구도 있답니다.
여행을 불발로 끝내지 말고, 다시 한 번 더 시도해보셔요.^^
콩꽃님은 모범생 이셨을것 같습니다 ^^
형부가 언니랑 나이 차이도 좀 나고
샌님 같다고 썩 내켜하지 않았다는데
형부가 워낙 무던한 사람이라 잘살아온것
같아요.
여행은 모르긴 해도 현재 상황으로 봐선
좀 어려울것 같습니다.
봄비가 촉촉히 내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아침 입니다.
편안한 날 되세요^^
ㅎㅎ그때는 펜팔이 유행이었지요. 추억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정말 그때는 펜팔이 이성교제를 할수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지요 ㅎ
전 고딩 때 지역 청년문학지에 수필을
잘 쓴 여학생에게 편지를 보냈다가
답장을 받고 기분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
아무래도 글을 잘쓰면 호감이 가지요
저 언니도 얼굴은 몰라도 잘쓴 편지에
반했자나요 ㅎ
그사람도 첨엔 장난 비슷하게 친구대필
해주다가 나중엔 본인일처럼 즐겼지 싶어요
그니까 찾아왔겠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