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이사야 40 : 27-31)
한 노인이 먼 길을 걷는 중에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젊은이는 길이 험하고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중도에 포기하려 했습니다. 노인은 잠시 앉아 쉬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젊은이, 내가 어릴 적에는 높은 산 꼭대기를 보고 올라가려 했지만 중간에 포기한 적이 많았단다. 그러나 언젠가 독수리를 보았지. 바람을 기다리며 날개를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 독수리는 바람이 강하게 불 때 그 바람을 타고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네.
나도 하나님께 나의 길을 맡겼을 때 독수리처럼 날아오를 수 있는 힘을 얻었단다.”
젊은이는 노인의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는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주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1. 절망에 빠진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유명한 본문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40장에서 찬양곡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7절)
여기서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라는 말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고통당하는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망했고 남유다는 앗시리아를 넘겼지만 바벨론에게 멸망당해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래서 ‘유다’라고 해도 되고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통칭이니까 괜찮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악한 바벨론에게 무너지고 포로로 사로잡혀가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또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라는 말은, 바벨론에 의해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짓밟히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들을 지켜주시지 않는다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펴지 않으시고 그 백성이 고통을 당하도록 그냥 놓아두셨다고 하는 사실, 바벨론 같이 불의한 대적에게 물어 뜯기게 하셨다는 사실에 심히 탄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거나 오히려 길이 다 막혀버리는 경우를 경험해 보셨습니까?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리고 온갖 어려운 문제가 내게 몰려와도,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아시고 인도해주신다는 것을 믿는 동안에는 결코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마저도 나의 고통을 외면하신다고 느껴지면 절망에 빠잴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어디서 많이 듣던 말입니까? ‘하나님이 내 사정을 모르시나봐. 하나님이 내 권리를 지켜주시지 않네.’라고 우리도 말합니다. 우리 믿는 자의 삶에도 때로 고통과 절망과 좌절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도 바로 이러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똑같습니다. 이런 마음이 듭니다. 인간이면 이런 마음이 안 들 수가 없는데, 그런 마음이 들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시편 119편 81절에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예레미야 31장 25절에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2. 절망적인 상황에서 땅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비결이 바로 그 다음에 나와 있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8절)
여기서 하나님의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결책입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이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절망에서 나오는 비결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능력이고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세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영원히 존재하신다는 의미도 있지만, 영원히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구원의 약속을 이룰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과정에서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십니다.
욥기 23장 9절에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하나님이 분명히 일을 하시기는 하시는데 어디에서도 그분을 만날 수가 없고 뵐 수도 없다고 욥은 탄식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구절을 보면,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며 그 고통의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3. 주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힘을 얻고 피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내실 계획을 이미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날이 올 때까지 어떻게 한다고 하십니까?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29절)
이처럼 하나님은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공급해주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능력을 받아서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30-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란 ‘앙망한다는 것은 수평적인 생활 관심에서 수직적인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배하며 기다림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다 땅만 보고 삽니다. 위를 쳐다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것은 땅만 보고 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앙망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를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나님과 우리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곤비하고 피곤하고 스트레스에 걸리고 넘어지는 것은 수평적인 인생을 살기 때문에 이 땅에서 다가오는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견디질 못해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쳐다보면 위에서 우리가 능히 이 세상에 스트레스를 이기고 스트레스를 삼키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독수리가 처음 비행할려면 5개월정도 걸립니다. 어떤 경우에는 1년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비행하지 못하지만 좀 훈련이 되면 독수리는 반드시 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날개치며 높이 올라 갑니다.
독수리가 40세가 되면 코부리도 낡고 날개도 낡아서 독수리가 40세 죽든지 새로운 도약을 다든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도약은 높은 곳으로 비상하면서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코부리가 새 것이 나올때까지 고통을 당하고 새로 나온 코부리로 낡은 발톱도 뽐아내고 그 다음에 낡은 날개를 뜨어 새로운 날개가 나올때까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워진 독수리는 30년을 더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흘리는 고통을 감당하면서 새로운 독수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다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로 새 힘을 받은 사람들은 하늘을 향한 소망이 굳건하게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새 힘을 주십니까?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않을 것이요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약속하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독수리를 괴롭히는 것은 까마귀입니다. 독수리는 날개를 높이 올라가면 까마귀는 산소가 부족하여 떨어집니다. 까마귀같은 사람에 상대하지 말고 나의 가는 길을 높이 올라가면 됩니다. 높이 올라가 나의 꿈을 이루어 가면 됩니다.
하나님을 앙망할 때만이 새 힘을 얻습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송하면서 살아갈 때 이 땅에서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생활을 극복할 수 있는 새힘을 얻는다는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며 독수리가 하늘 높이 솟아 오르듯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요나 2장 7절에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출애굽기 17장 12절에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는 사람으로 독수리가 하늘 높이 솟아 오르듯 올라가며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